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에 감사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단순히 감사노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여러가지 국가적 재앙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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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는 슬픔에 빠져있는데 교회 안에서 우리만 감사와 기쁨을 노래한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면 고난 속에서는 감사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팀 켈러의 <오늘을 사는 잠언>을 묵상하면서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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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잠언은 하나님의 정해진 질서가 선언된다. 하나님은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는 등의 구절은 하나님의 드러난 질서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전도서를 보면 그 질서가 교란되어 있다고 말한다.해 아래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가 말하고,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고 악인이 되지도 말라는 인생의 부조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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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하나님의 질서가 있다고 말하는데, 전도서는 그 질서는 교란되어 있고 마치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왜곡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부조리를 선언한다면 두 질서를 어떻게 균형있게 볼 수 있는가? 데릭 키드너는 "잠언은 창조 질서를 강조하는 반면, 전도서는 뒤죽박죽 망가진 특성을 더 부각시키고 욥기는 이 질서가 대개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려면 이 세가지 측면을 함께 다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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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욥기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지만 인간의 눈으로 교란되어 보일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숨겨진 질서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를 배울려면 데릭 키드너의 통찰처럼 지혜서를 모두 하나의 책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당하는 억울함과 부조리를 해결하는 실제적 과정이 바로 시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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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우리의 감정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기도문이다. 슬픔, 아픔, 기쁨, 절망 모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감정을 재조정한다. 진정한 감사란 슬픔이 없는 것이 아니고,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감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연결됨이라는 관계성안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을 누리고 맛보는 것이 시편이며 감사의 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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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진혁 교수는 <순전한 그리스도인>에서 조지 맥도날드의 설교를 소개한다.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라는 마가복음을 설교하면서 하나님과 어린아이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하나님 안에는 어린아이 같은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경이로운 세상, 신비로운 세상, 마법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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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이 있을 때 우리는 경탄하며, 경외하며, 기쁨과 놀라움을 누리게 된다. 체스터턴도 오늘날 과학적 세계관은 아침에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우주적 자연질서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차가운 엔지니어 정도로 취급된다고 말했다. 매일 해가뜨고 지는 일상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자연적 법칙이 아니라 신나는 놀이처럼 반복을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아침마다 성실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시작되는 놀이이며, 마법이며,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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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S.루이스가 말하는 '상상력의 회심'은 식탁의 빵과 같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같이 상상력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에서 경탄과 경의를 회복하는 눈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참된 감사는 일상을 새롭게 보는 힘이다. 그 눈은 인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결성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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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신다. 무료하지 않으신다. 아침마다 새로운 해를 띄우시지만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신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처럼 영원한 열정을 품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지어 늙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보다 더 늙어버렸다." 은혜를 받아 신앙이 회복된다는 것은 어린아이같은 경외가 회복된다는 말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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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때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생긴다. 진정함 감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단순한 삶의 일상 속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은혜의 마법'에 걸리는 어린아이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어린아이의 눈으로 시편을 보면 시편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영혼들의 기도로 가득 차 있다. 슬픔 속에서도 할렐루야로 끝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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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눈의 변화이다. 여전히 동일한 환경이지만 새롭게 보이는 마법이며, 신비이며, 동화이며, 상상력의 세례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기도했던 내용도 '계몽의 빛'을 비추셔서 이미 누리고 있는 복음의 풍성함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진정한 감사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린아이처럼 그 질서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이 자녀가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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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마치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 내 인생을 인도하는 것처럼 모든 책임을 지고 힘겹게 사는 것 같다. 경외와 마법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의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질서가 있음을 신뢰하면, 우리는 즐거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편의 고백처럼 여호와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분이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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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