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감상 (10)
고 향 -정지용(鄭芝溶:1902-1950)-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작가소개 및 작품 감상
정지용은 1902년 충북 옥천 출생하였고 아호는 지용(池龍)이다. 서울 휘문고보(徽文高普)를 졸업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하였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26년 유학생 잡지 <학조>를 통해 등단하였다. 1929년 귀국해서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교편을 잡았고 광복 후에는 이화여전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어서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1930년 박용철, 김영랑 등과 동인지 <시문학(詩文學)>을 창간하였다.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그해(1950. 9. 25)에 사망하였다.
시인 정지용은 이상(李箱)과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 등의 시인을 등단(登壇)시킨 공로가 있다. 작품으로는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이 있고, 시집 에는 <정지용 시집>이 있다. 1989년 <정지용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05년 5월 <정지용 문학관>이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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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고향>은 변함없는 자연과 인간사(人間事)의 대비(對比)를 통해 고향의 상실감(喪失感)을 간결(簡潔)하고 담담(淡淡)한 어조(語調)로 담아낸 작품이다. 특히 외적 요인에 의한 고향의 변모양상(變貌樣相)보다는 시인 자신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고향의 이미지와 현실적 모습의 차이를 문제 삼은 점이 특이(特異)하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인 '향수(鄕愁)'가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을 노래했다면, 초기 시 가운데 하나인 '고향'은 그와 같은 절실한 그리움을 안고 막상 찾아온 고향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모습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상실감으로 변모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억 속에 존재하는 옛날의 삶의 양상이 현실 속에서 피폐화(疲斃化)된 채로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사(現代詩史)에서 시적(詩的) 언어에 대한 탁월(卓越)한 감각을 보여준 시인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시적 대상에 대한 과도한 감정의 투사(投射) 없이 그것을 선명한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본 시의 시구(詩句)와 관련하여, '고향'이 '실재(實在)하는 고향'이라면 '그리던 고향'은 '마음속에 간직한 고향'일 것이다. '산꿩, 뻐꾸기, 흰 점꽃'은 '고향을 환기(喚起)하는 소리'요,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은 '구름처럼 타향을 떠도는 화자의 내면의식(內面意識)'을 암시한다.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란 '씁쓸한 기분을 미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에서 '실재(實在)하는 고향'과 '마음 속 고향'의 '거리감'이 드러나 있다.
형태상으로 보면, 1연과 6연의 머리 부분과 꼬리부분이 서로 쌍을 이루어 연결된 이른바, '수미쌍관(首尾雙關=머리와 꼬리가 서로 관련이 됨)'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구조상의 특성으로 인해 '고향의 상실감(喪失感)'이 자연과의 대비(對比) 속에 더욱 선명(鮮明)하게 부각(浮刻)되어 있다.
이 시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구성된 고향의 이미지와 현실의 불일치(不一致)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으로 인해 시인의 의식 속에서 고향이 낭만적인 이상향으로 설정(設定)되었거나, 유년시절처럼 고향을 낭만적으로만 의식할 수 없을 만큼 현실 속에서의 시인 자신의 의식이 황폐화 된 데서 기인(起因)하는 것일 수가 있다.
역사적 맥락(脈絡)과 관련하여, 시대 상황과 연관(聯關)지어 볼 때, 일제(日帝)가 짓밟아 버린 조국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지고 시적 화자에게는 그저 나그네로만 여겨지는 뿌리 깊은 비관적(悲觀的) 현실인식과 상실의식이 짙게 드러난다.
고향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삶의 근원을 이루는 원초적(原初的) 공간이다. 특히 현실에서의 삶이 힘겹고 고통스러울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이 시의 시적화자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고향이 현실 속에서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과 대비되는 것, 즉 가족의 따뜻함과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 자신[시적 자아]은 막상 되돌아온 고향에서, 꿈속에서 그리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심한 상실감에 젖게 되는 것이다.
첫댓글 지기님!!~
잘보고 갑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