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허무는 ‘새 존재’
본문 출애굽기 19: 5~6, 갈라디아서 3: 28/ 찬송 21 (다 찬양하여라), 259 (빛의 사자들이여), 279 (주 하나님의 사랑은)/ 교독문 1번. 시편 1편
1. 머리에
가을을 좋아하는 데다 공휴일도 많아서 저는 늘 10월을 반겼지만, 특히 10월 9일 한글날을 늘 뜻깊게 생각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삶의 경험이 다르니, 제 생각을 모두의 이야기로 묶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든 사람으로서, 일제 강탈기에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줄임말이라고 이해한 ‘국민’학교에 들어가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배워야 했던 세대입니다. 그렇다 보니 해방 후 한글 교과서를 처음 받아 들고 깊은 감회에 젖었던 기억이 있어, 여느 때에도 한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상층 중심의 한문에 맞서 일반 백성 중심의 한글로 성경을 옮겨놓은 그 의미도 늘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그 뒤로 한글만 쓰기를 내세우며 살다 보니, 제가 유별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 데는 이분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든 닿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한글 세상을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한 바로 그 주 시경 선생입니다. 그가 나신 지 150돌을 맞아 열릴 국제 학술 대회에, 한글학회가 제게 기조 발표를 맡겼습니다.
그동안 ‘위대한 주 시경 선생’을 전제하고 그의 문법 연구와 한글 펼치기 운동을 논해 왔지만, 그가 홀연히 주 시경 선생이 된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진공 상태에서 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서 저는 ‘주 시경’이 우리가 아는 ‘주 시경 선생’이 되는 과정에서 그에게 미친 영향력의 뿌리를 파헤치고자 했습니다.
저는 주 시경이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우리나라의 첫 근대 민립 학교인 배재학당에 들어가 만난 두 스승을 떠올렸습니다. 한글의 귀함을 꿰뚫어 본 선교사 헐버트 ‘선생’과, 한글로 신문을 내고자 한 선각자 서 재필 ‘선생’입니다. 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갈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주 시경의 마음에 깊은 정신을 심어준 참 스승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모든 차별을 떨쳐내야 한다는 ‘평등’의 얼이었고, 이는 개신교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터하여, 이 평등의 얼을 여러분과 함께 다시 새겨보고자 합니다.
2. 평등 얼 I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는 아메리카 동북부 버몬트주의 한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물세 살 되던 해 육영공원이라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다섯 해 반 동안 가르쳤고, 잠시 귀국했다가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와서 배재학당 선생으로, 교회 목사로, 감리교 출판사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우리 말글의 뛰어남을 알아차렸을 뿐 아니라 1891년, 세계의 자연과 문화, 역사와 사회 제도를 담은 최초의 순국문 교과서 「사(ᄉᆞ)민필지」(士民必知)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충격입니다. 양반과 상민을 가르는 것을 당연히 여긴 조선에 와서, 선비(士)와 백성(民) 모두가 ‘함께’ 읽고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을 제목으로 단 것은, 조선의 단단한 신분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 저항의 표현이자 선언이었습니다. 책 머리말에서 그는 양반과 평민의 장벽을 깸은 물론, 남녀의 구별도 허물었습니다.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는 일곱, 여덟 살 어린아이도 이런 것을 배운다면서, 세대의 담장까지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서 재필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갑신정변 직후 아메리카로 건너가 의사가 되어 일하다 개혁의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배재학당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130년 전인 1896년 4월 순 우리글로 된 <독립신문>을 창간했습니다. 그 창간호에 실은 논설은, 그 시대 전제를 뒤흔드는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한문을 단 한 글자도 쓰지 않고 국문만 사용해 ‘남녀노소 상하 귀천’ 가리지 않고 ‘다’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두 해째 새해 논설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남녀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한 가지로 창조하였다고도 하고는,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는 ‘동양 풍속’을 개탄할 일이라며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이후 무수한 애국지사들이 이러한 생각을 이어받아 마침내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보고, 저는 이 창간 논설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선언’으로 삼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평등 얼 II
주 시경이 새 배움터에서 선생으로 만난 헐버트와 서 재필이 표상한 이 평등의 얼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묻고, 저는 이에 답해보고자 했습니다.
헐버트가 감리교 선교사로 와서 일했으나, 그는 원래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이 교파는, 장로제도나 주교/감독제도를 두지 않고 모두가 ‘교회 모임’(회집)에서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결정하는 자치제를 내세웁니다. 아메리카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게 얽힌 이 회중교회의 ‘회중 중심’ 전통은 민주 자치 제도인 동시에 그들의 오랜 습속이기도 한 ‘타운 미팅’(town meeting)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풀이하며 지켜온 종교개혁의 정신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온 뒤, 조선 글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꿰뚫어 본 이 외국인은, 훌륭한 이 글이 ‘모두’의 글이 되지 못한 채 업신여김을 받는 현실을 답답히 여기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은 지극했으나, 유교의 신분 질서 그 자체를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양반이 쓰는 한자는 높이 우러러보고 일반 백성이 쓰는 국문/언문은 낮추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헐버트는 종교개혁 정신을 받아 회중교회가 품어온 만인 평등의 시선으로 조선의 뒤틀린 신분 질서를 바라보았습니다. 신분의 장벽이 그대로 문자의 이중구조와 계층화로 이어진 신분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서 재필도 아메리카에 살면서 띄어쓰기의 좋은 점을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모두가 한 가지 글자로 소통하는 평등 사회의 얼을 몸소 겪었습니다. 그는 신분의 칸막이를 허물고 모두가 나랏일의 당당한 주체로 참여하는 평등 사회를 일구지 않고서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없다는 굳건한 신념을 지켜왔습니다.
주 시경은 이들에게서 배우고 이들 곁에서 이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 신분의 차별을 깨부수는 평등 사회의 이치와 도리도 깨쳤습니다. 그도 국문으로 모두가 소통해야 한다는 평등의 얼을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은 양반을 위한 ‘진서’(참글)와 백성을 위한 ‘언문’(상글) 또는 여성들이나 쓰는 ‘암글’로 글과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갈라놓을 것이 아니라, ‘국문’ 그 하나로 겨레 ‘모두의 글’로 삼아야 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달말글,’ 우리 온 나라의 글 ‘한나라글,’ ‘오직 하나의 큰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로 부르자고 했습니다. ‘한글’에 담긴 얼은, 곧 불평등한 조선의 신분 질서를 뒤엎어버린,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고르게 사는 평등 세상을 향한 외침이자 결의였습니다.
4. ‘말씀’의 삶
지난 주일 이사야서 공부 때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개신교의 정신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말씀’의 증거자가 되어야 하지요. 예언자 이사야를 따라 그처럼 ‘말씀’을 외치는 자, 곧 ‘작은 이사야’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새기며, 우리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낸 ‘만인제사장론’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구약 본문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과 마주하며 말씀을 나누는 평등한 믿음의 세계를 일러줍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됩니다. 바꾸어 말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여기에 레위 지파가 따로 없고 아론의 자손이 따로 없습니다. 백성 모두가 ‘제사장 나라의 사람으로서’ 말씀의 증거자로 살아야 할 뿐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신약 본문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 자주 나누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기에(골로새서 3: 10-11), 사회 차별이나 문화 차별 따위는 완전히 사라져야 마땅합니다.
이 가르침이 19세기 끝자락에 조선 땅으로 들어오면서, 조선 사회가 정당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차별의 질서와 의식은 더 이상 정당하다고 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이 완고한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단호히 도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조선의 차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며, 마땅히 바꿔야 하고 저버려야 할 습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땅에 새 역사의 마당이 열렸습니다. 모두가 ‘말씀’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는 ‘깨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인간 평등의 얼을 이어받아, ‘양반은 한자, 백성은 언문’으로 가르는 문자의 신분제, 곧 문자의 이중구조와 계층화를 허물고 온 겨레가 한 글자로 소통하는 ‘한글 세상’을 열었습니다. 역사의 대전환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모두에게 알리는 ‘말씀’의 본뜻과 깊은 차원에서 결을 같이합니다. 라틴어라는 고전어에서 업신여긴 자국어로 거룩한 말씀 ‘성경’을 옮겨 모두가 읽도록 한 그 개신교의 전통에 따라, 선교사들도 한자 대신에 천대받던 언문으로 성경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 언문을 겨레 모두의 국문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만인 평등의 얼을 받아 조선의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한글 세상을 열었습니다.
5. 마치며
‘말씀’은 어떤 차별의 장벽도 무너뜨리는, 혁파하는 힘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칸막이를 치고 차별합니다. ‘말씀’은 이 칸막이를 들추어 보여주는 빛이며, 그 빛이 어둠의 세상을 밝히고 우리에게 새 존재로 살아갈 눈을 열어줍니다. 선각자들은 이처럼 차별을 허무는 새 존재의 얼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조선의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칸막이'를 세우고 있습니다. 학벌과 직업으로 사람을 등급 매기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가르며, 이념과 세대, 성별의 벽, 혈통과 국가의 굴레 안에 갇혀 삽니다.
우리는 '말씀의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의 칸막이를 들추어내며, ‘새 존재’로 살아가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랑과 존중으로 소통하는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우리의 삶터에서, 일터에서 일구어야 할 ‘새 존재’입니다.
<기도>
하나님,
말씀을 상속으로 받은
주님의 자녀답게
안팎의 세상 기준으로 가르는
이 땅의 차별,
이 삶의 차별,
허물길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