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제물진두는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오페르트의 무덤 도굴사건 그리고 서양세력의 침공과 관련해 천주교 신자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척사 의식을 고양하려는 정부에 의해 인천 지역 최대 순교지가 되었습니다. 1868년 4월,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이모인 김씨와 남편 손 넙적이 베드로, 사위 백치문 사도 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1871년 5월에는 이승훈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 형제,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그의 손자 이명현, 신자로 추정되는 백용석과 김아지도 체포되어 이곳에서 함께 효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성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본 후, 1845년 4월 사제품을 받기 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1888년 7월 22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4명의 수녀가 이곳 제물포항을 통해 순교자의 땅인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입니다.
인천교구는 제물진두 위치 규명에 이어 2011년 차이나타운 입구 한중문화관 옆 대지를 매입해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성역화를 추진해 2014년 5월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에 건립된 15m 높이의 경당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하느님께서 순교자들을 감싸는 두 손 모양을 형상화했습니다.
[출처] 굿뉴스-제물진두 순교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