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0-06
간 판
박 병 민 목사(새터공동체)
5월 23일에서야 동네 어귀인 삼거리에 새터공동체의 간판을 세웠다. 서대산 중턱의 ‘청소년마을’이 한 두 해 전에 문을 닫게되었단다. 그리고 높다란 간판만 크게 남은 꼴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그 간판 위에 새터공동체의 이름으로 덮어 버렸다. 산중에 인적(人跡) 없이 퇴락(頹落)한 유물(遺物)격이 된 청소년마을은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려는지 기수련장(氣修練場)으로 탈바꿈하여 문(門+무리們)이 열린단다. 대전에서 들어 닥치면서 둘이서 높은 사다리에 올려 서서 간판을 4~5미터 높이에 치켜올려 싸 붙이는 모습을 보았다. 물 끼 어린 모래 위에 꾸불꾸불 뒤안길의 금만 긋고 내려간 실오라기의 물고기이기보다는, 간판만큼이나 높은 남대천을 향하여 가을에 거슬러 올라, 모래바닥에 많은 알을 낳고 죽는 연어를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도 장가는 가지 않았지만 십자가에 치켜올려져 많은 생명을 낳고 죽으셨다.
작년 한 여름에 소문 빠른 시골 사람들에게 “아무개 아들이 밤나무골의 기도원에 와서 양로원을 한다”는 풍문(風聞)이 부는 가운데, 그 속으로 어깨에 짐을 갖고 허겁지겁 갈곳 몰라 뛰어들다 싶이 드닐었다. 명분(名分)과 구실(口實)이 적어서 그랬던지? 이제서야 돈 적게 드리려고 남의 이름을 가려가면서 까지 겨우 판(板)붙이기를 하였다. 기도원, 양로원, ,요양원,교회가 아닌 공동체라는 이름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줏대(主隊)가 부족해서 그런지 동네 안 밖에서 뭐 하는 곳인지 몰라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양로원 또는 기도원이라 부르고, 밖에서 와 본 사람들은 기도원, 요양원이라고 까지 한다. 그 전에 젊은 기분으로 “새터”라는 이름을 앞세우니 더군다나 다들 모를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나는 더 모를 것이다. 마을 분들은 아무개 아들, 어이 이봐, 병민이 하고 부르기가 일쑤다. 어른이신 공동체 식구들은 박 목사하고 하대(下待)까지 하신다. 위신(威信)이 곤두박질 쳐지기까지 한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 같다. 목사격이었던 디모데도 그러한 입장(立場)에 봉착(逢着)되었던 듯 싶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게를 실어준다. “누구든지 네 연소(年少)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디모데전서 4:12-13). 수모를 당키까지 한다. 아이들을 빼고 우리 공동체에서는 내가 가장 연소하다. 그래서 나는 ‘-씨’가 아닌 ‘-선생(先生)님’으로 올려 부른다. 때로는 권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의식(意識)을 잃고 민망스럽게 홀대(忽待) 할 때가 있다. 신학교에 다닐 때에 학교 교훈(敎訓)이 “서로 섬기며 살자”는 “상봉(相奉)”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마을 앞 농협을 가면 “상생(相生)”이라고 색(色)칠하여(?) 붙여저있다. 나는 새터공동체의 부제(副題)로, 인간사(人間事)의 덕목(德目)으로 『상생상봉(相生相奉)』이라는 말을 하나 붙여짓기하고 싶다.
간판(看板)처럼 명함(名銜)도 올려졌으면...... 그리고 우리집이 서로를 떠받들며 살아가기를....
공동체 이야기 - 땅의 사람들
서로서로 세우기
사람들은 다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것 같다. 신평리(新坪里), 산언저리에 숲 속의 어둠의 사람이 아닌, 마당에 쏘여지는 빛의 소산물(所産物)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에베소서 5:8-9) 대롱 끝에 열매로 얹으려고, 봄부터 살아가려 하고 있으니, 그 무엇이 부럽지 않다는 자만 속에 빠져들 때가 있다. 현주 목사님께서 이야기하는 “불이비(不二非)” 곧 “둘이 아니고 하나다”라는 말이 어슴푸레 지나쳐 가기도 한다. 처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에 나는 나직하게 소리내기를 좋아한다. 불협화음(不協和音)도 난다. 그러면서 말로 한몫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말 안 하면 입이 가려울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테레비를 지나쳐간 왕초근성이 몸을 지탱하는 것 같다. 몇 일 전 아침 기도시간에는, 서점에서 본 책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의 음식을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우리에게 흘러들어 낯간지럽게 하는 일본말을 그 속에서 보았다. “오야봉”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꼬봉”이라는 말이었다. 성경에서는 "왕 같은 ......라고" 했는데...., 스스로 방랑벽이 있으시다는 야성끼가 넘치는 박 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소리가 드높다. 김 선생님은 집안의 새색시 같다. 치매끼가 서려있는 할머니는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와 동갑네기 이면서 앞질러서 난 착한 병만이 형제는 목소리도 순하다. 십 수년을 대전 대화동에서 낯모르고 같이 살다가, 이 곳에서 대화동 동네 이야기를 꺼내면서 한층 알게 된, 5월 28일에 신병격으로 입소하신 오십 중반의 박종만 선생님은 우리 집 안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독상 받는 장한 체구의 왕회장 이시다. 어제는 내가 콧등 위에 돋보기를 얹어 드리면서 보니 대통령을 상대하는 김정일과 영락없이 인상을 같이 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땅의 사람들”이라 그런지 부쩍 요즈음 들어 들뜨지 못하고, 땅에 퍼 질러 누워있을 때가 많다. 나는 두 달여 전에 삐엇다가 나은 발목이 5월 29일부터 도져 방에 있을 때가 많다. 몸을 추켜세우기 위하여 목발로 지탱하기도 하였다. 처도 여동생이 사 보내준 침대 위에서 밤낮없이 몸을 뒤척일 때가 많아졌다. 김 선생님은 몇 주전 주일 아침에 마당 들어서는 돌길에서 비명과 거품을 뿜고 뒤로 넘어지면서 뒷머리가 몇 군데 깨졌다. 몇 일 집을 나가 계시더니, 이 번에는 왜 그런지 앞 콧등에 큰 딱지를 붙여 가지고 들어오셨다. 그 후부터 힘들어하신다. 집일을 도맡아 살피시는 박 선생님은, 비오는 날 만취라서 대로의 주인으로 누워 계셨다. 리어커로 세 번이나 실어 들였다. 나는 목사생각을 뒤로하고, 장난 삼아 얄궂게 비오는 밤에 천막 밑으로 박 선생님을 싣고 온 리어커를 들여 밀고, 리어커를 세워 반쯤 쏟아놓고 이불을 갖다 덮어드렸다. 새벽 두 시쯤 되어서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었던지, 밖에서 어슬렁어슬렁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잣 일을 도맡아 하기 위하여 병만이 형제만이 세 빠지게 빨빨거린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독방 쓰시며, 독상 받으시는 왕회장님을 알리고자 함이다. 조석으로 밥까지 받아 드셔야하는 박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의 힘으로는 못 모실 것이라는 이야기가 앞서 돌았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막상 선생님이 우리에게 오시니, 하나님의 따사로운 햇볕의 역사(役事)는 그 어른에게 비추어졌다. 그 분의 조명 속 독무대에 우리들은 아낌없는 조연들이 됐다. 박 선생님과 병만이 형제가 수발에 앞장을 섰다.
살다보면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우리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 할수 있으니 좋다. 이것을 영어로 하모니라고 했던가?
공 동 체 소 식
☻ 새터 공동체 가족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99. 7.16)
김교은 (99.12.14)
박성규 (00. 1.12)
어귀녀 (00. 1.15)
김창준 (00. 3.21)
김병만 (00. 5. 2)
박종만 (00. 5.28)
* 00년 5월 23일에, 간판 일을 하시는 발해정보시스템의 박성규 선생님의 도움으로 신평리 3거리에 새터공동체 간판을 세웠습니다.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하신 분들
분평청북교회,대전서노회,낭월교회4여전도회,김형곤(변현주),박성규,박종덕비례교회(문관해)한나여전도회,왕지교회,어득자,박종렬,일양교회,이원교회,예수마을,황인칠(김명숙),진유덕,새빛교회,대덕교회,진수정,한삼천교회,최정숙,조용석,이종국,김경순(김경희),베데스다교회(박경애),김종선,유인숙,채윤기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