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코스 : 숭의전 – 군남 홍수조절지
임진 적벽길을 걷고자 숭의전지에 다시 섰다. 오늘로써 4번째 왔다. 첫 번째 인연은 과거 젊은 시절 동두천에 출장으로 왔을 때 업무 출장은 뒤로 미루고 숭의전을 관광명소로 찾았다. 의義를 숭상하는 곳을 공적인 업무를 팽개치고 사욕을 채우고자 방문했던 숭의전이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후 1번을 무슨 사유인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다녀갔고 경기 둘레길을 걸으면서 2번을 왔으니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된 것은 아닐까? 소맷자락 스쳐 지나감도 백겁의 인연이라면 4번씩이나 찾아온 것은 전생에 어떠한 인연을 맺은 것일까?
숙겁의 맺힌 인연은 올 때마다 숙연해지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하고 임진강과 어우러져 펼쳐지는 환상적인 절경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데 오늘은 담장 밖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가 발길을 더디게 한다.
이 느티나무는 조선 문종때 왕 씨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나무가 철 따라 울음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하니 세월(620년)의 무게 만큼이나 많은 설화를 가지고 숭의전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숭의전
왕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고려에서 조선을 지나
아직도 입시 중인 신하들
나라는 사라져 어디에 있나
개성은 길이 막히고
잠두봉 아래 임진강만 흐르는데
대문 앞 오백 살 먹은 느티나무
아직도 희망이 남아
솔 부엉이 부부 새끼 둘 품었다.
부엉부엉 연천 하늘을 날아
철조망을 넘고 시간을 건너
비단 배 넘치는 벽란도로 가려나
왕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시인 전윤호. 봄날의 서재중>
숭의전을 떠나면서 한 편의 시를 읽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니 전망대가 있었지만, 주변의 나무가 가려 조망이 되지 않았다. 썩은 소에 대한 전설을 읽어 보고 산길을 내려서는데 이곳은 개인 사유지로 통행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친절하게 많은 사람이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리 내 땅이기로서니 길을 걷는 사람에게까지 못 다니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우려가 희망으로 바뀌면서 잠두봉을 내려서니 자동차 도로였다. 다행히 차량 통행이 한산하여 걸어가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지만, 도로는 자동차가 통행하고 사람은 보행자의 길을 걷고 싶기에 아스팔트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는 것은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백학과 파주의 좌, 우의 갈림길에 이르러 직진 방향의 연천 전곡 방향으로 진입하여 걸어가는데 자동차 도로는 계속되었다. 임진강 주상절리와 당포성의 갈림길에 이르러 경기 둘레길은 직진 방향인 임진강 주상절리 길로 이어지는데 우리의 걷기는 단순히 육체의 운동을 위하여 걷는 것이 아니라 역사 문화를 탐방하는 정신 목욕이기에 당포성으로 향하였다.
“ 연천 당포성은 임진강변에 위치한 고구려의 방어 성곽이다.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 상부에 있는 이 성은 임진강의 수식절벽을 자연 방어 시설로 이용하고 적의 침입이 가능한 동쪽 지역에 인공적인 성벽을 구축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하였다”라고 관광 안내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당포성에 이르니 1회 연천 별빛 축제가 막 끝난 뒤였다. 축제 때 설치한 천막 등을 아직 다 완전히 제거하지 않아 다소 산만하였지만 여기저기 피어 있는 꽃들이 아름다웠다. 꽃들은 저마다 한 철의 주인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으니 사람보다 꽃이 더 제 몸값을 하는 것이 아닐까?
당포성의 동곽 성벽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임진강을 바라본다. 고요한 물결은 정적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볼 때마다 새로워지어 다시 또 보고 싶은 강줄기, 그리하여 일찍이 4대강을 걸어야 한다고 원을 세웠지만 칠십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나의 삶에서 끝내 4대강 종주는 할 수 없는 것일까?
당포성을 관람하고 다시 임진강 주상 절벽의 갈림길에 이르러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유엔군 화장장 시설이 있었다. “ 연천의 마전 지역과 적성의 감악산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
그만큼 전사자들이 속출하였는데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진 수많은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줌의 재로 화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간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관광 안내 자료는 적고 있다.
제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순국하신 이국의 용사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에 두 손을 모으고 임진강 주상절리로 향하였다. 오늘도 감악산은 다정한 친구가 되어 함께 길을 걸어가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동이리 부대 앞 도로를 지나 걸어갈 때 임진강 주상절리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자동차 도로는 끝이 날 줄 모르고 계속된다. 배울교를 지나 임진강 주상절리에 이르렀다.
절벽 사이사이에 자라고 피어난 나무들이 가을이 되어 붉은 옷으로 갈아입어 절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 전경은 말로써 할 수 없고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곳이었다.
“ 임진강 주상절리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상류 쪽에 위치한다. 한탄강 지질공원의 가장 큰 특징인 현무암 주상절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높이 25m, 길이 2km에 걸쳐 자연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예로부터 가을이면 돌단풍이 주상절리 절벽을 붉게 물들어 임진 적벽이라 불리며 널리 알려져 왔다.”라고 안내문은 설명하고 있다.
주상절리의 백미가 적벽이듯이 사람도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자질과 바탕이 있을지라도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예禮를 갖추지 않으면 참다운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성인의 말씀을 음미해 보며 임진 적벽길을 걸어가는데 아름답다는 말이 끊어지지 않고 탄성되어 연발하고 있다. .
우기나 장마철에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강변의 길을 걸어가는데 가는 빗방울이 떨어져 옷을 적신다. 점심때가 되어 밥을 먹어야 했기에 빗방울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지만, 천변의 길 또한 평탄치 않은 길이 되어 점심을 먹을 만한 자리도 없었다.
천변길에서 둑에 오르니 평탄한 길이었고 벤치가 놓여 있어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가는 빗방울이 굵은 빗방울이 되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비옷으로 갈아입었다. 봄, 가을철에는 우산, 겨울철에는 아이젠을 날씨와 관계없이 항상 배낭 속에 넣고 다니는 습관이 배 있어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 거북이님은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어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김 총무가 우비를 꺼내어 산 거북이 임에게 건네준다. 김 총무는 평소 항시 남보다는 배낭을 무겁게 메고 다니는데 그 배낭 속에는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물품을 넣고 다니기에 우산이 준비되지 않은 산 거북이님에게 비옷을 빌려줄 수 있었다.
자동차캠프장을 지나갈 때 군납 홍수조절지 9.2km를 알린다. 둑길을 따르다 강변으로 진행하지 않고 평화 누리 자전거 길에 진입하였다가 되돌아오는 순간의 실수도 하며 무등리 쉼터에 이르렀다.
이제부터 강변길에서 산길로 진입하는 것이다. 고통의 극한 표현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는 말로 대신한다면 우리는 사서 고생하는 것일까 ? 라고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며 고성산을 넘어가는데 예상보다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무등리 보루와 함께 임진강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고성산 보루를 넘어 잠시 휴식을 하고 하산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또다시 산을 넘어야 했다.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밋밋한 임도로 계속되었다.
산길에는 밤송이가 벌어져 있지만, 밤송이마다 밤은 들어있지 않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우리의 선조는 까치밥이라고 하여 마지막 하나까지 다 처분하지 않았는데 이곳의 밤송이는 최후의 하나까지 몽땅 털어버린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도 다른 동물들도 먹을 수 있도록 조금은 남겨 둘 수 있는 아량은 지금에는 찾아볼 수 없을까? 길가에 뒹굴고 있는 저 많은 밤송이에 밥 한 톨이 없다면 얼마나 정성 들여 밤을 바른 것일까?
떨어져 있는 밤송이에서 나의 삶의 흔적을 느꼈다면 정녕코 지난날의 나의 삶은 힘을 기울일 곳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힘을 기울이지 않을 곳에 온갖 정성을 다해 힘을 기울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산길은 예상보다 길게 계속되었다. 뒤에 오는 일행들과 너무 격차가 벌어진 것 같아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렸다. 마음이 편하였다. 조금 앞서 걷다가 보조를 맞추기 위해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즐기니 편안함을 느끼지만 반대로 앞서가는 사람을 뒤따라서 가야 한다면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므로 얼마나 힘이 들 것일까!
고양이가 쥐 생각한다고 할까? 발걸음을 한 걸음 낮춰 뒷사람과 호흡을 맞춰 걸어가는 것이 함께 걷는 도리요 예의가 아닐까? 조금 더 빨리 걸을 수가 있다고 뒷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간다면 보다 빠른 사람을 만나면 그 과보 그대로 돌아옴을 왜 생각하지 못할까?
자신을 나무라며 후미와 합류하였지만, 또다시 앞서 나간다. 이제 산길은 내리막으로 바뀌면서 북삼교가 보였다. 목적지가 다가오고 있다. 산길에서 농로로 진입하여 허브빌리지를 지나 북삼교에 이르렀다.
일자로 뻗어있는 다리에 서니 군남댐이 보인다. 군남댐은 다리를 건너서 가야 했으니 가는 길의 모양은 ㄱ자 길이다. 꽃에는 벌이 찾아들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들끓듯이 물가에는 낚시꾼이 항상 낚싯대를 던져 놓고 있다.
여유가 넘치는 낚시꾼들이 부럽다. 그들은 정적인 곳에서 흥미를 느끼지만, 나그네는 동적인 곳에서 흥미를 만끽한다. 그러나 나는 정적이며 동적이 되고 싶다. 고요한 곳에서 활력을 찾고 활력 속에서 고요함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욕심만을 부리며 살아왔지만, 어느 하나 이루어 놓지 못한 지난 세월인데 어제 60대의 중반에 새싹이 피어오를 수 있을까?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집념이라지만 씨를 뿌리지 않았으니 다가오는 세월에는 무엇을 이룰 수가 있을까? 눈물이 흐른다.
어느덧 발걸음은 북삼교를 건너 임진강 강변을 걷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예, 원형 지금 어디예요. 군남댐을 향하여 강변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혹 길을 잘못 들었나 해서요, 북삼교에 왔는데 보이지 않아서요. 군남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임진강가에는 갈대가 춤을 추고 있다. 당포성에서 별빛 축제에 따른 꽃의 향기에 젖었는데 종착지에 이르러 갈대의 향연에 빠진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다면 항상 생각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반드시 실천하며 노력하는 생활을 게울 리 해서는 아니 되겠다. 뜻하지 않은 갈대의 향연에 젖어 6시간을 걸어온 피로를 잊으며 군남댐에 이르렀다.
● 일 시 :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흐림
● 동 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 산 거북이님, 좋은 시간님.
● 동 선
- 09시38분 : 숭의전지
- 10시20분 : 당포성
- 10시45분 : 유엔군 화장 시설지
- 11시25분 ; 임진강 주상절리
- 12시20분 : 점심
- 13시20분 ; 오토 캠핑장
- 13시50분 ; 무등리 쉽터
- 15시40분 ; 북삼교
- 16시15분 : 군남 홍수조절지
● 총 소요시간 및 거리
- 거리 : 20.0km
- 시간 : 6시간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