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조용한 변화(靜的變化)
요한복음 2:9
윗글의 연속
◇二,從其原質而變, 種豆得豆, 種菽得菽, 是理也. 而今人欲得無花果于荊棘, 欲得葡萄於蒺藜矣. 皆捨原質而欲成功也, 如緣木求魚, 得之難如上天矣. 愚哉, 彼拜偶求福之人乎! 信偶能賜福乎? 欲改造者言, 今世之人不能改造, 盡驅于海中可矣. 欲改造人而捨其人而能何改乎? 欲改良土地者, 捨其土地而何改乎, 欲改良經濟者, 捨小金而欲大金, 欲得大學者, 捨一字而能得大學乎? 此理甚明, 知之不難矣. 主欲改造葡酒而以水爲之, 酒生水, 如氷生于水, 靑出於藍矣. 忘本而欲成末者, 故主變木强之漁夫而爲大使徒, 又變驕傲之學者而爲大使徒矣. 魔欲以石成餠而主不應, 又欲跳下聖殿而主又不應, 又欲拜魔得貴而主又不應者, 皆非原理也. 人欲變化氣質而皆從本質上做工, 克去不善分子則自然有善良氣質也. 如金入冶中而變爲神劍也. 保羅曰 我不擊空云者, 其事業皆從眞理, 故不虛矣. 人欲毁撤如蝸之室, 皆築穹隆之瓦屋, 誰不願之乎? 然欲造大廈, 先從蝸屋而進步後, 必成大廈矣. 僉位幸捨蜃樓之虛榮, 先從實質而鑿鑿進步可也. ◇三, 變有順序, 先薄後厚, 卽神之愛也. 世人先厚後薄, 然神則不然, 先苦後樂神之意也. 父母養子, 先以奢侈其身, 後不能儉約其身矣. 故家敗而飮酒不已, 身賤而濫費不節, 人家子弟往往陷罪而不悟, 是父母之過也. 然如有善父母則不然, 先以儉約敎其子弟, 則後雖貧賤, 處之晏如, 不至失敗矣. 神之愛有如善父母, 昔歐陽脩之大夫人, 嘗敎脩以儉約, 故後失職窮居, 猶處之無憂, 皆夫人之德也云. 其後脩登樞密, 位極台司而發此至言也. 咬得菜根百事可做, 昔范仲淹之夫人, 墨帳示子孫曰, 此皆汝父之燈煙迹也. 仲淹幼時, 其父母飢困而敎其子, 故仲淹後登台閣, 而命子孫曰, 忍今若曺享富貴之樂, 卽以節儉敎其子純仁, 純仁亦登相位. 第二段, 今欲改造朝鮮者, 捨朝鮮而爲之者忘其本也. 乾提欲改造印度而曰, 印度,印度之印度也. 敎育非印度則不可, 衣食非印度則不可也. 萬事以印度爲本, 妄印度者非印度人也. 朝鮮如有乾提則必曰, 스와라지也. 朝鮮, 朝鮮人之朝鮮也. 今朝鮮敎會內, 多誇張虛飾, 以招世人之誹笑者何也? 以設立高等學校之意廣告于各地, 而一未成功, 欲建築主日學校校舍而一未成功, 此敎會之失, 如欲成其事則不必廣告, 如主施異蹟而人不能知之也. 過化存神 寂然而成, 黙然而動. 年前某敎會當寒節, 無石炭, 敎人皆赤手, 不能買炭, 任員會而祈禱之中, 有物墜軒, 乃金一封也. 乃買石炭而煖房. 主曰左手所爲右手不知, 亦靜的事業也. 彼草木何嘗廣告而發花結實乎? 彼水之成海, 何嘗廣告而成川成河乎? 僉位之信仰亦如是, 勿忘勿助, 自然而進, 寂然而成, 如水變爲酒, 以普通之物, 成非常之物, 以普通人, 成非常之人格, 敎會如是, 人人如是, 皆成天國之人可也.
둘째, 근본 바탕을 따라 변하는 것으로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하는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사람들은 가시 넝쿨에서 무화과를 얻으려 하고, 찔레 덤불에서 포도를 얻으려 합니다. 이는 다 근본 바탕을 버리고 본질이 다른 것을 성공시키려고 하니,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아 그 성공의 어려움은 하늘에 올라가기만큼 어렵습니다.
어리석기도 하구나. 우상을 숭배하여 복을 구하는 사람들이여! 우상을 섬기며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개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세상의 사람은 개조할 수 없으니 다 바다에 몰아넣어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을 개조하려고 하면서 사람을 다 버리고 무엇을 고친다는 말입니까? 토지를 개량하려고 하는 자가 그 토지를 다 버리고 무엇을 고친다는 말입니까? 경제를 개량하려고 하는 자가 조그마한 돈은 버리고 큰돈만 가지려고 하고, 대학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한 두 글자를 버리고 큰 학문을 받아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 이치는 매우 분명하여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포도주를 개조하는데 물로써 그것을 만드셨습니다. 술이 물에서 나오는 것은 마치 얼음이 물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고, 푸른색이 쪽 풀에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을 잊어버리고 끄트머리인 지엽을 성공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주님은 완고한 어부를 사도로 바꿔 놓았습니다. 또한 교만한 학자를 변화시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하였으나 주님은 응하지 않았고, 또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였으나 주님은 또 응하지 않았으며, 또 마귀에게 절하면 귀하게 된다고 하였으나 주님은 또 응하지 않았습니다. 다 원리(原理)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기질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본질에 따라 해 나가야 합니다, 곧 좋지 못한 부분을 떼어버리면 자연히 선량한 기질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쇠붙이를 풀무 속에 넣어서 신검(神劍)으로 변화시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나는 허공을 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의 사업은 다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은 달팽이집과 같은 작은 집을 헐고 하늘높이 솟은 기와집을 짓고 사는 일을 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큰 집을 지으려면 먼저 조그마한 집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뒷날 큰 집을 지어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신기루를 이루고 싶은 허영을 버리고 먼저 실질적인 일을 가지고 착착 진행하여 나가야 합니다.
셋째, 변화에 순서가 있으니 먼저 박하게 하고 뒤에 후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은 먼저 후하고 뒤에 박한 것을 바라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먼저 고통을 주고 뒤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먼저 그 몸을 사치스럽게 꾸며 주면 뒤에 그 몸을 검소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집안이 망하고 술 마시는 일도 그치지 못합니다. 남의 자제가 되어 몸은 천하게 되었어도 절약하지 못하고 낭비하다가 죄에 빠져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과실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검소와 절약으로 그 자식들을 가르치게 되면 뒷날 비록 가난하고 천하게 되어도 잘 견디어 나가고 실패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훌륭한 부모와 같습니다.
옛날 중국의 구양수(歐陽脩)의 어머니가 일찍이 검소와 절약으로 구양수를 가르쳤으므로, 뒷날 직장을 잃고 곤궁하게 살았어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다 어머니의 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뒷날 구양수가 추밀(樞密)이라는 정승의 지위에 오른 뒤에 한 말입니다. 풀뿌리를 캐먹고 자랐어도 온갖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송나라 범중엄(范仲淹)의 부인이 시커멓게 그은 장부를 가지고 그 자손들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것이 다 너희 아버지가 가난할 때의 등불 연기 자국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중엄이 어렸을 때 그 부모가 굶주리며 자식을 가르쳤기 때문에 범중엄이 뒷날 정승이 되어서 그 자손에게 말하기를 ‘내가 인내하였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부귀의 즐거움을 누린다’고 하고 절약과 검소로 그 아들 순인(純仁)을 가르쳤는데, 순인도 역시 뒷날 정승이 되었습니다.
둘째 단락으로, 지금 조선을 개조하려고 하는 자가 조선은 내버려두고 개조를 한다면 이는 그 근본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간디[乾提]가 인도를 개조하려고 하여 ‘인도는 인도의 인도다. 교육은 인도에 맞는 교육이 아니면 안 된다. 입고 먹는 의식(衣食)도 인도의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만사는 인도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인도를 잊으면 인도인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에 간디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조선의 자치를 부르짖는 ‘스와라지’라 할 것입니다. 조선은 조선인의 조선입니다. 지금 조선의 교회 내에는 과장과 허영이 많아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고등학교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각지에 광고해 놓고 하나도 성공을 못하였습니다. 주일학교 건물을 건축하려고 했어도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과실입니다. 만일 그 일을 성공시키려면 광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주께서 이적(異蹟)을 행하실 때에도 사람들이 알지 못 하도록 한 것같이 해야 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감화가 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조용히 이루어지고 말없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어느 교회에서 추운 겨울을 당하여 난로를 필 석탄이 떨어졌으나 교인들은 모두 빈손이라서 석탄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임원회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무엇이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곧 금일봉(金一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석탄을 사서 난방을 했답니다. 주님께서 이르기를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조용히 해야 할 정적(靜的)인 사업입니다.
저 초목이 언제 광고하고서 꽃피고 결실을 했습니까? 저 물이 바다를 이루는데 언제 광고를 하고서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도 이와 같이 잊지도 말고 도움을 받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나아가고, 남몰래 이루어지기를 마치 물이 술로 변하듯 해야 합니다. 보통의 물건이 비상한 물건이 되고 보통 사람이 비상한 인격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이와 같이 해야 하고, 사람도 이와 같이 변화되면 다 천국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