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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문 안수집사 장례예배[입관]
예배 일시: 2023년 9월 10일 주일 오후 1시 30분
설교 제목: 의의 면류관을 받자
설교 본문: 디모데후서 4:7~8
설교 목적: 박용문 안수집사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생각하고 우리의 본분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다.
설교 개요
1. 박용문 집사의 일생 요약
2. 사도 바울의 유언
3. 박용문 집사님이 남겨 주신 것
1. 박용문 집사의 일생 요약
오늘 우리는 고 박용문 안수집사님의 장례를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집사님의 시신을 관에 모시는 입관을 마치고 다시 한번 고인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본래 장례식에서 발인식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의식이지만 장례의식이 현대화되면서 발인하는 날은 일정이 많아 여유를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입관예배는 장례식에서 고인을 가장 깊이 기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오늘 저는 고인의 일생을 간략하게 회고하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가장 분명하게 갖고 있는 분들은 자녀들이겠지만 그 동안 제가 새소망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박용문 집사님과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박용문 집사님은 1935년에 일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실 21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저의 아버지도 같은 해에 출생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박집사님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저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는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집사님은 일본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방을 맞이하셨습니다. 해방 전까지 집사님은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약한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애들이 있다면 그가 6학년이라도 가만 두지 않아서 학교에서는 집사님이 규율부장과 같은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함께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을 타셨는데 그 배는 화물선이었습니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연락선은 대만까지 표류했고 배를 수리하고 양식을 구하여 부산에 도착한 것은 일본을 떠난 지 16일만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산을 지나 순천에 정착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집사님의 아버지는 손수 집을 지으셨습니다.
집사님은 열세 살 때인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목격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친구 아들이 당시에 14연대 소속이었는데 그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를 면하셨다고 합니다. 그이는 총을 들고 집에 찾아와 닭들을 향하여 총을 난사했습니다. 집사님의 아버지는 닭 몇 마리를 잡아 주었다고 합니다.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가을에 경찰이라는 이유로 죽창에 찔려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장면을 어린 나이에 목격하시고 언제나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열일곱 살 때 한국전쟁 중에 폭격으로 집을 잃었는데 가족은 거할 곳이 없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집사님은 둘째 여동생과 외삼촌의 집에 들어가 사셨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7, 8, 9, 10세의 어린 아이들로서 다른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런 동안에 집사님의 아버지께서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집사님은 이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셨습니다. 집사님은 돈을 벌기 위해 순천의 외갓집을 나와 남원에 있는 이종 형님에게 자동차기술을 배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종 형님이 대구로 발령 가는 바람에 졸지에 오갈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남원에서 군 후생사업 차량의 조수로 일하던 친구랑 이런 저런 일을 배우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다가 설 명절 연휴를 맞아 고향에 가보니 모친과 동생들의 사는 모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의집살이를 해서라도 가족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이집 저집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는 허씨 집에서 일년을 일하러 들어갈 때 쌀 한 가마니를 받고 나올 때 쌀 두 가마니를 받으셨습니다. 박씨네 집에서도 일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너무 막막하여 뒤늦게 24세에 군대에 입대하셨습니다. 그때가 1959년 12월 30일입니다. 남들은 보통 21살에 입대하는데 가족을 부양하느라 입대가 늦어졌습니다. 군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가 없었기에 그런 결심을 한 것입니다.
집사님이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하여 한글을 터득하신 노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해방 후에 11살 때 한국에 와서 한글을 배우려고 하니 우리말도 모르기 때문에 한글을 배우는 것은 참 답답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버지 친구분인 훈장에게 가서 한자를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요책을 얻어 그것으로 한글을 공부하셨습니다. 오늘 어떤 사람들이 팝송을 배우면서 영어를 익힌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글을 깨우치고 운전면허를 취득하셨습니다.
집사님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를 하셨는데 다행히 영관급 차량을 운전하게 되셨습니다. 그 장교는 작전과 교육과장 조창배 씨였는데 시골에서 외삼촌으로부터 온 편지를 보고는 집사님의 가정을 이모저모로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교육과장은 군대에서 남은 휘발유를 처분하여 돈을 벌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군복무를 하는 동안에 돈을 벌어 원주 시내에 방을 마련하고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2년 8개월 군복무를 통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군복무를 마치고 원주에서 살다가 여주에서 마르보스 차량을 운전하고 그 후에 서울 왕십리 안정사 근처에 집을 사셨습니다. 집사님은 1961년 5.16쿠데타 이후에 제대하셨는데 당시에는 5.16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집사님은 군대 정보과에 상관들을 알고 계셨으므로 왕십리 지역의 애로사항을 이모저모로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왕십리에서 집사님은 운전하는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운전하는 이들에게 부과하는 벌금딱지가 매우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로5가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셨는데 그것은 쇠뿔을 깎아 구두칼도 만들고 참빗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집사님은 참빗을 만드는 재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후 집사님은 돈을 조금 더 들여 소형면허를 대형면허로 바꾸고 버스운전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때쯤 순천에 가서 중매로 결혼은 하셨는데 그분이 김춘자 집사님이십니다. 그리고 32세인 1967년 장남 흥주 씨를 낳으셨습니다. 흥주 씨는 첫돌에 홍역에 걸렸는데 잘 모르고 주사를 맞아서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소아마비가 왔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경기 법대를 졸업하고 선배를 따라 경북 청송에 가서 우체국의 일을 하다가 사과농사를 하는 농사꾼이 되었다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하셨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집사님은 아들이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집사님은 자녀들을 양육하시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특히 자녀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집 세 채를 팔아야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을 고치고 잘 양육하기 위하여 인생철학까지 연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집사님과의 일대기 녹취는 여기까지 와서 멈추었습니다. 다른 날 또 녹취하리라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더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사님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배경은 매우 특이합니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너는 교회에 나가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내가 너를 잡아갈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집사님은 가까이 있던 새소망교회에 출석하셨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편단심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셨습니다.
2. 사도 바울의 유언
오늘 저는 집사님의 일생을 간략하게 회고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을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죽음을 앞두고 자기가 아들처럼 여기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8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을 바르고 진실하게 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상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가지고 살라고 디모데에게도 권면합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싸운 선한 싸움이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그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지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굳게 지키고 살았노라고 고백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합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인생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환경 속에서 깨달은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를 우리는 성경에서 배우고 우리의 목표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박용문 안수집사님도 선한 싸움을 싸우셨고 자신의 인생의 경주를 치열하게 달음질하셨으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셨다고 확신합니다.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도 안통하고 글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일본어가 밴 말투로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몸으로 부딪힐 때 몸과 마음에 어찌 생채기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집사님이 일찍부터 체력단련을 하신 이유가 바로 그런 험한 세상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시절에는 모친과 형제들을 돌보고 결혼 후에는 자녀들을 돌보고 노년에는 아내를 돌보면서 묵묵히 기도하신 박용문 집사님의 삶은 선한 싸움을 싸운 바로 그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집사님의 치열한 삶을 보고 감동한 군대 장교들도 도움의 손길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집사님이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토록 고군분투하셨기에 하늘도 환상 가운데 집사님을 불러 교회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도 바울도 환상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은 성실한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박용문 안수집사님도 틀림없이 주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고인의 뜻을 받들어 우리의 삶에서 본분을 다한다면 그 영광에 동참할 것입니다.
3. 박용문 집사님이 남겨 주신 것
이제 끝으로 박용문 안수집사님이 남겨 주신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집사님이 남겨 주신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짧은 대화를 통해서 저에게 ‘대장부가 되어라!’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먼저, 집사님의 삶을 회고하면서 저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약하고 힘든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라는 것이지요.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사람을 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집사님과 만남을 통해서 제가 배운 것이 이것입니다.
둘째는, 가족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집사님은 모친과 형제들을 돌보시기 위해서 머슴살이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군 기피자로 지내는 것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집사님은 자녀들을 위해서 집을 파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집사님은 아내를 병구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약재와 처방을 연구하시고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김춘자 집사님은 남편을 존경하셨고 따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박집사님이 그토록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셨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지난 2020년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서 박집사님은 너무 많이 상심하셨습니다. 그렇게 두 분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집사님은 새벽기도에 열심이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담임목사님들과 견줄만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이 교회에 대한 응답을 집사님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크게 기뻐하면서 목사님께 그 응답을 나누며 좋아하셨습니다. 지극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을 경험하신 집사님은 그렇게 기도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박용문 안수집사님이 남겨 주신 이 세가지 가르침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롭게 살아라.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한 길을 택하라.
그리고 가족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라.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라. 반드시 응답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박용문 안수집사 장례예배[발인]
예배 일시: 2023년 9월 11일 (월) 오전 5:30
설교 제목: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설교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16~19
설교 목적: 고인이 생전에 만났던 분들을 기다리던 자리를 떠나 장지로 향하는 발인에 드리는 예배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인은 주님과 함께 있으며, 그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늘 함께 있는 셈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저를 보고 계시죠?’ 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을 권하자.
설교 개요
1. 사별의 슬픔을 위로하는 사도 바울의 권면
2. 창조의 원형: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하리라
1. 사별의 슬픔을 위로하는 사도 바울의 권면
오늘은 고 박용문 안수집사님의 발인일입니다. 발인(發靷)은 빈소(殯所)에 모시던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여 장지로 옮기는 절차입니다. 집사님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분들이 이곳을 찾아 이별의 아쉬움과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이제 생전에 그렇게 만나고 싶던 사람들을 대부분 만나고 이제 장지로 떠납니다.
오늘 저는 발인예배에서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전한 위로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족과 사별한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전한 권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슬픔과 애통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에 너무 깊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슬퍼하되 슬픔 가운데 이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박용문 안수집사님도 주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은 큰 소리로 그 부활의 아침이 밝았음을 알리실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하늘의 천사들도 큰 나팔소리를 울리며 우리 주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심을 환영할 것입니다.
그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던 분들이 먼저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 다음에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주님 앞에서 항상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슬픔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2. 창조의 원형: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종교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흙처럼 또는 바람처럼 흩어져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죽으면 조상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 중 하나로 들어간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별도로 설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지혜를 힘입어 이 땅을 관리하고 경작하며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성경이 그려주는 인간의 원형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들은 땅을 경작하고 가꾸면서 그 소출을 가지고 가족을 먹이고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임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설명할 때 농부나 포도원의 주인으로 소개합니다. 성경이 그려주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땅을 가는 성실한 농부입니다. 땅을 가꾸면서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평범하지만 보편적인 진리를 체득합니다. 그런 곳에는 사기나 독과점 같은 탐욕이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최고의 덕목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주님이 줄로 재어 주신 땅을 가꾸고 그 소출을 기뻐하며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저는 박용문 안수집사님이 우리에게 바로 그런 삶을 보여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아침이면 하얗고 커다란 개와 산책하고 구슬땀을 흘리시면서 가족을 돌보시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며 사시던 집사님을 생각합니다. 집사님을 얼굴로 만난 사람들은 집사님의 얼굴에서 다른 뜻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것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진실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 한평생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마 사는 모습은 다 달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삶의 터전에 감사하면서 그것을 돌보고 가꾸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평범한 삶이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모든 것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마음 속에서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인은 이제 하늘에 계신 주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시면서 바라던 주님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있는 먼저 가신 분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고인은 지금 우리처럼 슬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가장 기뻐하고 또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과 함께, 주님 앞에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그 만남에 합류할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고인이 그처럼 주님과 함께 기쁨 가운데 계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들도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참되고 진실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우리는 고인을 향하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용문 집사님, 잘 계시죠? 저도 잘 있습니다. 제가 맡은 일 성실히 수행하고요, 욕심 부리지 않고 가족과 이웃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거에요. 집사님도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는 날 함께 기뻐하며 노래하며 춤을 춰 봐요!”
박용문 안수집사 장례예배[화장]
예배 일시: 2023년 9월 11일 (월) 오전
설교 제목: 죽음 이후의 삶
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15:21~22
설교 목적: 화장(火葬)이 진행되는 동안에 유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가 화장예배다. 고인의 시신이 한줌의 유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더욱 슬퍼질 것이다. 이 설교는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붙들어주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설교 개요
1. 장례식의 절정인 화장
2. 죽음 이후의 삶
3. 부활 신앙에 담긴 의미
1. 장례식의 절정인 화장
장례식은 보통 삼일장 또는 오일장으로 치러집니다. 박용문 안수집사님의 장례는 그 사이인 사일장이 되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유족들의 노고도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장례식은 마치 인생을 압축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먼저, 빈소를 정하고 영정을 모시며 유족들은 한 자리에 모입니다. 그리고 고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한 사람 두 사람 찾아옵니다. 그 추모 속에는 고인과 함께했던 삶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게 삼일간의 장례식을 통하여 한 사람의 인생은 정리가 되고 우리는 그렇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랩니다.
장례식의 일정 중에서 화장은 그 절정에 해당합니다. 이제 우리는 고인의 시신과도 이별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 이 자리는 우리에게 더없이 큰 슬픔과 허망이 밀려옵니다. 저는 이 화장 예배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성경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말씀이 유족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죽음 이후의 삶
기독교 신앙은 사람에게 죽음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부활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죽은 것처럼 그 이후의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시 살아 새로운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환생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이 세상이 새롭게 되는 날에 일어날 새롭고 회복된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주관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이 세상을 고치시고 결국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고치실 일 중에는 질병과 죄악이 있고 마지막에는 사망이 있을 것입니다. 사망이 고침을 받는 것이 곧 부활입니다. 기독교회의 부활 신앙은 창조 신앙과 짝을 이룹니다. 창조하신 분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나요? 성경을 읽어 보면, 사람은 죽어서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곳은 하늘이며 그곳에서 안식합니다. 그 안식은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기다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새롭게 되는 날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날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사람들은 안식하면서 만물이 새롭게 되는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성경이 죽은 사람을 표현하는 말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아마 장례를 치르면서 사람이 마치 자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신자는 죽음 이후에 주님과 함께 안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말입니다.
3. 부활 신앙에 담긴 의미
끝으로, 성경이 들려주는 창조와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묵상하며 찬송하노라면 사람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면 ‘인생과 세상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니 이 선물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왜 주셨을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생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목적과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창조의 신앙은 우리 인생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이 땅을 관리하고 이웃과 더불어 평화와 번영의 세상을 가꾸라는 임무입니다. 그 위대한 임무를 깨닫는 사람에게 인생은 그냥 주어진 무엇이 아니라 살면 살수록 가치와 보람이 커지는 선물이자 임무일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지 않는다는 희망입니다. 사실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모든 노고와 성취가 죽음 앞에서는 덧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그 절망과 덧없음을 극복하게 하는 희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그 둘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 훗날 우리가 다시 살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부활의 날에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의 날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올바르게 수행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제 입관예배 때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자신을 위하여 상이 예비되어 있다는 믿음입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우리를 절망을 극복하게 하는 동력이며 동시에 우리가 맡은 일에 대하여 더욱 성실하게 임하게 하는 동기입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에 박용문 안수집사님께 우리는 할 말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 기대와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도 그릇된 길에 빠지거나 허망한 일에 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