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역사길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충효동)
전통문화와 역사의 향기에 젖어들다
1구간과 2구간에 이어 무등산 옛길 3구간이 2010년 7월 24일 열렸다. 길이 11.3km의 무등산 옛길 3구간은 나무꾼길과 역사길로 나뉜다. 장원삼거리에서 덕봉을 거쳐 충장사에 이르는 나무꾼길은 길이 5.6km에 3시간쯤 걸린다. 충장사에서 풍암정을 지나 환벽당으로 이어지는 역사길은 길이 5.7km에 2시간쯤 걸린다.
나무꾼길은 경사가 급한 구간이 많아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무척 힘겨운 반면, 역사길은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쉽사리 산책할 수 있다. 무등산 옛길 3구간 중에 전통문화와 역사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역사길을 더듬어보자.
나무꾼길의 종착지이자 역사길의 기점인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1568~1596년)의 사우(祠宇) 및 묘역이다. 담양, 진해, 고성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한 김덕령은 충무공 이순신과 수륙 연합작전에 참가했으며 의병장 곽재우와도 손잡고 여러 차례 왜군을 무찔렀다.
이후 1596년(선조 29년) 이몽학의 반란을 토벌했으나 모함을 받아 투옥되어 옥사했다. 그 후 1661년(현종 2년) 억울함이 밝혀져 관직이 복구되었으며 병조판서, 의정부 좌찬성 등에 추증되었다가 1788년(정조 12년) 충장공(忠壯公) 시호를 받았다.
고즈넉한 숲길로 들어서자 맑은 공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듯하다. 30분 남짓 걸으니 사촌 김윤재 재실과 쉼터를 지나 계곡 건너편에 풍암정이 서있다. 충장공 김덕령의 아우인 풍암 김덕보가 세운 정자로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15호로 지정되었다. 그는 큰형 덕홍이 금산에서 전사하고 작은형 덕령이 무고로 옥사하자 상심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여러 시인, 묵객들과 더불어 은둔했다. 앞으로는 원효계곡이 굽이치고 뒤로는 숲이 우거져 운치가 남다르다. 편백나무 숲과 왕버들이 운치 돋우고 풍암정을 지나 20분쯤 가면 짤막한 나무다리를 건너 편백나무 숲으로 빨려든다. 무등산 역사길에서 가장 빽빽한 수풀 지대다. 편백나무 숲을 벗어나 다리를 건넌 뒤로는 산길은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차도 다닐 수 있는 농로가 이어진다.
편백나무 숲에서 15분 남짓한 거리에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사이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에 1998년 세운 전시관이다. 여기서 3분쯤 가면 무등산수박마을에 이르고 다시 5분 거리에서 아래쪽으로 삼괴정이 내려다보인다.
삼괴정(三愧亭)은 1900년 문병일이 부친 문유식의 뜻을 받들어 세웠다. 여기서 삼괴(三愧)란 미립(未立:뜻을 세우지 못함), 미현친(未縣親:아버지의 명예를 높이지 못함), 미교자(未敎子: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의 세 가지 부끄러움을 뜻한다.
삼괴정 입구에서 25분 남짓 걸으면 김덕령 생가터를 지나 충효동 왕버들이 눈길을 잡는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16호로 지정된 높이 10미터, 둘레 6미터, 수령 400년 남짓한 왕버들 세 그루가 위용을 뽐낸다. 본디 이 마을에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해서 소나무 한 그루와 매화 한 그루,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왕버들 세 그루만 남아 있다.
왕버들 앞에서 5분만 더 가면 무등산 역사길 종착지인 환벽당에 다다른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인 환벽당(環碧堂)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년)가 낙향하여 짓고 후학 양성에 힘쓰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그의 제자인 송강 정철이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로 나갈 때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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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추억속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