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진보(성의 자유)라는 주장의 한계 -지산 이상호-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그동안 남녀평등 및 인간적이라는 주장하에 성의 자유 확장을 주장해 왔다. 그리하여 22세기 첨단 문명의 시대와 함께 성의 첨단 자유가 거의 실현되었다. 첨단 문명은 매우 복잡하고 다의적이며 그 생산기지가 불분명할 수 있어 생산자의 책임을 부여하는데 한계가 많다. 남녀의 성에 대한 첨단 자유 또한 책임을 밝히고 추궁하기 어렵다. 그것은 성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무책임한 성행위를 출현시켰다. 성의 자유는 남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형성된 욕망의 충족이 아닌 문명의 속성인 욕망이란 이름으로 부속된 사랑이 자행되는 것으로 책임의 실종 현상을 낳는다.
경기 오산경찰서는 의류 수거를 위해 수거함을 열어 수거하던 의류수거업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2021년 12월 19일 11시 반경 경기 오산시 궐동의 한 의류 수거함 속에서 신생아가 수건에 쌓인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경찰은 ‘아이를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했다. 경찰은 ‘발견 당시 신생아는 알몸 상태였고, 탯줄과 태반이 그대로 노출돼 출새 직후 버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신생아의 몸에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장시간 외부에 방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첨단 문명의 사회에서 왜 이런 일이 빈번히 발생 되는가? 여기에는 성의 자유와 욕망의 한계에 대한 책임의 결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단순한 실수에 의한 임신으로 말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무책임이다. 많은 진보론자들이 그동안 주장해 온 진보적인 성의 이념과 자유가 인간의 전통적 유대감의 단절과 그와 함께 수반되는 책임감의 결여를 초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 문제를 넘어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감의 실종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에 관한 한 윤리에는 책임이 수반되며 그 책임에는 관계성의 원초적 유대감이 강하게 맺어져 있다. 산모와 태아 간의 연결고리인 탯줄은 바로 그 유대감의 물리적 장치이다. 그리고 산모가 출산하면 탯줄을 자르지만, 그 대신 더 강한 정신적 유대감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생명은 유지되고 관계는 발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하면서 자애와 효도라는 전통적 윤리 정신이 유대를 강화시켜 나간다. 그런데 진보적 정신에 의한 성의 왜곡된 개방과 무책임은 이러한 전통적인 유대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그러한 진보는 진보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모든 가치는 가장 근원적이고 전통적인 유대관계에 의한 사랑과 책임의 문제는 질 줄 알아야 하며 또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리고 일부의 여성주의자들을 그것을 부정하고 여성의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가지고 온 책임이란 윤리성이 있음에도 말이다. 성의 욕망과 자유의 문제에서 책임과 근원적인 유대 관계를 버리는 것은 인간성 자체를 버리는 것이며 그 또한 전통적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걱정하면서 지키려는 것이 바로 성에 대한 전통적 가치이며 윤리인 것이다. 성에 대한 전통적 가치와 윤리는 남녀의 차별이나 여성의 출산 강요가 아니라 사랑과 책임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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