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간의 해외연수기 (이탈리아 로마) 10
여정의 마지막 - 이탈리아 로마에서의 첫날 저녁
우리 일행이 로마 공항에 도착한 때는 정확히 1월 10일 오후 5시 40분(이스탄불과는 1시간 차이가 난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이었다. 공항의 본 명칭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이었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3대 미술 거장의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땄다.
공항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지 안내인 ‘키메라‘씨(본명은 ‘김애라‘인데 김에 액센트를 주어 읽으면 ‘키메라‘라 되어 한인사회에서 통용되는 별칭이라고 한다.)와 15인승 승합차였다. 자리가 의외로 비좁은 차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12인승을 개조한 차였다.
로마는 시내의 유적을 매연으로부터 보호하고 전세계로부터 몰려드는 관광객 차량의 혼잡을 통제하기 위해 시내에는 전차인 노선버스와 일반 노선버스를 제외하고는 길이 7m 이상의 일체의 대형차량 진입을 못하게 했다. 서울 특히 사대문안의 매연과 복잡한 교통문제가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이탈리아‘ 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아는 것 하나씩만 대라고 해도 몇 페이지가 나올 것이다.
이탈리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름은 물론 유명한 도시 이름들, 스파게티와 피자라는 음식에서부터 패션과 보석 세공,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성악과 카프리해의 푸른 물결, 로마 교황청과 로마 시대의 유적들,
폼페이와 베수비오스 화산, 메디치가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단테의 신곡, 가리발디와 통일, 뭇솔리니와 마피아와 붉은 여단, 피아트자동차까지......
영화는 물론 최근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더욱 유명해진 이탈리아다. 또한 늘 정정(政情)이 불안한 나라, 지방색이 엄청 강한 나라, 정열과 개성이 강한 나라가 이탈리아라고도 한다.
자연, 예술, 정치문화, 역사를 통틀어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탈리아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지금에도 여전히 위력이 있는 말이다. 모든 나라의 성문법 속에는 로마법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는데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할 것인가.
이탈리아는 지형학적으로 반도라 우리나라와도 흡사한 점이 많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주변 지정학적 위치가 전혀 다르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문화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비슷함을 찾으려는 것은 낯선 것을 접할 때 느끼는 충격들을 덜고자 닮은꼴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닐까.
발가락이라도 닮아야 위안을 삼을테니.하지만 그럴 경우 자칫 본질을 놓치기 쉽기에 일단은 마음을 열어놓고 보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이탈리아에 관해 입력된 정보가 많아 이 짧은 일정이 그것들을 확인하는 요식행위 절차일 것 같은 점이다.
자칫 첫인상의 신선한 이미지가 반감(半減)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이탈리아 여행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기껏해야 로마와 나폴리, 폼페이의 극히 일부, 그것도 온전하게는 이틀 반나절 밖에 안되는데 선입견을 버리고, 충실히 관광하고 그것을 마음으로 잘 즐기리라 다짐해둔다.
차가 로마로 향하는 잘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우리의 키메라씨는 이탈리아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인천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인생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이곳으로 건너온 유학생으로 지금은 가이드업을 하는 당찬 여성이라는 느낌이다.
우리가 영화나 그림 속에서 가로수로 버섯송이처럼 다듬어 놓은 나무를 볼 수 있는데 바로 소나무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이탈리아의 국목(國木)인데 로마시대 때부터 심었다고 한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라 여름에는 섭씨 40도 이상을 오르내리는데 몹시 건조해 그늘에만 들어가면 오히려 냉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다고 한다(지중해지역의 집들마다 창문에 햇빛을 가리는 덧창을 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운 한낮에는 일하지 않고 집에서 낮잠을 즐기기 위한 장치이다.). 정복전쟁에 나서는 로마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도로를 닦은 뒤 양쪽 길가에 소나무를 심어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가운데 길이 그늘져 승리하고 돌아오는 병사들을 시원하게 맞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부와 영광을 상징하는 소나무이다. 로마시내 외곽 에우르지역에는 뭇솔리니가 옛날 로마의 영광을 흉내낸다고 새로 건설한 도시도 있었다.
어스름한 상태에서 차량으로 달리다보니 달리 특별한 이미지가 들어오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본격적인 로마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야경을 위해 설치한 불빛에 콜롯세움 유적과 천사의 성이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복잡하게 느껴지는 시내 도로를 따라 중국상점이 늘어선 곳에 자리잡은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탈리아에는 한식당이 7개인데 비해 중국식당은 4백여개에 달할 정도로 많은데 IMF 시기 중국인들이 이곳에 대거 투자한 결과란다.
반면 당시 한인사회가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한인사회에 대한 한국의 대외정책에 교민들은 불만이 많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택가에 자리잡은 띠베로호텔로 가 짐을 풀어놓고 일행들과 함께 잠시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흐릿한 가로등이 비추고 인적이 드문 조용한 거리였다. 우리처럼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없음은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할 만한 술집같은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우 찾아 들어간 곳은 깔끔하면서도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다. 각종의 포도주가 진열되어 있었고, 한켠으로는 피자와 야채 샐러드 진열장이 있어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건너편으로는 인근에 사는 듯한 몇 사람이 나와 포도주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맥주 한 잔씩 시켜서 마시고 있는데 노란 장미와 분홍 장미를 파는 남자가 다가왔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다가온 방글라데쉬인이었다. 의정부에 있는 의류공장에서 3년간 일하고 방글라데쉬에 갔다가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이탈리아로 나왔다고 한다.
우리를 보고 마치 고향 사람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이다. 한 동료의원이 1달러를 주니 장미 한 송이를 더 얹어 세 종이를 주었다. 그 장미들은 로마의 3일 동안 내 방을 아름답게 꾸며 주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빈 물병을 구해 장미를 꽂아두고 샤워를 했다. 조용하고 깨끗한 호텔인데 추운 날씨임에도 방안의 공기가 선선했다. 이곳 겨울도 우리나라처럼 3한4온 현상 비슷하게 3∼4일은 비가 구질구질하게 오고 다시 며칠은 맑은 상태가 되는데 여름과는 달리 습기가 많아 유별나게 오슬오슬 춥다.
<사진 : 로마 성당내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난방을 한다고 하는데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과 같았다. 얇은 호청위에 카시미론 담요 한 장, 추워서 한 장을 더 덮고 침대카바까지 덮어도 포근한 맛이 없다.
따뜻한 온돌방과 솜이불이 문득 그리워진다. 귀국할 시기가 가까워져일까? 영상기처럼 후딱후딱 해치우는 일정에 다소 지루한 감을 느낀 탓일까? 아니면 대화의 상대가 없어서일까?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12일간이다. 하나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다. 앞으로 이곳에 올 기회가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출처 : 家苑 문화유적답사 문집 (해외편) : http://tae11.org 2004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