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내가 정작 눈썹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게 된 날이 다가온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이 된 날부터였다.
동이 터올 무렵엔 나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눈썹을 그려야 했고, 그 때문에 눈보라 치는 겨울날에도 얼음을 깨고 새벽같이 세수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내가 눈썹에 대한 저주 같은 것을 해야 했던 것은,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여윈 후였다. 생존경쟁의 마라톤의 바톤을 잡고 경주를 시작해야 했던 나는 한편으론 처절한 고독감에 젖어 있었던 것인데, 그때 어느 관상가의 막연한 말에 무척 신경을 기울였던 것이다.
"눈썹이 약하니 형제운이 없고 고독하리라" 하는 말이었다.
세월은 흘러가고 흘러가는 세월 따라 크레용도 무수히 나의 눈썹을 거쳐 사라져갔다.
서로 만나고도 10여 년 -사이에 두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세수를 하고 난 얼굴을 남편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다.
오랫동안 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아왔으나 타고난 자학적인 성품 때문인지 나의 사랑의 척도를 완전히 수학적으로 재기까지는 불안이 따르고 있었다.
도대체 사랑의 척도를 수학적으로 잰다는 생각부터가 어리석고 욕심쟁이 같은 이야기인지 모르나 감각적인, 구상적인 또 그 이상으 의 사랑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설령 안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인 안심에 불과했다.
나는 눈썹 그리는 것과 더불어 긴 세월을 그렇게 사랑의 척도를 수학적으로 풀어보지 못한 채 언제나 척도한 수학이 풀리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어느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오래도록 거리를 거닐어서 온 얼굴에 먼지가 뿌우하였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도 차고 해서 식모보고 타월을 더운 물에다 짜오라고 하여 거추장스러운 세수를 정리하였다.
그때 남편은 그 후의 내 얼굴을 닦아 주겠노라고 전례 없던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 나는 쑥스럽게 생각했지만 젖은 타월을 남편의 손에 맡기고 말았다. 얼굴의 어느 부분에 타월의 감촉이 올 것인지도 걱정스러웠지만 눈썹 일이 걱정스러웠다.
남편은 먼지가 덜 닦인 부분의 먼지를 두어 번 씻은 후 눈썹이 있는 자욱에 가서는 엄지손가락 위에다 수건을 걸치고 마치 화공이 그림을 그릴 때처럼 크레용만 제끼고 교묘하게 그 부분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사랑의 척도니 뭐니 하는 것이란 이만저만 어리석은 자학심이 아닌 것을 느꼈고, 그 다음 순간 그 자학심이 스륵스륵 무너져가는 것도 느꼈으며 가슴 깊이 눈물조차 고이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평소에 무뚝뚝한 사람이었기에 나의 느낌은 한결 강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눈물을 억제하고 타월을 다시 받아 내 손으로 남편 앞에서 눈썹을 그린 크레용을 용감히도 싹싹 문질러 버렸다.
사랑이란 眉態나 媚態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 부단한 생명력을 저축하면서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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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국문학전집 수필1, 어문각,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