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무엇인가
정 신 재
나는 전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전주에는 성당이 두 곳 있었습니다. 중앙동에 있는 성당을 가려면 우리집에서 1킬로미터 남짓을 걸어서 중앙 시장을 거쳐 가야 하였고, 전동에 있는 성당은 집에서 가까워 종종 놀러 가곤 하였습니다. 전동 성당은 도움식 지붕에 아치형 문이 있고 붉은 벽돌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서, 서양의 고딕식 건물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성당에는 넓은 뜰이 있어서 아이들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곳을 걸어 보곤 하였습니다. 가끔 외국인 신부님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사제실로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나는 중앙동 성당을 가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전동 성당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전주시의 요지인 경원동에 있던 우리집은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친척 아이들은 우리집에 자주 놀러와서 땅뺏기 놀이를 하곤 하였습니다. 뾰족한 돌로 넓은 사각형을 그려 놓고 한쪽 귀퉁이부터 공깃돌을 세 번 튕겨서 자기 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넓은 땅을 가진 아이가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땅에는 공깃돌을 세 번 튕겨도 땅이 넓기 때문에 별로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단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땅이 너무 좁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하지요.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마당을 솜이불처럼 하얗게 덮었습니다. 눈이 온다는 기상 예보가 있으면 나는 그 눈밭을 보기 위하여 새벽 5시에 자명종이 울리게 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마당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볼 수 있는 예쁜 설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철 나무와 소나무에도 성탄 트리처럼 눈이 소복히 쌓였지요. 그러면 나는 툇마루에서 대문까지 내 발자국을 남겼지요. 마치 신천지에 들어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새벽 기도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해 주곤 하였습니다.
그 눈밭에 난 나의 발자국처럼 나의 고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나 봅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목포에서 출발하여 전주를 거쳐 가는 호남선 열차를 타러 갔습니다. 목포에서 온 열차는 전주에서 객차 두 칸을 연결하고 출발하였는데, 어머니는 보따리 5개를 선반 위에 올려 놓고 서울로 장사하러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전주에 있는 집을 팔고 서울의 하월곡동에 조그만 주택을 한 채 마련하였습니다. 뜻하지 않게 나와 작은 누나 둘은 옆 동네로 이사가 미닫이가 있는 방 두 칸을 얻어 자취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가운데 나의 학교 생활은 평온하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세칭 삼류 학교라는 J중학교에 다녔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열등 의식에 빠져 행동이 거칠었습니다. 나는 키가 큼에도 불구하고 싸움 서열에서 중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한 번은 키가 작은 아이가 나를 머슴 대하듯 하길래 학교 뒤 동산에 올라가 여러 명이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싸움을 하였는데, 코피를 흘리는 바람에 판정패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가서 혼자서 빈 하늘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한없이 어머니를 불러 보았지만, 어머니는 워낙 먼 곳에 있어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계속 싸움 서열에서 밀려 나는 기가 죽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짝꿍이 수학 시험 문제를 안 보여 준다고 나의 뺨을 때렸습니다. 이를 본 아이들이 나에게 귓속말로 선생님에게 알리라고 하였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한다는 것은 학생들간의 의리를 져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버스비 오원을 아껴 작은 정구공을 하나 샀습니다. 그 공은 물렁물렁하였지만 공기가 빠지지 않는 한 언제나 지구본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공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왔고, 벽에다가 튀기면 힘을 가한 만큼 튀어올랐습니다. 땅에 튀기면 내 키만큼 튀어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집에 있는 분홍색 페인트로 공의 겉면을 칠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은 더욱 예쁘고 만지기가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나는 그 공을 만지작거리면서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공은 단스 위에 신주처럼 모셔졌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공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공을 제일 탐내는 아이는 영식이였습니다.
“야. 일 원 줄게 그 공 좀 빌려 줘.”
나는 돈을 받고 공을 빌려 주었습니다. 영식은 그 공으로 친구들과 야구 놀이를 하였습니다. 영식이가 던진 공을 아이들은 주먹으로 받아쳤고, 공은 포플러 나무 위를 날아 운동장 끝으로 가서 떨어졌습니다. 공이 멀리 날아갈수록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몇 번을 빌려 보던 영식은 아예 그 공을 사 버렸습니다. 영식은 문방구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분홍색 색깔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공을 영식에게 판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하늘이 평소보다 더 높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던 어머니가 내가 강해지기를 빌어 달라고 마음 속으로 다져 보았지만, 어머니로부터 별다른 기별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학 시간에 힘 센 창호의 앞에 앉아 그가 잠자는 것을 도와 주어야 했습니다. 친구들의 이지메와 어머니가 곁에 없는 외로움은 멋진 여자와 결혼하는 꿈을 자주 꾸게 하였습니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하였습니다. 빠알간 스포츠카를 타고 가다가 길을 걸어가는 여자 친구를 만나 태우고는 들녘을 달리는 광경이 머릿속을 늘 맴돌았습니다. 서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불길처럼 내 머릿속에서 솟아났습니다.
연애란 무엇인가. 연애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그녀를 배려하며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런 아름다운 여자를 점지하여 줄 것을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겨울 방학이 되어 나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서울로 갔습니다. 미아 삼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학교와 시장을 지난 하월곡동 주택가에 어머니는 조그만 주택을 하나 마련하여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미아 삼거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셨는데, 손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상경한 나를 보더니 시장으로 데려갔습니다. 시장에는 빈대떡집, 푸줏간집 등 어머니의 거래처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거래처를 일일이 들러 오래도록 기다렸던 아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개털 모자가 있는 외투를 사 주면서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다잡아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음식점 운영으로 가게에서 살다시피 하였고, 나는 집에서 따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군 장교로 근무하던 J형이 제대한 후 잠시 일자리를 알아 보기 위하여 우리집에 와서 더부살이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음식점을 하셨기 때문에 집에는 J형 내외와 나만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벽돌집은 겨울에 추워서 안방 아랫목에 이불을 펴 놓고 식구들이 누워 있기가 일쑤였지요. 한 번은 형 내외와 아랫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이불 속에서 형수씨가 자꾸만 내 다리를 차는 거예요. 나는 어린 나이에도 나가라는 말인 줄 알고 가게에 있는 어머니에게 가서 형수씨가 날 쫓아냈다면서 저간의 사정을 얘기했더니, 어머니 왈 잘 했다네요. 나는 십 년이 지나서야 그때 형수씨가 왜 내 발을 자꾸만 찼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순진한 시선으로 형 부부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온돌에 연탄불을 때던 시절 이야깁니다
연탄값 아끼려고 형제를 사랑하는 축복
안방에만 불을 때던 때 말이죠
아이는 이웃에 사는 형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형네는 신혼이었던 때라
오죽이나 사랑놀이가 하고 싶었을까요?
한 이불 아래서 서로가 누워 있는데
형수가 자꾸만 아이의 발을 차 댑니다
아마도 신랑의 다리인 줄 알았던 모양이죠
한참을 참고 견디던 아이가
팽 이불을 걷어차고 자기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 형수가 나 밉다고 쫓아냈어요."
아이의 투정을 들은 엄마는 새댁적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홍조를 띄웁니다
-「질투」전문
그 후로 나는 젊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을 하면 동생도 박대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J형처럼 못 생긴 남자가 미스 코리아 같은 형수씨를 만나서 사는 걸 보면 세상 남녀들은 다 제 짝이 있는가 봅니다. 나는 형수씨만 사랑하는 형과 형만을 좋아하는 형수씨를 보면서, 나도 커서 예쁜 여자 만나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로 어울리 않을 것 같은 형 부부를 보면서 나는 연애 기술이 뛰어나면 예쁜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는 형제들의 연애를 목격하면서 나름대로 연애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성담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체험이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연애란 무엇인가. 연애는 두 남녀가 상대를 신이 선택하여 주었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인간미입니다. 나의 형이 연애하였고, 나도 연애하였습니다. 아마도 연애는 신이 내려 준 축복인가 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프로필
시인, 문학평론가.
1983년 1월 <시문학>지를 통해 등단. 국민대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문학평론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외래 교수.
현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기획위원.
저서 - <성과 광기의 담론>(서울: 조선문학사, 2004) 외 14권
수상 - 문학평론가협회상, 이은상문학상.
* 주소 : 130-717 서울 동대문구 한천로 63길 10, 104동 1102호(e편한세상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