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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누가복음 3:1~9)
* 본문요약
디베료가 로마 황제가 된 지 15년이 되던 해,
곧 본디도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고,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임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 주변을 두루 다니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를 전파하며,
세례를 받으러 오는 자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고 선포합니다.
찬 양 : 327장(새 538)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213장(새 423) 먹보다도 더 검은
* 본문해설
1. 세례요한에게 말씀이 임함(1~6절)
1) 디베료 황제(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린 지 15년째 되던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헤롯의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 지방의 분봉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주변의 모든 지역을 두루 다니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기록된 것과 같았더라.
이사야의 책에 기록되기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오실 길)을 평탄케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이사야 40:3~5)라고 한 것과 같으니라”.
- 디베료가 다스린 지 15년째 되던 해(1절) :
디베료의 선임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주후 14년 1월 9일에 죽었으므로,
그 후부터 15년이면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말씀을 주신 때가 주후 28~29년쯤으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약 1~2년쯤 전입니다.
-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1절) : 빌라도는 주후 26~36년까지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1절) :
주전 4세기에 죽은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바가
주후 39년까지 베뢰아와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으로 있었습니다.
분봉왕이란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
나라의 1/4을 다스리는 식민 치하의 왕을 의미합니다.
- 헤롯의 동생 빌립(1절) :
빌립은 헤롯의 이복동생으로 주후 34년까지
팔레스틴 동북부 지방에 있는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역의 분봉왕으로 있었습니다.
- 안나스와 가야바(2절) :
안나스는 주후 6년~15년까지 대제사장으로 있었고,
그의 사위 가야바는 18년~36까지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본래 대제사장은 한 번 임명을 받으면 죽을 때까지 하는 종신직입니다만,
로마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제사장을 자주 교체하였습니다.
안나스는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자기의 아들들과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되도록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었던 자가 현직에서 물러나도 계속해서 대제사장이라 불리웠으므로,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이 활동을 시작할 무렵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세사장으로 있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한지라(2절) :
빈 들(광야)에서 홀로 지내던 세례요한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졌습니다.
- 회개의 세례(3절) : 메타노이아
‘회개’에 해당하는 ‘메타노이아’는 ‘마음을 바꾸다, 다시 돌아가다’는 뜻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단순한 죄책감이나 뉘우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완전한 변화, 마음의 방향을 새로 잡는 것,
자신의 생의 목적이나 목표를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는 장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영적인 상태를 만드는 것으로,
주의 오심을 갈망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2. 세례요한이 활동을 시작함(7~9절)
7)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장차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느니라.
9)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 독사의 자식들아(7절) : 독 있는 뱀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탄에 속한 사람들아
- 장차 다가올 진노(7절) :
임박한 심판, 세례 요한은 지금의 상황이
심판의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지기 직전의 상태라고 경고합니다.
* 묵상 point
1. 세례요한이 활동을 시작한 때(3:1~2)
빈 들(광야)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요한이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의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면서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자들을 가장 강력한 권세를 잡은 자로부터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1) 디베료 가이사
제일 위에 로마 황제 디베료(디베리우스)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가히 세계 최고의 권력자라 할 수 있는 자입니다.
2) 본디오 빌라도 유대 총독
유대에서 로마 황제 다음으로 높은 권력자는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왕이 있다고 해도 총독의 관리하에 있으니
로마 총독이 로마 황제 다음의 권력자입니다.
3) 분봉왕 헤롯의 형제들
총독 다음으로 높은 권력 서열은 분봉왕입니다.
로마는 식민지 나라에 왕을 세웠는데, 유대 땅을 4조각 나누어 각각 통치하게 했습니다.
한 왕에게 통치를 맡기면 독립운동을 할까 싶은 마음에
나라를 쪼개어 서로 견제를 하게 한 것입니다.
헤롯 안티바는 베뢰아와 갈릴리의 분봉왕,
그의 동생 헤롯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왕,
헤롯 루사니아는 아빌레네의 분봉왕입니다.
4) 대제사장
마지막으로 언급된 권력자들은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입니다.
대제사장은 당시 권력 서열로 볼 때는 제일 아래에 속하지만,
이들 역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에 모두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눈이 이들을 향해 있고, 이들에 의해 세상이 움직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들의 뜻에 반대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무서운 때였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 있는 요한에게 임한지라(3:2)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이 사람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광야 빈 들에 있던 요한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리라는 말씀을 요한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므로
세상을 바꾸는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도 전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요한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 묵상 :
요즈음 많은 사람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대부분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도록 해줄 것을 간구합니다.
교회들도 교회의 모든 역량이 오직 부흥한 교회가 되기 위한 것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흥한 교회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를 찾지 않습니다.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도 찾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요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아무것도 없는 빈 들에 있는 자라도 상관없습니다.
능력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처지를 보고 자랑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채우려 하십시오.
2.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
1)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요한(3절)
세례요한은 요단강 주변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선포했습니다.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세례입니다.
회개하여 죄가 씻어지면 주님이 보입니다.
죄가 씻어지면 주님을 향한 갈망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이제 곧 활동을 시작하실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영적인 상태를 만들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해 사람들이 주의 오심을 갈망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요한은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2) 주의 길을 예비하라(4~6절)
세례 요한은 이사야 40:3~5의 말씀을 인용하며 회개를 하라고 선포합니다.
우선 세례 요한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빈 들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골짜기가 메워진다는 것은 절망에 빠진 자들이
주님의 위로를 받고 그 마음에 평안을 회복하라는 것이고,
산이 낮아진다는 것은 교만에 빠진 자들에게
그 못된 마음을 버리고 겸손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담긴 모든 악을 버리고
이제 곧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3) 마지막 때 주의 길을 예비할 자 : 그리스도인
주께서 처음 오셨을 때 주의 오심을 예비한 자는 세례요한이었다면,
주께서 두 번째로 다시 오실 때에 주의 길을 예비할 자들은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때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주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향하여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주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 : 이 일을 위해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는 자들이 됩시다.
이 일을 위하여 세례요한은 빈 들에서 조용히 지내며 그날의 사명을 준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지막 때의 사명을 위하여 각자 경건하게 지내며
우리 내부에 주님의 성령을 모시는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1) 독사의 자식들아(7절)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기 위해 오는 무리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하고
무섭게 공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독사의 자식들이란 ‘독사의 독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사탄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동안 죄의 늪 속에서 살면서 사탄의 종으로 살아와 놓고
이제 와서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세례를 받겠다고 왔느냐고 외치는 것입니다.
2)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9절)
그러나 세례 요한이 말은 그렇게 무섭게 하면서도
오는 무리를 향하여 세례를 베푸는 일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것이면서 이렇게 무서운 공격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의 세 복음서에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의 상황이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본래 주님의 계획은 그때 다시 오시는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1세기 말의 도미티안 황제 때로 미루어지고,
그 후 오늘날까지 계속 미루어졌습니다(참조, 누가복음 13:6~9).
● 묵상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주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 청하여
마지막 심판의 때를 매년 미루어 오신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만,
그때가 한정 없이 미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긴장된 시간을 살고 있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곧 다가올 임박한 심판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4.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피하는 길(8절)
세례 요한은 그의 앞에 모인 무리들에게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피하는 두 길을 제시합니다.
1)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의 감정이 아닙니다.
➀ 죄책감이나 슬픈 감정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죄책감이나 슬퍼하며 뉘우치는 감정은 회개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죄책감이나 슬픈 감정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죄책감과 슬픈 감정을 주께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삶이 변화되며,
삶의 목표나 방향이 완전히 변하는 등의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➁ 그러나 많은 경우 회개를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의 감정 정도로만 몰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죄에 대한 슬픈 감정 정도로 여깁니다.
단조 풍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진정시키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감정의 격동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그 슬픔의 감정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적당히 경험하고 난 후에는
그 감정에서 나와서 다시 이전의 삶을 살아갑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렇게 삶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이런 삶은 회개가 아닙니다.
➂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주의하십시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센티멘탈한 감정을 회개로 생각합니다.
음악과 분위기로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한껏 눈물을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이런 것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것은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불과합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➀ 회개는 자기의 죄에 대한 큰 슬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어찌하여 이전 죄를 범하는 자가 되었는지
애통해하면서 뼈가 녹아내리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겪고,
그 허물과 죄의 삶에서 빠져 나오려는 간절함을 주께 고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주의 능력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구하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➁ 그러면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이 생깁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거룩한 열망을 넣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을 품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감정만 적당히 우울한 감정 품게 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품게 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야만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3) 잘못된 구원의 확신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주를 믿는 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믿는 자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늘 걱정과 불안을 갖게 하여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는 것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도전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참고 : 에베소서 1:15~23)
바울 역시 주께서 주신 새로운 피조물이 무엇인지,
주께서 주신 그 영광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견디기 힘든 고난을 계속 받음에도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➁ 그러나 잘못된 구원의 확신은 우리를 더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의의 생명을 넣어 주신 상황에서 생긴 확신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구원의 확신이 그에게 능력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그가 주께로부터 죄의 용서함을 받지도 않았고
주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하지도 않았음에도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받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앞서 말한 참된 회개를 통하여 나의 삶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이지,
적당히 종교의 감정놀음이나 하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➂ 세례요한은 그 앞에 온 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호통을 쳤습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시지도 않았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지도 않으셨는데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하나님의 백성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동안
참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교회의 직분자이니,
혹은 누구의 자녀이거나 어떤 가문에 속해 있으니 하나님의 백성이겠지 생각하는 동안
참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독사의 자식이요 사탄의 종의 상태로 있는데,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기며
자신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라고 자부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질병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일입니다.
● 묵상 :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혹은 육신의 생명이 끝나기 전까지 반드시 참된 회개를 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구원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내가 땅의 사람으로 있는 동안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영적 실체를 바로 알게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적당한 종교적 감정놀음이 아니라,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주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 기도제목
1. 주께서 주신 말씀에
기뻐하며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우리의 심령 속에 주님의 성령을 모신
신령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3. 거짓된 감정놀음에 속지 말게 하시고
참된 회개를 통해 주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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