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새 청야 김민식 깡마른 누런 잔디 속 사이사이로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오월이 오면, 나의 집 뜰에 로빈새가 찾아든다. 앞마당 덱 처마널에 로빈새가 둥지 셋을 틀고 해마다 날아든 지 어언 십여 년이 넘는다. 10여년 세월동안 정들은 사연들을 어찌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이맘때쯤이면 나는 괜스레 아침 새벽 미명에 일어나 집 안팎을 서성거린다. 가슴이 설렌다. 오월의 캘거리 새벽은 몹시 살천스럽다. 때로는 봄눈이 흠뻑 내려 새삭들이 수난을 당한다. 집 옆 담벼락에 종긋이 내민 더덕 덩굴 싹들을 설편(雪片)에 폭삭 주저앉게 만드는 잔혹한 오월이기도 하 다. 서재 창문을 빠꿈이 열어 놓는다. 비릿한 새벽 찬 공기에 코끝이 시리다. 나의 귀는 놀 란 야생 토끼 귀 마냥 연신 쫑긋거린다. 사춘기 아이들처럼 괜스레 가슴이 쿵쿵 거리는 것 은 로빈새를 보고 싶은 그리움이 애절하기 때문이리라.
멀리 떨어져 있는 딸아이 순영이를 보고 싶을 때는 언제나 전화로 통화를 하곤 한다지만, 사랑하는 로빈새는 행여나 오늘 올까 내일 올까 노심초사 가슴조리며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 언제나 수컷이 먼저 날아든다. 자칫 방심하면 어느새 찾아들어 겨우내 앙증스럽게 매달린 나무 열매들을 먹거나 앞마당에서 힘차게 잔디밭을 쪼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머쓱해진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노심초사 기다리면 첫 대면의 행운이 찾아온다.
며칠을 먹지 않고 무리지어 먼 길을 날아온 철새 로빈 무리들은 줄잡아 삼십여 마리는 될게다. 앞집 뒷마당에 앙상한 포플러 나뭇가지가 우뚝서있다. 매년 같은 나뭇가지 위에 비슷한 무리의 수가 내려 않는 모습들이 경이롭다. 남쪽으로 이동하고 돌아오는 사이에 살아 생존율이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지쳤는지 아무도 울지 않는다. 한참을 넋 놓고 멀거니 앉아있던 녀석들은 곧이어 이리저리 날기 시작한다. 겨우내 매달려있던 깡마른 나무 열매들을 먹으며 허기를 채운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다. 나의 마당에 내려앉은 로빈새는 매년 찾아오는 수놈 로빈 임에 틀림없다. 평균 수명이 7년 정도라고 말하는 조류학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제 어미가 죽고(?) 난 후 터줏대감이 됐다. 몇 년이 지나서 그런지 몸집이 크고 제법 세련미가 넘친다. 내가 1~2m 앞에서 정원 일을 하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만약 나를 처음 보는 녀석들이면 놀라서 후드득 날아가거나 "찌-익" 소리를 지른다. "찌-익" 소리는 낮선 것들에 대한 경계심의 표시다.
주둥이로 잔디밭을 세차게 찍어본다. 지렁이를 쫒아야 되니까 아직도 땅이 얼어있는지를 시험한다. 잔디밭이 부드럽지 못하면 며칠정도 지난 뒤에 다시 돌아온다.
아! 드디어 수놈 로빈새가 암컷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밤새 떼를 지어 몰려왔나 보다. 미명(未明)이다. 밖으로 뛰쳐나가 사방을 휘둘러본다. 로빈새 수놈들이 지붕 꼭대기에서 개선장군처럼 떡 버티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집건너 군데군데 각자 자기영역을 확보한 로빈 들이 세를 과시 하는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어두운 새벽공기를 쩌렁쩌렁 울린다. 몸매가 날씬하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날아 왔는지 핼쑥하나 까만 머리에 밝은 암갈색 몸매엔 윤기가 흐른다. 멋쟁이 영국신사 같다. "쪼으르 쪼으르 쪼륵!” "쪼르르 쪼르르 쪼륵!?" 혈기 왕성한 젊은 수놈의 끝부분 “쪼륵!?” 소리는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의 노래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소프라노 성악가의 고음보다도 음역이 높다고 발표한 조류학자의 논문을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몇 날을 아름답게 노래 부르기를 반복하다가 짝을 만나고 둘이서 부르는 사랑 노래는 천사의 목소리도 이처럼 곱고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이 노래는 가을부터 다음해 이른 봄까지는 부르지 않는다. 다만 "찌르르르 찌르르르 ......" 서로 부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2주정도 지나면 하루에 알을 한 개씩 3~4개를 매일 낳는다. 12일동안 품은 알은 12일 후 면 부화된다. 부화한 후 날기까지 2주 동안 지렁이를 하루에 백번 이상 물어준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주위 환경에 만족하면 암놈은 그 2주 동안에 옆에다 둥지를 하나 더 만들고 부화를 반복한다. 그 짧은 캘거리 여름 기간에 전력투구한다. 주어진 삶이 멋지다. 그리고 이른 가을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떠난다.
내가 로빈새를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그들 특유의 부지런함이다. 여느 새처럼 한여름 오수를 즐기거나 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때때로 내가 가게를 마치는 깊은 밤 11시쯤 마당을 들릴 때면 그때 까지도 먹이를 쪼아댄다. 내가 덱 아래 둥지에 서서 관찰하여도 아랑곳 않는다. 아마
이민 삶에 지쳐 힘겨울 때가 있다. 그리고 쉬고 싶을 때가있다. 그럴 때는 앞마당 로빈새를 생각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힘이 솟구친다. 일할 용기를 얻는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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