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라운지] 경혈 자극 때 신호전달 매개하는 특정 세포 발견, 좌골신경 등으로 이어지는 항염증 신경회로 규명
남민호 KIST 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침 치료가 염증을 제어하는 것을 밝힌 연구 결과가 신경 조절 기술을 의료기술로 활용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키미디어
하버드대에서 국제학술지 ‘뉴런(Neuron)’과 ‘네이터(Nature)’에 발표한 논문 가운데 한의 치료의 과학적 원리를 밝힌 연구들이 있다. 침 치료가 전신의 염증을 제어하는 기전을 신경회로와 세포 수준에서 규명한 것이다. 연구진은 무릎 아래 족삼리(足三里)로 불리는 부위의 경혈(經穴·acupoint)을 자극했을 때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특정 감각신경세포를 발견했고, 이로부터 시작해 좌골신경·미주신경·부신으로 이어지는 항염증 신경회로를 규명했다. 이는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밝힌 사례이고 신경과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발견이다. 다양한 신경 조절 기술이 의료기술로 활용될 수 있는 과학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의학은 과학을 발전시키는 도구로도 효과적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의치료 중 침치료는 물리적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 효과적인 의료 기술이다. 이러한 말초신경자극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한의사들은 침을 맞은 환자가 묵직하거나 당기는 느낌이 들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침을 자극해 왔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금속 재질인 침에 전류를 흘리는 치료가 활용되고 있고, 초음파를 이용해 침의 말초신경 자극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남민호 KIST 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적절한 말초신경자극이 뇌 안의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뇌를 직접 자극하는 뇌심부 자극술은 파킨슨병과 같은 특정 뇌질환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보인 치료법이다. 하지만 두개골을 천공(穿孔)하고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말초신경자극으로 뇌 심부의 신경회로를 조절해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면, 안전한 말초신경 자극술로 꼽히는 침 치료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처럼 난치성 뇌질환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의학은 박제된 의학으로 박물관에 보존되어야 할 전통이 아니라 미래 의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학문이다. 과학에 기반한 한의 임상 효과의 이해는 생명과학과 현대의학에 영감을 제공해 긍정적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