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홍성원입니다.
어제는 사랑이 중심인 세계에서도 왜 자유와 경계가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을 하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도와주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일까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면 실패하지 않도록 대신 결정해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경험이 적은 사람을 보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냥 이렇게 하면 돼.”
라고 답을 정해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걱정되면 아예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사랑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연세계」를 연구하면서 저는 여기에도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움과 대행은 같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책임은 왜 필요한가
「원리강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책임분담을 수행함으로써 완성되어 간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책임 없는 자유는 없다.”
고도 말합니다.
「원리본체론」에는 이 점을 더 강하게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책임분담을 통해 자기 인격을 만들어간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계속 선택하고 결정한다면,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의 인격과 책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좋은 도움은 무엇을 남길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아이가 숙제를 어려워합니다.
부모가 정답을 모두 알려주면 숙제는 빨리 끝납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기회는 줄어듭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네 책임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라고 하는 것도 좋은 도움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이해하도록 설명해주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해주고,
실수해도 다시 해볼 수 있게 기다려주면서,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연세계」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도움 ≠ 대행
좋은 도움은 상대의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도움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여기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책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잘못 사용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며 책임을 떠넘기는 논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성인은 다르고,
처음 배우는 사람과 숙련된 사람도 다릅니다.
질병이나 장애, 인지적 어려움 때문에 다른 형태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간적 가치가 낮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적게 도와줄 것인가?”
가 아니라
“이 도움은 이 사람이 자신의 삶에 더 잘 참여할 수 있게 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마디 설명이면 충분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옆에서 함께해주는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도움의 양이 아니라 그 도움이 향하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빼앗을 수도 있을까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는 이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신 결정합니다.
배우자는 상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대신 판단합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합니다.
모두 선한 동기에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계속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는가?
아니면
점점 누군가의 판단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는가?
만약 후자라면 처음에는 사랑으로 시작했더라도, 그 관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면
이 부분이 저에게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원리의 인간책임분담 구조를 보면, 하나님이 인간보다 모르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인간에게 책임을 남겨두신 것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에게 스스로 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에서 하나의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몫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까지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여기부터는 원전의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제가 그 책임분담 구조를 인간관계와 교육의 문제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본 부분입니다.
앞으로 AI의 도움도 마찬가지일까
이 질문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AI가 발전하면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더 빨리 분석하고,
더 좋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점
“AI가 나보다 잘 판단하는데 그냥 결정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연세계」에서는 현재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AI도 인간의 인격적 책임을 대신하는 최종 주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기술이라면 사람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만드는 기술보다,
사람이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선택 이유를 생각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책임으로 결정할 수 있게 돕는 방향이 더 본연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역시 원리문헌에 AI에 대한 완성된 답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책임분담이라는 원리적 구조를 오늘날의 새로운 문제에 적용해보는 제 연구상의 해석입니다.
결국 좋은 도움은
저는 현재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도움은 상대가 나를 더 필요로 하게 만드는 도움보다, 언젠가는 나 없이도 자신의 책임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도움에 가깝다.
물론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도움을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완성한 사람도 서로 배우고, 협력하고, 의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도움을 받는 것 ≠ 열등함
이고,
동시에
도움을 주는 것 ≠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
이라는 두 가지를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도와주는 것이 좋은 도움이고, 어디서부터 그 사람의 책임을 대신하는 것이 될까요?
또 부모와 자녀, 부부, 신앙공동체, 교육 같은 실제 경험 속에서
“이 도움 때문에 내가 더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반대로
“도와준다고 했지만 내 선택을 빼앗긴 것 같았다”
고 느꼈던 경험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원리나 말씀 가운데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계속 자료를 확인하면서 생각을 다듬어가겠습니다.
—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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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
첫 댓글 감사합니다. 모두 수정 완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