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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시간의 길 위에 세운 이정표
부제: 감사절에 담아야 할 기독교 정신
시편 104편 ~ 107편
설교 목적: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기념비를 세운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함이다. 인간이 삶을 즉물적이고 찰나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늘 자신의 뿌리와 근본에 대하여 질문한다. 인간은 과거의 전통이 들려주는 메시지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그 전통의 빛 가운데서 미래를 바라보고 유언을 남긴다.
절기는 과거를 기억하는 기념비이며 오늘을 비추어보는 거울이고 동시에 미래를 소망하게 하는 희망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나라마다 민족마다 가문마다 소중하게 기억하고 지키는 날들이 있다. 그것이 절기다.
추수감사절은 만국이 공통적으로 지키는 절기이지만,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설교에서 나는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시편 104편부터 107편까지의 감사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추수감사절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시간의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임을 깨닫고 그 이정표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2. 가장 큰 악덕, 배은망덕
3. 인생의 길을 잃을 때
4. 만국의 공통적인 가을축제
5. 시간의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
6. 시편 기자의 감사 찬양
7. 정신을 반영하는 문화와 전통
8. 절기에 기념되어야 할 기독교의 정신
1.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지금부터 700여년 전인 1305년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훌륭한 스승들의 말씀을 기록한 글들이 많이 전해오는데 그 중에서 좋은 글을 선별하여 엮은 것이 명심보감입니다. 명심(明心)은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寶鑑)은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명심보감을 읽고 암송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지혜의 빛으로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성현의 말씀에 자신의 언행을 비추어 바로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명심보감은 고려와 조선, 그리고 베트남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국가들에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실로 동양의 성경이라 하겠습니다.
그 명심보감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父兮生我(부혜생아) 母兮鞠我(모혜국아)
- 아버님은 저를 낳으시고, 어머님은 저를 기르셨습니다
哀哀父母(애애부모) 生我劬勞(생아구로)
- 애달픕니다 부모님, 저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欲報深恩(욕보심은) 昊天罔極(호천망극)
-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는데 높은 하늘처럼 끝이 없습니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실린 이 글은 본래 중국의 고전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구(詩句)입니다. 효도에 대한 이 가르침은 훗날 조선의 많은 학자들의 글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인데 그는 1580년 강원도 관찰사로 일하면서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위와 유사한 시조를 지었습니다.
효도에 대하여 널리 알려진 이 글은 효도가 부모님의 고생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일깨워줍니다. 낳으시고 기르시는 수고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며 출발점이라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인간됨의 가장 근본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가르치고 늘 명심(銘心)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과 부모의 은덕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우리 조상들은 ‘근본이 없는 사람’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때 하는 말은 이것이지요: ‘너는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아났냐?’ 이것은 인륜을 저버린 사람을 매우 심하게 책망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2. 가장 큰 악덕, 배은망덕
동양에서 가장 큰 악덕 중 하나는 배은망덕(背恩忘德)입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남이 베풀어준 덕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므로 짐승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갚은 까마귀 이야기 같은 민담이 우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꼭 갚아야 한다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줍니다.
성경을 보면 예언자 이사야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면 안된다는 경고를 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사야 1:2~3
부모나 조상의 은덕을 잊는 것이나 하나님의 은총을 잊는 것은 다 같이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왜 은총을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3. 인생의 길을 잃을 때
은혜는 사람들이 과거에 우리에게 베풀어 준 선한 일입니다. 그 은혜를 입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과거에 우리가 꿈꾸고 소원하던 일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느낀 것입니다. 그런 꿈과 소원 또는 사명감은 우리가 자라난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받은 것들입니다. 오늘의 나는 과거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나의 꿈과 소원은 좌절되고 내가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임무를 다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매우 큰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일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과거와 단절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과거에 가졌던 꿈과 희망, 그리고 사명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은 것이겠지요. 인생의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잃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줄 사람입니다. 우리가 과연 맨 처음에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생각나게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가족이며 그들은 우리의 고향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명절이면 고향을 찾습니다. 명절날 우리는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고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뛰어놀았던 들판과 학교를 봅니다. 그리고 그때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합니다. 이처럼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다시금 든든히 땅에 박습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4. 만국의 공통적인 가을축제
우리가 가족과 고향을 통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어린 시절에 그렇게 바라던 소원이나 꿈 또는 필생의 사명을 재확인하면서 다시금 용기를 내듯이, 한 나라와 민족에게도 그 공동체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계기는 그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하게 해주고 그들 안에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 시간이 되며 미래를 향해 힘을 모을 수 있게 합니다.
어느 시대나 국가가 강성해지거나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그 구성원들의 단합과 결속력이 중요합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집단적인 노동이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모내기를 할 때는 동네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해야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품앗이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다에서 양식업을 하는 일에도 온 동네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협업과 협력은 공동체를 존속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로부터 가을걷이를 마친 후에 동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것은 만국공통의 현상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가을축제는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늘에 감사제를 지내는 것이기도 하며, 그 동안 협력하고 힘을 모았기에 이룰 수 있었던 공동체 전체에 대한 격려와 축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축제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의가 있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공을 차거나 씨름으로 힘을 겨루면서 마을의 단합을 다시 한번 연습하고, 여자들은 노래나 춤을 추면서 공동체의식과 단결심을 갈고 닦습니다. 그렇게 신명나는 활동이 가을축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뛰고 소리치며 노래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공동체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가 되고 서로 굳게 결속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위하여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아이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집단적인 활동을 포함하는 가을축제가 가지고 있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요새 우리는 텔레비전으로 온 세계 사람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축구나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을 봅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프로축구를 보면,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이 자기 팀의 승리를 위해 끊임없는 외치고 열광적인 응원을 합니다. 경기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술집이나 카페 등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곳에서 그렇게 뜨거운 응원을 펼친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일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뛰고 달리고 노래하면서 결속력을 다지던 조상들의 전통이 발현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느낌과 확신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시간의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
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길에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그 표지판 중에는 관광명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있고,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에서 우리는 서울까지 몇 킬로미터 남았는지를 표시하는 표지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으로서 여행자들에게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을 이정표(里程標)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본래 이정표는 길을 닦기로 유명한 로마인들이 1,000걸음마다 돌을 세워 표시를 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마일스톤(milestone)이라고 부릅니다.
이정표는 지나온 길이 얼마인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앞으로 남은 길이 얼마인지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정표라는 말은 더 넓은 의미로 확대되어 지나온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달에 가겠다는 임무는 인류에게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 ‘최초의 달 탐사 임무는 인류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짐승들은 본능으로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정표를 보면서 길을 찾습니다. 그 이정표는 지나온 길을 기억하며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게 하는 표시입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과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웁니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민족과 백성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의 정신을 기리자는 의미와 함께 오늘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마치 명심보감이 글로써 조상들의 지혜와 교훈을 거울삼는 것처럼 기념비는 비석이나 동상으로서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거울이자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위인들의 동상이나 기념비가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라면 시간의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제일입니다. 축제일이 되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념합니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의 이정표는 설날입니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하늘에 감사하며 새로운 결속을 다지는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시간의 이정표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 민족이 어두움에서 벗어나 다시 광명을 찾은 것을 기념하는 시간의 이정표는 광복절입니다. 그 외에 많은 경축일과 축제일이 우리들에게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표지판이 됩니다(참고. 2021년도 추수감사절 설교: 추수감사절, 기념비와 표지판, 2019년도 추수감사절 설교: 시간의 길에 세운 기념비와 표지판).
시간의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인 축제일이나 기념일은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나게 합니다.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난 일부터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일까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을 기념하는 표시입니다. 그 절기를 지키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리인데, 그것은 ‘너는 어떤 사람이다. 너는 이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마음의 소리입니다.
광복절이나 삼일절 또는 현충일이 되면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자고 적극 홍보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국가를 일으켜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어떤 가정은 가족의 생일을 맞아 한자리에 모여 파티를 열고 선물을 나누며 식사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가족 구성원의 결속력은 더욱 견고하게 다져집니다. 그것은 귀찮은 일처럼 보이고 때로는 비용지불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얻습니다. 그것은 가족의 연대감입니다. 그 연대감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공급하며 어려움을 더 잘 견디고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든지 기념비가 있으며 기념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를 존속하게 하는 필수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 나라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기념비와 기념일이 생길 것입니다. 북한의 기념비는 김일성 부자의 동상입니다. 그 앞에서 북한 주민들은 하나로 뭉칩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에 하나로 뭉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추수감사절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하게 된 개천절이며 동시에 추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은 두개의 절기가 겹친 것과 같으므로 지금까지도 성대하게 지켜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인간이 국가나 가족 등의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한 기념비와 기념일은 세워지고 지켜질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안식일과 유월절(1월 14일)을 제정하시고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3월 6일)과 추수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또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절(7월 1일)과 대속죄일(7월 10일)을 정하시고 그것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림절을 지켰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멸망의 위기에서 건지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고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감사절에 무엇을 기념하고 기억했을까요?
6. 시편 기자의 감사 찬양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감사의 노래를 불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 104편부터 107편은 감사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절기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릴 때 그들이 기억하고 계속 기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옛 언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오묘하게 세상을 지으시고 그 섭리와 지혜에 따라 이 세상만물이 어떻게 운행되는지를 찬양했습니다. 그 찬양과 감사의 시에는 자연계의 질서와 동물들의 생태에 관한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시 104편).
마치 우리들이 봄에 온 천지를 채우는 꽃을 보면서 놀라는 것과 같으며, 한여름 높은 산에 올라 푸르고 푸른 삼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충만함과 같고, 울긋불긋 화려한 가을단풍을 보면서 감동하는 것, 그리고 조용한 겨울 아침에 천지를 하얗게 덮은 겨울눈의 풍경을 보고 흥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운행하시고 지으신 분, 그분이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노래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로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시고 성장시키셨는지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간 일과 거기서 번성한 일, 그리고 출애굽과 광야생활,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된 이 모든 과거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했습니다(시 105~106편).
하나님이 백성들이 드리는 감사 찬양은 자연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사이며, 자기 민족을 인도하시고 성장시키신 하나님의 개입과 행위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도 주리고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근심에 빠진 영혼을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며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악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찬양을 합니다(시 107편).
이 찬양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자신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념합니다. 나아가 지금 이 시간도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들과 개인들을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찬양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나아가 앞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실지를 소망하게 합니다. 그 소망은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갈 믿음과 희망, 그리고 올바른 지침과 확신을 줍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이나 공동체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세상 모든 나라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이며, 칭찬과 명성을 얻는 모델이 되고 수치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7. 정신을 반영하는 문화와 전통
주 중에 우리 교회 장로님이 안동 하회마을에 다녀오셨습니다. 그리고 멋진 단풍을 구경하신 소감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동 하회마을은 양반의 고장이라 그런지 단풍도 우아하게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양반의 고장에서 먹은 음식도 매우 훌륭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양반의 도시를 양반의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건물일까요? 그것은 양반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신과 철학이 아닐까요? 양반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당장 어떤 풍조가 밀려온다 해도 그것에 흔들리지 않으며 그 고장 고유의 가치와 정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하는 것이지요. 그런 기품(氣品)과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고장을 가리켜 우리는 양반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을 귀하게 만드는 정신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단군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단군은 기원 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으므로 올해는 단기 4355년입니다. 단군의 자손이 가지는 자부심은 오랜 역사입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의 조상이 더 먼저부터 있었는가 하는 사실이 인간을 존귀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입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를 왜곡한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더 존귀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도리어 그 민족의 천박함을 온 세상에 드러낼 뿐입니다. 일본이 한국과 동아시아에 행한 악행으로 점철된 과거사를 바르게 청산하지 않고 숨기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서 전 세계인들은 독일인들이 2차세계대전 동안에 히틀러의 나치(Nationalsozialist, Nazi)가 저지른 과오를 두고두고 반성하는 것을 정말 훌륭한 행동이라고 칭송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어떻게 존귀한 존재가 됩니까? 그것은 번쩍거리는 금으로 치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왜곡한 역사로 인간이 더 존귀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을 존귀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고귀한 정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존귀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회는 존귀한 덕과 정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기리는 사회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문화에는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없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통과 한국의 추석 전통은 다릅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둘 다 고유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화는 추하고 어떤 문화는 고상하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문화가 아름다운 시대가 있고 문화가 추한 시대가 있습니다. 어떤 문화가 아름답고 어떤 문화가 추합니까? 아름다운 정신을 기리고 기념하는 문화는 아름답고 욕심과 거짓에 물든 문화는 추합니다.
우리들은 고궁이나 유물 같은 것을 문화재로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하지만 그 오래된 건물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이상을 가지고 살았는지, 또는 그 유물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유물만 간직만 하고 있다면 그런 문화재는 오늘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념하는 절기와 예배의식도 그것에 담긴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지킨다면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껍데기만 남고 말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무엇을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까?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꿈과 희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화와 신앙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점검하고 바르게 세울 때 우리는 절기마다 그 정신을 담아낼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8. 절기에 기념되어야 할 기독교의 정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목적을 배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과 소임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시려고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배웁니다. 그것은 창조와 타락, 이스라엘과 예수님, 그리고 교회라는 5막의 드라마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참고. 성경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까?, 설교: 하나님의 경륜).
이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완성될지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소망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할 모델이 무엇이며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모범으로 믿고 배우고 따릅니다(참고, 설교: 최고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새겨진 하나님의 꿈이 이 땅에 실현되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예언자들이 꿈꾸던 것처럼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제사보다는 자비와 긍휼을 원하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따뜻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참고, 설교: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 민족들과 나라들이 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경배하며 찬양할 세상이 올 것을 소망합니다. 그것은 현재 나라들이 군비경쟁을 하며 자국우선주의에 치우친 세상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 앞에서 상생하고 번영하는 세상을 꿈꿉니다(참고, 설교: 구도와 상생-산상수훈).
우리는 적은 수의 사람들로 된 교회일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들을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이사야 6:13). (참고, 새소망교회 성경암송 4구절)
이 외에도 성경에는 우리와 세상을 회복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온갖 지혜가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배우고 그 핵심 가치를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는 사람들은 절기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소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념이 우리에게 올바른 문화를 만들게 하고 그 문화가 우리의 삶에 깊이 배어들 때 올곧은 후손들이 일어나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며 회복하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결실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념하고 앞으로 이루실 일들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됩니다. 이천오백년 전 유대인들은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구약 백성들의 찬양에 더하여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위대한 일들을 기념하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선포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통하여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부름 받은 이유가 되고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 주일에 맞는 추수감사절을 정성껏 준비합시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고 가장 진실된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하여 뜨거운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그렇게 하노라면 우리 안에 있는 진실한 신앙은 진주처럼 영롱한 보석으로 빛날 것이며, 우리들은 이 빛나는 보석을 담기에 적합한 문화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그 진실한 신앙을 가슴에 품고 대서양을 건넜을 때 그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마침내 미합중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로서 우리의 본분과 약속을 굳게 붙들고 전진한다면 하나님은 현재의 미합중국보다 더 낫고 더 온전한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한 주간 동안 추수감사절을 준비합시다. 그 동안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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