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가 있으신 분들중 텔레비젼 ‘일기예보’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이름이 있으실 것입니다. ‘김동완 통보관’이라는 분입니다.
김동완 통보관은 기상청 예보과장을 지내고 문화방송(MBC) 기상캐스터로 오래 일했고 2010년 3월 23일 제60회 세계 기상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50년 동안 날씨밖에 모르고 살아온 점에 대해 기상청장 이하 1300명 기상청 직원이 나를 인정해 주고 우리 국민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의미여서 무척 기쁘다”며 훈장을 받은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가 처음 국립중앙관상대(기상청의 전신)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사실 사명감도 없었고 직장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단지 그 당시에도 워낙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어 1958년 공채시험 공고를 보고 1959년 초부터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합격하여 관상대에 다니기 시작한 1950년대의 사람들은 기상 업무에 너무 생소하여 시골 어르신들이 ‘아니 젊은 사람이 관상 보는 일을 하다니, 쯧쯧...’하고 혀를 찼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상청에서 재직하던 중 1970년대부터 방송에서 일기예보와 해설을 하기 시작했고, 1982년 MBC 기상캐스터로 옮겼으며 1992년 퇴직하고 나서도 1997년까지 프리랜서로 기상예보담당으로 방송에 출연했다고 합니다.
‘통보관’이라는 친숙한 타이틀은 원래 방송국에서 임의로 붙여 준 것이지만 나중에는 기상청에 공식 직제가 생겼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기상캐스터는 전문성을 길러 시청자에게 신뢰감을 줘야 하며, 기상청 통보관은 항상 생활과 날씨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예보관은 반드시 맞히겠다는 욕심을 내지 말고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을 버리고 ‘틀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자료를 차분하게 분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도 예보관 시절 퇴근한 뒤 예보가 적중할 지 궁금하고 불안해서 한밤중에 몰래 집을 나와 매일 1시간쯤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기는 바람에 부인으로부터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일기예보가 100% 맞으면 좋겠지만, 인간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시설과 장비를 확충해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기상청의 예보 적중률이 92%인데 이 정도면 세계적인 수준인데도 사람들은 적중한 경우는 잊어버리고 틀린 경우만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 길을 걸으며 인정받는 삶을 살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특별히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기는 여간해서는 잘 되지 않는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한 분야를 떠나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탁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은 인생에서 탁월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 길을 걸아갔던 것을 알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성경인물연구를 통해 우리의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성경공부를 인물중심으로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천사의 만남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친밀한 지를 보여주고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장면이 창세기 18장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18장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아는 은혜를 아브라함은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이 5분뒤의 일만 알아도 전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았다고 하니 그의 인생은 얼마나 엄청난 인생, 뛰어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특별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인정을 받는 정도가 아닌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시고 우리의 모든 환경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다는 점에서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의 뜻을 미리 듣는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우리하고는 근본적으로 많이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 자세가 다른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의 섬김을 살펴보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바르게 잘 섬김을 통해 삶에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의 자세 첫 번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어느 뜨거운 날 아브라함은 그의 장막문 앞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이 때 눈을 들어보니 세 사람이 바로 앞 맞은 편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우리는 정확하게 이 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외형적인 묘사는 없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오늘 성경본문은 이 세 사람으로 묘사된 사람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1절 앞부분을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라고 기록하며 오늘 본문을 시작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 사람이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대동하고 나타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 세 사람이라는 묘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느낌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것을 느꼈습니다. 이럴 때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아브라함의 첫 번째 반응은 아브라함을 떠나서 그냥 지나가는 일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손님접대의 최우선의 마음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그 손님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승리의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은혜가 충만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안될 일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을 보십시오.
이 구절은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구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아직도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땅이 있는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기업들을 나눠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기럇 아르바라는 성입니다. 이 성은 너무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고 살기에 너무나 좋은 땅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성을 꼭 정복해야 완전한 가나안 정복이 되는데 그 성의 사람들은 평균 신장이 월등하게 크고 싸움을 잘 하는 용맹스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성벽은 크고 튼튼한 성이었습니다. 이 성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이 80이 된 갈립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수아서 14장 12절 말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어려움도 어려움으로 느끼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 승리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일화집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국의 애버딘시를 방문했을때 목사님은 친구의 안내를 받아 이곳 저곳 볼 만한 곳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의 친구에게 여기는 빈민가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몇 군데 있는데 가보겠느냐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친구는 뒷 길로 목산님을 데리고 가더니 한참 가다가 3층 집을 가리켜 보이며 “저기 저 방이 보이죠. 전에 거기에 하나님의 훌륭한 한 여성도가 살고 있던 곳이랍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질병가운데 살았지만 항상 명랑한 웃음을 잊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으로 항상 빛나던 성도였습니다..” 하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전도자가 이 지역 고든 밋션에서 설교를 하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집을 찾아 왔더랍니다. 이 전도자가 방에 들어서니 그렇게 가난한 처지에도 화창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 그리스도께서 이곳을 방문해 주신다면서요.." 하고 묻자 이 성도는 "아냐. 아냐. 그건 틀린 말이야." 하고 대답하더랍니다.
이 할머니가 아마 가는 귀가 먹은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크게 한 번 더 크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똑같이 "아냐. 아냐. 그건 틀린 말이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전도자는 할머니의 귀가 먹은 것이 틀림없구나 생각하고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할머니. 그리스도께서 이 집을 방문하시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쳤답니다. 그러자 이 성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그건 틀린거야. 틀리고 말고. 그분은 지금 여기 살고 계셔"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는... 진정 하나님을 온전히 대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기위해서는 첫 번째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승리한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성공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잘 섬겨야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첫 번째 단추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든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해야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의 자세 둘째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자신을 방문했을 때 함께 있기를 기대하면서 발을 씻기고 쉬도록 요청했습니다.
중동지방의 문화가운데 발을 씻긴다는 것은 그 집에서 머물기 위해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발을 씻으면 이제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첫 번째로 하나님에게 요청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발을 씻으시도록 우리가 섬기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아브라함이 이 세 분을 하나님과 천사로 알았다면 물을 가져다주면서 ‘당신들이 씻으십시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동의 가장 극진한 대접의 한 방편으로 발을 씻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큰 대접입니다. 특별히 자신을 가장 낮추고 상대방을 가장 극진히 높이는 행위는 바로 발을 씻기는 행위입니다.
왜냐면 상대방을 발을 씻긴다는 것은 당신의 종들중에서도 최고로 낮은 종으로 나를 낮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너무나 죄송스러운 성경의 본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 15절입니다.
요 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 구절이 어떤 본문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성찬식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낮은 종들중에서 최고 낮은 종들이 하는 발을 씻기는 일을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하시며 내가 주인이나 스승으로 일컬음을 받지만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섬기며 낮아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명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아있던 초대교회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졌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0절에는 이런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사실 이 구절은 초대교회 당시에 과부를 도와야되는 의무가 교회에 있었고 과부등록부가 교회에 있었던 것을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홀어미를 돕는다고 모두 돕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그 나이가 되기 전까지 가정일과 손대접하는 일에 있어 귀한 열매가 있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 ‘과부’라는 명칭은 단순한 과부라고 보기보다는 현대적으로 바꾸면 ‘은퇴권사’정도로 바꾸어보면 너무 좋을 것같습니다.
‘시무권사’였을 때 선한 행실에 모범이 되고 자녀를 잘 양육하여 현모로 인정받고 성도들을 잘 섬기되 발을 씻길 정도로 섬겼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잘 도와주어서 구제하는 일에 힘썼던 참으로 선한 일의 모범이 되는 사람....
그런데, 이제 모든 일에서 은퇴하여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
너무나 귀한 사람들 아닙니까?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중에 홀로 지내는 사람을 물질적으로 도와주어야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저도 교회가 체계화되어지고 직분자를 세우게 되면 시무권사 교육과 은퇴권사를 세울 때 이런 원칙에 따라 훈련시키고 은퇴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헌신에 대해 말씀을 나누다보니 이런 말씀까지 나누게 되었는데요... 사실 남을 위해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그 당시는 더 합니다. 지금이야 이벤트형식으로 세족식을 하지만 그 당시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자기 집에 손님이 왔을 때 항상 발을 씻겨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 당시에 집에 들어가면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것은 매일 주인으로 종들에게 받는 당연한 대접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4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며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승리한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성공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잘 섬겨야합니다. 마음으로만 섬긴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섬김의 일을 해야 합니다. 돈으로만 섬긴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섬김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요즘은 교회의 직분이 섬김의 직분이 아니라 명예를 상징하는 직분이 되었습니다.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면 이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직분쯤되면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행사한다고 하면 어떻게 내가 봉사할까라는 생각전에 다른 사람들이 봉사하고 나는 찬조금, 후원금 좀 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단추는 섬기는 일을 찾아해야 합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 남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 그 일을 하고도 대접받지 못한다할지라도 꼭 그 일을 해야하는 일이 있다면 찾아서해야하는 것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참된 신앙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섬기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남들에게 그 일로 인해 대접받기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해주실 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봉사하시고 헌신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의 자세 셋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5절 상반절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아브라함은 떡으로 이 세분을 대접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육신의 양식이 우리 속에 들어가면 우리가 마음이 기뻐지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의 상태로 등장하신 하나님과 천사를 보며 육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는 심기가 날카로워지고 허기진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고통이 더해져서 정신상태가 혼란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런 해결책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사실, 이 세분은 하나님과 천사... 영적 존재이시기에 그런 해결책으로 마음과 정신상태가 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본 뜻... 어떻게 해서든지 대접하고 싶고 이 대접을 통해서 이들의 마음이 기쁨을 얻고 상쾌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그 마음을 받아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믿음이 없이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십니다. 사람들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열길 물속도 알고 한 길 사람속도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음없이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실 수 없습니다.
믿음이 뭐라고 성경에 나와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여주시고 상을 주신다는 것...
이것을 믿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나님께서 돈이 없으셔서 우리에게 십일조와 헌금을 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돈이 없이도 사실 수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를 주장하시기에 필요하시면 그냥 가져가시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헌금이나 재물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돈이 너무나 의미가 있다못해 어떤 사람은 돈을 하나님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나님 먼저 재물이 나중이면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물 처음 하나님 나중이면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앉아계십니까? 돈이 앉아있습니까?
우리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앉아계셔서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고 그 복음을 선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도 밖에 나가 아내를 자랑하면 아내가 기쁩니다. 밖에 나가 남편자랑하면 남편이 즐겁습니다. 아이들을 남들앞에서 세워주면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을 남들앞에서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된다면 그 사람을 남들앞에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는 예로부터 남들앞에서 자랑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었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남들앞에서 가족자랑, 자기자랑을 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부분은 그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을 자랑하고 우리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승리한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성공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잘 섬겨야합니다. 섬기는 원칙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이,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 열심이 하나님의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은 있는데 그 열심은 나의 명예를 높이고 나중에 나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우선적일 때 그것은 나의 기쁨이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섬김의 세 번째로 하나님의 기쁨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참된 섬김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 및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가 공동으로 ‘근대 초기 한국 선교 사진전’을 3월 22일부터 4월 9일까지 서울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전시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교회와 함께 한 연세 125년’을 주제로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미국 내에 소재하는 여섯 개 기관 문서보관소와 네 곳의 개인 콜렉션에서 수집한 사진 104점이 전시되고 있다. 조선왕조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1880년대~1940년대 초)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한 서양 선교사들과 그들의 신앙을 받아들인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은 희귀 사진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이며 연합신학대학원장인 정석환 박사는 이 사진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시되는 사진 한 장 한 장은 125년 전 선교사들의 봉사, 섬김, 희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선교의 참된 뜻이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다운 섬김이 어떤 것인지.. 참다운 헌신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 깨닫고 다짐해봅니다. 이번 한 주간 나만을 생각하며 나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살 것이 아니라 낮아지고 낮아져서 섬기는 섬김이 참된 신앙인의 섬김임을 깨닫고 복음을 위해 낮아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