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판에 서서
최 기 순
들판은 오늘도 서리와 안개에 덮여있다. 멀리 보이는 불빛들도 희미하게 보인다. 골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이제 얼지 않았다.
봄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비닐하우스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아마 그 희미한 안쪽에는 초록초록한 채소들이 자랄 것이다. 내가 들을 향해 의식의 어떤 순간들을 깨우려 하는 것은 들판이 나의 어떤 의식을 깨우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의식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저 들판과 같다. 희미하지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형상화 할 수 없는 어떤 뭉글한 덩어리와 같다. 그 속에서 생각의 작은 잎들이 피어나고 반짝이는 들꽃들이 피어나길 기다린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묵묵히 걸어야 할 때, 굳어진 몸과 사고가 부드럽게 풀리도록 천천히 걸어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몸이 좀 피곤할 때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때 혹은 삶의 버거운 부분이 느껴질 때 들길을 걸었던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시골 태생으로 발에 흙을 묻히기 시작할 때부터 들길을 걸었던 익숙함, 그 낯설지 않은 흙길이 주는 편안함 같은 것이 느껴져서 일 것이다.
내가 처음 들길에 섰던 그곳은 보편적으로 볼 때, 그렇게 한가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곳이었을지 모른다. 그때의 그곳은 씨감자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감자국을 끓이던 빈궁한 곳, 혹은 아버지는 바람처럼 떠돌던 곳, 엄마는 늘 아프고 나는 머리칼만 시커멓게 풍성하던 곳, 숙모들의 말은 각자의 방언으로 시끄럽고 고모들은 차고 쌀쌀맞고 아름답던 곳, 낟알은 귀하고 상추쌈만 바구니 가득 풍성하던 여름이 있던 곳, 미나리아재비꽃이 노랗게 핀 길을 걸어 시오리 밖 학교에 가던 곳의 몸에 새겨진 어쩌면 땅이 대대로 내려준 유전 같은, 본성 같은 것이 내재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 봄날의 아침을 기억한다. 들에는 푸른 안개가 끼어있고 건너편 등성이 너머는 내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땅이 있을 것만 같았던, 버들가지는 겨우내 풀어헤쳤던 머리카락을 차분히 빗어 내리고 아직은 봄이 시작되지 않은 그 끝없고 한가로운 들판을 걸어갔던 기억, 그곳에서 내 생의 첫 번째 마음의 유랑을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 어떤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때의 내 의식의 흐름을 기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은 가보지 못했던 어떤 묵직한 느낌의 회랑들, 먼 나라의 음악을 통해 들려왔던 바람 소리, 바스락거리는 낯선 공기들의 움직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처한 이 세계 외에 더 크고 광활한 느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떤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위태롭게 자신이 택한 길을 걸어가고 또 스러져 갔다는 것, 이 세계를 촘촘히 기록하려 한 이들과 그때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 뿌연 대지 위에 각인시키려 했던 이들, 또한 처한 이 세계가 좁고 너무 뻔해서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고 판타스틱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사람은 어느 쪽으로든 발전하게 되어 있다. 길을 가던 사람이 계속 그 길이 끝날 때까지 걸어가 보려는 욕망처럼, 그곳에서 얻어지는 발견을 위해서 그 느낌을 위해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 있다.
‘들길이 부르는 이 소리는 들길의 공기에서 태어나 들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지만 조작적인 사물들의 노예는 아니다. 인간은 들길이 부르는 소리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계획에 의해서 지구를 하나의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헛되이 노력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들길의 말을 듣지 못하는 위험에 처해있다.’ *
지금은 너나없이 로봇이니 인공지능이니 그 능력의 정확도와 무한함에 고조되어 있다. 이제는 신기함과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사람을 몰아내는가 하면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먼 거리에 있는 남의 나라 주요 기물을 정확히 조준해 거리낌 없이 폭파하고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죄의식 없이 그것도 대량으로 빼앗는 이 기계는 누가 단죄할 수 있는가? 어느 나라에서 누가 먼저 이 가공할 파괴의 행위를 멈출 수 있는가?
이제 다시는 들판으로 돌아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묻는 깊은 사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박찬국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