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 됩니다. 그렇다고 병원을 가거나 무슨 치료를 받거나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하는 사람은 실제 우울증은 아니라고 하니까요.
지난 여름은 유독 더웠습니다. 하긴 늙어 기력이 쇠약해진 탓도 있겠지요. 여름 석달을 참 힘겹게 견디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나니 아주 진이 빠져 영 기운을 차리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더욱 활동을 할 수가 없어 그저 힘없이 누워 지냈습니다. 그냥 내가 말라 죽어 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력이 없고 의욕이 없으니 자연 외출이 힘들었습니다. 삽상한 가을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들을 친구들은 카톡으로 연신 보내 주었습니다만 이런 저런 단풍 산행과 둘레길 트레킹, 가고 싶지만 마음 뿐, 아무데도 가지 못하였습니다. 자연 힘도 더 빠져 일어서 있는 것도 어지러워 누운둥이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니 우울감은 더 심해지지요.
법률상 와이프는 그저 한 집안에 거주할 뿐, 같은 집에 사는 사람 이상이 아니었고 역시 법률상 딸은 얼굴 본 지가 아무래도 10년은 가까이 된 것 같고 아들은 일 년에 서너 번 보니 일상생활에서 제일 문제가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몇날 며칠을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못하고 지내는 어려움은 만만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고립되어 그저 숨만 쉬며 지내게 되었지요.
자연히 대인 기피증이 생깁니다.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지만 여전히 목요산행ㅇ 연락이 오고 거북이 트레킹 콜이 오고 이런 저런 모임과 만남을 갖자는 연락이 옵니다만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슨 큰 과제처럼 부담스럽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만남과 사적인 관계가 두절됩니다. 히키코모리가 별건가요. 이게 그거지. 이렇게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은 상승작용을 하여 더욱 칩거 하게 만듭니다.
원래도 술을 좋아 하였던 터라 혼자 지내니 술을 마시게 되지요. 초기에는 이제 백세주 반 병을 마시다 점점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고 세 병이 됩니다. 백세주로 안되어 덕산 약주라는 게 백세주와 맛이 비슷한데 값이 훨씬 싸고 양도 거의 두 배 되어 그 것을 하루에 한 통, 두 통을 마십니다. 그리 장복을 하니 알콜 의존증이 생기지요. 아침 간신히 지나 열 시 쯤부터 란 잔 마시기 시작하여 밤까지 마십니다. 뭐 그렇다고 앉아서 줄창 마시는 건 아니고 한 잔 마시고 누워 있거나 할 일 하다가 깨어나면 또 한 잔 마시고 한 식으로 천천히 조금씩 마시는 것이 두어 통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기간 마시다 보니 이제 간이 나빠졌는지 아침에 구역질도 나고 몸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침 분당 서울대 병원 간경화 검진일이 다가와서 겁이나 얼마간이라도 술을 끊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알콜 의존증을 가볍게라도 앓아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이건 단기간이다, 병원에 입원한 셈 치자 끊임없이 되뇌면서 굼주를 힘겹게 이어가 어느덧 보름입니다. 금주를 시작하면서 당연히 금단 증상이 나타납니다.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프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어깨, 등이 뻐근하고, 몸살 걸린 듯하고 별의 별 증상이 다 나타납니다. 그래서 알콜 중독을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한다, 스스로는 술을 못 끊는다고들 합니다. 난 중독이 아주 심하진 않은지 그래도 보름은 스스로 버텨 왔습니다. 하긴 술 끊는 걸 도와 줄 가족들이 아니니 혼자가 아니면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나이 먹을수록 신세가 고단해 진다는 생각에 서글픔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이 모두 나의 업보. 내가 지은 업을 지금 돌려받는 것일 테지요. 내가 쌓은 죄를 결국 돌려받는 것일 겝니다. 참 인생은 오묘하고 신의 섭리는 너무나 정확하여 지은 죄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업보가 언제 소멸될지. 언제나 이 몸과 마음에 평안이 깃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