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몽마르트 우붓에 매료되다
여행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사람을 큰 길로 인도한다. 이번에 우연히 떠나게 된 발리 여행도 그랬다. 단순히 허니문과 휴양지로만 생각했던 발리는 내게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다. 그러니 가보지 않고는 그 지역을 말 할 수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
'파리에 몽마르트가 있다면, 발리에는 우붓이 있다'란 말이 있다. 그만큼 발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예술인 마을이다.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발리는 누사두아 비치, 사누르 비치, 꾸따 비치 등 아름다운 비치가 사방에 포진해 있고, 그 비치에는 황홀한 풀빌리(개인풀장이 딸린 리조트)가 천국처럼 화려하게 들어 서 있어 신혼부부들의 달콤한 허니문 메카가 되고 있다.
발리섬은 마치 병이리모양처럼 생겼는데, 우붓은 병아리 허벅지 쯤으로 여겨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아융강을 옆에 끼고 주변에 몽키 포레스트와 계단식 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우붓은 도착하자마자 뭔가 신의 영감을 얻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우붓의 그런 풍경이 유럽인들을 매료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리의 진정한 정신적 가치는 예술인 마을 우붓Ubud에 있다. 발리 사람들은 신은 언제나 산에 살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이런 믿음은 발리 사람들로 하여금 해안지대에서 북쪽 고지대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멀리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아궁산을 배경으로 우붓은 해발 600미터 고지에 들어서 있어 해안보다 훨씬 서늘하다.
(그림 : 월터 스미스의 계단식 논)
유럽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붓은 살고 싶은 세계 10대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우붓은 살기좋은 곳이며, 발리 전통예술의 진수가 묻어있다. 발리가 유럽인들에게 낙원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 것은 1920년에서 1930년대 사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열대지방 섬나라를 열광적으로 동경하였고, 섬나라로 가고 싶은 부유층들이 많았다.
이러한 사조는 19세기 남태평향의 타히티로 건너간 폴 고갱의 영향이 컸는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 식민통치를 하고있던 네덜란드가 1924년부터 발리를 오가는 정기선을 운행하자, 발리로 가는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930년대 중반에는 연간 3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유럽예술가들의 발목을 묶어 놓은 것은 발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힌두문화가 꽃을 피운 예술인 마을 우붓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힌두교을 신봉하는 발리인들은 섬 어디서나, 그리고 섬 주민 누구나 가치 있는 것을 제작하고 신을 찬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소에 예술적인 창조와 장식을 생활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붓은 발리인들의 오랜 예술적인 고향이었다. 따라서 유럽의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유럽의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우붓으로 몰려들게 되었다.
The Temptation Of Arjuna, 루돌프 보네
발리로 온 유럽의 화가 중에서 독일인 화가 월터 스피스(Walter Spies, 1985-1942)와 네덜란드 화가 루돌프 보네(Rudolf Bonnet, 1895-1978)는 발리 문예부흥을 크게 일으킨 화가들이다. 특히 월터 스피스는 발리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우붓의 자연과 예술에 매료되어 1927년부터 1940년까지 13년간이나 우붓에 살면서 발리 문화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루소와 샤갈로부터 영향을 받은 스미스는 그림이외에도 음악, 언어, 무용, 사진, 영화제작, 고고학과 인류학에도 조예가 깊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현재 발리에서 공연되는 '바롱 댄스'나 '깨짝 댄스', 그리고 '가믈란 음악'은 그의 영향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는 가믈란 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었고, 구미의 잡지에 발리의 회화와 사진을 발표하여 발리를 유럽에 널리 알렸다. 스피스의 영향으로 많은 구미의 예술가나 학자들이 우붓으로 와서 머물게 되었다. 스피스와 보네는 발리 전통회화에 서양화의 원근법과 음영법을 도입시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발리의 전통회화라고 생각하는 현대판 '우붓양식'과 '바뚜안 양식'을 탄생시켰다.
▲우붓양식
▲바뚜안 양식
'우붓양식'은 발리 사람들의 전체적인 삶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발리의 자연, 농촌풍경, 사원의 전통의례, 춤, 토착민들의 인물상이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다. 발리전통회화에 스피스의 음영법, 원근법, 그리고 보네의 서양화 개념을 배우고 도입한 발리의 화가들에 의해서 우붓양식이 새롭게 탄생되었다.
'바뚜안 양식'은 우붓 남쪽 바뚜안 마을에서 시작된 새로운 서양화 스타일이다. 주로 신화를 소재로 하는 바뚜안 양식은 화면 가득 어두운 색채를 많이 쓰는 화법이다. 바뚜안 양식은 발리의 우주관을 근거로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네카미술관에는 이 두양식의 화화들이 연중 전시되고 있다. 발리왕궁에 도착한 나는 고풍스러운 라야거리Raya에 매료되며 발리회화의 진수를 엿볼 수있는 네카미술관으로 향했다
▲병아리 모양처럼 생긴 발리섬. 병아리 허벅지 쯤에 위치한 예술인마을 우붓
▲우붓 지도
*참고자료 : 네카미술관 http://www.museumnek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