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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성소 5-2 떡 상과 진설병 (십일조에 무지하여 망하는~)
5.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둘을 굽되 매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6.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레24:5-9)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출25:30)
오늘 떡 상에 대한 두 번째 말씀으로 십일조에 관한 것이기에, 십일조에 대한 큰 줄거리만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뜬금없는 뭔 십일조 이야기냐?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신 떡은 자기의 생명이지만,
우리의 떡은 내 수고한 것에서 드리는 십일조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되는 자기의 피와 살을 친히
먹여주시는 예수님께, 나도 내 수고한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드려서, 예수님은 나로 더불어 먹
고, 나는 예수님으로 더불어 먹는 관계가 돼야 하기에, 그 떡에 대한 뜻을 말씀드린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오실 예수님과의 화목을 위한 제사 중에 하나가 떡을 여호와 앞에 차려놓았다가 그 떡을
여호와 앞에서 먹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이 떡은 아무 데나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대로 놓아야 합니다.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
고, 그 조각목이 보이지 않게 금으로 다 싸야 하고, 또 제조법대로 만들어진 관유로 그 상에 발라
거룩게 한 상이어야 했습니다. 금으로 싸고 관유로 바른 상, 하나님의 법대로 된 이 상만이 거룩
하게 된 순결한 상으로 생명 얻는 떡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의 떡 상으로, 우리
믿음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되어야 함을 확실히 가르쳐 보이셨습니다. 천하 인간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은, 삼위의 하나님과 관계(등대)를 이루고, 생명의 떡을
받은 이 순결한 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수님 자신을 먹여주시는 자가 누구냐? 거룩하게 된 자로, 예수님을 성영님으
로 알아보고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들인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 중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죄인으로, 다 사망에 처하였다'고 하신
그 선언 앞에 자신이 그 죄인임을 진심으로 인정하여 고백하고, 예수님의 피 흘리신 은혜를 받아
들여 죄 사함을 얻고, 자기의 하나님이요,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고 육체의 죄와 영적인 온갖 죄들
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는 것이, 곧 순결(거룩)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버리고, 협착하고 좁은 길을 갈 것으로 뜻을 확고히 정하고, 성영님을 따르는
성영님이 사람이 순결한 떡 상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기 때문이요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르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그를 영접하여 자기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그 구원
의 피를 친히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구원입니다.
요6:53-57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
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
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로 떡 상과 떡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온 성결한 자가 참된 양식인 예수님의
살과 참된 음료인 예수님의 피를 먹고 마실 수 있음을 오늘 떡 상과 떡을 연결하여 말씀하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시려고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거쳐 성소로 들어와 성영님으로 거듭나면,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로 드려진 자기의 피와 살을 먹여
주시고, 영접하여 주십니다. 성영님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여주신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 말을
자꾸만 하는 것은, 제 맘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금 등대에서 성영님이 오시
고, 떡 상에서 성영님으로 떡을 먹고, 분향단의 뜻을 가진 내 영혼에 이루어진 능력, 금 등대와 떡
상과 분향단의 믿음이 되었으면, 그는 이제 소속이 어디겠습니까? 아버지 나라 천국, 지성소에 들
어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그의 안으로 들어왔고 온전히 소유되었습니다. 또한 예수
님(삼위 하나님)을 말하는 금 등대와 떡 상과 금향로의 믿음이 되었으면, 그 믿음이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려주는 영이신 성영님에 의해 살았으므로,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인간적인 사랑으로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은 변했습니까? 안 변했습니까?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오순절 날 하늘로부터 오신 보혜사 성영님을 그들 영혼에 충만히
받은 믿음으로는 예수님의 대한 믿음이 변했습니까? 변하지 않았어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성영
님으로 충만케 되니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하늘의 지성소가 그들 안으로 들
어와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6) 하신
말씀이 그것을 말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
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기서 '죽어도 살겠고'는 구약 백성의
믿음입니다. 구약은 피 흘리러 오실 예수님과 화목 하는 뜻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기
다리며 그 믿음을 가지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강림의 날 그들도 예수님 부활의 생명으로
산다는 것이고
그다음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보혜사 성영님으로 거듭난 신약 성도입니다. 등대와 떡 상과 분향
단과 연합한 무릇 살아서 믿는 자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음이 없습니다. 육체에서 떠나면 아버지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오셔서 피와 살을 먹여주시고,
영이요 생명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여주시니, 그 떡을 먹고 배부른 나도, 예수님께 나를 드린다는
뜻의 내 떡이 있습니다. 산 제물(빌4:18 빌2:17), 예수님 생명을 얻은 자의 믿음의 제물, 예수님
과 화목 하는 생명 얻은 나의 떡입니다. 예수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예수님으로 더불어 먹
는 관계로서의 기본이 되는, 생명의 약속이 붙은 제물, 생명 얻은 믿음의 제물입니다. 그래서 그
제물을 알아보려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아브라함에게 가 봐야 합니다.
마8:11에 예수님께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
으려니와 하셨습니다. 마22:32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
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
시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산 믿음,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도무지 말 같지 않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있을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 같아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하신
말씀에도 가야 할 길을 모르지만, 그 말씀을 따라 떠났습니다. 무자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창22:17)하신 말씀도 믿었습니다. 자손을
언약하신 후 이십오 년 만의 주신 아들을 십이 세가 되자 번제(태워드리는)로 드리라는 말씀에
다시 살리실 줄로 믿고 드렸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하나님의 마음과 같았다는 뜻), 믿음이 산 자요, 모든 믿
는 자의 조상이요, 하나님은 믿음이 산 자의 하나님이요, 믿음이 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아서 동서로
부터 오는 많은 산 자들을 맞아들인다 하셨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아버지라 불렸
습니다. 창17:5에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
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은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한 그 의의 실체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롬4:11에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롬4:16-18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
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고 바랄 수 없는 중
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바라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그 믿음이 있다는
것을 행함으로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롬4:5).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진 자라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믿음이 뭐냐? 아브라함 같이 행함으로 나타내는 것, 그 믿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 후손이 아브라함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렸다고 하면, 그도 복을 누리는 것입
니다. 그러면 믿음의 조상,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그 의, 바로 예수님의
의를 가진 아브라함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오늘 이 떡 상과 떡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게 되고 바른 믿음이 되는 것이기에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창14:17-20을 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내용을
이해하려면 앞부분을 봐야 하는데, 그것은 제가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사는
그 주변 가나안 지역에 동맹을 맺은 다섯 나라의 왕들이 메소포타미아 쪽의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네 나라의 왕들에게 십수 년 조공을 바치다가 그것을 거부하고 바치지 않자 이 네 동맹국의 왕들
이 조공을 거절한 다섯 왕에게 전쟁을 일으켜 재물도 양식도 사람도 다 약탈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과 재물까지 다 노략질해갔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전해 듣고 즉시 자기와 동맹한 사람들과 또 자기에게 딸린 유목 생활에 연습(길들여진)
된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적군을 쳐서 파하고 16에 그랬지요?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 그렇게 빼앗긴 모든 것을 찾아서 돌아오는데, 18
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
더라 했습니다. '지극히'라고 한 것은 '세상에는 없는 하나님의 일''세상과 구별된 일' 또는 '하나
님 자신' 이런 의미를 가졌습니다. 대체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또는 하나님으
로 말미암았을 때 쓰인 단어입니다.
그다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먹여주
고, 아브라함을 축복했는데, 천지의 주제시요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시고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는
이시오'이지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라고 아브라함을 축복했습
니다. 여기 '복을 주옵소서'를 또 세상에서 잘살게 해달라고 하는 것인 줄로 알면 안됩니다. 믿음
의 조상이 될 영적 복을 말하는 거예요. 세상에서 부자 되게 해서 잘 먹고 잘살게 해주려고, 아브
라함을 불러내신 것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내실 때, 이미 복을 명하셨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축복이 하나님의 언약하신 일과 관계한 것임을 압니다. 그러니 우리도 다 알아
듣는 복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했어요.
이것은 아브라함의 승리는 예수님의 승리임에 대한 계시입니다. 멜기세덱이 축복하자 아브라함이
곧 뭐했습니까?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했습니다. 전쟁의 노획물은 얻은
자의 것입니다. 빼앗긴 것을 다시 찾은 것은 아브라함 자신의 것으로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
나 아브라함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것, 바로 하늘도 땅도 물질도 자신도
다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하나님께서 대적을 쳐서 파하게 하시고, 자기 목숨을 대적의 손에서 건
져주시고 잃었던 것을 찾게 하셨으니, 그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표시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영접하여 축복한 그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이 되시는 멜기세덱(예수님)에게 얻은 것에서 좋은 것으
로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멜기세덱이 예수님이신지를 어떻게 아느냐?
히7장입니다. 7:1에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했습니다. 그다음 7:2에 아브라함이 일체 십
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했습니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을 번역하니 첫째 의의 왕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살렘 왕 곧
평강의 왕이라는 거예요. 살렘은 '평강'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의가 되시고,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의 평강이 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7:3에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이 인간 혈통에도 없고 그 족보가 없다는 겁니다.
보니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더라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 혈통에도 없고 사람은 눈앞에 있는
데, 태어난 날도 없고 그 생명의 끝도 없는 분,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같다. 그러면 하나님
아들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하셨으니 그러면 하나님 앞에 서 있
는 영원한 제사장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약에서는 감취였던 분 필요할 때는 사람으로 나타나실 수도 있었던 예수님이 멜
기세덱으로 아브라함 앞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를 가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진짜
의가 되시는 예수님이 멜기세덱입니다.
그다음 7:4에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했는데 그러면 멜기세덱이 어떻게 높은가 쭉
생각해보니, 예수님이잖습니까?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하나님의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하셨으니 그러면 십분의 일을 누구에게 준 것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도적질 당하고 탈취당한 자기의 사랑하는 자,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주변 국가들의 빼앗겼던 재
물까지 찾아온 것은, 예수님께서 원수 마귀에게 도적질 당한 자기의 것을 그 손에서 찾으신다는
예표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먹여주므로, 예수님의 피와 살
을 먹여주신 뜻이 되었고, 아브라함도 멜기세덱이 복을 빈 그 복,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그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그 복이,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는
표로,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돌린 것입니다. 십분의 일을 돌린 이것은 하나님께서
물질이 필요해서도 물질을 원해서도가 아니라, 자신을 대적의 손에서 건지셨으니 하나님의 것으로
자신을 온전히 돌린다는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맞아 영접하여, 자기의 피와 살(생명의 떡)을 의미하는 떡과 포도주를 그
에게 준 것은, 네게 내 생명을 내주겠다는 뜻이 되었고, 아브라함도 자기의 얻은 것(자기 목숨의
떡)에서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준 것은,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신 자기와 자기에게 달린 자들의
목숨은 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의 것으로 돌린다는 뜻이 되었고, 이로써 멜기세덱(예수님)
과 아브라함의 화목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의 일의 뜻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의의 뜻, 생명의 언약을 가진 믿음의 표현, 예수님은 피와 살(생명)을 주시고, 아브라함은 자신을
하나님 것으로 드린 뜻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말은 내가 돈 벌었는데 십분의 일은 하나님 것이니,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니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돈 원하지 않
아요.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십일조의 그 의미를 잘 깨닫고, 믿음이 돼야 함을
말하는 것예요. 알아듣습니까?
아브라함이 매월 또는 소득이 있을 때마다 십일조를 냈냐? 안 냈냐? 아브라함은 한 번밖에 내지
않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왜 소득의 십일조를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나 따져보라는 이런 유치한
것이 아니고, 멜기세덱은 '내 생명을 너에게 내줄 것이다'이고, 아브라함은 '대적(사단)의 손에서
건지신 내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는 뜻에서 좋은 것, 십분 일을 내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래서 십분 일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께 돌릴 것으로 구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략
(도적질해간 것을 도로 찾았다는 말)물중 좋은 것으로 한 '좋은'의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맺은 믿음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는다는 사람들아! 믿음의 조상에게서 십분의 일은 생명의 약속이 붙은 산 제물이
였다는 것을 좀 보라"는 거예요. 좀 봐! 율법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시고, 받으셔야 한다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는 것을 올려드린 믿음이 산 제물, 생명이 붙은 제물이라는 것을 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소의 이 떡 상의 떡이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생명의 약속이 붙은 제물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니, 예수님이 자기의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을 먹여주신
겁니다. 나를 대적의 손에서 구하여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상하시고, 피를 다 쏟아
생명을 내놓으신 자기를 먹여주신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근거가 되는, 생명의 떡
(피와 살)을 먹여주신 겁니다. 원수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짐 받아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된, 그
떡을 받은 나도, 예수님의 생명 얻은 삶에서, 수고하여 얻은 내 떡을 드리는 것이 바로 십의 일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는 것, 생명의 떡을 받아 살게 된 것에서 나는 감사
의 표현, 예수님과 화목 된 연합에서 나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잔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몸 상하신 것을 기념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것이, 예수님이 자신을 먹여주시는
것이 됩니다. 이 믿음으로 떡과 잔에 참여하였으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은 내가 믿음을 나
타내는 것, 예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의 증표, 네가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에게 돌리라 하신
그 증표, 십의 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단에서부터 물두멍을 거치고 예수님 안에 들어온 거룩한 삶의 뜻을 가진 자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흘려주신 피와 몸 상하신 떡을 받아먹으며, 화해된 기쁨을 누리고, 이 사실을 사람들에
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떡 상과 떡의 뜻을, 지금 들은 것까지는 여러분이 다 아셨습니까? 그
러면 이 믿음으로 십의 일을 돌린 것이 아니면, 하나님과 상관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물
론 이 믿음을 깨달을 때까지 말씀을 순종한 차원에서 행한 것이면 받으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아니면 구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삶을 확실히 책임지셨습니까? 안 지셨습니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그런
데 사람 중에 십의 일에 대한 이 지식의 믿음이 얼마나 있을지 참으로 의문입니다.(성영님께서 지
식 없는 순종은 있으나, 참지식으로 가진, 하나님의 뜻으로 된 믿음은 없다 그러므로 그 자신과
자손이 저주에 붙잡혀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그다음 이삭은 십분 일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냐면 열두 살 어린 때, 자신을 번제로 온전히 드
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아브라함에게 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릴
제단으로 나아갈 때 이삭이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자 아브라함이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나아가 이삭을 결박하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제물이 이삭 자신임을 알고 온전히 자기를 제물로
드렸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제물로 드렸으므로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언약으로
주신 아들, 예수님과 같은 아들이므로 십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해됐습니까?
그다음 이삭의 아들 야곱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다
도중에 해가 져서 길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아브라
함과 이삭에게 하신 언약을 야곱에게도 언약하시고, 우리 창28:13 하반부터 15까지 보겠습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20-22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꿈에 말씀하신 분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면, 나를 지키셔서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어 죽지 않게 하시고, 에서의 분노를 피해 도망 온 내게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평안히 다시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니, 그러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곳이 하나님의 전(벧엘)이 될 것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내가 알 수 있으니,
나의 생명을 지키신 하나님께 반드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겠습니다'하는 것입
니다. 그런데 이 28장 이후의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야곱이 서원한 이것을 하나님께서 속히 이행
하라 하셨음에도(창31:13) 지체하였으므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
했습니다(창34장).
그다음 야곱이 가나안땅 아비에게로 돌아올 때 얍복강가에서 이름을 다시는 야곱(자기 성품의 이
름)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하나님의 영적 복을 받은 자)이라 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로
불린 이름은 야곱의 열두 아들의,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민족의 이름이 되었고, 야곱의 십일조 서
원도 그대로 이스라엘의 법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서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소득에
서 십분 일은 기업이 없는 레위인에게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규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상16:16,17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독생자를 보내시는)은 이삭에게 와서 맹세가
되고, 야곱에게 와서는 야곱과 세우신 율례 즉 법으로 주신 것이라 하셨고, 그것은 이스라엘에 영원
한 언약이라'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은, 십의 일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합니다.
멜기세덱이 구원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아브라함에게 주었고, 그 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의
얻은 것에서 십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어, 예수님과 사람과 맺은 언약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
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표시로 무엇이 있다고요? 십의 일이다는
말이지요. 알아듣습니까? 십의 일을 하는 것으로 구원받는다는 말 아니니 새겨듣기 바랍니다.
그러면 십의 일이 율법입니까? 믿음입니까? 이것은 율법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법입니다. 믿
음의 법! 그러면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이야기니까 오늘날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만일
에 상관없다고 한다면 그 이스라엘을 통해 오신 예수님도 상관없습니다. 십의 일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상관없다면, 그것은 예수님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적 이름입니다. 영적으로
'도무지 내가 너를 알지 못하니'가 됩니다.
그다음 말3:7을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다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하시니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
님께 돌아가는 겁니까? 물었습니다. 8, 9에서 답하시길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
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말라기에서는 십일조가 누구의 것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십일조'하면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나 안 부어주나 보라는 데만 포인
트를 둡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에 대한 정의를 물질의 복 받는 것으로 내려놓았다는 말입니다. 그
래서 물질의 복 받기 위해 바치는 것이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믿음에서 난 것 아닙니다. 혹시
생활(물질)의 구원은 있었을지는 몰라도, 영적 사망에서는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
라함과 맺은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믿음이 아니고,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십일조 하면 복 준다는 샤머니즘적입니다.
말3:7에서 먼저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다 했습니다.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
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좋을대로
자기 길로 나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라 하시니 도대체 어떻게 돌아오는 것이냐? 지금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데, 돌아오라 하시니 못 알아듣는 겁니다. 실지로 오늘날도 똑
같다는 말입니다. 정말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자기 길에서 행하는 것이어서 못 알아듣습니
다. 내가 열심히 교회 생활 잘하고, 새벽 기도도 잘하고, 주님 잘 믿고 있는데 뭔 말이냐? 하는 겁
니다. 그러다 말문이 막히면 '십일조는 끝났다,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지킨 것이니 십자가에서 폐지
됐다'하고 나옵니다.
8에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 하셨으니 그러면 도적은 누구입니까? 사단입니다. 도적질한 것이
바로 십일조와 헌물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9에서 너희 온 나라가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사단의 저주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도적질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속에 본질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백성)이 맺은 생명의 계약의 뜻을 백성에게서
도적질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맺은 생명의 언약이 그들 속에 없다, 하나님의 언약이
붙은 생명의 제물, 자기 생명도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표로 드리는 그 온전한 뜻
을 버렸으므로,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것이면 내게로 돌아오라. 그것은 10에서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다, 바로 온전
한 십일조로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이 맺은
생명을 내주실 뜻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뜻으로 돌이켜 예루살렘 성전과 백성 안에 그 생명의 뜻
(양식)이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얻게 하실 뜻으로 맺은 것을 깨달아 돌이켜
드리는 그 십일조가 하나님께 돌아온 표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생명을 내주신다는 증표로 떡과
포도주를 주시니, 또한 그 일이 내게,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표로 십의 일을 드려 맺은
그 생명의 언약을 가지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돌아온 표라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참으로 믿으면, 그 믿음의 십일조가 없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도적질은 자신을 사단에게 내주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십일조는 내 것이다'하셨으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은 그 물질이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요
믿는 것이 되어서, 사단과 함께 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마23:23에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
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
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십일조에 대한 거짓된 외식을 지적하
시며 하신 말씀이, 십일조를 하되 의와 인과 신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
함과 맺은, 생명(의)의 법을 알고 하라. 십일조에 대한 근본 뜻을 깨달아 알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인은 아브라함같이 사랑과 충성됨으로 존중하여서 하라. 십일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해서 감사로 하라는 것입니다. 신은 신앙 즉 믿음을 말하는데 너희가 하나님을 참으로 믿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약속의 복을 믿고 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책임지셨듯이 땅에서 사는
일생 마르지 않는 공급이 될 것을 믿는 것, 보상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라는 말입니다. 의를 말
씀하시고 인을 말씀하신 그대로 하되 너를 돌보시고 책임지신다는 그 믿음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으로 십일조의 근본 의미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억지로 또는 아까운
것을 마지못해, 또는 안 내면 무슨 일 생길까 봐 불안해서, 또 물질의 복 준다니까, 하는 이런 등
등이 지금 십일조에 대한 뜻에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의 떡 상의 떡은 이같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먹여주시는 것을 예표하고, 내 안에 오신 예수님께 내
떡을 드림으로써 화목이 되고 더불어 먹는 관계가 되는 것임을 말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 믿음이
행할 것이라고 하는 것 아셨습니까?
그다음 화목 제물은 생명의 속전입니다. 이 내용은 출30:11-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생명의
속전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몸소 값을 치러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딤전2:6에 그가 모든 사람
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 생활을 했습니
다. 그곳에서 구원하여 주신 은혜로 해방되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이십 세 이상
성인 남자는 최소한의 액수로 반 세겔을 내도록 하셨는데, 이것을 생명의 속전이라고 했어요. 이것
은 예수님이 모든 인류를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속전이 되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릴 때, 생명의 속전이 되신 예수님에 대한 그 감사의 헌금을 힘닿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화목 제물이요, 생명의 헌물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속전이 되셨지만, 예수님
께서 생명을 드려 나를 구원해주셨으니 나를 예수님께 속하게 하신 그 감사에 대한 믿음의 헌금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시고, 또 받으시니,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
으면 곧 하나님이 오신 것이고, 예수님께 하는 것은 곧 또 하나님께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과도 화
목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과 한번 맺은 언약 그 언약은 영 불변해서 맹세가 되고, 또
법이 되어서 마침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화목한 자에게 복
주신다는 그 약속 또한 영 불변하셔서, 지금도 지속하고 우리에게 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실 누구나 십일조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게 하는 것이냐? 마귀에게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지 다 내면서 살고 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이요 말씀대로 사는 것이 순종이요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영원한 복입니다. 하나님의 명이
시면 반드시 그 속에는 삶을 돌보시는 복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십일
조나 헌금을 교회에다 또는 목사에게 낸 것처럼 마음에 힘을 주거나, 교회의 주인노릇 하려 하거나
하는 모습들이 있다면, 저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제물입니다. 교회
에다 낸 것처럼, 목사에게 낸 것처럼 하여 교회 주인 행세하는 것 다 저주입니다.
혹 마음에 그런 생각이 있는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의 뜻을 받든지, 아니면 헌금 내는 것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십일조나 헌금은 절대로 목사에게 하지 마세요. 사람에게 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에다 내지 마세요. 하나님이 보시고 받으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오늘 말
씀의 뜻을 받으시고, 하나님께 하세요. 예수님의 교회는 헌금을 목사나 교회에 하고 있지 않으며,
자기 믿음으로 자기가 기도하고 무기명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으니 참고하기를 바랍니다.
과부 두 렙돈의 헌금을 예수님이 쫓아가서 생활비 전부인지 물어봐서 아신 것 아니라는 것 여러분
다 아시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아신단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돌아온 표로, 예수님
의 생명 안에서 드리는 헌금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저도 사람인지라 제가
알면 좋을 것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성영님으로 말미암은 떡 상의 믿음이 되어서 예수님과 화목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와도 화목이 되시는 믿음이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믿음이 되도록 가르쳐 이끄시는 성영님께 감사드리고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성소 5-2 떡 상과 진설병(십일조에 무지하여 망하는~).p181-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