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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중에서 등정이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는 칸첸중가(Kanchenjunga· 8,586m)는 네팔 동부에 위치해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에베레스트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영국의 탐험가들이나 유럽의 산꾼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여겼던 산이다.
칸첸중가는 8,400m가 넘는 네 개의 봉우리인 칸첸중가 주봉(8,586m), 서봉(얄룽캉·8,505m), 중봉(8,473m), 남봉(8,476m)과 캄바첸(7,902m)까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다섯 개의 눈(雪)의 보고’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8,000m나 되는 봉우리들이 이렇게 한 군데 오밀조밀하게 몰려 있는 곳은 칸첸중가뿐이다.
칸첸중가는 카트만두에서 250km 떨어진 비라트나가르(Biratnagar)에 내려 차량으로 이틀 이동하면 트레킹 시작점인 타플레중(Taplejung·1,870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군사(Ghunsa·3,595m)를 거쳐 열흘을 걸어야 칸첸중가베이스캠프(KBC)인 팡페마(Pangpema·5,143m)에 다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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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팡페마(BC)에서 바라본 칸첸중가 정상.
- 국내선 항공편으로 카트만두를 출발해 비라트나가르에 도착한 후 대기하고 있던 지프 차량으로 비림으로 이동했다. 히말라야를 찾았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열대우림의 무더운 날씨는 한여름을 느끼게 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2층 초가집 울타리에는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아열대지방의 풍성함을 느끼게 하고, 누렇게 익어가는 자몽은 연약한 가지에 매달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없이 늘어졌다. 푸른 들판에는 물소와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헐렁한 반바지 차림의 목동아이는 나무그늘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 무릎을 세운 채로 양다리를 꼬고 오수에 빠졌다. 이렇게 열대지방의 한가로운 전원풍경을 바라보며 평원지대를 관통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달리다가 점점 가파른 지그재그 산길로 접어들어 오르내리기를 반복, 저녁 늦게야 비림마을에 도착했다.
다음날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종착지인 타플레중(Taplejung·1,870m)으로 향했다. 비림에서 타플레중까지는 78km 거리라고 하지만 4시간에 걸쳐 심하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가야 하는 길은 한없이 험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도로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평균 시속 20km로 달렸다.
타플레중은 인구 2만 명 정도의 산중 마을이다. 거리 양편으로는 대부분 현지인들의 생활용품과 식료품을 파는 상가들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나이 든 여인들은 대부분은 코에 장신구들을 하고 다닌다. 몽골 계통인 림부(Limbu)족의 전통이라고 한다. 타플레중에서 유일한 호텔인 자라호텔에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데 발전기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끊어졌다 들렸다를 반복한다.
다음날 트랙터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조금 지나 곧바로 비탈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푸름부(Phurumbu·1,542m)에 도착하니 우리의 추석명절과 같은 ‘다사인(Dashain) 축제’ 기간이라서 학교가 휴교 중이다. 잔디가 깔린 학교 옆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한가로운 전원풍경을 스케치하며 오후에는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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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갸브라를 오르다 바라본 비폭(飛瀑).
- 마침 다사인 축제 기간이라 여러 전통의식 구경
다사인 축제는 힌두교에서는 가장 큰 축제다. 네팔은 80%가 힌두교도여서 힌두교 축제는 국가적인 축제이기도 하다. 일년 중 이 기간에 유일하게 우리네 세뱃돈처럼 용돈을 받고 새 옷가지를 선물 받는다. 관공서, 학교, 상가들이 통상적으로 5일간을 쉰다. 이 기간에는 객지에 나간 가족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명절을 즐긴다. 연장자는 아랫사람에게 덕담과 함께 티카(Tika)라는 붉은색 염료를 찍어주는데 붉은색은 혈육을, 이마의 점은 신이 주는 축복을 의미한다. 덕담에 주술적인 의미가 보태지는 셈이다. 티카는 생쌀과 붉은 염료를 요구르트에 짓이겨 만들었기 때문에 접착력을 유지할 수 있다. 축제 기간에는 마을 앞에 대나무로 사각기둥을 세워 만든 ‘핑’이라 불리는 그네 타기를 하며 즐기기도 한다.
칸첸중가 지역은 돌로 된 집들과 돌담이 대부분인 에베레스트나 다울라기리 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이곳은 대부분이 2층으로 된 초가집이 대부분이고 가끔씩 양철집이 눈에 띈다. 안나푸르나 지역이나 에베레스트지역은 대부분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이곳 사람들은 목축이나 농경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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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얼란씨를 채취하는 사람들. 2 시장이 있는 타플레중 거리.
- 그림 같은 탐모르강(Tamor Nai)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데 조망 좋은 길가 언덕 위에 작은 돌담집이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도 있고 쉬어가기도 하며, 가던 길이 너무 멀어 날이 저물면 취사하며 하루를 묵고 갈 수도 있는 곳으로, 부엌까지 갖추어진 주인 없는 집이다. 이런 곳을 이곳 사람들은 ‘다람살라’라고 한다. 우리네 정자처럼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우리도 풋호박과 감자를 넣고 수제비를 끓여 점심을 먹었다.
탐모르강을 따라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길을 산책하듯 걷는다. 이곳은 아직 한여름인 듯 매미가 어찌나 크게 울어대는지 요란한 물소리보다 더욱 요란하게 울창한 숲을 헤집는다. 바위에 연둣빛 이끼가 낀 오솔길은 우리를 원시 그 자체로 인도한다. 가끔씩 앞을 가로지르며 스쳐 지나는 포터들의 땀 냄새가 또 다른 언어로 다가온다.
연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메밀밭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 티하우스 옆으로 난 작은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니 세카툼캠핑장이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고산지대 날씨는 초저녁에는 흐리다가 한밤중이 되면 맑아져 밤하늘에 영롱한 별들을 쳐다볼 수 있다. 이런 날씨가 반복된다.
지난밤엔 억수장마가 질 것처럼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햇살이 밝다. 강줄기 옆으로 난 작은 등산로를 따라 급경사 길을 따라 오른다. 첩첩산중에 인적 없는 오솔길이다. 경사가 심한 가파른 협곡은 손을 뻗으면 건너편 산자락이 잡힐 듯 가깝다.
낡은 출렁다리 옆으로 난 새로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니 장쾌하게 쏟아지는 비폭이 반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놓칠 수 없었다. 스케치북을 펼치고 쏟아지는 폭포수를 스케치북으로 받는다. 물보라를 이루며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수묵화로 번진다. 오랜 세월 쉬지 않고 흘렀을 그 물줄기들의 긴 이야기가 화첩 위에서 용틀임을 한다.
세카툼(Sukathum·1,576m)에서 암지로사 구간은 급경사 계단길이다. 길 옆에는 염소 귀를 닮았다는 ‘바크라 까네’ 꽃잎이 아름답게 피었다. 바크라는 염소, 까네는 귀라는 뜻으로, 염소 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지로사(Amjilosa·2,308m)에 도착하니 강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조망 좋은 곳에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다. 점심 식사 후 땀에 젖은 옷들을 세탁해 담벼락과 대나무지붕 위에 널고 휴식을 취했다. 날씨가 너무 쾌청해 빨래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동안 습기에 젖은 침낭까지 꺼내 말리고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보니 속세를 떠나 산속에 은거한 은자(隱者)나 산중도인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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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캉파첸에서 바라본 산속의 전원풍경. 2 군사로 오르는 단풍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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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솟아오른 설산의 화려함
초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며 갸블라(Gyabla·2,750m)로 출발했다. 급경사를 오르내리다 신우대가 울창한 숲길을 지난다. 천길 낭떠러지 협곡 사이를 맑은 햇살이 비추고 있어 선경을 느끼게 하지만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린다. 이곳 말로 낭떠러지를 ‘비르’라 하며 어려운 산길을 ‘비르꼬 바또’라 한다.
갸블라캠핑장이 가까워지면서 첫 번째 설산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얀 설산과 끝이 없는 폭포와 한가로운 너와지붕이 어우러지니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칸첸중가 가는 길은 대부분 조용하고 한가롭다. 폭포가 많고 길에는 습기가 많아 먼지가 나지 않아서 좋다. 시즌 때도 다녀간 사람이 몇 백 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처럼 끝이 없는 야크행렬이나 수많은 트레커들이 북적대며 일으키는 먼지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든 경우가 없다. 어쩌다 이삼일에 한 번 만나는 트레커들과 가끔씩 지나는 현지 원주민들이 전부다. 산길도 자연 그대로의,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다.
갸블라에서 자고 일어나니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첨봉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에 있는 갸블라 건너편으로 솟아오른 첨봉들에 붉은 서광이 비친다. 히말라야에서는 황금노을이 아름답다지만 아침의 햇살을 받아 붉게 솟아오른 눈산의 화려함도 상서로움이 가득해 더욱 환상적이다.
지금까지의 산길은 산림이 울창하고 폭포가 많아 장관을 이루어 여름을 느끼게 하였다면 이제부터는 가을에서 점점 겨울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불어오는 산바람은 개선장군의 깃발처럼 너와지붕 끝에 세워진 룽다 깃발을 펄럭이며 소원을 하늘에 전하고, 길옆에 핀 솜다리꽃은 눈이 부시도록 하얗다.
강줄기를 따라 가파른 경사를 숨가쁘게 올라서니 거대한 단풍나무 군락지에 맑은 햇살이 고운 빛을 드리우고 있다. 그 옆에 제멋대로 자란 랄리그라스 고목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산자락 계곡을 흐르는 빙하 녹은 물은 하얀 포말을 이루며 적막감을 깨뜨린다.
거대한 구상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우리나라 내장산을 연상케 하는 회색암봉 아래 오색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옛적 성황당 같은 곳에 흰천으로 된 가타가 줄줄이 걸려 있다. 셰르파들이 지나면서 나뭇가지에 가타를 걸어놓고 소원을 비는 곳이다.
팔레(Phale·3,215m)는 민가가 30여 채 되는 규모가 큰 산중 마을이다.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커다란 성황당도 세웠다. 이곳은 룸 하나(3베드)에 250루피(한화 3,250원)를 받으며 뚱바 한 통에 150루피다. 식사장소를 빌리는 데 300루피, 개인 텐트를 치는 데는 250루피, 식당과 주방텐트는 400루피를 받는다. 달밧 한 그릇은 300루피다. 뚱바는 네팔의 전통주로 수수와 보리를 발효시켜 작은 오크통 같은 데 넣고 더운물을 부어 잠시 기다렸다 빨대로 빨아 먹는,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 나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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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마니 돌탑에 소원을 비는 셰르파. 2 서광(瑞光)이 비치는 일출과 하얀 반달.
- 목숨을 담보로 히말라야 찾는 이유 알듯
팔레에서 점심을 먹고 자누의 설산을 바라보며 단풍이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마음에 여유를 갖고 군사(Ghunsa·3,595m)로 향했다. 팔레에서 군사 가는 길은 크게 어려움이 없어 마치 설악산 천불동 계곡에 단풍놀이를 나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히말라야의 산 중에 이렇게 계곡을 걸으며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칸첸중가만 한 산이 없을 것이다. 낙엽송의 황금빛 단풍과 기암군봉들이 어우러진 거대한 협곡 너머로 인간의 접근을 거부한 하얀 설산들이 영험스레 솟아 있는 이런 비경은 이곳만의 절경이다.
황홀한 주위의 경치에 빠져들어 지치는 줄도 모르고 걷다 보니 어느새 군사다. 군사는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를 더 머무는 곳으로, 중간지점 마을로는 가장 큰 마을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봉들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요새 같은 곳이다. 군데군데 텃밭과 야크장도 있다. 그러나 주위가 워낙 높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어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뜨고 오후 3시가 되면 해가 진다. 그래서 한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녹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시즌이 끝나는 1월 말에 팔레 또는 갸블라로 모두 철수했다가 이듬해 3월에 다시 이곳을 찾아와 생활한다.
군사에는 로지가 있어 모처럼 허리를 펴고 속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장작불을 피우는 아궁이에 둘러앉으니 온몸이 풀리는 듯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우리가 가던 날이 이 마을의 야크를 잡는 날이어서 주방장이 야크 갈비찜에 야크 불고기까지 곁들였다.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를 더 묵어야 하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오전에는 군사마을 너와집을 스케치하고 점심 후엔 룽다가 펄럭이는 높은 암봉에 올라 군사마을과 하얀 설산을 스케치했다.
군사를 출발, 강가에 어우러진 낙엽송 군락지의 황금빛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2시간을 오르니 협곡 사이로 하늘이 확 트인다. 파란 하늘과 황금빛 단풍에 양쪽에 거대한 암산이 버티고 있어 그 사이로 하늘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듯했다.
철쭉나무를 닮은 키가 작은 ‘배룽빠띠’라고 하는 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 나무 잎을 따서 향을 만드는 원료로 쓴다고 한다. 길을 걸을 때도 냄새가 심하게 풍긴다.
군사에서 캉파첸(Khangpachen·4,230m) 가는 길은 경사도 심하고 위험한 곳이 많아 종종 오금이 저린다. 캉파첸은 야크목장이 있는 분지의 조용한 마을이다. 요란한 물소리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캉파첸에서는 자누의 변화무쌍한 저녁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저녁식사를 마치니 어둠이 내려앉은 너와지붕 위에 반쪽달이 참으로 밝다. 밝은 달빛에 랜턴이 필요 없다. 산길이 뚜렷하게 곡선을 그으며 앞장을 선다.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그 시골길 그 달밤이 아련히 떠오른다. 너와지붕에 반짝이는 달빛과 하늘에 수많은 별들, 그 아래 우직하게 솟아오른 검은색 암산과 눈덮인 하얀 산은 신의 창작물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금의 이러한 감정과 풍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토록 아름다운 밤을 볼 수 있으니 목숨을 담보로 하며 히말라야를 찾는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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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의 기암군봉과 비폭(飛瀑).
- 로낙(Lhonak·4,780m)에서 50루피 하는 달걀 프라이를 아침식사와 곁들여 먹고 BC로 오른다. 마사토 급사면에서 초긴장했다가 너덜지대를 통과할 때는 낙석으로 한순간에 절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진땀이 났다.
거대한 산사태지역의 지그재그 급사면을 걸을 때는 바로 머리 위에서 사람이 걷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긴장된다. 카메라를 꺼내자 셰르파 모던이 “이런 곳에서는 언제 돌이 굴러 떨어질지 모르니 빨리 통과해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중심 잡기도 힘이 드는데 천길 낭떠러지는 가쁜 숨을 더욱 세차게 몰아쉬게 한다. 겁에 질려 다른 곳을 쳐다볼 겨를조차 없었다.
BC는 아직도 1시간을 더 올라야 한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산소 부족으로 긴 숨을 연거푸 몰아쉬어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가보았던 히말라야 산들 중에서 칸첸중가가 가장 힘들고 위험한 코스가 많은 것 같다.
난관들을 통과하니 드디어 칸첸중가 베이스 캠프인 팡페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긴 숨을 몰아쉰다. 칸첸중가 정상은 잠깐 얼굴을 보여주더니 날은 점점 흐려지고 강한 모래바람은 산 아래서 세차게 불어와 눈코를 뜰 수 없게 한다. 기온은 내려가고 체온도 점점 더 떨어진다. 두꺼운 우모복을 껴입고 키친보이가 끓여다 준 더운 차로 몸을 녹인다.
일행 중 2명은 고소가 심해 점심식사 후 서둘러 로락으로 하산했다. 아침에 출발할 때 포터 한 명은 고소 때문에 BC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로락에 머물렀고, 어제 또 다른 포터 한 명도 고소증으로 하산을 했다.
칸첸중가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산이다. 오후에 먼지를 동반한 강풍에 고소증이 느껴지더니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스케치를 할 수 없었다. 제발 더 큰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난 후 아스피린 1알에 타이레놀 2알과 흑마늘 2캅셀을 먹고 텐트 안 침낭 속을 파고들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별다른 큰 문제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간밤에 내린 눈이 텐트 위에 수북이 쌓였다. 텐트 옆에 풀을 뜯고 있는 야크 허리와 머리에도 눈이 수북하다. 야크는 눈이 낮게 쌓인 곳을 찾아다니며 이른 아침부터 풀을 뜯고 있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 하나 없는 맑은 날씨다. 칸첸중가 정상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정상을 배경으로 ‘블랙야크 문화원정대, 화폭에 솟아오른 히말라야’ 현수막을 들고 셰르파, 포터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칸첸중가는 다섯 개의 눈(雪)의 보고라고 하더니, 역시 귀한 보물은 힘들고 어려운 곳에 감추어두는 것인가보다. 칸첸중가 BC 트레킹은 일반적인 관광을 위한 트레킹이 아니라 원정 수준의 트레킹이라고 말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