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훌훌 털어 버리고 춘천인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집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김영기와 나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집에서 시험 끝나고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탔다. 대구역을 지나 서문시장을 지나 사거리에 내렸다. 언덕을 오르면 길고 긴 담이 나왔다. 바로 달성공원 남쪽 기슭이었다. 담을 따라 다시 조금 내려가면 배한춘의 집이 있었다. 매 번의 반복되었으므로 한춘이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렸다. 이를 쓱 드러내고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그의 방에는 우리를 위한 상이 차려있었다. 상위에는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가 놓여있고, 푸짐한 안주가 놓여있었다. 객지 생활에 오랜만에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서 우리는 그의 집을 나섰다. 그러면 그는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배웅을 나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는 차창 밖의 그와 손을 흔들어댔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짐을 꾸렸다. 그리고 김영기는 인제로 나는 춘천으로 떠나갔다. 나는 늘 동대구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의 하얀 시트에 몸을 싣고 조금 있으면 차는 역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 전까지 머물던 눈에 익은 도시를 하나 하나 지우듯 지나기 시작했다. 신암동 근처를 지나고 대구역을 지나고 그리고 공단을 지나서 이윽고 시내를 벗어났다. 나는 집으로 간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이었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집으로 가기 전에 배한춘의 집에 들렀던 것은, 차비를 꾸기 위해서였다. (2002년 7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