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강독-7
Na cakṣur-dhātur yāvan na mano-vijñāna-dhātuḥ, na avidyā na avidyākṣayo yāvan na jarā-maraṇaṃ na jarā-maraṇa-kṣayo
나 착수르 다투르 야반 나 마노 비즈냐다투흐, 나 아비디야 나 아비디야크샤요 야반 나 자라 마라남 나 자라 마라나크샤요
無眼界,乃至無意識界,無無明,亦無無明盡,乃至無老死,亦無老死盡
무안계, 내지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로사, 역무로사진
해석:
- 눈의 경계가 없고, 나아가 의식의 경계도 없으며, 무명(어리석음)이 없고, 무명의 소멸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도 없고, 더욱이 늙음과 죽음의 소멸도 없다.
6. 해설:
이 구절은 불교의 공(空) 개념을 설명하는 중요한 가르침으로, 모든 존재와 현상이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보여주는 교설(敎說)이다. 좀 더 부연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감각과 의식, 생로병사 등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것들이 본질적으로는 실체가 없는 현상일 뿐이며, 이는 불교의 핵심인 "연기(緣起)"의 맥락이라 할 수 있으며, 필자의 주역 색상괘로 표현하면 광학의 RGB 색상 기본적인 본질은 그대로이나 이들의 합색(合色)과 결색(缺色)에 의한 현상계라 할 수 있다.
- 無眼界(무안계): 감각의 실체 없음; "무안계"는 눈의 경계가 없다는 뜻으로, 우리가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모든 물질적 현상이 고정된 실체를 가지지 않음을 나타낸다. 우리의 시각 경험은 조건에 의존하여 나타나는 일시적인 결과일 뿐이며, 그 자체로 고정된 실체는 아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상이 실재하지 않듯, 우리의 감각적 경험도 실체 없는 반사된 현상에 불과하다.
- 乃至無意識界 (내지무의식계): 의식의 무상함; "내지무의식계"는 의식의 경계조차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의식은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특정 순간에만 존재하고 다른 순간에는 다른 형태로 변한다. 의식 역시 여러 조건에 의해 잠시 나타나는 무상한 현상일 뿐, 그 자체로 영속적인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 無無明(무무명): 어리석음의 본질; "무무명"에서 말하는"무명(無明)"은 불교에서 어리석음이나 진리를 보지 못하는 무지를 뜻한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명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 일시적인 상태이다. 마치 안개가 걷히면 풍경이 드러나듯, 무명도 깨달음을 통해 사라질 수 있는 비실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 亦無無明盡(역무무명진): 어리석음의 끝조차 실체가 없음; "역무무명진"은 어리석음이 다한 상태조차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무명이 끝난 상태가 영구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 또한 변할 수 있는 상태임을 나타낸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고정되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인 상태일 뿐이다. 다시 필자의 주역색상괘로 부연하면, 색상의 조합(합색)에 의한 색상의 변화 역시 일시적 변색일뿐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변색의 본질을 앎으로서 내면의 실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무명(無明) 역시 가려진 것일뿐 그 가려짐의 본질을 알아차림으로서 무명이 사라진다 다 하겠으나, 이 역시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일뿐 결과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주역색상괘의 변색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까닭에 기미(幾微; 조짐)로서 선지(先知)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청색의 괘색인 진괘(震卦)의 초효가 변하면 검정색의 괘색인 곤괘(坤卦)가 되며, 진괘의 합색구조는 빨강색과 녹색은 소등 결색이고 청색은 점등으로 활성화가 된 구조식이나, 초효가 변해 검정색의 곤괘(坤卦)가 되면 빨강색, 녹색, 청색이 모두 소등 결색이 되는 까닭에 비록 보여지는 색상은 청색과 검정색으로 다르나 형화(形化; 변색) 너머 본질의 구조를 읽을 수 있음으로서 변화의 실체를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내면의 또다른 언어인 색상을 통해 너머(내면)의 본질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 乃至無老死(내지무노사): 생로병사의 무상; "내지무노사"는 늙음과 죽음 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의 생로병사 과정은 마치 자연의 순환과 같이, 연기(緣起)의 법칙에 의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태어나고 늙고 죽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닌, 인연과 조건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변화의 흐름이다.
- 亦無老死盡(역무로사진): 죽음의 끝도 고정되지 않음; "역무로사진"은 늙음과 죽음의 끝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죽음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또 다른 형태로의 변화나 순환을 나타낸다. 죽음은 고정된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과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종합하면,
이 구절은 불교의 공(空) 개념을 통해, 인간이 경험하는 감각, 의식, 무명(어리석음), 생로병사 등 모든 현상이 고정된 실체 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든 것은 인연과 조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며, 그 자체로는 영속적인 본질을 가지지 않음을 설명한다.
핵심 논점:
- 감각과 의식의 실체 없음: 인간의 감각과 의식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경험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
- 무명과 깨달음의 순환: 무명(어리석음)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상태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깨달음을 통해 사라지지만 깨달음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 생로병사의 무상함: 생로병사도 조건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는 변화의 과정이다.
- 집착에서 벗어남: 고정된 실체에 대한 집착이 고통의 원인임을 깨닫고, 모든 변화와 흐름을 수용할 때 자유와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실체 없는 세상에서 집착을 내려놓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하며, 진정한 해탈과 자유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주역의 색상괘와 연결하여 논지하면, 색상의 변화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닌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공(空)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색상괘에서의 색상 변화는 인연과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색하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영원히 고정된 색상이 아니며 변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주역에서 "진괘(震卦)"의 초효가 변화해 "곤괘(坤卦)"가 되는 예를 들어보면, 청색의 진괘가 검정색의 곤괘로 변하는 과정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변색이다. 진괘에서는 빨강색과 녹색이 소등되고 청색이 점등되는 구조이지만, 초효가 변하면서 검정색 곤괘로 바뀌면 모든 색상이 소등되어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 변화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와 같이, 변색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색상이 아니라 그 내면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불교에서 "무명(無明)"을 이해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무명은 진리의 빛이 가려진 상태일 뿐이며, 그 가려짐의 본질을 알아차리는 순간 무명이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또한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주역에서의 변색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이 변화를 통해 "기미(幾微; 조짐)"를 읽고 선지(先知) 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진괘의 청색이 곤괘의 검정색으로 변할 때, 비록 겉으로 보이는 색상은 청색과 검정색으로 다르지만, 그 형화(形化; 변색) 너머에 있는 본질적 구조를 알게 되면, 변화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색상을 통한 내면의 언어를 통해 변화의 이면에 있는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의 무명이 가려져 있던 진리를 알아차리는 과정처럼, 주역의 색상괘에서의 변색 또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 그 너머의 본질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 자체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본질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내면의 진정한 실상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연재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회차에서 뵙겠습니다.
동양학박사 담원(영묵) 김성수 합장 _()_
원문을 링크합니다.
https://blog.naver.com/sencelife/223601740277
주역색채심리 원리와 실전(실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