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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그림은 다 그리셨어요?”
제일로 궁금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있어요. 좀 봐도 될까요?”
무릎에 앉았던 막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윗방으로 난 장지를 열었다. 나는 그제야 오늘 부인이 애들을 윗방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전등이 없는지, 있는데도 안 켰는지 윗방은 어둑한데 80호 정도의 캔버스가 벽에 기대어 놓여 있고 넓지 않은 방바닥은 온통 빈틈없이 어지러져 있었다. 테레빈유의 냄새가 확 끼쳤다.
[A][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枯木)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浮游)하고 있었다.
한발(旱魃)에 고사한 나무 - 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태양이 없는 한발 -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짙은 안개 속의 한발 … 무채색의 오톨도톨한 화면이 마치 짙은 안개 같았다.
왜 그런 잔인한 한발이 고사시킨 고목을 나는 그의 캔버스에서 보았을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꼬마는 잽싸게 장지문을 닫아 버렸다.
향긋한 생강차가 식어 가는데 나는 마실 구미를 잃었다.
(중략)
[B][ S 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裸木)을 보았다.
나무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 놓고 빨려들 듯이 곧장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나무와 여인’ 그 그림은 벌써 한 외국인의 소장으로 돼 있었다.
나는 S 회관을 나와 잠깐 망연했다. 오랜 여행 끝에 낯선 역에 내린 듯한 피곤인지 절망인지 모를 망연함, 그런 망연함에서 남편이 나를 구했다.
“어디서 차라도 한잔하고 쉬었다 갈까?”
“저기가 어때요?”
나는 턱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덕수궁을 가리켰다.
덕수궁 속에 은행의 낙엽은 한층 더 찬란했다.
우리는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황금빛 세례에 몸을 맡겼다.
아이들이 뛰고, 연인들이 거닐고, 퇴색한 잔디에 쏟아지는 가을의 양광은 차라리 봄보다 따습다.
“아이들을 데려올걸.”
남편이 다시 나를 상식적인 세계로 끌어들인다.
㉠빨간 풍선을 놓친 계집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빠져들 듯이 풍선이 멀어져 간다.
드디어 빨간 점을 놓치고만 나는 눈물이 솟도록 하늘의 푸르름이 눈부시다.
옆에 앉은 남편도 풍선을 쫓았던가 고개를 젖힌 채 눈이 함빡 하늘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뿐, 이미 그의 눈엔 10년 전의 앳된 갈망은 없다. 그뿐이랴. 여자를 소유하고 가정을 갖고 싶다는 세속적인 소망 외에는 한 번도 야망이나 고뇌가 깃들여 보지 않은 눈. 부수수한 머리가 늘어진 이마에 어느새 굵은 주름이 자리 잡기 시작한 중년의 그가 나는 또다시 낯설다.
저만치서 고등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공이 나비처럼 경쾌하게 날아와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젊은 연인들의 찰나적인 키스의 파열음처럼 감각적으로 들린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이마의 주름진 곳에 그런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가 아주 타인처럼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우수수 바람이 온다.
이미 낙엽을 끝낸 분수가의 어린나무들이 벌거숭이 몸을 애처롭게 떨며 서로의 가지를 비빈다.
그러나 그뿐, ㉡어린나무들은 서로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 바람이 간 후에도 마냥 떨고 있었다.
박완서, ‘나목’
* 한발: 심한 가뭄.
34. 윗글의 공간과 관련된 진술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윗방’에서 ‘화랑’으로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② ‘어두운 단칸방’은 ‘옥희도’의 불우한 처지를 상징한다.
③ ‘화랑’에서 나온 ‘나’는 알 수 없는 실망감을 느낀다.
④ ‘덕수궁’에서 ‘나’는 남편에게 낯선 느낌을 갖게 된다.
⑤ ‘덕수궁’은 ‘나’와 남편이 속한 일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35.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에 대한 비평문을 쓴다고 할 때, 제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1·4 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 취하지도 않고, 화필(畵筆)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한 가난한 화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었다.”라고 심정을 밝힌 바 있다.
① 짙은 안개 속의 한발로 봄의 향기와 녹음을 포기해야만 했던 어느 화가
②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으로 살아가야 했던 어느 화가
③ 나무를 고사시킨 잔인한 한발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갔던 어느 화가
④ 겨울을 봄의 믿음으로 버텨 낸 김장철 여인들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어느 화가
⑤ 봄에 대한 믿음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의연하게 서 있는 나목처럼 살아간 어느 화가
36. [A]와 [B]에 나타난 ‘나’의 그림 읽기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A]에서는 의문을 가지면서 그림에 접근하고 있다.
② [A]에서는 그림의 색채와 질감의 부조화에 주목하고 있다.
③ [B]에서는 그림과 관련하여 과거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④ [B]에서는 나무를 주변 대상과 관련지어 전체적으로 감상하고 있다.
⑤ [A]와 [B]에서 모두 나무에 주관적 감정을 투영하여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37. ㉠과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하늘’과 ‘바람’은 ‘나’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게 된 사물이라 할 수 있다.
② ‘빨간 풍선’과 ‘어린나무들’은 ‘나’가 추구하는 이상으로 볼 수 있다.
③ ‘계집아이’와 ‘어린나무들’은 삶에 대한 ‘나’의 성찰이 투영된 존재로 볼 수 있다.
④ ‘자지러지게 우’는 것과 ‘마냥 떨고 있’는 것은 현실의 시련으로 인한 좌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⑤ ‘멀어져 가’는 것과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것은 소통 부재의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A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A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3회
현대 소설 (34~37)
박완서, ‘나목’
지문 이해하기
(해제) 이 작품은 한국 전쟁 이후 어려운 현실 속에서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간 한 화가를 통해 진정한 삶에 대해 탐구하는 소설이다. 또한 주인공 이경이 혼란스러웠던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보여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경이 과거 ‘고목’으로 보았던 그림 속 나무가 실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주제) 황폐한 현실을 살아간 예술가의 삶과 청춘의 아픔과 성장
전체 줄거리
전쟁으로 죽은 오빠들에 대한 죄의식을 지닌 채 죽은 아들의 환영에 사로잡힌 어머니와 암울하게 살아가던 이경은 미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만난 옥희도를 사모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PX에 옥희도가 나오지 않자 그의 집을 방문한 이경은 캔버스에 죽어가는 고목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섬뜩한 기분이 된다. 이경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옥희도도 이경을 떠나고, 얼마 후에 이경도 태수와 결혼을 한다. 세월이 흘러 이경은 어느 날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옥희도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는데, 그 그림 속의 나무는 고목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34. 작품 배경의 의미, 역할 파악(답)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③ 확인: ‘화랑’, 알 수 없는 실망감
‘오랜 여행 끝에 낯선 역에 내린 듯한 피곤인지 절망인지 모를 망연함’에서 보듯이, 이 망연함은 ‘오랜 여행’에 비유된 옥희도의 ‘나목’을 보는 행위 이후에 S 회관 화랑에서 나왔을 때 ‘나’에게 들었던 느낌이다. 그림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나의 심리를 실망감으로 보기 어렵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윗방’과 ‘화랑’, 세월의 흐름
과거 윗방에서 보았던 옥희도의 그림이 지금은 화랑에 전시되어 있다. 윗방과 화랑에서 동일한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은 인물들의 상황이 변화했음을 의미하며 세월의 흐름을 보여 준다.
② 확인: ‘어두운 단칸방’, ‘옥희도’의 불우한 처지
‘나’는 ‘전등이 없는지, 있는데도 안 켰는지’ 알 수 없으며 넓지 않아 빈틈없이 어지러져 있는 윗방에서 그림을 그렸던 옥희도의 삶을 회고하며 ‘그가 불우했던 시절’을 살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따라서 ‘어두운 단칸방’은 불우한 상황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운 옥희도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④ 확인: ‘덕수궁’, 남편에 대한 낯선 느낌
‘그가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가 아주 타인처럼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에서 보듯이 ‘나’는 덕수궁 안 벤치에서 남편에게 낯선 느낌을 갖게 된다.
⑤ 확인: ‘덕수궁’, 일상적인 세계
어두운 단칸방이 옥희도가 어려운 삶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공간이라면 덕수궁은 ‘나’와 남편이 속해 있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다.
35.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답)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확인 1: 봄에 대한 믿음
보기에 의하면 작가는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살았던 가난한 화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어 했다. 화가의 삶의 모습은 이 글의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에 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나’는 ‘나목’이 ‘봄에의 믿음’으로 의연히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확인 2: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의연하게 서 있는 나목처럼
‘나목’이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이지만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봄의 향기와 녹음을 포기
‘나’는 ‘나목’이 봄에 대한 믿음으로 겨울을 견뎌 왔음을 발견하고 있다.
② 확인: 참담한 모습의 고목
‘나’는 ‘고목’이라고 생각했던 나무가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화가의 삶을 고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③ 확인: 고통을 묵묵히 감내
‘나’는 ‘옥희도’가 고목처럼 고통 속에 살아간 것이 아니라, 나목처럼 의연하게 살아갔다고 보고 있다.
④ 확인: 겨울을 봄의 믿음으로 버텨 낸 김장철 여인들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에서 김장철 여인들이 봄에의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목은 여인들과는 달리 앞서서 먼 봄을 믿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36. 소재의 기능 파악(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 색채와 질감의 부조화
(ⓐ)에서 ‘나’는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것을 이채롭게 느낀다. 즉 ‘나’는 그림의 색채와 질감에서 이채로움을 느낀 것이지,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 의문을 가지면서
‘한발에 고사한 나무 - 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에서 ‘나’는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그림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③ 확인: (ⓑ), 과거의 ‘나’의 모습 발견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그림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④ 확인: (ⓑ), 주변 대상과 관련지어 전체적으로 감상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에서는 ‘나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인들을 발견하고 그림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고 있다.
⑤ 확인 1: (ⓐ), 나무에 주관적 감정을 투영
(ⓐ)에서는 나무를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확인 2: (ⓑ), 나무에 주관적 감정을 투영
(ⓑ) 에서도 나무가 ‘봄에의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감상자인 ‘나’의 주관이 개입된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37. 구절의 의미 파악(답)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③ 확인 1: ‘계집아이’, ‘나’에 대한 성찰
잡을 수 없는 것 앞에서 우는 계집아이처럼 ‘나’는 진실하고 이상적인 세계와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세계의 좁힐 수 없는 간극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따라서 계집아이는 ‘나’의 삶에 대한 성찰과 관련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확인 2: ‘어린나무들’, ‘나’에 대한 성찰
‘서로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 마냥 떨고 있는 ‘어린 나무들’은 화랑에서 본 ‘나목’의 세계와 ‘상식적인 세계’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젊은 날의 옥희도와 ‘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과 이상과의 거리 혹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 거리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새로운 가치를 부여
‘하늘’은 닿을 수 없는 이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나, ‘바람’은 어린나무들을 떨게 하는 존재이므로 ‘바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② 확인: ‘나’가 추구하는 이상
멀어져 가는 ‘빨간 풍선’은 현재의 ‘나’에게서 멀어져 버린 이상으로 볼 수 있으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어린나무들이 마냥 떨고 있는 것은 존재의 고독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가 추구하는 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④ 확인: 현실의 시련으로 인한 좌절
계집아이의 울음과 어린나무가 마냥 떨고 있는 것은 모두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거리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편이 속한 세속적 세계가 낯설어진 것은 현실의 시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⑤ 확인: 소통 부재의 세태
‘빨간 풍선’이 멀어져 가는 것이나 ‘어린나무’ 간의 거리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 존재와 존재의 간극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소통 부재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