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신이 나로 가능케 / 마가복음 9:23, 갈라디아서 5;1, 13-15, 히브리서 10:38-39
'가능'이라는 말은 '자유'와 비슷하지만, 자유보다 더 발전된 개념입니다. 자유는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반면 가능은 뱀의 유혹을 알아차릴 수 있고,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자유를 나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도 "믿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인간이 단순히 인간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무한히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이 비밀은 믿는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12세의 어린 다윗이 어떻게 천하장사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자신을 할례 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의 호통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 때도, 다윗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을 던져 정확히 골리앗의 이마에 맞춘 것도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진보적입니다. 하나님은 발전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퇴보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그 능력에 따라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성공하게 하십니다.
솔로몬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지혜가 가장 중요했기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청을 옳게 여기시어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까지 더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자신이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비상한 능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격이 변화하여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0:35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하며, 지존하신 분의 자녀가 된다"고 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신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한 후에는 그 성품이 변화되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그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같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신자들은 이러한 진정한 은혜는 받지 않은 채, 기적을 행한다거나 예언을 한다거나 병을 고친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갑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는 사람은 신이 되어 주님이 오실 때 무덤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활의 가능성을 가진 신자가 어찌 귀하지 않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그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즘 건국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건국의 주역인 양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 도둑질을 하거나 온갖 부정을 저질러 나라를 병들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면 먼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헛되이 수고하다가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들어가는데 자신만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능케 함'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5:1-11에서 '인하여' 또는 '말미암아'라는 표현이 아홉 번이나 나오는데, 이는 모든 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과학이나 지식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예수님으로 인해 가능해집니다.
비행기를 타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베르사유 조약이 세계 기독교인들의 기도로 이루어졌다고 하듯이, 오늘날의 평화도 진정한 기도자들을 통해 가능합니다. 아직도 종교가 불안정하고 정신이 집중되지 못한 채, 비행기와 총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태에서는 어떤 기도가 가능하겠습니까? '나는 부동심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믿음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에서 진정한 기도가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