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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풀무불에서 살아난 다니엘의 세 친구(다니엘 3:19~30)
* 본문요약
세 사람이 일곱 배나 뜨거워진 풀무불에 떨어진 후 느부갓네살 왕은 크게 놀라며 풀무 아구에 가까이 다가가서 풀무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풀무불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떨어졌는데, 네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중 한 사람은 신의 아들 같다고 말한 후 세 사람에게 이리 나오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들은 머리털은 물론 겉옷까지도 탄 흔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며
전국에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는 자는 죽이리라는 새로운 포고령을 내리고
세 친구를 바벨론 지방에 더욱 높입니다.
찬 양 : 460장 (새 301) 지금까지 지내온 것
455장 (새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본문해설
1. 풀무불에 떨어진 세 친구(19~23절)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얼굴빛이 달라져서) 명하여 이르기를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하라”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자
21) 그 사람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들고 있던 군사들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19~23절 단어해설 어제 큐티에)
2. 풀무불에서 걸어 나온 세 사람(24~27절)
24) 그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왕이여 옳소이다.”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였고
26)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어귀 가까이 가서 불러(외쳐)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그러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27)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옷 색깔)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 그때에 ~ 놀라 급히 일어나서(24절) : 테와
‘놀라’에 해당하는 ‘테와’는 ‘간담이 서늘하도록 놀라다, 의아해하다, 신기해하다’라는 뜻으로, 눈앞에 벌어진 기이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충격의 정도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들을 던지던 용사들이 죽을 정도라면 세 사람은 풀무 안에 떨어지기도 전에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는 광경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 넷째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25절) :
신의 아들이 아니라 신적 인간, 즉 ‘사람의 모양을 한 신’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삼위의 하나님 중에서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시는 이는 예수님이시므로 함께 한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 하나님의 종(26절) :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하나님의 종이라 부릅니다.
자신이 경험한 이 놀라운 기적을 통해 세 사람이 섬기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라며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이 경험을 신앙의 성장의 기회로 삼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신기한 경험에 그칩니다.
- 몸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 냄새도 없었다(27절) :
불이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
‘~ 하지 않았다’는 단어가 네 번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의 구원이 온전하고도 확실한 것이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새로운 포고령을 내린 느부갓네살(28~30절)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기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천사)를 보내셔서 하나님을 의뢰하여 그들의 몸을 버리면서(바치면서)까지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들의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절하지도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모든 백성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말하였고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였습니다.
- 설만히(경솔히) ~ (29절) :
하나님께 대항하는 말이나 하나님께 대하여 적절치 않은 말을 하면 죽이리라는 것
* 묵상 point
1. 풀무불에서 살아난 다니엘의 세 친구
1) 일곱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진 세 사람(20~23절)
느부갓네살 왕은 분노가 극에 달해 낯빛까지 변하여 풀무불을 일곱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한 후에 그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관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결박하여 풀무불에 던져 넣게 합니다. 용사들이 세 사람을 결박하여 풀무 위의 뚜껑을 열고 던져 넣으려다 그 불에 그 용사들이 먼저 불에 타 죽었습니다. 결국 세 사람은 그렇게 풀무불 속에 던져집니다.
2) 죽지 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불에 탄 냄새도 나지 않았고(24~27절)
세 사람은 일곱 배나 뜨겁게 한 풀무불 안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더구나 풀무 안에 떨어진 자는 세 사람이었는데, 풀무불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크게 놀라며 아구 가까이 가서 이를 확인한 후 그들을 향하여 나오라고 명하였습니다.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밖으로 걸어 나오자 어디 불에 탄 흔적이 있는지 살폈으나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았고, 겉옷의 색깔까지 변하지 않았으며 불에 탄 냄새까지 나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을 찬양하며 다니엘의 세 친구를 높이는 느부갓네살 왕(28~30절)
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자를 보내셔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몸을 버린 자들을 구하셨다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개어 그 집을 거름터로 삼으리라는 포고령을 전국에 내리게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바벨론의 지방에서 전보다 더욱 높아졌습니다.
2.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1) 풀무불 속에서 아무 상처도 없이 살아난 세 친구(24~27절)
그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으니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며 감히 바벨론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세 친구가
일곱 배나 뜨거워진 풀무불 속에 던져짐으로써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갑자기 황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풀무불 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친구들이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분명 풀무 안에 세 명이 들어갔는데 네 명이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사람의 모양을 한 신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2) 최후의 승리자가 된 세 친구(24~27절)
그들은 불 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서 나왔습니다.
혹시 어디라도 불에 탄 흔적을 찾으려 애썼으나
그슬린 곳은 고사하고 불에 탄 냄새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이 불사른 것은
그들을 결박했던 줄과 그들을 포박했던 병사들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긴 줄 알았는데
최후의 순간에 승리의 월계관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3) 예수님도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숨을 거두셨을 때도
악마의 진영에서는 승리의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였으니 승리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마의 승리의 잔치는 3일을 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상황은 역전되어
악마는 그들이 가진 모든 무기들을 빼앗긴 패잔병들이 되었습니다.
● 묵상 :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권세를 가진 동안 아주 잠시 동안에는 승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주관하시니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1) 돈이라는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오늘날 가장 이기기 힘든 우상은 “자본주의”라는 우상입니다.
오늘날의 금신상은 ‘풍요롭고 안락한 삶에 대한 추구와 탐닉’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정의와 공평을 세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섬김의 삶을 살기보다,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복이라 여기며 그것에만 안주하려 합니다.
오늘날 어디에서도 무엇을 섬겨야 할지를 배우기 위해
애쓰는 자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 경쟁이라는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여기에 또 하나의 우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쟁’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아주 어린아이부터 남과 싸워 이기기 위한 경쟁 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엇 때문에 이겨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목숨을 건 무한경쟁에 뛰어듭니다.
그러다 뒤쳐졌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미 행복하기에 충분한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경쟁에서 뒤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가장 불행한 자로 여기는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3) 즐거움이라는 우상도 조심하십시오.
오늘날 방송에서 먹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방영합니다.
자극적인 춤을 추며 노래하는 방송들도 많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빼앗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먹는 즐거움, 보고 느끼는 즐거움을 위해 돈 쓰기를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은 시간이 걸리니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 자꾸만 마음을 빼앗깁니다.
이런 우상들을 조심하십시오.
이런 우상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우상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를 파괴합니다.
4) 이 세 친구로부터 우상숭배와 싸우는 법을 배웁시다.
바벨론 제국의 모든 힘으로 제압하는 이 국가주의라는 우상숭배에 대항했던 사람들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뿐이었습니다.
모든 악기와 함께 그 자리에 모인 바벨론의 모든 백성들,
그 군중들에게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에 함몰되지 않은 자들도 그들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로부터 우상숭배와 싸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싸움에서 이긴 것은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강직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강건한 영을 가진 자들이 되도록 경건의 훈련에 힘쓰십시오.
그래야만 마지막 때의 엄청난 혼란의 때를 이길 수 있습니다.
4. 기독교 신앙이 국가주의적 우상숭배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1) 국가주의적 우상숭배의 위험
종종 기독교 신앙이 국가주의적 우상숭배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우리 주님만을 참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말하는데,
기독교가 국가주의적 우상숭배의 도구가 될 때에는
특정한 어떤 사람이 가진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그를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묘하게 위장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정치권력을 섬기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2) 권력을 위해 국가주의적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자도 되지 마십시오.
사울 왕이 바로 이 죄를 범했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헤롯왕 역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자신이 가로챘다가
벌레에 먹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왕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의 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국가가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여 주의 백성을 핍박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따를 것인가?
만일 국가가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것을 지적하는 선지자와 같은 자들을 국가가 핍박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국가의 정책에 불복종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국가 군력보다 더 높은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보다 하나님의 권세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마태복음 10:28).
➠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 다윗 같은 자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며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국가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정의롭지 못한 길로 간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핍박을 받을 각오로 저항하며 바른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 다윗을 무너뜨리고 그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거짓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비난했던 압살롬이나 세라의 경우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이방인과 같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참과 거짓, 참된 정의와 거짓된 정의를 구별할 지혜를 구하십시오.
세상 정치가들치고 자기들이 악한 자라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권력을 위해 자국인을 죽이고도 ‘민주, 정의’를 외쳤던 자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많은 말들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한 선택으로 장차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께 참과 거짓을 분별할 지혜를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5. 최고의 가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준비를 갖추십시오.
1) 이 세상 사람들도 최고의 가치를 위해서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이 보기에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 일을 위해서는
다른 일들을 기꺼이 버리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수많은 시간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훈련을 이겨냅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않는 고통을 감내합니다.
2) 주께서 주시는 복이 최고의 가지를 지녔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행하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길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 여긴다면
이들처럼 우리도 마땅히 그 길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란
지금 당장은 그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각오하는 것을 말합니다.
● 묵상 : 주께서 우리를 이런 사람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1919년 4월 18일 경기도 화성군 발안면의
제암리 교회에서 있었던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일제에 의해 제암리 교회의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 갇힌 채 불에 타 죽었습니다.
때로 내 생애에 그 열매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생존자였던 전동례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성도들이 어깨동무를 하고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찬송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때로 이렇게 살아서는 그 열매를 맺는 기쁨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는 가장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얻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은
하나님 그분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믿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 바로 그분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우십시오.
* 기도제목
1.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승리하심을 믿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주시는 은혜의 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것을 얻기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준비를 갖추며 살게 하옵소서.
3. 주님이 누구신지 바로 배우고,
주님을 바르게 사랑하며 섬기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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