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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세상을 이기는 것은 십자가의 믿음뿐입니다. / 2023년 3월 5일 주일 예배
본문 / 사무엘상 17:41-54
얼마 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름 값을 아끼려고 허름한 농가의 작은 냉골 방에서 장작불을 태우고 자다가 그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부부가 질식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닙니다. 10여 전에 태국에서 관광비자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와 고창군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기술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고 신분도 불법체류자가 되어 불안하고 한국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착하고 성실해서 농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고 부부가 악착같이 일을 하여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번 돈은 대부분 태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송금하였답니다. 다 무너질 것 같은 농가를 연 30만원에 빌려 살면서 가스도 기름도 사용하지 않은 겁니다. 장작불만 사용한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그런 것이죠. 농사일이 끝나면 부부가 손을 잡고 마을을 산책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부는 어느 날 자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그렇게 이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은 겨울에 얼어 죽을 정도로 가난한지 말입니다. 부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쌓아놓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기도 합니다. 평생 죽어라 일을 해도 그 가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눈 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외국 땅에 와서 안타깝게 죽은 부부의 사연을 들으면서 인생이 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에 지치고 피곤했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고 외로웠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손을 잡고 마음을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이 그려지니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대체 인생이 뭘까요? 한 겨울에도 전혀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는 따뜻하고 대궐 같은 집에서 자자손손이 먹을 것을 쌓아놓고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하면서 부자로 살다 죽는다면 불쌍하지 않은 것입니까?
사람들은 부자는 부러워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멸시합니다.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난하게 죽으면 측은하고 불쌍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 돈을 많이 소유한 사람을 부자라고 합니다. 재물과 돈은 이 세상에 진열된 상품들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엄청난 부자여서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게 성공한 인생일까요? 행복한 것일까요? 사람들은 인생을 이 세상의 보이는 그 물질과 가치와 영광과 재미와 즐거움과 쾌락으로 자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시장에 있는 상품들 중에서 좋고 많은 것들로 그것이 물질이든 명예든 권세든 자신을 섬기는 것이 인생이며 성공과 행복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숭배하는 그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타락한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외국에 와서 가난하게 살다가 냉골에서 죽은 그 부부 안에 하나님과 십자가의 예수님만 있었다면 그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내 자신을 숭배하는 그 타락과 죄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이 세상으로 내 자아를 숭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배우기 위해 세상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세상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블레셋과 골리앗을 세상 즉 죄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다 가치 없는 것들만 있다면 누가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겠습니까? 누가 그 세상으로 자신을 섬기려고 하겠습니까?
세상에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즉 하나님처럼 타락한 자아를 숭배하기 위한 온갖 상품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신세계 백화점 지하 1층 음식 매장을 지날 때면 제 눈을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눈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다 먹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먹음직스럽게 생겼을까? 참 예쁘게도 만들었다! 생각하며 지나갑니다. 세상은 타락한 인간을 미치게 하는 곳입니다. 가전 매장에 가면 갖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의류 매장은 그렇지 않습니까?
엔진 소리가 심장을 울리게 하는 그 오토바이도 한 번 타보고 싶고, 큰 호화로운 보트를 타고 낚시도 하고 싶고, 전용기를 타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말입니다.
선악과가 탐스럽게 보이지 않았다면 아담과 하와는 먹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너무 탐스럽게 생겼던 겁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타락하기 전에도 세상은 갖고 싶은 것이었는데 타락한 후에는 어떻겠습니까? 이 세상의 힘과 영광과 권세와 명예와 재미와 즐거움과 쾌락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재물과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세상은 타락한 인간의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미혹하고 그 뒤에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당연한 듯이 함께 섬기고 있는 겁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도 자신의 타락한 자아와 자신의 하나님 됨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마귀를, 천국과 지옥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살아서는 세상과 육신을 위해 살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겠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이 강하고 두려운 세상 즉 골리앗에게 항복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 말씀합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이고 57키로나 되는 갑옷을 입고 창날 무게만 7키로이고 창 자루가 베틀 채만큼이나 두꺼운 단창을 어깨에 메고 있었습니다. 괴물 같은 겁니다.
사람은 두려워하는 것을 섬기게 되어있습니다. 도망하였다는 것은 세상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자신이 힘이 그 힘보다 작으니 도망하는 겁니다. 골리앗은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이기는 사람의 종이 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싸워보기도 전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하였으니 이게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재물과 돈과 영광과 명예와 즐거움과 재미에 다 굴복을 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는 그 말씀이 현실이 된 겁니다. 주여 주여 하니 심지어 십자가를 말하니 믿음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미 그 마음과 영은 세상에 굴복한 것입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군사들을 중에 누구 하나 나가 싸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여려 군인으로 뽑히지도 못한 소년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간 것입니다. 오직 믿음 하나로,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이지 않습니까?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군인들은 매일 생사를 넘나듭니다. 죽은 군인들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니 저 사람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와 아들일 텐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소식이 없으면 아내는 피가 마른다고 합니다. 생지옥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것보다 더 치열한 싸움이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한 번 승패가 결정되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천국과 지옥을 놓고 싸우는 단 한 번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죽어도 무심해지는 것처럼 영적인 전쟁도 감각이 없어지는 겁니다. 심판이 전혀 두렵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마귀에게 잡혀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세상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은 곧 타락한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세상 즉 나를 숭배하려는 그 죄의 욕망 때문입니다. 내 안전과 평안을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나의 끈적끈적한 죄의 욕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골리앗 이 세상과의 싸움은 죄와의 싸움이고 그것은 곧 내 자신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 죄와의 싸움에서 즉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의 노예, 세상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이름 있는 유명한 용사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이 무서워 몸을 숨기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그 엄청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만약 다윗의 자기 이름으로 나가 싸우겠다면 그건 미친 짓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 싸우면 그때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골리앗에게 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마귀에게 질 수 있습니까? 해가 서쪽에서 뜰 수는 있어도 하나님이 마귀에게 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말씀으로 마귀에게 지옥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마귀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옥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그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어떻게 그 엄청난 힘으로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들던 골리앗이 어린 다윗에게 칼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한 방에 어이없이 죽느냐는 겁니다. 더군다나 골리앗을 쓰러뜨렸지만 다윗의 손에는 칼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세상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절대로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꼼짝 못하고 지옥에 가는 겁니다. 싸우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과 죄를 이기겠습니까? 싸운다고 다 이깁니까? 자신의 힘으로 싸우면 골리앗에 붙잡혀 개죽음하는 것입니다.
도둑으로 유명한 조세형씨를 생각하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타락한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나이가 85세입니다. 얼마 전에도 출옥했다가 다시 도둑질하다 잡혀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말하기를 이런 말을 한다고 들을지는 모르지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왜 그 사람은 도둑질을 끊지를 못하겠습니까? 왜 자신과 죄와 싸우지 않았겠습니까? 싸워도 안 되는 겁니다. 싸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달이 지나면 도벽에 대한 욕망이 커지고 나중에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어느 새 담을 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법에 걸려들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법에 걸려든 죄도 없습니까? 예수님은 생각만 해도 죄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나님의 법정 그 심판대 앞에서 무죄를 받겠습니까?
조세형을 보면 꼭 제 자신이 생각납니다. 저도 육체의 정욕과 음란과 탐욕을 끊은 것이 너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1년도 2년도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음란에 맥없이 무너지면 그동안 참았던 그 욕망까지 폭발합니다. 죄악에 무너지고 빠지는 제 자신을 보고 괴로우면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강한 욕망에 붙잡혀 죄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곤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날 건져내랴! 이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 다 도망한 이스라엘이 바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기 위해 세상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이 시대의 우리, 바로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죄를, 내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어린 소년이 그 엄청난 골리앗을 칼도 없이, 이 세상의 힘도 없이 한 방에 보내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싸움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면 결코 죄를, 사망을, 마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다윗이 의지한 것이 하나님이었듯이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할 때에 죄와 세상을 이기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죄와 세상과 즉 내 자신과 싸울 때 우리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에 대한 믿음과 그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는 믿음입니다. 다윗도 막대기와 물매와 돌도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그냥 간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없다면 자신이 준비한 게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물매를 던졌는데 빗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매 그 한 방이 명중하여 골리앗이 죽은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 믿음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죄와 세상을 두려워하며 죄의 노예가 되어 끌려가던 나를 대신하여 나가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힘도 없는 연약한 모습으로 이 세상 전쟁터에 오셔서 죄인들에게 붙잡혀 연약하게 죽으셨지만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영원히 승리하신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이 세상의 힘과 그 영광에 미혹되면 안 됩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아무리 힘이 있고 대단하고 화려해도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진짜 능력과 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보며 불안에 떠는 성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지금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을 엘리사가 증언하는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죽이려고 아람 왕이 군대를 보내었습니다. 엘리사는 도단이라는 성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일어나 보니 아람의 군대가 성을 다 포위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싸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다윗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엘리사처럼 본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나도 그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 하나만 있으면 죄와 사망과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시무시한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이 날고기며 힘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장수들이 아니라 곱고 어린 소년 다윗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 성도들이 의지하던 세상의 힘을 완전히 쓸모없게 만드신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힘과 영광을 의지하는 성도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신 겁니다.
하나님은 심판대에서 세상의 재물과 돈과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힘과 영광을 자랑하던 목사와 성도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실 겁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바보 등신 같았던 나사로를 영화롭게 하시고 세상의 영광을 자랑하며 의지하던 부자를 지옥에 던지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힘이 없으면 바보 같지만 그러나 진짜 바보는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대속의 은혜를 믿지 못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골리앗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어린 소년 다윗은 이 세상에 연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강하고 두려운 죄와 사망과 세상과 마귀와 맞서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도저히 두려워 싸울 수 없는 자였습니다. 죄의 노예로 잡혀가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나가 싸우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도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죽어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위하는 십자가였던 겁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어린 다윗같이 정말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누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줄 알았겠습니까? 사울이 뭐라고 합니까? 골리앗은 용사이지만 너는 소년이다. 너는 이길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의 형은 양이나 치라고 한 것입니다. 전쟁을 구경하러 왔냐고 나무란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겁니다. 속이 없는 사람 같은 겁니다. 오른 뺨을 맞을 때 왼뺨을 돌려대는 겁니다.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는 겁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겁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겁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를 때려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 아들에게 잘했다고 하였답니다. 병원비는 걱정마라. 맞고만 다니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치욕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보입니까? 그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순종할 때 죄와 사망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영원히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자들도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고 싸우는 그 믿음으로 죄와 사망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여 함께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기를 내어 블레셋과 싸워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나를 대신하여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워 승리하신 주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믿음은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는 십자가의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믿으시고 그 십자가에 나는 죽고 주님만이 사시는 그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