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에서 (남고생 일기를 마치며)
청소년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다. 한번의 방황이 끝나면 또다른 방황이 시작된다. 사소한 한마디의 말에 상처받으며, 아주 작은 실수에도 큰 상처를 받는다. 더더군다나,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가하는 폭력과 억압은 엄청나게 큰 상처가 된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의 아이들은 그냥 병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게 대할 수 있다고 한다. 병을 항상 가지고 있으면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항상 신경질적이 되고 만다. 이 예민한 시기에 쓴 나의 일기들이다.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방황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했을 경우, 방황은 길어진다. 나의 글이 청소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청소년이 정신적으로 고통받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방황을 지금의 청소년은 겪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의 마지막은 아비지가 싫다로 끝났고, 이 후의 페이지는 찢어져 있다 어떻게 찢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추측하건대, 이후이 일기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의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때 간직한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내게 아버지란 존재는 컸고, 아버지란 존재는 힘든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더욱 더 무겁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 또 원장님들께도 청소년을 억압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청소년을 억압했을 때, 청소년은 또다른 일탈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청소년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내가 잊고 지냈던 청소년 시절의 방황, 그 시절의 격동기는 이리 격렬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다시금 떠올리며...
글쟁이 전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