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나의 이름은
송언수
벚꽃 잎 흐드러지면 너는 벚나무
겹겹이 커다란 꽃잎내면 목련
호롱불 같은 감을 달면 감나무
비릿한 꽃잎 떨군 자리마다 뾰족한 가시 머금어야 밤나무
꽃이나 열매를 보고서야 너를 알아볼 수 있다니
어쩌나
나는 아직
이름이 없다
어느새 오십 중반이다.
그래도 봄이 오면 봄맞이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고동산 둘레길에 산자고와 별꽃, 노루귀 찾아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고동산 등산길에 만난 돌복숭 나무에 다홍색 꽃이 유혹적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진다. 책갈피 모임을 핑계로 벚꽃길을 걸었다. 어쩌다 공휴일이 되어버린 투표일에 유채꽃 놀이도 다녀왔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이다.
겨우내 잎을 다 떨구었던 나무에 새잎이 삐죽 올라오고, 고사리며 머위 달래 부추 등 푸성귀도 녹은 땅을 헤집고 올라온다. 신기하지. 봄기운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량도 일주도로의 가로수는 벚나무다. 수피만 보고도 무슨 나무인지 아는 사람도 있으나, 나는 꽃이 피어야 무슨 나무인지, 열매가 달려야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다.
매화가 피고 매실이 달리면 이게 매실나무구나, 벚꽃이 피면 벚나무구나, 복숭아 꽃이 피고 복숭아가 달리면 복숭아 나무구나 그제서야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마을에서 화분에 꽃을 키우는 분을 만났다. 반가워서
“봄이에요~”했더니
“봄이에요. 화분에 나도 샤프란 꽃이 피었어요, 보러 오세요” 한다.
꽃 이름이 나도 샤프란이란다. ‘나도 밤나무’뭐 이런 나무도 있으니 샤프란인데 ‘샤프란’은 아니지만 그래도 샤프란 같은 꽃이니 ‘나도 샤프란’인 건가. 샤프란이 얼마나 더 예쁜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샤프란 꽃은 예뻤다.
“나도 샤프란, 너도 참 예쁘다.” 해주고 왔다.
사람도 나무처럼 꽃을 달고 열매를 달아야 누구인지 알려나.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인처럼 얼굴을 알려야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다. 무명으로 생을 마감하는 연예인 지망생도 많지 않겠나. 몸값이 제일 비싸다는 임영웅도 미스터 트롯에 나와 1등이 되고서야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나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름이 있으되 이름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누구의 아들 딸로 사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샤프란’이란 샤프란에 기댄 이름 말고,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자. 박계수 이영란(라떼 향기) 차상희 주지언 송언수.
우리도 이름이 있다고,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소중한 존재다. 비록 유명하지 않아도,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적은 없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잘살고 있다고, 오늘 하루 이렇게 모여 우리의 책갈피를 채우고 있음에 감사하고 대견하다고, 그거면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