《동생이 태어났어요 》
1. 원희는 알고 싶은 것이 많아요.
1학년 1반의 쉬는 시간이었어요. 반에서 제일 키가 작은 남자 아이.원
희가 선생 님 곁을 맴돌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들이 아까 시간에 써낸 글을 읽느라 그걸 몰랐어
요.
"탁!"
원희가 선생님 책상 위의 자를 만지작거리다 땅에 떨어트린 소리였어
요. 그제야 선생님이 원희를 보며 웃어주었어요.
"밖에 나가 놀잖구. 왜?"
"선생님, 선생님도 아기였을 때가 있어요?"
"물론이지. 사람은 다 처음에 아기로 태어나지."
"아기로 태어나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어요?"
원희가 눈을 빤짝이며 물었어요.
"엄마 뱃속에 있었지. 몰랐니?"
"엄마 뱃속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왜?"
"엄마 뱃속에는 밥, 시금치, 수박 그런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어요.
"엄마가 그런 걸 먹는다고 말이지?"
원희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어요.
"하지만 그런 건 뱃속에 있다가 똥으로 나와 버린단다."
"엄마 뱃속을 열어볼 수 없어요? 한 번 보고 싶은데...... ."
"호호, 엄마 뱃속이 무슨 가방 속인 줄 아니? 열어보게. 그렇지만 아기
가 사는 방 을 초음파로 비춰볼 수는 있단다."
"초음파요? 그건 촛불 같은 거예요?"
"아니, 빛을 이용하는 기구란다. 그런데 원희는 그게 몹시 궁금한가 보
지?"
"엄마 뱃속에 방이 있어요? 그 방은 좁고 캄캄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거기 갇혀 있다 나올 수 있지요?"
"원희는 그게 궁금하니? 엄마가 배를 잡고 죽을 힘을 다해서 꺼내지. 원
희는 캄캄 한 뱃속에 있다가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
그러자 원희는 뱃속에 있었을 때의 생각을 더듬어보는 듯이 생각하더
니 말했어요.
"시원했어요. 넓은 데로 나왔으니까."
"그렇지? 원희는 태어나는 날 그 선물을 받았단다."
"선물요?"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는 이 세상!"
"우와, 정말이네요."
원희는 그제야 신이 나 놀러 나갔어요.
2. 원희는 동생이 미웠어요.
원희네 집에 동생이 태어났어요. 동생이 태어나면 무척 좋을 줄 알았어
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는 원희
차지였어요. 엄마는 원희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색종이로 개구리 접는
법도 가르쳐주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만들어 주었어요. 아빠도 회사에
서 돌아오면 원희를 번쩍 안아 올리고 볼을 비비며 이렇게 말했어요.
"야, 우리 집 귀염둥이! 오늘 뭐하고 놀았어?"
그런데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 아빠 마음이 모두 싹 변했어요.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시면 제일 먼저 나가 문을 열어주는 건 원희인데요.
아빠는 원희를 젖히고 아기를 보러 가요.
"아이구, 우리 공주님! 오늘은 더 예뻐졌네."
동생을 한참씩 안아주고 동생하고만 놀아요. 엄마는 또 어떻구요. 원희
가 태엽 감는 장난감 곰과 놀고 있어도 엄마는 그랬다니까요.
"밖에 나가서 좀 놀아라. 아기 놀라겠다."
그래도 원희는 삐치지 않는 착한 아이예요. 엄마 옆에서 동화책을 읽었
어요. 엄마도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그런데 엄마가 뭐라고 그런 줄 아
세요?
"원희야, 속으로 읽든지 저 방에 가서 혼자 읽어. 아기 깨겠다."
그전 같으면 '아이구 우리 원희 책도 잘 읽네.' 하며 궁덩이를 몇 번이나
토닥거려주실 엄마가 변해도 단단히 변했다니까요. 원희는 책장을 덮고
슬며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엄마가 등뒤에서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애, 방문을 그렇게 쾅 닫고 가면 어떻게 해? 아기가 놀라 울잖아.?
원희는 놀이터에 갔어요. 뭘하고 놀았냐구요? 마침 현수랑 영준이를 만
났지요. 잡기 놀이도 하고 모래 뿌리기 놀이도 하며 놀았어요. 그러다 돌
아왔어요. 빨랫줄에 동생 기저귀가 하얗게 널려 있는 걸 봤어요. 원희는
기저귀 끝자락을 잡아 당겨 모두 걷어 방으로 들어왔어요. 물론 방문도
살며시 열었지요. 엄마는 아기를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방안을 왔다갔
다하고 있었어요. 아마 젓을 먹인 뒤 트림을 시키려나봐요. 원희는 그래
도 샘 내지 않는 착한 아이에요. 게다가 엄마 일을 잘 도우는 착한 아이
에요. 걷어온 아기 기저귀를 반듯하게 접으려고 기저귀를 이리 저리 펼
쳐봤어요.
"아니, 너. 놀다와 손도 안 씻고 그 손으로 아기 기저귀는 왜 만지니. 기
저귀로 뭐 또 엉뚱한 장난을 하려고 그래? 어서 가서 손이나 씻고 와. 어
서."
원희는 그만 화가 나서 방문을 쾅 닫고 나와 제방으로 갔어요. 가서 문
을 잠궜어요. 그 다음에 뭐했는지 아세요? 방바닥에 엎드려 있다 잠이
들었지요. 뭐.
3. 원희는 말썽쟁이에요.
수학시간이었어요.
"선생님, 윤원희가요. 연필심으로 내 이마를 찔렀어요."
진실이가 일러바쳤어요.
"어디 보자."
선생님이 달려와 진실이 이마를 살폈어요. 큰 일 났어요. 눈 바로 위에
새까만 연필심이 박혀 있어요. 선생님은 손으로 억지로 연필심을 파내
었어요. 그러나 살속에 박힌 연필심 색깔은 그대로 물들어 있어요.
"어쩌지? 연필심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지워지지 않는데...... ."
그러면서 원희를 돌아봤어요.
"왜 그랬니? 하마터면 눈을 찌를 뻔했네."
선생님이 나무라는 투로 물었어요.
"시, 책을 좀 안 보여주잖아요."
원희가 입을 뽀로퉁하게 내밀어 불퉁하게 말했어요. 아마 원희가 수학
책을 안 가져왔나 봐요. 이럴 때는 짝꿍끼리 같이 봐야 된다고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뭐? 네가 안 풀고 내 답보고 베끼니까 안 보여줬지."
진실이가 흘겨보며 말했어요.
"원희는 두 가지 잘못을 했네. 원희 네가 말해 봐."
그러나 원희는 입만 삐죽이 내어 뿌루퉁하게 앉아 있었어요.
"원희는 똑똑하니까 자기가 잘못한 걸 잘 알 거야. 어서 말해 봐."
선생님이 또 재촉했어요. 그러자 원희는 하는 수 없어 대답했어요.
"연필로 찌른 거요."
"또?"
"답 베껴 본 거요."
"이 심은 빼낸다 해도 까만 물은 없어지지 않아요. 나중에 커서 수술을
해도 잘 안 빠지는데 어떻게 하지? 우리 진실이 이 상처 때문에 시집 못
가겠는 걸."
그러자 아이들이 여기 저기서 한 마디씩 하며 나섰어요.
"선생님, 저도요. 원희한테 연필로 손바닥 찔렸어요."
"선생님, 원희가 저한테도요. 저번에 연필로...... ."
선생님은 깜짝 놀라서 원희에게 연필심으로 찔린 아이들을 살펴봤어
요. 손등, 다리, 목덜미....... 까만 연필심 자국이 남아 있는 아이들이 열
세명이나 되었어요. 선생님은 화가 났어요.
"윤원희, 너는 내일부터 우리 교실에 오지 마.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연필
심에 찔려 죽겠다."
"으앙."
원희는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어요.
"울면 다야?"
아이들은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어요.
"자, 이 문제 풀어 봅시다."
선생님도 달래주지 않았어요. 원희는 책상에 엎드려 오래도록 울었어
요.
4. 원희는 착한 아이예요.
그 다음날 원희는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왔어요. 그렇지만 학교에는
갈 수 없어요.
"내일부터 우리 교실에 오지 마."
어제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그렇다고 집에 있을 수도 없어요. 집에 있어
봤자 엄마한테 계속 잔소리만 들을 테니까요.
원희는 놀이터로 갔어요. 놀러 나온 아이도 하나 없어요. 모두 유치원이
랑 학교에 갔을 테지요. 원희는 시소에 올라앉았어요. 그러나 한 쪽으로
쿵 내려와 엉덩방아만 찍었어요. 혼자서는 탈 수 없잖아요. 미끄럼틀에
올라갔어요. 쭈욱쭈욱 몇 번을 타고나니 재미가 없어요. 이번에는 정글
짐으로 기어 들어갔어요. 꼭대기까지 올라가 앉았어요. 그러나 통 신이
나지 않아요. 이번에는 그네로 갔어요. 그러나 그네를 굴리며 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냥 그네에 앉아 흔들흔들 해봤어요. 학교가 끝날려면
아직 많이 많이 멀었을 테지요.
'그 동안 뭐하고 놀지?"
원희는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평소에는 쉬는 시간보다 공부시간이 길어
참 싫었는데요. 오늘은 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요. 원희는 하는 수
없어 모래장난을 했어요. 모래 속에 왼 손을 넣고 오른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며 두꺼비집을 지었어요.
지었다가는 허물고 지었다가는 허물고 했지요.
"원희야, 거기서 뭐하니?"
동생을 둘러 업은 엄마가 슬리퍼를 끌며 뛰어왔어요. 원희는 깜짝 놀라
길쪽으로 도망갔어요.
"원희야, 뛰지 마. 차가 온다 다칠라. 거기 서 있어. 엄마 혼 안 낼게."
그제야 원희는 멈춰섰어요.
"원희야, 왜 학교 안 갔니?"
엄마가 손목을 잡으며 물었어요.
"선생님이 학교 오지 말랬어요."
"왜?"
"아이들을 연필로 찔렀다구요."
"아이들을? 몇 명이나 찔렀니?"
"열 세 명요."
"뭐?"
엄마는 쪼그리고 앉아 원희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어요.
"원희야, 누가 너를 연필심으로 찌르면 좋겠니?"
"아니요."
"동무들을 연필로 찌르는 일이 좋은 일일까?"
"아니요."
"또 그런 짓을 하고 싶니?"
"아니요."
그러자 엄마가 원희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어요.
"원희야, 엄마가 그 동안 네 동생한테 신경 쓰느라 우리 원희한테 너무
소홀했지? 오늘부터는 학교 갔다와서 색종이 접기도 하고 동화책도 같
이 읽고 하자. 응?"
그러나 원희는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엄마는 바쁘잖아. 아기 때문에...... ."
"그래도 원희랑 놀아줘야지. 아빠한테도 부탁할게."
그러면서 엄마가 원희 손을 꼬옥 잡아주었어요. 원희는 모처럼 엄마 손
을 잡고 교문 앞까지 왔어요.
"자, 들어가. 선생님과 동무들에게 다시는 그런 짓 않겠다고 약속해. 그
리고 잘못했다고 용서도 빌고. 할 수 있지?"
원희는 엄마 손을 놓았어요. 용기를 내어 2층 계단을 올라갔어요. 더 용
기를 내어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아이들은 조용히 동화책을 읽
고 있었어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어요. 선생님은 웃으며 원희를 손짓
으로 불렀어요. 원희가 선생님 앞으로 갔어요.
"원희야, 오늘은 좀 늦었네."
선생님은 원희를 덥석 안아 무릎에 앉혔어요.
"원희야, 넌 달리기도 잘 하고 인사고 잘하고 색종이 접기도 잘 하지?
또 발표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리지?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고칠 점이
있지?"
원희도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하는 지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 다시는 안 그럴께요. 연필로 동무들 찌르는 거요."
"그래 우리 원희는 잘못한 일인 줄 알면 다시는 그런 짓 안 하지? 선생
님은 원희의 그런 점이 제일로 좋아."
선생님은 원희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었어요. 원희는 기분 좋게 자기 자
리로 들어갔어요.
"원희야, 왜 늦었니? 난 너가 정말 학교 안 올까봐 겁이 나더라."
진실이도 반겨주었어요. 원희는 씨익 웃으며 가방을 열어 젖혔어요.
"나, 너 줄려고 비행기 만들어왔다."
진실이는 원희가 파란 색종이로 접은 비행기를 받아 들었어요. 그런데
비행기 날개에 적힌 글씨가 눈에 띄였어요.
「진실아, 미안해. 난 니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