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에서 세 시간을 달려 와이토모 동굴에 도착한다. 옛날엔 책이라도 보려면 등잔불이라도 켤 수 있다면 다행이나 그보다 어려운 사람들은 반딧불을 모아 책을 읽었다는 ‘형설의 공’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면서 밤에 반딧불을 본 적이 있지만 몇 마리 씩 날아다니는 걸 쫒아 다닌 추억이 있다 지금은 환경파괴로 산골 오지에서도 반딧불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8년 전 충북 영동에 근무할 때 인근 무주에서 반딧불 축제를 한다고 해서 가 봤지만 자연 상태가 아닌 보여주기 위해 전시장에 모아 놓은 것이라 큰 감명은 받지 못했다.
"와이토모" 라는 이름은 이곳 원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로 "와이"(물)와 "토모"(구멍) 이란 두 단어가 합성해서 만들어 진 것인데, 그러니까 물구멍이라는 뜻으로 ‘구멍을 따라 흐르는 물’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반딧불 동굴은 1887년 영국의 탐험가 프레드와 마오리 추장이 함께 탐사에 나섰다가 발견되었는데, 석순과 종유석을 관찰할 수 있는 200만 년 된 지질학적 가치가 있는 종유동굴이지만 이들이 그 안을 탐사하다가 놀란 것은 마치 맑은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수놓은 듯 있는 것처럼 동굴 천정에 수 억마리 넘는 개똥벌레가 은하수처럼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표를 사 동굴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말없이 참고 견디며 자라난 종유석과 종유석에서 어쩌다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자란 여러 모양의 석순을 보게 된다. 동굴 위쪽에서 거꾸로 매달리며 자라는 종유석이 몇 천 년 또는 몇 천만 년 이상을 불평도 없이 묵묵히 한자리에서만 미동도 없이 기다리다가 아주 조금씩 자란다고 하니 그만큼 종유석이 커지는 것은 유구한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 준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미량의 석회성분을 간직하며 밑에서 위로자라는 석순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일까? 그리고 종유석과 석순이 계속 자라면 극적으로 맞나 서로 이어져서 기둥처럼 되는 아름다운 석주는 살아있는 조각물이다. 이 일대는 원래 해안선이었지만 대지의 융기로 종유동굴이 형성되었는데 수백만년전의 어패류와 동물 화석이 발견되어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기도 하단다.
<와이토모 동굴 홍보 책자에서 퍼 옴>
종유석 구경을 끝내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가이드가 이곳부터는 자연을 파괴하거나 동굴에 사는 생물의 생육환경에 지장을 주는 소리나 흡연은 물론 사진촬영도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강조하며 물길 주위를 조용히 들어가니 몸짓으로 배에 타도록 안내한다. 20여명이 탈 수 있는 배는 마오리 여인이 사공이 되어 밧줄을 당김으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컴컴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동굴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신비롭다. 동굴천정엔 은하수 같은 수많은 반딧불이 환상적으로 반짝이는데 다른 석회동굴에서도 여러 모양의 종유석은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의 반딧불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선정된 곳이란 말에 더욱 경이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딧불은 꽁무니가 반짝반짝하는 불빛을 발광하는 개똥벌레로 몸길이가 7mm-18mm로 겨우 보름(15일)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곤충이다. 그러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몸에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루시페린”이 산소를 만나면 형광 불빛이 난다. 하지만 와이토모 석회동굴엔 개똥벌레가 아닌 그로웜(Grow worm)이라는 곤충이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머리카락처럼 섬유질을 길게 늘어뜨려 벌레를 유인하여 잡아먹기 위해 빛을 뿜어내다가 먹이가 끈적끈적한 실에 걸리면 이를 끌어올려 잡아먹는데 이처럼 희귀한 반딧불은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며 사람들의 접근으로 점점 개체수가 적어진다고 하니 멸종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인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빛을 내는 것은 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모든 동물이 종족을 이어나가기 위한 행동에는 강한 맹수에서부터 미물의 곤충까지도 종족번식을 위한 구애행동은 비슷한 것 같다. 반딧불이의 일생은 짧은 생으로 마감한다. 수컷은 구애 활동을 하고 짝짓기를 마치자마자 숲에 사는 사마귀나 강물의 연어처럼 처절하게도 생을 마감하고 암컷도 수백 개의 알을 낳고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고 하니 찰나에 왔다 살아지는 순환의 여정을 보면서 나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현대는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지구 각 곳에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있다. 날로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모든 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인데 반딧불이 같은 미물들은 더욱 생존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도 아직까진 인구밀도가 적고 드넓은 강과 산, 그리고 바다로 에워싸인 뉴질랜드는 듣기보다 훨씬 아름다운 청정지역이어서 지구의 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청정지역으로 보전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와이토모 동굴 구경을 마치고 그곳에서 사슴구이를 주 메뉴로 하는 야외 뷔페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뉴질랜드의 전형적인 농장 모습을 재현한 곳이라는 아그로 돔(Agrodom) 농장을 찾아 간다. 뉴질랜드 축산업의 일면을 생생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먼저 양 쇼를 보기 위해 커다란 건물로 들어간다. 이곳의 양 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 쇼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헤드폰을 제공하는데 각 나라 말로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5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진행자(Warren Harford)와 여자 보조 진행자가 세계 여러나라에서 사육하는19종의 양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무대에 세운다. 이 무대에 나오는 양들은 “탤런트 양”이라고 해서 별도로 관리한다고 하는데 양들이 서 있는 곳에는 양들이 좋아하는 사료 통이 있어 나오자마자 사료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어떤 양은 제 먹이를 다 먹고 다른 양의 먹이통까지 가서 훔쳐 먹느라 바쁘다. 쇼 무대에 적응된 탓이지 진행자가 쇼를 진행하는 동안 느긋하게 제 위치에 서 있다. 양들의 소개가 끝나자 진행자는 양을 한 마리 데리고 오더니 양털을 깎기 시작한다. 양을 편안하게 눕히고 양의 다리를 잡고서 양털 깎는 기계로 털을 깎는데 3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깎은 양털을 관람객에게 만져보게 하는데 양털엔 기름기가 있는 것 같다.
이어서 관람객을 상대로 가상 양 경매 쇼를 하고 관람객 중 신청자 몇 명을 호출하여 새끼 양에게 젖 먹이기 쇼를 한다. 빨리 먹인 관람객에게는 인증서 비슷한 걸 준다. 이어서 특성이 다른 양 몰이 개들을 무대로 데리고 와 쇼를 진행하는데 양몰이 개 한 종은 눈빛으로 양을 몰고 다른 한 종은 개 짓는 소리로 양을 모는 데 양 몰이 개가 양들의 등을 타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등에 앉기까지 한다.
한 시간 정도 쇼를 보고 밖으로 나오면 농장 한편에 마련된 초지에서 양 몰이 개가 주인의 호각소리에 맞춰 양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양 우리에 몰아넣는 시범을 볼 수 있다.
이어서 카우 보이 모자를 쓰고 털털해 보이는 뉴질랜드인 아저씨가 운전하는 커다란 트랙터에 연결된 관광차(?)를 타고 농장 순례를 간다. 관광차에는 뉴질랜드에 유학와 관광경영학을 공부하는 한국인 청년이 안내를 맡고 있는데 유머 감각도 있고 친절해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는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넓은 초지를 지나고 언덕을 올라 도착한 곳은 양들이 노는 곳으로 이곳에서 내리자 안내하는 청년에게 양들이 좋아하는 사료를 한 움큼씩 받아 양들에게 다가가니 양들이 서로 먼저 먹겠다고 몰려온다. 어린 양들에게 사료를 먹이고 싶은데 큰 양들이 몰려와 손등을 핥으며 사료를 빼앗듯이 먹어 치운다. 이놈들 욕심이 대단해 절대 양보하는 법이 없고 손바닥까지 핥아 대는데 양들의 혀가 손바닥에 닫는 느낌이 부드럽지 않고 약간 꺼칠한 느낌이다.
양들과 헤어져 다시 관광차에 타고 조금 더 가 알파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 안내원이 사료를 나눠주면서 알파카는 사료를 줄 때 두 손을 위로 해 사료를 먹을 수 있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알파카가 사람들에게 침을 뱉을 수 있다고 한다. 알파카는 수천 년 전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인디언들에 의해 길들여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알파카는 페루 중남부와 볼리비아 서부 고도가 4,000∼4,800m 정도인 습지에 살며 이곳의 알파카는 털을 얻기 위해 남미에서 들여 온 것이라 한다. 과거 잉카 문명의 왕족과 귀족들은 알파카의 털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알파카의 털은 털 내부가 비어 있어 가볍고 강하고 광택이 나며 열 차단 효과가 아주 뛰어날 뿐만 아니라 비와 눈에도 상하지 않아 파카, 침낭, 이불, 고급 옷의 속감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날씬한 몸에 긴 다리와 목, 짧은 꼬리를 가진 알파카는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게 귀여워 보이지만 먹이에 대한 욕심은 대단하다.
알파카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키위농장으로 이동한다. 포도밭처럼 지주를 세우고 키위나무덩굴을 유인해 터널 재배하는 농장에는 고동색 과일이 여기저기 열려 있다. 키위농장에 도착하니 아그로돔 직원들이 키위와인을 작은 컵에 따뤄 준다. 비타민 C가 풍부한 키위를 양조해 만든 키위와인은 약간 시큼하면서 달달한 맛이 있어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여러 잔을 마시는 사람들도 보인다. 또, 그 옆에는 이 농장의 사슴에서 채취한 사슴뿔도 전시해 놓았다.
19세기 중엽 중국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중국이 원산인 덩굴나무를 서양인들이 정원에 심으면서 처음 붙인 이름은 ‘차이니스 구스베리(chinese gooseberry)’로 단순히 그늘을 만들어주는 덩굴나무 정도로 이용했으나 1930년경에 뉴질랜드 원예가들이 이 열매를 식용으로 바꾸기 위한 개량해 먹을 때 입속에 남는 깨알 같은 씨앗의 씹힘과 신맛이 들어간 단맛의 그 미묘함과 더불어 에메랄드 빛을 띤 과육을 가진 과일로서 차츰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뉴질랜드는 세계시장을 겨냥하여 북 섬에 키위나무를 대량으로 심었고 새로운 과일로 알려지면서 ‘차이니스 구스베리’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해 열매의 모양이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 새와 닮았다는 것에 착안하여 ‘키위프루트(kiwi fruit)’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고 한다. 사실 키위 새와 과일 키위를 연관 지우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뉴질랜드가 가장 아끼는 국조(國鳥) 키위의 이름에서 따온 것 자체가 이 과일을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뉴질랜드 사람들도 스스로 키위라고 부르는데 과일 키위, 키위 새와 더불어 뉴질랜드인들에게 그 만큼 친숙하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