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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월) 오후 5시, 동탄산돌교회에서 열려
협성대 정대인 객원교수와 이진경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공적교회연구소 정기세미나
공적교회연구소(The Institute of Public Church)가 주최하는 2025년 정기세미나가 오는 3월 31일(월) 오후 5시, 동탄산돌교회(담임 황창진 목사/경기도 화성시 동탄대로21가길 4-2)에서 개최된다. 이번 세미나는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라는 주제로, 감리교회 교리의 공공성과 현대 사회 속 기독교 신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조명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협성대학교의 두 신학자가 발제자로 나선 가운데, 첫 번째 발제는 정대인 객원교수가 맡아, ‘감리교 구원론의 공공성: 종교적 공론장의 불/가능성에 관한 단상’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다. 정 교수는 다양한 신학적 전통 속에서 감리회 구원론이 갖는 공공적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고, 종교가 사회적 공론장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참여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예정이다.
두 번째 발제는 이진경 교수(협성대 교수/교목)가 이어가며, ‘타자를 위한 기독론’이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이 교수는 기독론이 지닌 배타성과 포용성의 긴장 속에서, 타자를 향한 기독교의 책임과 신학적 응답을 모색한다. 특히 다문화, 다종교 사회 속에서 기독론이 어떻게 공존과 연대를 위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성찰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적교회연구소는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의 공공신학적 역할을 연구하고 실천해 가는 기관으로, 이번 세미나를 통해 교회법과 교리를 넘어선 ‘살아 있는 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관심 있는 성도들과 신학자, 목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행사 관련 문의는 김동우 목사(010-3862-1422) 또는 이메일 publicchurch@daum.net을 통해 가능하다.
황창진 목사(산돌교회/공적교회연구소 소장)
■ 제언 :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를 시작하면서
황창진 목사(산돌교회/공적교회연구소 소장)
필자는 목회를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선, 후배 목회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목회를 수행하는 현장에서의 신학 무용론이다. 몇 명 모이냐? 결산은 얼마나 되느냐? 하는 질문의 끝에는 사람 모으는 법, 헌금하는 법 등에 관한 조언으로의 대화가 그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여러 번이었다. 물론 교회를 세우고 일으켜야 하는 과정에서 인적 모임과 결산의 규모는 중요한 일이기에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모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신학무용론이라는 담론에 너나없이 동의하는 태도가 교회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데 있어서 바람직한 태도일까? 정말 그럴까?
과거의 근본주의 신학은 과학에 대하여 강력한 저항을 하였다. 전통주의에서 계몽주의로 넘어오는 시기에 교회가 보인 지동설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폐쇄적 자기 논리라는 진영에 머물면서 보여주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태도이다. 특히 근본주의에 기반한 문자적 성서 해석은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읽어 나가다가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성서 해석이라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를 읽고 그 뜻을 회중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는 항상 요구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2천 년 전 신화적 세계관에서 쓰여진 성서를 어떻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내고 선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시간과 공간의 갭을 극복할 수 있는 해석학적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 역사 이래로 꾸준히 성서를 건강하게 읽어낼 수 있는 해석학에 관한 고민을 이어왔다.
이러한 해석학적 흐름은 역사적인 방법들로 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사비평, 편집비평 등이 있고 문학적 방법으로는 구조주의 비평, 내러티브비평, 탈 구조주의 비평, 독자반응비평등이 있다. (스티븐맥킨지· 스티븐 헤인즈 엮음, 유연희 역,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연구소. 2022, 16 이하 참조)그리고 설교자들은 이러한 해석학적 접근방식을 공부하고 몸에 익혀서 이러한 해석학적 기법들을 통합적으로 체화시키면서 성서를 읽어내고 그렇게 읽어서 깨달은 성서의 이야기를 회중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눈앞의 과제에 시선을 빼앗긴 동시에 심하게 극우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교회를 성장시키는 기술 skill 연마와 성서문자주의에 매몰된 채로 목회자들의 해석학적 자질을 확보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교단을 운영해 나가는데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극우화된 교회는 광장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일방적인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고 이에 대안이 되어야 하는 교회들은 파편화되어 극우로 기울어진 교회의 중심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 내부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교단의 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법 해석과 이에 따른 공정한 적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감리교회의 경우 같은 사안이 각 연회의 상황과 진영에 따른 재판부의 입장에 따라서 그 결과가 상이하게 나온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는 교회가 파벌의 논리를 이겨내지 못함과 온정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거니와 한편으로는 텍스트(text)를 컨텍스트(context)에 의하여 보편타당하게 읽어내는 능력으로서의 해석학적 소양을 갖추는데 목회자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교회성장 논리와 각 진영의 기득권을 지켜야 한다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사고방식을 꾸준히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와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유연한 사고 思考가 형성되지 않는 경화된 교회의 사고 체계는 해석학적 능력을 함양해 나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학적 소양의 함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교회를 성장시키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해석학적 소양을 체화하는 것은 훨씬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설교자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구분 짓기』에서 네 가지 자본의 ‘아비투스 habitus’를 이야기하면서 이 개념이 사회적 위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이 아비투스 개념 중에서 설교자에게 있어서의 해석학적 소양을 문화자본이라고 분류하고 문화자본으로써의 아비투스인 해석학적 소양이 설교의 격조를 결정하는 사회적인 능력이 된다고 적용해 본다. 설교의 격을 결정하는 것은 설교자의 문화자본으로서의 해석학적 소양이라는 것이다. (도리스 메르틴, 배명자 역, 『아비투스』. 다산초당, 2020. 참조,)
그러나 획일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현실교회는 이러한 능력을 함양하는 시도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학에 대한 경직된 자세는 교회의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고 성서해석과 더불어서 교회의 법을 해석하는 데도 여전히 법 정신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문자적이고 진영논리에 매몰된 자세로 교회의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것이다.
공적교회연구소는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 작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의 교회에 교회성장과 진영논리에 기반한 획일적 사고를 넘어서서 해석학적 소양을 함양하는 작업에 나서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 제안은 질 들뢰즈의 ‘리좀 Rhizome’ 개념 위에서 시도하는데 이는 해석학적 확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김도남, “책의 리좀과 읽기의 리좀:들뢰즈와 과타리의 『천개의 고원』 1장 ‘리좀’을 중심으로,” 「한국초등교육」 제35권, 2024)질 들뢰즈는 과타리와 함께 『천개의 고원』이라는 책을 쓰면서 리좀으로 살아가는 법을 제안한다. 리좀은 뿌리줄기를 말하며 근경 根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리좀이라는 표현은 질 들뢰즈의 은유적인 철학표현이다. 리좀은 수직적 삶의 양식 대비 수평적 삶의 양식을 의미하는데 이는 뿌리줄기는 땅속에서 수평으로 뻗어나가면서 땅속의 뿌리에서 땅 위로의 줄기를 내기도 하는 식의 번식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뿌리식물의 대표적인 것이 대나무이고 감자라고 할 수 있다.
질 들뢰즈는 리좀 개념을 풀어내면서 ‘새로운 유형의 관계 맺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질 들뢰즈가 제안하는 ‘새로운 유형의 관계 맺기’ 라는 리좀의 양식은 설교자들에게서는 새로운 해석학적 기법과의 만남으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는 생물과 같아서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2천 년 전에 기록된 성서는 흔들리는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혀야 한다. 그러나 성서문자주의에 기반한 성서읽기는 개화기에 전해진 선교사들의 전통에서조차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리좀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끊임없이 해석학적 소양을 함양하는 작업에 자기를 밀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설교자가 지녀야 할 자세는 교회의 법을 해석하는 작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끊임없는 ‘새로운 유형의 관계맺기’로서의 리좀의 해석학은 자기중심성(교회성장, 진영논리)을 포기하고 고원의 지표면 아래를 수평으로 움직이며 고원의 봉우리를 두루두루 섭렵하는 모습으로서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본문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결되는 새로움은 보다 합리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타당하게 삶의 자리에 적용하도록 설교자와 텍스트를 읽는 독자 讀者를 추동하는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적교회연구소는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 작업에 나서면서 이 작업의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리좀으로서 수평적이고 끊임없이 결과물을 생산하는 뿌리줄기로서의 해석학적 소양의 그림이 보여지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보여지는 그림은 더욱 타당하고 공정하게 살아가는 교회의 해석학적 삶의 자리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