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 1권 제3절 하나님의 소명과 뜻길 출발 (1935.4.17)
2.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과 뜻길 출발 1935.4.17. 아침, 정주 묘두산
근본문제 고민과 담판기도
선생님이 태어난 1920년에는 이 땅이 일제 식민치하에 있었습니다. 그 무렵 선생님은 강대국에 짓밟히는 약소민족의 고통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청소년 시절이었던 그 당시에는 이 비참한 전쟁과 죄악의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국가적 사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나라의 통치권 내에서 민족이 당하는 비참상을 어려서부터 마음 깊이 느끼고, 이러한 환경적 여건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길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혼란된 세계정세를 누가 책임지고 수습할 것이냐? 그러니까 개인생활이 곤란하고 가정생활이 곤란했습니다. 동네면 동네의 어느 가정을 보더라도 행복한 듯한 가정이 없을 정도로 혼란이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부락을 넘어서 나라가 그러하고, 나라를 넘어서 아시아가 그러하고,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가 그러한 혼란시기였던 것입니다.
또, 소년시대부터 인생에 관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죽은 후에 우리의 생명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일까? 또,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혹은 무력한 존재이신가?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하나님은 왜 인류세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이 지구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과거지사를 전부 돌아볼 때, 지금에 있어서는 이것이 추억의 한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때에 있어서는 참 심각하였어요. 자기 생애의 미래를 걸어놓고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담판하는 시기였습니다. 이것이 인간만의 결정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인간들의 생각을 넘어 결정적 노정을 취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그런 신앙길로부터 고심하던 모든 전부의 추억이 생생한 것입니다.
16세 부활절 아침
선생님은 16세 때에 비상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오랜 시간 눈물어린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께 나타나셔서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오하고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께서 슬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체험한 이 경험을 말로써 여러분께 다 표현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적인 세계가 돌연히 선생님 앞에 펼쳐졌고 선생님은 자유로이 그 영적인 세계에 있는 성자들과 마음껏 통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한 땅 고요한 산중에서 선생님은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에 계시된 진리의 내용이 지금 통일원리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만남이 있은 후로 지금까지 나는 쭉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를 포함한 영계의 모든 성현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습니다. 그 내용을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예수를 봤을 때, 예수가 웃으면서 ‘아이구, 좋아!’이래요? 그런 예수 봤어요? 그런 예수를 만나 봤어요? 선생님도 못 만나 봤다구요. 언제나 심각하고도 침울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구요. 하늘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거라구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본래의 부활절 4월 17일
이 4월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수난의 길을 거쳐 가지고 부활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4월 17일을 부활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4월은 봄절기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날은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의 날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세계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그 한날도 알지 못하고 내려온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이 부활의 한날을 알지 못하는 인간을 대하는 하늘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며 얼마나 서러울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만은 하늘과 온 만민을 대신하여 누구도 모르는 이 한날을 축하하여야 할 것이며,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느끼는 그의 내적·외적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 한 장소는 하늘과 땅과 온 만물이 주시하는 귀한 장소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타나 오늘이 당신의 부활의 날임을 밝혀 주던 일이 기억납니다.
책임감과 미래 위한 결의
내가 이 길을 나서게 될 때는 여러분보다 더 나이가 어릴 때입니다. 스무 살 전에, 그때에 이 길을 출발한 거예요. 그때는 천진난만한 그런 시대였습니다. 좋은 무엇이 있으면 그 좋은 것을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또 동네에 조금 색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보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아주 강한 때였어요.
그런 시절에 이 엄청난 하늘의 뜻을 알고 천적인 대명을 받들고 나서는 그날부터는…. 이 엄청나고 큰 것을 하나님이 약속함과 동시에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가야 할 자신은 그 큰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대로 그것을 삼킬 수 있는 자기 스스로가 못 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탱하기에 너무나 크고, 그것을 받들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자기 스스로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는 그 큰 책임을 어떻게 다 해내느냐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나는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적하는 길로 가겠다고 하는 힘이 누구보다도 강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길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품고 가기를 결정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당장의 행복을 위해서 미래를 꿈같이 버리는 사람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젊었을 때 그런 생각 했겠나요, 안 했겠나요? 청춘시대는 한번밖에 없는데…. 어떤 길을 택했겠느냐 이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이 택해야 할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는 데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느냐, 나라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느냐, 세계가, 하나님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느냐? 높은 차원에 비례해 가지고 그 인격의 가치라든가 역사를 지배하는 인간상이 달라지는 거예요.
오늘날의 여러분 자신, 자체가 문제예요. 과연 나는 내 자신이 내일을 약속할 수 있고 내일을 보장시킬 수 있는 스스로의 그 입장을 결정했느냐? 이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예요. 오늘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미래에 소망을 세울 수 있는 스스로의 각오와 스스로의 결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구요.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생각해야 될 것은 언제든지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찾기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 스스로도 생각할 수 없는 초조한 자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집념이 필요하다구요. 이 선생님도 역시 집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영원을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집념을 가져야 돼요.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하면 극복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