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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화)~(6일째... Torres del Rio~ Logrono: 21.1km)
순례자숙소: Ref.Munic Alb peregrinos '페레그린노스' 공용 알베르게, 7유로)
새벽 여섯시경...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해질녁 솔잎한짐 질끈 짊어지고 긴 그림자 드리우며 고단한 얼굴로 걸어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천근만근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끈질긴 무게였으리라.
새끼줄 꽁꽁 얽어맨 초가집 방안엔 배곯은 토끼들의 허울진 눈망울들...
평생 손마디 굵은살 삭이며 그렇게 사시였다.
어찌 어머니 뿐이랴...
그시절 모든 어머니들의 자화상이였을 고달픈 사연의 단면들...
찡한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아침 바람이 쌀쌀하다.
그곳 알베르게 내에 있는 바(Bar)에서 샌드위치 한개와 따뜻한 우유를 시켰는데
무슨 'quick'이라는 분말 가루를 내어준다.
타야돼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옆 테이블 여자 카미노가 자기 커피잔을 손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타서 마시라는 말이겠지하고 두 스푼을 넣었은데 맛이 정말 고소하다^^
동네 작은상점을 지나가다 무인좌판에 놓인 토마토 두개를 샀다.
오히려 큰 슈퍼에서는 모양만 반지르르 하지 맛은 그리 별로인데
조금은 허스름한 이곳 토마토 맛이 더 좋은지 알쏭달쏭이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아무리 작은 상점에서도 꼭 시간을 지켜 열고 닫고한다.
이젠 자판기 사용이나 물건 구입하는 노하우가 어느 경지에 이르러 내가 봐도 대견하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 자랑했다.
'내가 이렇게 잘해도 되는거야^^'...
비는 멎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쌀쌀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Logrono까지 20.3km이다.
간만에 짧은 코스라서 천천히 놀멍쉬멍 걸으멍...
정오쯤에 'Viana' 마을 초입에 들어섰다(11.3km).
꽤 큰 동네인데 왁자지껄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노는 초등학교 애들이 보여 같이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정문이 어딘지 둘러봤으나 도무지 찾을길이 없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안으로 들어갈 수 가 없단다.
그날 이후에도 여러학교를 스쳐 지났지만 학교정문을 개방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울타리 너머 몇몇 어린이들에게 '올라'하며 인사를 건네니 신기한 듯 뭐라 그러면서 둘러쳐진
철망사이로 우루루 몰려온다.
어디든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은 보기가 좋다.
허스름한 어느집 벽담도 내게 미적감각으로 다가옴은 무엇때문인지...
작은 터널을 지나고 누군가 정성으로 쌓아놓은 작은 돌무더기 화살표를 따라 카미노 동선이 이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전부가 아닌 마음으로 전해주는 무언의 작은 감동들이 서쪽끝 '산티아고'로 향하는
지친 나그네들의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무엇때문에 이 먼길을 왔던고'...
이 길에선 모두가 천사이고 그 길 사랑하는 길라잡이이다.
'Viana'에서 세시간 여를 걸어오니(9.8km) 저 너머로 '로그로뇨' 시내가 보인다.
길옆 포도밭이 가을의 정취를 고즈넉히 그려내고 있다.
어떤 알베르게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낮설은 보금자리인들 그곳에 머물 수 있음이 작은 행복이자 설레임인 듯도 한데...
카미노 친구들 역시 어떤 모습들인지 사뭇 궁금하다.
'로그로뇨'는 큰 도시이다.
공용 알베르게에 들어서니 그곳 관리인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저께 무릅이 아파 하루는 걷지못하고 뻐스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고 말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때 무리를 헸던 모양이다.
그래도 완쾌된 것 같아 다행이다.
이청년 예의가 참 바르다.
길은 자신이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걸어야 한다는 것이 제주올레길에서 발품을 다져온 나의 변함없은 생각이다.
이곳에세 다시 여러명의 한국인 청년들과 아가씨들을 만난다.
옆침대 턱수염이 멋스런 아저씨가 제주도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은퇴 후 몇년이 지났는데 제주에 정착하여 살고 싶단다.
6개월 내지 일년은 제주전역을 잘 돌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보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베르게에서 멀지않은 곳에 중국사람이 하는 슈퍼마켓이 있단다.
말을 들은즉시 그곳으로가 '진라면'과 ' '해물탕면' 그리고 그리 싱싱하진 않지만
오이 두개를 샀다. 꽤 비싼 편이지만...
앞서 들어간 카미노들이 나오면 나의 맛있는 만찬이 시작될 것이다.
'나 이제 정말 못하는게 없어... 이래도 되는거야^^'...
한국에서 가져온 튜브 고추장을 오이에 묻혀 한입 와삭와삭...
역시 신토불이!
라면이 폴폴 익어가는 소리...
가장 기본적인 숙식이 해결되는 것이 이곳에선 가장 행복한 일인 듯 하다.
지금 이순간 내가 '세상에 무엇이 그리 부러울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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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 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