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외반증
작년 6월 중순경이었다. 언젠가부터 여름의 시작이 앞당겨져 그 해도 벌써 5월 초순부터 초여름의 전령이 일찌감치 방문하여 이른 여름의 시작을 알렸다. 6월 어느 날, 송파구 풍납동 빌라 지하에 위치한 회원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회원의 학모는 아이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계절이 여름이라 학모는 맨발 차림이었는데 인사를 하다 무심코 학모의 발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발을 본 순간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TV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무지외반증’ 이었다.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기형적으로 생긴 발’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직장인 여성들이 하이힐을 장시간 신어 발의 형태가 변형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태가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 날 방문 이후, 나는 학모가 집에 있는 경우 예외 없이 발을 관찰해 보았는데 내 생각으로는 70% 정도는 예의 그 무지외반증이었다. 그날 저녁 관리 시간이 중간에 40분 정도 비어 나는 차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도대체 하이힐을 어느 정도 신고 있어야 무지외반증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 무지외반증은 여성의 발이 하이힐의 모양에 맞추어 변형된 결과일 것이다. 그야말로 발에 신발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춘 참혹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스타킹을 신은 다음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재킷을 예쁘게 차려입은 다음 하이힐로 마무리한 여성을 보면 호감은 간다. 뾰족하고 날렵한 하이힐이 여성미를 한껏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지외반증’을 직접 보고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여성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하이힐로 인하여 발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형되었다면 여자들이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젠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구상의 절반이 여성인데 하이힐로 인하여 여성의 발에 가해지는 폭력적인 상황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전통적인 여성의 옷차림은 한복에 고무신이었다. 한복은 현재 여성들이 입는 양장에 비해 몸에 무리를 덜 주는 복식이었으며 고무신은 신축성이 좋아 현재의 하이힐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고무신을 신었던 시절에는 ‘무지외반증’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남자들이 하이힐을 신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랬다면 그 신발은 착용 후 1년 이내에 없어지거나 다른 형태의 신발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남자도 발의 변형을 감수하며 하이힐을 신을 남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무지외반증에 걸린 여성의 발은 이 땅에서 여자들이 겪었던 인고의 세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남녀 차별의 굴레 속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현재도 완벽한 남녀평등은 아직 요원하다. 직장에서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녀 간에 급여의 차이가 적지 않으며, 맞벌이를 하면서도 가사와 육아는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결혼하여 아이 낳고 육아에 남편 내조까지 하면서도 여성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현재의 남녀 차별과 남녀 간의 인식 차이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남성과 여성은 인간적으로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성(性)만 다를 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씩을 구성하는 동등한 존재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많이 가졌다.
여성스러운 몸매와 목소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곱게 화장한 여성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침울했던 마음이 다림질 한 듯 활짝 펴지고 우울한 마음이 비갠 하늘처럼 맑아진다. 직장 동료와 수다를 떠는 여자들을 보거나 친구와 열심히 얘기하는 여고생을 보고 있자면, 나도 웃음이 난다. 무슨 얘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나도 한번 끼어서 들어보고 싶다.
무지외반증에 걸린 여성의 발을 다시 떠올려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여성들의 무지외반증을 말끔하게 치료해줄 획기적인 구두는 언제쯤 나올는지’ 새삼 그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