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산수기-정약용(오염 관련글)
경술년 여름에 나는 이미 한림(翰林)을 사직하고, 바로 그해 가을에 울산부(蔚山府)로 아버님을 뵈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죽령(竹嶺)을 넘어 서울로 오려고 하였다. 그때에 진사[上舍] 오염(吳琰)이 운암(雲巖)의 별장에 은거(隱居)하고 있어, 나는 마침내 단양(丹陽)에서 운암(雲巖)으로 질러갔다. 동구(洞口)에 깎아 세운 듯한 석벽(石壁)이 보였는데 그 반듯한 품은 대패로 다듬어 놓은 듯하였으며, 그 아래는 맑은 연못을 이루어서 깨끗하고 고결한 모습이 마치 고야(姑射)의 신선과 같았다. 바위의 이름을 물으니 사인암(舍人巖)이라고 했다. 아, 이것이 이른바 사인암인가. 사인암이라면 이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승지(承旨) 오대익(吳大益)이 이 바위 꼭대기에서 나무학(木鶴)을 타고 백우선(白羽扇 흰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을 잡고 밧줄을 소나무에 붙들어 매고 노복 두 사람에게 서서히 놓으라고 하여 맑은 연못 위에 내려왔는데, 그것을 부르기를 ‘선인(仙人)이 학을 타는 놀이[仙人騎鶴之遊]’라고 하였으니, 역시 기이한 일이다. 시내를 따라 몇 리쯤 가면 산의 기운이 더욱 맑고 돌은 더욱 고왔는데, 물이 내려오다가 갑자기 흘러가니 쌓여 있는 모래가 동그란 사장을 이루었다. 푸른 물과 모래톱이 구불구불 돌아 흐르고, 언덕 위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등 기이한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그늘 사이로 정자가 보일 듯 말 듯하여, 그 이름을 물어보니 운암(雲巖)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그 근원지 끝까지 올라가면 이른바 삼선암(三仙巖)이었다. 내가 한창 즐거운 생각에 젖어 있을 때, 마침 내각(內閣)으로부터 빨리 역마를 타고 올라오라는 성지(聖旨)를 보내왔기 때문에 귀담(龜潭)과 도담(島潭)은 말 위에서 바라만 보았을 뿐이다. 옛 사람이 산을 바라보기만 하여 그 흥취의 반쯤은 남겨 놓은 것을 미인을 반쯤 본 것에 비유하여,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억할 수가 없다.’고 한 것은 매우 훌륭한 비유이다.
[주-D001] 고야(姑射)의 신선 : 고야는 산 이름. 신선들이 이곳에 산다고 함.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묘고야(藐姑射 고야와 같음)에는 신인(神人)이 사는데, 살결이 눈빛처럼 희고 아름답기는 처녀와 같으며, 오곡(五穀)을 먹지 않는다.”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