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회고하면 언제나 나의 기억 속에 두 종류의 가축이 등장한다. 대개 시골 농촌에서는 영농하는 집에서도 가축을 몇 마리 사육하는 일은 흔한 광경이다. 그 가운데 소(牛)는 가축 중에 가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는 영농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동물이다. 지금은 영농이 기계화되어 소의 중요성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예전에는 넓은 들판에서 논과 밭을 갈고 엎는 일은 모두 소의 몫이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소는 쉴 새도 없다. 자기 논밭을 다 갈면 또 이웃의 것을 갈아야 한다. 소 몇 마리가 온 마을의 들판을 휘젓고 다닌다.
여름철이 되면 소에게 먹일 들풀을 베어오고, 소는 들풀이 많은 곳에 방목된다. 우리 집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는 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몇몇의 아이들과 어울려 들판에서 풀을 잔뜩 먹고 배가 북장구처럼 불어난 소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일과였다. 어떤 때는 사정이 생겨 뒤늦게 소를 찾으러 산에 올라가면, 다른 소들은 다 떠나고 혼자 남아 애타게 주인을 부르는 소의 절규를 듣게 된다. 나를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소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체험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소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소는 한 가족처럼 그렇게 정이 들었다. 겨울이 돌아오면 소의 세상이 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 세상에서 소만큼 편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짚단과 콩깍지를 작두로 끊어서 푹 삶아 소에게 주면 소는 참으로 맛있게 먹는다.
돼지는 소와 비길 수는 없어도, 유용하기는 마찬가지다. 돼지는 대가족제도에서 나오는 온갖 음식쓰레기들을 처리해주는 처리장이요, 농사를 위해 필요한 사료를 제조하는 사료제조기다. 돼지울에 짚이나 풀을 깔아두었다가 며칠 후에 떠내면 그것이 바로 농사에 쓰이는 거름이 된다. 농가에서 사료를 손쉽게 얻는 지혜다. 새끼를 내어 수입을 보는 일도 가계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니, 일거양득이다.
양계는 수입 면에서 볼 때, 으뜸이다. 수십 마리만 쳐도 장날 들고 나갈 달걀이 충분하다. 달걀을 부화하면 또 병아리를 얻을 수 있으니 그 재미도 좋고 수입도 좋다. 새벽마다 울어대는 닭들의 소리는 농촌생활의 활기를 더해준다.
팔자로 따지자면 개만큼 좋은 놈도 없다. 집집마다 한 두 마리의 개를 으레 키우게 된다. 개는 집을 지켜주는 파수꾼 노릇을 곧잘 한다. 해가 질 때까지는 빈둥빈둥 놀고 있지만, 일단 저녁이 되면 집을 지키는 든든함이 있다. 가축과 함께 하는 시골의 풍경,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