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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42쪽: 글자 수정
尹石重, “(다시 찾은 우리 새 명졀 어린이날)어린이 運動 先驅들 생각”, 『자유신문』, 1946.5.5.
“小波 간 지 十年이외다. 小波를 그리는 생각은 해가 갈수록 더 새롭습니다. 더구나 그와 가깝게 기대던 우리들의 마음은 여러 가지로 追憶이 새롭습니다. 어린이를 위하여 一生을 바치기로 約束하엿던 同志는 오늘에 그를 일코 뿔뿔이 헤젓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그 約束이 容易히 지어지지 못하고 잇습니다. 숨어서라도 어린사람의 幸福을 위하여 적은 努力이라도 잇슬 것입니다. 이런 點으로도 小波는 이즐 수 업습니다….” (『小波全集』 跋文의 一節)
이것은 崔泳柱 글이다. 그는 六年 前에 『小波全集』을 역거 내노코 昨年 正月 열이튼 날 小波의 뒤를 따라갓다. 忘憂里墓地를 지나는 사람이면 小波 무덤을 지키고 잇는 崔泳柱 무덤을 發見할 것이다.
“나를 무들 때는 小波 先生의 童話集 『사랑의 선물』과 내 『世界一週童話集』을 한대 무더 주시오….”
이것은 小波를 도아 十年 동안 밥을 굶다십히 하며 일과 싸운 微笑, 七年 前 五月 三日날 이 세상을 떠난 微笑 李定鎬의 마지막 遺言이엇다.
小波 가고 微笑 가고 崔泳柱 가고 申瑩澈 가고 歷代 『어린이』 主幹이 모조리 가고 지지난달에 靑吾마저 갓스니 『어린이』 緣故者로는 톡톡 털어 나 하나만이 남은 셈이다. 허전하기가 짝이 업다.
내가 皇民童謠, 戰爭童話의 성화 가튼 등쌀에 붓대를 굽히지 아니하고 버티어나올 수 잇섯슴은 小波의 힘이엇다.
“小波가 살앗다면 어찌햇슬까.”
“죽으면 죽엇지 이런 글은 안 썻슬 것이다.”
나는 이러케 自問自答하면서 心弱한 自己自身을 꾸지즈며 살아 왓다.
小波와 親히 지내던 이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면
“죽은 小波를 생각해서”
이 한마디로 和解가 되는 것이엇다. 小波는 갓스되 小波의 그 情熱과 小波의 그 어진 마음은 오히려 우리들 가슴속에서 용소슴치고 잇는 것이다.
○
監獄에서도 童話를 햇다는 小波다. 언젠가는 童話會場에서 두 눈을 부라리며 우루딱딱어리던 巡査 파수가 小波의 이야기에 陶醉되어 슬픈 대목에 가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는 逸話도 잇다.
지금쯤 小波가 살앗더라면…원통한 일이다.
○
小波는 사랑의 實踐者엿다.
울 줄도 우슬 줄도 모르는 無表情한 조선 어린이를 부등켜 안고 목 노하 울던 小波다. 그의 童話는 언제든지 슬펏고 그리고 또 언제든지 우수웟다. 가슴이 뭉클한 눈물과 가는이 뭉쿨한 우슴을 우리들은 小波에게서 배웟다. 그러나 不滿이 잇다. 울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조치마는 그러타고 해서 일부러 자꾸 울릴 必要는 업지 아니한가. 사실 小波는 눈물이 흔햇다. 자기 자식의 곪긴 데를 참아 애처로워서 재지 못하고 쩔쩔매 마음 弱한 外科醫와도 가탯다.
그러나 요즘 日本말을 쓴다고 해서 아이들 뺌따귀를 갈기는 國民學校 敎員이 잇다는 말을 들엇다. 이者야말로 日帝時代에 朝鮮말을 쓴다고 해서 뺌따귀를 갈기던 者임에 틀림업다.(日本 帝國主義의 殘滓란 이런 것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良心이 잇는 敎育者라면 아이들이 日本말을 쓸 때 아이의 뺌을 치기 전에 먼저 제 뺌을 처야 할 것이다. 그러케 만들어 논 것은 자기가 아니엇든가−
조선 어린이는 또 다시 사랑에 굶주려야 할 것인가. 이러한 천대와 모욕을 바더야만 할 것인가. 小波가 아쉽다. 그의 헤푼 눈물과 주체 못하던 사랑이 그립다.
(七月 二十三日인 小波의 十五週忌를 압두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143-144쪽: 글자 수정
馬海松, “(다시 찾은 우리 새 명졀 어린이날)어린이날과 方定煥 先生”, 『자유신문』, 1946.5.5.
一九二一年까지도 “어린이”라고는 부르지 안헛다. “어린내”, “애새끼” 地方에 딸아서는 “가시네”, “머스매”라고까지 불렀다.
一九二一年 가을 東京에서 工夫하고 잇던 몃 사람들이 모여서 兒童問題硏究團體 <색동會>를 組織햇다. 색동 꼿등 색동저고리의 색동이다.
늙은이 젊은이와 갓치 어린이라고 부름으로서 그 人格을 認定하자는 것으로 機關誌 『어린이』를 發行햇다. 『어린이』가 무엇이냐는 質問이 만았다. 마치 그 數年 前 崔南善 氏가 發行한 『아이들보이』를 “게으른 아이”, “理想少年” 等의 英語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던 것과 같았다.
『어린이』를 主幹하던 이가 小波 方定煥 씨엿다.
小波가 一九二三年 歸國하여 『어린이』에 全力을 쓰면서 提唱한 것이 “어린이날”이엇다.
一九二三年 五月 一日 第一日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는 우리 民族의 다음 代를 질머어진 사람이요 우리 民族이 잘되고 못 되고가 오로지 어린이들에게 달려 잇소. 어린이들을 어른의 노리개로부터 解放하고 그의 人格을 尊重하고 그 個性 發展을 圖謀합시다.” 이것이 어른들에게 부르짖은 말이오, 어린이들에게는 한 軍號가 잇엇으니 “씩々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서로 도읍고 사랑하는 소년이 됩시다.”
다음해 一九二四年 五月 一日 第二回 어린이날, 비로소 全國的으로 盛大히 擧行되엇다.
第一回 때는, <색동會>, <天道敎少年會>, 어린이社(開闢社) 等 一部 團體의 主催인 것 가튼 感이 잇엇기 때문에 第二回 때부터 <朝鮮少年運動協會>란 것을 組織해서 全體的인 少年運動을 展開하기로 햇다. 이 委員長이 方定煥 씨다.
總督府의 干涉이 업을 理 업엇다. 더욱 五月 一日은 ‘메-데-’다. 그 結果는 日本의 行事에 合流시키게 되엇으니 日本의 “母子愛護데−”인 五月 첫 공일로 된 까닭이 그것이다.
方定煥은 잘 싸웟다.
一九二四年 八月에는 全朝鮮少年指導者大會를 京城에 召集하야 색동會員의 硏究 發表가 있엇고 『어린이』에 發表된 童話 童謠는 全國을 風靡햇으니 小波의 <형제별>, <가을밤>, 尹克榮의 <반달>, 鄭淳哲의 <눈>, <까막잡기> 等 數十餘의 作曲은 只今도 京鄕에 愛唱되는 것이다.
또 小波의 童話口演은 到底히 그를 當할 이 없엇으니 어린이들을 울리고 웃키기 自在엿고 臨席 巡査를 울게 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엇다.
一九三一年 七月 二十三日, 三十三歲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全 生涯는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바첫다고 할 수 잇슬 것이다.
◇
나는 昨年 五月 十三日, <색동會> 同人들과 가치 그의 墓를 차젓다.
忘憂里墓地 山上 上峯, 그가 자고 잇는 墓前에는 同志 親舊들이 보낸 “童心如仙”이라고 彫刻한 自然石 碑石이 잇고 그 數步 下에는 그의 뒤를 딸흔 同人 崔泳柱의 墓가 잇서 感慨는 더욱 깁헛다.
거리낌 업시 마음껏 힘껏 “어린이날”을 지내게 되매 小波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 그의 軍號를 다시 한 번 외처 보자!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서로 도읍고 사랑하는 소년이 됩시다.
(사진은 고 방정환 선생)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544쪽: 글자 수정
朴泳鍾, “(新刊評)單純의 香氣−『굴렁쇠』의 讀後感”, 『聯合新聞』, 1949.2.5.
『굴렁쇠』를 읽었다. 尹石重 氏의 童謠를 익히 아는 바이나 그러나 다시 지나온 것을 選을 하여 한 卷에 모아 두고 보면 그것대로 다른 所感이 드는 것이다.
첫째 兒童의 本性에 대한 깊은 理解에서 오는 황홀한 詩의 世界이다. 例를 뽑아 보면
(중략)
어깨 너머로 배우는
어깨 너머 공부
남의 책으로 배우는
어깨 너머 공부
오며 가며 배우는
어깨 너머 공부(下略)
동무 동무 우리 동무 앞으로 앞으로 나란히 발을 맛처 앞으로 앞으로
한 눈을 팔지 말고 앞으로앞으로 (下略)
童謠에 있어 말이 아름답고 밝다는 것은 決定的인 것으로 童謠란 첨부터 깊이 생각는 것이기보다 좀 더 그냥 뜻 없으면서 맑고 깨긋한 拍子에 가까운 兒童의 몸짓이요, 律動이기 때문이다.
547-548쪽: 글자 수정
박영종, “동요를 뽑고 나서”, 『소학생』, 제65호, 1949년 3월호.
가물거리는 초롱불 밑에서 어린 동무들의 동시며 작문을 읽는 것은, 그 글 한 줄 한 귀마다 정이 솟아오르듯 정다워집니다. 이 말은 우선 그 분량이 많은데 놀랐읍니다. 많이들 공부하고 있구나 싶어, 내 마음이 웃줄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작품 가운데 썩 잘 지은 것이 드물었읍니다. 첫째로 「개울물」이 재미있읍니다. 가늘게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 턱(이상 48쪽)을 고이고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아기의 모양이 벌써 우리 앞에 선합니다. 뿐 아니라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바다까지 가보는 그 마음씨가 좋습니다.
다음은 「올빠미」가 좋았읍니다. 참으로 올빠미는 노란 눈을 하고 있읍니다.
「종이배」는 내가 만들었다는데 그 뜻이 있읍니다.
「옛궁궐」은 시(詩)입니다. 언제 보아도 문이 닫혀 있는 옛 궁궐,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을 잘 보았읍니다.
「오막살이」에서, 썩은 조리 한 자루가 걸려 있는 오막집, 참 오막집답습니다.(이상 49쪽)
박영종, “동요를 뽑고 나서”, 『소학생』, 제67호, 1949년 5월호.
「나비」는 참 재미납니다. 더욱 세째 줄,
비가 오면 고운 날개
어룽질까봐.
이 줄이 이 동요의 가장 잘된 곳입니다.
금빛 분가루가 소복히 덮인 그 가볍고 넓은 나비의 날개에 굵은 빗방울이 뚝 떨어져 커다란 어룽을 지워주었다 합시다. 그때의 나비의 슬픈 얼굴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읍니까?
「봄」은 참 농촌다운 봄의 정경이 잘 그려졌읍니다. 모래밭에 멧싹(봄풀이름, 잎이 세모 나고, 뿌리는 하얗고 연한 것을 뽑아 먹으면 달콤한 풀이지요)이 파래지는 봄, 알집을 자리를 찾아 수선을 떨며 지저귀는 산새의 흥성한 기분…… 그런 봄의 조용하면서도 만물이 흥성흥성한 기분이 잘 나타났읍니다.
547-548쪽: 글자 수정
박영종, “뽑고 나서”, 『소학생』, 제75호, 1950년 2월호.
여러분의 작품을 보아 온 것도, 세 돐이 되었읍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따쓰한 맘”이 스민 노래만 뽑으려 애썼읍니다. 다시 말하면, 동요보다, 여러분이 얼마만큼 “따쓰한 맘”을 가졌나, 그것만 보아 온 셈이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서 좋은 동요는 되지 않습니다. “따쓰한 맘”과 또 한 가지 “날카로운 느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는 해는, 그 날카로운 느낌을 주의해 보아서, 뽑겠읍니다.
☆
「연」은
“얼래에 감긴 실 모두 풀어 주께”란 구절에, 김 군의 따쓰한 맘이 나타나 있읍니다.
「얼음판」은 쓸쓸한 작품입니다. 아무 꾸밈없는 점이 좋았읍니다.
「어린 별」은 첫 절이 좋았읍니다. 그러나 끝 절은 일부러 꾸민 소리 같았읍니다.
「소나무」는 좀 평범합니다.(이상 39쪽)
630쪽: 판독 불가 글자 복원
朴仁範, “兒童作品 選擇에 對하야 父兄과 敎師에게”, 『자유신문』, 1949.5.5.
어린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듯는 것부터 始作되여서 그 趣味가 延長됨에 따라 讀書를 하게 되고 讀書慾이 發生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야말로 父兄이나 敎師는 優秀한 作品을 選擇해서 읽혀야 할 것은 勿論이다. 그러면 所謂 選擇하는 標準이 있어야 할 것이매 나의 見解를 말하고저 한다.
第一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는 空想이 豊富해야만 하겟다. 兒童들의 生活은 空想인 까닭이다. 卽 兒童들에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은 그 空想 속에서 自身들이 呼吸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아이들다운 空想이 豊富한 “이야기”는 그만큼 아이들의 歡喜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空想의 階段이 없이 그대로 곧 想像에 到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創意는 이 想像力이 비저내는 것이다. 解放 後 特히 模倣이 많은 假짜 世上이 된 것은 勿論 다른 理由로 많을 것이거니와 大體로 想像力의 缺乏한 理由가 큰 것이다.
國民學校에서 兒童들의 作文의 優劣을 分間하는 것은 卽 想像力의 有無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때 或 優秀한 作品이 있어서 “이것이 잘되었다.” 하고 提示하면 반듯이 다음 時間에는 모다 그것 비슷한 模倣한 作品이 쏟아진다는 學校 先生님의 말슴도 理解할 수 잇는 것이다.
想像力은 또한 趣味性을 맨드는 것이다. 元來 人間의 最高 情操인 道德的 感情과 審美的 感情이며 宗敎的 感情은 一時에 習得하거나 天才的 타잎에서 그렁저렁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豊富한 經驗과 特殊한 □性이 必要한 것이다. 想像力은 情緖를 情操로 發達케 하고 情操는 趣味를 낳는 것이다.
이와 같이 兒童文藝品이란 想像力을 培養하고 兒童 敎育上 實로 重大한 것이라 하겟거늘 아직 大體로 學校에서는 度外視 或은 等閑視함은 다만 敎科書에 依한 成績本位의 功利主義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全人格 完成이라는 가장 큰 뜻을 忘却한 까닭이라 하겟다.
第二로는 作品 全體的 構造를 考慮해서 調和統一된 作品이라야만 하겟다. 事件 配列이 兒童으로 하야금 肯定할 수 있는 調和統一이 잡힌 것이 아니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例를 들면 現社會를 背景으로 出發한 이야기가 어느 틈에 古代 風이 된다든가 하는 兒童들이 首肯할 수 없는 것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第三으로는 “이야기”의 □이 兒童 □性에 適應한 것이 않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心靈에 相當한 想像과 探究, 活動, 情緖, 律動을 包含하면 할수록 兒童들은 歡迎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特別히 생각해야 할 것은 現實社會를 背景으로 한 童話 卽 少年小說에 對한 것이다.
적어도 兒童 年齡이 十五六歲 以上을 對相으로 하고 作者는 執筆한 것인만큼 大槪 空想에서 떠나서 그야말로 리알이즘的인 作品이 많다. 그러면 十五六歲 되는 兒童의 心靈이란 어떤 것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極히 感受性이 銳敏한 때여서 한번 그릇된 讀物을 읽혀 놓은 後에는 다시 取消시키기가 極難한 것이란 말이다.
(朴仁範 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630쪽: 글자 수정
朴木月, “童謠 敎材論”, 『새교육』, 제2권 제5-6 합호, 조선교육연합회, 1949.9.
ㄱ. 童謠와 童詩
흔히 童謠와 童詩를 混同하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童謠는 그 本質에 있어 歌謠的인 것이며, 童詩는 좁은 뜻에 詩의 範疇에 屬하는 것이다. 너른 뜻에서 歌謠도 의례 詩라야 하는 것은 擧論할 바도 없이 當然한 것이나, 그러나 歌謠라면 이미 調律의 均整이 앞서는 대신에, 詩라면 調律이기보다는 詩精神이 앞서는 것이다.
(중략)
해서, 兒童作品과 所謂 童謠와는 그 빚어진 作品으로서는 거이 分間하기 어려운 共通性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共通된 世界는 兒童은 天性的인 絶對的 無意識的 한 개의 資質로써 나타나는 것이며, 이른바 童謠 作家인 詩人으로서는, 그의 混濁한 意識의 世界를 純化하므로 詩의 境地로써 兒童의 天性的 無意識的 絶對的 純粹한 世界를 肉迫하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兒童과 詩人의 靈의 交感이 나누어지며, 비로소 共鳴共感을 가지는 童謠의 世界가 열려지는 것이다.
658-661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朴仁範, “童話文學과 옛이야기(上)”, 『자유신문』, 1950.2.5.
“童話”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말이 아니다. 또 中國에서 생긴 말도 아니다. 筆者는 日本에서 이 말이 생겻다고 생각한다.
西洋에서는 ‘FAIRYE’ 或은 ‘FADLE’이라고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지금에 童話를 말하는 것이다.
이 “옛날이야기”를 文學이라는 말까지 붙이여서 硏究한 일이 우리나라 有史以來 李朝末期 其後까지도 없었다. 그렇다. 아직 世界 어디에도 童話文學의 體系와 組織이 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童話의 科學은 벌서 옛날이야기가 아니고 새로운 學問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在下者 有口無言”이란 在下者 속에 어린이까지 包含視하며 幼兒童 그 自體부터 대수롭지 않게 역이던 封建末期를 繼續해서 日帝 軍靴 밑에 五十音 假名을 배우노라니 大槪는 “옛날이야기”를 文學이라고 생각해 볼 餘暇도 없으려니와 이를 硏究하려 한 人士조차 極히 드물었던 것도 怪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던 이 따의 童話文學이 解放 以後 特히 近日 쏘다저 나오는 것을 보면 擧皆가 日本 少年文學에서 맛보던 口味로 飜譯 或은 急作히 模倣해서 日刊新聞에까지 連載하는 것을 볼 때 그야말로 一喜一悲하여 마지못한다.
童話를 硏究하는 人士들이 續出하는 것은 즐거운 現狀이나 其實 童話를 皮上的으로 簡單히 自解하는 程度로 接近하려는 人士 또한 數가 많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童話 硏究의 範圍가 너무도 廣汎함으로 그 起源, 歷史, 內容, 形式을 낯낯이 여기에 論擧할 수 없거니와 童話는 兒童心理와의 交涉만을 硏究하는 것만도 아니고 傳說學이나 言語學的으로만 硏究하는 것도 아니다. 勿論 敎育學的 應用價値와 藝術的 要素가 多分히 있어야 하지만 내가 여기에 한 마디로 말하고 싶은 것은 以上과 같이 모든 面으로부터 硏究 綜合하여 終末에는 未來를 暗示하는 卽 人生의 內容에 關한 許多한 暗示를 兒童들에게 주는 것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먼저 童話의 起源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敢히 헤아릴 수 없는 太古時代, 卽 人類의 交話本能이 始作될 때부터 童話는 發生한 것이라고 想像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人智의 수명期에는 벌서 훌늉한 形式을 갗우운 이야기가 생겻던 것이다. 이것이 다시 人智의 發達에 따라서 變貌 變色하고 發達하야 藝術的 要素와 道德的 要素가 附加케 된 것이다.
그러므로 童話는 南洋土人에게도 있고 서울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南洋土人의 兒童들이 좋아하는 童話를 이 나라의 兒童들에게 물려준다면 아이들은 반듯이 아모런 感興을 늣기지 안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土人들의 文化와 우리나라 文化와의 距離가 너무 엄청나게도 差異가 큰 關係가 아니면 아닐 것이다.
여기서 童話라면 “옛날이야기”라고만 速斷하고 그야말로 호랭이 담배 먹던 이야기를 함으로써 兒童들의 口邊에 微笑를 사고 滿足해서는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우에서 말한 바 土人들의 文化와 서울의 文化와의 距離가 假定 一百年의 差가 있다고 하면 卽 百年 前 兒童들에게 歡迎을 받던 童話는 現 原子世紀에 處한 兒童들에게서는 똑같은 歡迎을 期待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童話學上으로 時代를 區分해서 古典童話時代, 卽 印度의 說話, 희랍의 神話, 猶太神話, 아라비아 神話, 이솝寓話時代에서 口碑童話時代 卽 그림童話, 아스뾰룬 童話時代를 거처 藝術童話時代 卽 안델센童話時代로 變遷하여 오늘 科學童話時代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繼續)
朴仁範, “童話文學과 옛이야기(下)”, 『자유신문』, 1950.2.7.
여기서 讀者 中에는 ─ 이솝의 우話나 그림童話며 안델센의 童話 等은 無用之物인가 ─ 하고 疑아히 생각할 것이나 그런 말은 아니다. 硏究하는 사람들은 目的을 하야 深甚히 硏究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여 둔다. 大童話家 안델센도 在來의 口碑童話를 材料로 그 獨創力을 發揮하야 自身의 藝術로 순化시켰고 따라서 當時 卽 一世紀 前 一千八百年代에 宗敎的 思想이 高調될 때 그는 特히 純美하고 透徹한 情緖로써 輕妙한 유모어를 석거 가며 그 時代 사람들의 呼吸에 알맛게 맨드러낸 童話이므로 해서 當時 兒童들뿐만 아니라 大衆들을 悅光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世紀的 大名作인 안델센 童話도 現在 서울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안는다는 말이다.
童話文學이란 그 內容이 다른 一般 文藝品과 같은 思想과 情緖를 內包할 수 있거니와 童話文學만이 가진 特殊的인 點이 있는 것이다.
이 特殊的인 點이란 곧 超自然的 或은 超自然的 能力에 關한 空想인 것이다. 이 空想이 疾走하는 方向 이것이야말로 現世에 處하면서도 ‘안델센’ 時代로 돌아갈 수가 있고 더 以前 太古時代로도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空想이 가는 길은 곧과 때를 헤아리지 않는 까닭이다.
그만 이 小論도 여기서 끝을 마치겟거니와 童話의 이 特殊性에 依하여 活氣潑자하고 天眞란漫한 兒童들을 이끌고 大붕과 같이 大空으로 無邊大海로 雄大하고 壯快하게 나르며 그야말로 神秘的인 것과 情緖的인 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그런 空想에서만 끝마치고 말 때 情緖도 神秘도 모다 없어저버리고 그야말로 虛無孟浪한 것으로 떠러저버리고 마는 것을 알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近日 發表되는 童話作品 中에는 이 特殊的인 點만을 誇大視랄지 管見的이랄지 마치 書店에서 散賣하는 漫畵冊과 같은 傾向의 虛無孟浪한 “옛날이야기”가 많다.
虛無孟浪이란 藝術的이 아닌 同時에 宗敎的도 아모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이 童話文學의 特殊的인 空想을 어째서 그야말로 空想으로만 끌고 다니느냐는 말이다. 科學的인 要素가 潛在한 곧이 따로이 있는 것도 아니다.
蒼空, 구름, 山과 바다, 작은 벌레, 얇은 꽃잎에 이르기까지 얼마던지 科學的인 思想과 感情으로 兒童들의 어여뿐 파랑새와 같은 空想을 잇끌고 다닐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何必 機械의 齒車와 發動機 속이나 試驗管이나 큐라만을 말함도 아니다.
구태여 岩谷小波와 같이 未明과 같이 안델센처럼 쓰랴고 하다고 옛날이야기 중 빠저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童話文學은 “옛날이야기”로만 끝마치는 것이 아니고 未來를 暗示하는 人生의 內容에 關한 許多한 暗示를 兒童에게 주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들의 兒童들이 어서 하루바삐 자라야 하지 않겟는가. 그러나 書堂에서 글 배우고 科擧 보고 해서 立身揚名하기를 바라지 안는 反面에 유무라(湯村)도 좋다 노벨賞도 받고 아카데미賞도 받는 참新한 新世上을 創造하는 人間을 우리는 바라는 同時에 길러내야 한다.
童話文學은 이런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네 兒童들이 立脚한 位置를 알어야 하고 알어야 한다. 부는 바람이 東西南北 어느 바람인 것을 알어야 한다.
童話文學을 硏究하는 學徒들은 먼저 이 뜻을 품고 創作하여야 할 것이다.
안델센은 一千八百年代 사람이다.
童話文學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말해 둔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676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任元鎬, “(新刊評)다람쥐−金英一 童詩集”, 『조선일보』, 1950.3.22.
봄! 希望의 봄이다. 꽃 피는 잔디밭에 엄트는 버들 숲에 귀여운 다람쥐의 봄놀이도 흥겨우리라.
金英一 兄의 兒童自由詩集 『다람쥐』는 이 강산의 봄맞이 고운 선물이다.
그는 童謠文學의 새로운 領域을 開拓하였다. 아직 語調 本位의 우리 童謠 文壇에 이렇듯 童心本然의 感動的 리듬 自由律의 表現은 實로 驚異的이다. 그 嶄新한 構想과 奇妙한 手法은 極히 짤막한 세네 句로서 限 없는 詩情을 풍기게 하며 千斤의 餘興에 잠기게 한다.
765쪽: 판독 불가 글자 복원
社說, “어린이날을 마지하며”, 『자유신문』, 1946.5.5.
어리광을 부리고 어머니를 조르고 먹을 것을 달라는 것만이 어린이가 아니다. 우리는 조선의 아들이요 조선의 딸이다. 남달리 뒤떠러진 환경이기 더욱 새로워햐 할 것이오 남달리 약한 민족이기 한층 씩씩하여야 할 것이며 거짓과 포악한 구너력이 우리를 무서운 곳으로 모라 너흐랴 하는 까닭에 우리는 더욱 참되게 사러야 하겟다는 자각과 결심 아래서 처음으로 조선의 어린이가 단결의 위엄을 보인 날이 지금부터 二十二년 전 一九二二년 五월 一일이엇든 것이다. 그 후 매년 이날은 수정가치 맑고 강철가치 굿세고 풀솜가치 다정한 우리의 어린이들이 한 해 동안 지나온 모든 자기의 생활을 반성하고 마지하는 다음해를 준비하기 위하야 고요히 생각하고 마음것 뛰고 소리것 노래하든 그리운 명절의 하로가 되엇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십년의 전쟁을 통한 일본의 포악한 정치의 압박은 一九三七年 이 어린이의 명절까지도 직히지 못하게 하엿스며 우리의 어린이는 그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처지는 황민화 운동의 히생이 되야 말도 글도 옷조차 빼앗기고 서투른 생활양식에서 마음까지 주러드는 것 가튼 기막힌 십년이 지난 것이엇다. 그러나 황하의 넓은 물은 사막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 억세인 물결이 땅 미틀 숨어 흘러 끗끗내 바다로 가고야 만다고 한다. 아모리 무도한 권력이 어린이의 바른 생장을 조선의 새싹을 뭇지로랴 할지라도 결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八월 십오일 해방 이후 우리 어린이의 간직한 민족의 순정과 인간의 아름다움이 폭류와 가치 도라오고 잇는 것을 무엇이라 볼 것인가. 그들의 노래는 모든 과거 소년운동 투사의 전해 준 곡조이오 그들의 춤은 숨어서 피어 온 예술의 꼿이 아니엇든가. 어린이는 결코 어른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잇는 물건이 아니다. 더구나 올치 아니한 힘으로 그 자연스런 경향을 굽힐 수 잇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 생장의 법측을 이해하야 그에조차 이것을 인도할 수 잇는 것만이 어른이 할 수 잇는 양육의 길이다. 그들의 생각을 함부로 무시하고 어른의 위력으로 그들을 끄러가려는 무정한 어머니는 없는가. 별안간에 변화된 그들의 환경을 동정함이 업시 새로운 교육을 강요하는 선생님은 없는가. 우슴과 노래와 춤에서 모든 인간의 위력을 준비하는 이들의 생활을 이해함이 없이 점잔은 인물만을 만들랴는 완고한 선배는 없는가. 학교만이 공부하는 곳이란 진부한 견해에서 과외의 다른 양식을 부어줄 々 모르는 보호자는 없는가. 사랑과 이해와 리론적 근거에서 이들에 모든 새 생활을 지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건국 사업의 하나이다. 이들은 오는 날 조선의 주인이오 세게 역사의 새로운 건설자인 까닭이다. 이 새로운 어린이 지도의 결심이야말로 해방 후 처음 마지하는 어린이날에 그들에게 전하는 어른들의 위대한 첫 선물이 될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768쪽: 글자 수정
朴興珉 記, “(다시 찾은 우리 새 명졀 어린이날)어린이는 明日의 主人이요 새 朝鮮을 建設하는 生命, 오늘을 國慶日로 祝福하자”, 『자유신문』, 1946.5.5.
어린이는 다음 세대(世代)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란 곳 그 나라의 새싹이란 말이다.
싹은 성장(成長)하는 물체(物體)다. 성장하는 물체는 각굼을 요한다.
각굼 여하에 싹의 성장은 좌우되며 성장 여하로 열매는 좌우된다. 그러타면 조은 열매를 바랄진대 누구의 권고와 말을 듯지 아니하고라도 잘 각굴 것이다.
이 사실을 사람에게 비겨 보자.
어린이가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란 정의가 내려졌으면 어린이를 엇더케 길러야겟는가는 환-한 일이다.
잘 길러야겟다.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러타면 엇떠케 길느는 것이 잘 길느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헌대 문제를 문제시 아니 해 왓다.
이것이 또한 문제다.
그러든 中 이것을 문제시한 사람이 잇다.
故 小波 方定煥 氏다.
一九二二年 이분의 주창으로 어린이를 학대하지 말자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라는 슬로간을 내걸고 나타난 어린이날이 곳 그것이다.
그 후 日帝의 포악한 탄압 밋헤서 一九三七年까지 五월 첫 공일(처음엔 五月 一日)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어린이를 위해 가진 행사를 해 오다가 一九三七년 당시 총독 남차랑(南次郞)에게 성(姓)과 가치 빼앗기고 말엇다.
그 후 一九四五년 八월 十五일 연합군의 고마운 선물인 해방이 되고 그 후 처음으로 마지하는 어린이날 우리는 이날을
어린이를 애호합시다.
어린이를 학대하지 맙시다.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합시다.
등등의 슬로간 밋헤서 기형적이고 전체적이 되지 못하고 극소수의 부분적인 어린이날을 맨들고 십지 하니하다.
전체적이요 전국적인 실로 조선의 명절이오 어린이의 명절로 직히고 십고 직혀야 된다.
어린이가 다음 세대의 주인공일진대 다음 세대의 주인공의 명절이 엇지 어린이만의 명절일 것인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니도 누나도 똑 가튼 조선 사람이 아닌가.
다음 조선의 주인공들의 명절이 조선 사람 전부의 명절이 될 수 업다는 론리가 설 수 잇슬 것인가.
어린이날은 곳 이 나라의 명절이다.
틀림업는 이 나라의 명절이다. 과거를 기념하고저 하는 명절이 아니라 내일을 창조하자는 건설적인 명절이다.
학교도 공장도 은행도 회사도 관공서도 놀아야겟다. 일요일도 휴일이여든 국경일에 놀지 안는 론리가 잇슬 수 잇슬 것인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누나도 언니도 누구도 다 다음 세대 주인공의 날을 축복해야겟다.
하는 뜻에서 우리는 이날을 보수적인 의미에서 잇섯든 어린이날을 계승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서는 안 된다.
가장 진보적인 의미에서 이날을 어린이의 명절인 동시에 조선의 명절로 삼어야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첫 공일이란 비일자적(非日字的)인 어린이날로 하지 아니하고 이날은 국경일임으로 五월 五일을(어린이날 全國準備委員會에서) 어린이날로 정하고 항구적으로 직히기로 햇다.
이것은 조선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축성식히고 세계의 한 구성분자로 당々히 군림(君臨)코저 함에서이다.
또한 이것은 조선의 장래를 어린이에게서뿐 찻자는 뜻에서이기도 하다.
여기 해방 후 마지하는 어린이날의 정의는 선다.
═ 어린이날 全國準備委員會 提供 ═
(朴 興 珉 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769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李克魯, “(다시 찾은 우리 새 명졀 어린이날)純眞과 自然性과 聰明−훌륭한 朝鮮 少年少女 素質 알라”, 『자유신문』, 1946.5.5.
오늘은 해방 후 처음 맛는 어린이날입니다. 해방 후 신흥 기분으로 남여노소가 건국에 힘을 바치고 잇는 이때 특히 一년 중 가장 신선한 록음이 시작되는 이때 어린이날을 마지함은 가장 뜻깁흔 일이 아닐 수 업슴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요 가장 희망에 넘치는 국민입니다. 한 나라가 장차 위대하게 발전할려면 그 나라의 보배요 제二세 국민인 어린이들이 굿세고 쾌활하게 자라나야만 합니다. 우리 조선의 어린이들은 주위의 환경이라던가 기후 등 조건으로 보아 어떤 나라의 어린이들에게도 떠러지지 안케 훌륭히 될 소질을 가지엇습니다. 즉 조선의 어린이들은 아직 현대적 대도시의 살풍경한 분위기를 맛보지 못하고 대부분 소도시나 농촌에서 자라낫다는 점에서 순진하고 자연스럽고 총명합니다. 또 기후로 보아 세게 제一이라는 건강 기후의 지대에 살고 잇다는 점입니다. 이와 가치 악착스러운 인간성(人間性)에 물들지 안코 자연스럽고 순진하고 총명한 데다 기후가 조흔 곳에 살고 잇는 관게로 조선의 어린이들은 다른 선진 각국의 어린이들에 지지 안토록 훌륭하고 튼튼하게 자라날 수가 잇다는 것입니다. 그러타고 그대로 방임해 두지 안코 그 훌륭한 소질을 유지 향상식혀야만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이 소질을 억누르려 하엿스나 해방된 지금에는 우리 맘대로 거리김이 업시 나아갈 수가 잇게 된 것 또한 우리 어린이들의 큰 행복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아모쪼록 해방 조선의 신흥 기분을 따라 대자연 속에 원기왕성히 명랑하게 심신 향상에 힘쓰고 부모는 어린이를 기를 때 어린이의 마음을 마음으로 하야 생기 잇게 키워 주어야 하고 교육자나 사회 □반 각층 모다 어린이들에 대해 과거의 불합리한 압박을 시처 버리고 오른 길로 성장하도록 극력 조장하여야만 합니다. 오늘 어린이날을 마지함에 당하야 나는 어린이들의 명랑성 진취의 기상을 고창하고 십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770-771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李東珪, “(다시 찾은 우리 새 명졀 어린이날)어른의 손에서 매를 뺏어 버리자”, 『자유신문』, 1946.5.5.
이제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우리가 읽엇든 모든 것을 차저내 가고 허무러트렷든 것을 다시 세워 나가고 잇다.
우리가 일본의 압제로 말미아마 당연히 기념해야 할 날도 기념 못하고 다 가치 즐겨야 할 날도 즐기지 못하던 것을 다시 차저 기념하고 즐기게 되니 여러 가지로 감개도 깁고 그럴수록 더욱 굿세어저 민족과 나라의 힘이 크고 튼튼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더욱 느끼어진다.
우리는 며칠 전에 노동자의 날 메-데-를 성대히 기념하게 되엇고 이제 다시 이 어린이의 명절 “어린이날”을 차저 기념하게 되엇다. 메-데-는 전에도 허가 안 되어 행사를 못했지만 이 어린이날만은 조선서 유일하게 가두행진이 허가되어 해마다 성대히 거행되엇던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수만흔 소년소녀가 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던 일이 기억 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이 어린이날 기념조차 금지당하고 오월이 되면 조선의 소년들은 지나간 날을 회상하며 쓸쓸해젓던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마음 노코 이날을 기념하게 되엇고 어린이의 권리와 그 지위의 향상을 부르지즐 수 잇게 되엇다. 우리는 이날의 행사가 단순히 가두행진을 하는 것이나 어린이의 명절이라고 즐기는 데 끈치지 말고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소년들의 하나이엇던 조선의 소년들을 그 심악한 도덕적 인습에서 건저 내고 사회적 불행에서 구해내는 데 대해 전 민족에게 호소하고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완고한 우리의 도덕은 어린이는 절대로 어른에게 복종할 것과 눌려 지낼 것을 강요당햇고 그들은 무자비하다고 할 만큼 심한 억압적 교육을 밧으며 자라낫다. 위선 우리는 어른의 손에서 매를 빼아 꺽어 버려야 하며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선의 민중은 우리 소년들로 하야금 헐벗고 굶주리게 햇으며 만흔 소년 범죄자와 거리의 부랑아를 나게 하엿다.
그리고 수만흔 아동이 학교에 못 다니고 문맹의 상태에서 헤맷고 월사금 때문에 교문에서 추방되엇었다. 우리는 그들을 이런 사회적 불행에서 건저 낼 수 잇는 사회를 건설키 위해 싸우는 데까지 어린이날 행사를 관련시킬 것을 잇어서는 안 될 것이다.
═ 朝鮮文學家同盟 提供 ═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818-819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馬海松, “가난한 조선 어린이”, 『자유신문』, 1947.5.5
大體 ‘어린이날’을 制定한 意義는 어린이의 人格을 認定하자는 것과 어린이의 開城을 尊重하여 自由로운 發展을 圖謀하자는 것과 어린이를 下待 말고 解放하자는 것이엇는데 解放 後 어린이는 가장 虐待를 當하고 잇다. 맨 먼저 나온 敎科書 『초등국어교본』을 보라. ‘연필, 벼루, 비녀, 연꼿, 여우, 병아리’ 等 音感에 聯絡이 잇는 것도 아니요 物件에 關聯이 잇는 것도 아니요 어린이의 生活感情에 接觸이 잇는 것도 아니요 다만 ㅏ字 ㅑ字를 배우기 爲하여 아무 關聯 업는 名詞 單字 一百九十五個를 羅列해 노앗스니 編纂者의 意圖 如何는 問題가 아니다. 敎員은 本意에 업는 막대기를 들고 ‘외라!’고 외치지 안흘 수 업게 되엇고 어린애들은 또 自己의 日常生活에 아무 關係도 업고 興味도 업는 말을 외노라고 꿈결에도 ‘벼루, 비녀, 연꼿’의 막대기가 얼른거리게 되엇든 것이다. 이러케 名詞 一百九十五個를 외는 동안에 一學年을 보내게 되는 敎科書란 적어도 三十年來의 世界에 업는 異例의 敎科書일 것이다. 三十年 前에는 英語도 日語도 그러한 讀本이 或여 잇섯다.
◇
우리나라에 人才가 이다지도 가난하지는 안흐련만 『초등국어교본』을 첫손가락으로 市場에 汎濫한 어린이책의 가난함은 ‘가엽슨 조선의 어린이’를 생각하게 한다.
◇
國民學校 々庭에 騎馬巡査가 들어와서 한 學童은 負傷을 當하엿다. 그 現狀을 目擊한 어린이들의 平生 잇지 못할 놀나움은 이 亦 조선의 어린이에게만 잇슬 수 잇는 事實이다. 國民學校에 무슨 大事件이 잇든 間에 어린이가 모여 잇는 곳에 말을 달린다는 것보다 더 큰 大事件은 어느 나라에서도 차저 볼 수 업슬 것이다. 上學時間 下學時間에는 老警官들이 나와서 어린이들을 保護하기 爲하여 一切의 交通을 ─ 電車, 自轉車, 高官의 自動車건 消防自動車까지도 禁止시키는 일은 世界의 大部分의 나라의 事實인 것이다.
◇
아홉 살 된 아들이 여러 동무와 新聞紙를 찌저서 빠짱을 만들어 가지고 마루에서 빠짱치기를 하기에 아버지는 “先生님이 빠짱치기 해도 좃타시드냐?”
아들은 正直하게 對答하엿다.
“아니야요. 하지 말라구 하섯서요.”
그리고는 슬금슬금 박그로 다 나가버렷다. 박게 나간 아들은 門압헤서 ‘자치기’를 시작하엿다.
이것이 大體 어듸서부터 언제부터 시작된 작난인지 大端히 危險한 작난이다. 눈에 마진 아이도 본 일이 잇다.
“야− 자치기 하지 마라. 그게 다 무슨 작난이냐!”
떠들석하던 아이들은 조용해젓다. 아들은 큰소리를 질럿다. 참다못해서 나온 抗議다.
“그럼 난 무얼 가지고 놀란 말야요?” 우름 半이다.
아버지는 “음!” 하고 말이 막혓다.
◇
童話會를 한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求景 가서 놀란 이리 잇섯다.
한 時間쯤 느저서 老 司會者가 登場하는데 어린이 키만한 널판 한 개를 들고 나오더니 테불을 철석 세 번 치고 “자− 只今부터……” 또 두 번 치고 “떠들지 마라.” 또 서너 번 치는 데는 놀라지 안흘 수 업섯다. 웃지 못할 事實이나 웃지 안흘 수 업섯다. 여럿이 우섯다. 그러니 靜肅할 理가 업섯다. 그러나 司會者가 몃 만듸 하고 물러서고 十三四歲 되는 少女가 登場하여 童話를 시작하니 갑작이 場內는 씨슨 듯이 조용하여젓다.
◇
疾風에 知勁草.
바람이 셀 때 굿센 풀을 알 수가 잇다.
가난한 조선의 어린이!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오히려 씩々하고 굿세게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 가장 뒤떠러진 우리들로 하여금 하로 速히 압서게 하노라고 이러한 不遇와 逆境이 잇는 줄로 우리들은 생각하자!
씩々하고 참된 少年이 됩시다. 그리고 서로 도읍고 사랑하는 少年이 됩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자료를 새로 제공해 주어 위 글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
824쪽: 빠진 글자 추가
朝鮮少年運動中央協議會 어린이날準備委員會 提供 K記者 述, “五月 五日은 ‘어린이날’−‘어린이날’의 意義와 그 由來”, 『婦人新報』, 1948.5.4.
봉건사회(封建社會)의 악페(惡弊) 중에서도 그중 제일 낫뿐 악페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곳 “발전할 것을 모르는 것이며 또 발전하여 가는 것을 방해하는” 언습이였다.
하로(一日)만 만족하게 할 줄 알앗지 내일을 행복하게 만들고저 준비하는 일은 없섯다.
다음 세대(世代)에 대한 인식이 없는 까닭으로 다음 세기(世紀)의 일꾼인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이하고 일종의 “노리개”와 같이 역여 왓다. “在下者는 有口無言”이라 하여 어린사람은 정당한 일을 할내야 할 수 없게 되였다.
853-855쪽: 글자 수정
社說, “어린이날”, 『자유신문』, 1950.5.5.
제 二十八년 어린이날이 왓읍니다. 우리나라 명절이요 어린이의 명절 “어린날”은 다시 왔건만 세계는 소란하고 우리의 살림사리는 가난하고 어린이는 기운 없이 이날을 마지하게 되어서 저윽이 섭섭하게 생각됨니다.
二十八년 전 五月 一日 첫째 번 어린이날만 하여도 왼 장안 소학생들은 기를 흔들고 노래 소리 높이 부르며 씩씩하게 행진도 하고 여기저기서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모임이 있어서 어린이들은 하루 종일을 흥겨웁게 놀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까닭으로 어린이날을 정했느냐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다음의 두어 가지를 들어서 말할 수 있읍니다.
첫재, 어린이는 새 사람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어린이는 그의 새싹인 새 사람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살아 내려온 역사의 북도듬을 받아서 새로 싹튼 새 사람입니다.
본보기를 하나 들어보면 우리나라 “역사”는 읽기 쉬웁게 역근 것이 없었고 더욱이 일제가 많이 불질러서 없새 버렸으므로 여러 학자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가면서 올코 바른 우리 역사를 역거 놓으려고 한평생을 바쳤읍니다.
여러 사람이 일생을 바처서 역거 농은 “국사”는 시방은 한 권 책이 되어서 새 사람인 소학생들은 단 一년 동안에 배울 수 있고 그 위에서 옳고 바르게 살아 나가는 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이나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년 걸려서 이루어진 그런 것을 가장 짤븐 시간으로 몸에 지닌 수 있고 그 위에 더욱 진보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니 새 사람이란 언제다 어른보다 새롭고 진보 되고 앞선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이가 훌륭한 나라는 흥하고 어린이가 못생긴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三十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란 어룬들의 노리개나 작난깜으로 귀여움을 받거나 그러지 않으면 욕먹고 매 맞고 구박 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린이는 새 사람”이니 사람대접을 하고 잘 배우고 잘 놀아서 씩씩한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할 것과 그 어린이의 뛰어난 장기를 무럭무럭 자라게 키워주도록 하자는 것이었읍니다.
둘째로 어린이들에게 부탁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뭇질르고 우리의 역사의 문화와 예술까지도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하었고 우리들은 절대로 자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서 다른 나라에 나가서는 독립운동도 할 수 있었지만 나라 안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엇읍니다. 더욱이 어린이들은 일본 사람 선생들이 일본말을 가리키고 그 정신을 넣어 주려고 힘씻기 때문에 “아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 민족의 아들딸이요 우리의 다음 대를 질머진 사람”이란 것을 알도록 해 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훌륭한 민족이란 것과 우리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나라와 땅을 찾아서 독립해야겠다는 것과 그러케 하기 위해서는 시방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일이니 우리들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너희들이 게속해서 잊지 말고 힘써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식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서로 도읍고 사랑하는 소년이 됩시다”라는 구호를 외처서 우리 민족은 서로 사랑하고 도읍고 한테 뭉처서 더욱 훌륭한 민족이 되고 나라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부탁을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을 정한 지 二十八년째 되는 어린이날을 마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해방이 되어 독립국가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서로 도읍고 사랑하며 한데 뭉처야 할 민족은 남북으로 갈려 있고 살림사리는 대단히 가난합니다. 거리로 밥을 얻으러 댕기는 어린이, 구두 닥는 어린이, 신문 파는 어린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와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음 대 곧 새 사람인 어린이에게 달려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가난해서야 어찌하겠읍니까. 그러나 낙심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어른은 낙심하는 대도 있지만 어린이는 절대로 낙심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뽀스돈 마라손 대회에서 우승해서 세계에 이름을 날린 함기용 선수, 송길윤 선수, 최윤칠 선수, 또 서윤복, 손기정 여러분도 한결같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없읍니다. 모두 가난한 집에서 자라난 이 사람들이 민족의 이름을 높이 떨치게 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시방 살림사리가 가난하다고 지처서 너머져서는 아니 됩니다. 지처서 너머지고 낙심하는 어른이 있다면 오히려 어린이들이 힘을 도다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히망을 가지고 꿋꿋하게 씩씩하게 살아나가고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훌륭한 세상을 만드는 일꾼이 되기를 맹세하는 마음으로 이번 어린이날을 마지한다면 크고 뜻깊은 일일 것입니다.
1163쪽: 글자 수정
南夕鍾, “(兒童文學講座, 3)兒童自由詩란 무엇인가”, 『아이생활』, 1935년 1월호.
‘아동자유시’라는 것은 항상 우리가 지상에서 보는 ‘동시’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동자유시’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간단이 말하자면 아동시(兒童詩) 가운대 ‘동요’라는 것이 글자를 마쳐서 운률화(韻律化)한 것인 반면 글자를 마치지 않고 자유로히 적은 노래를 일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요’는 운률적 기술(韻律的 技術)을 필요로 하는 것이요 ‘아동자유시’는 아모 기술도 필요치 안습니다. 그러므로 동요는 운률적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생생한 의사, 감정을 표현하는대 얼마쯤 붓에 구속(拘束)을 받게 되여 자유로히 감정을 전부 (한 줄 탈락) 있어선 그런 결함이 없고 얼마든지 자유로히 자기의 의사, 감정을 그려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유로히 적은 것이면 전부 ‘자유시’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중 어떤 동무가 남선 지방 수재(南鮮地方水災)에 동정금을 보냈다 합시다. 그러면 그 동정금을 보내고 난 감상을 노래로 적어보는 것인대 같은 제목(題目)을 가지고서라도 ‘동요’로도 쓸 수 있고 ‘자유시’로도 쓸 수 있읍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선 ‘동요’보다 ‘자유시’가 쓰기에 퍽 수월하고 글이 잘될 것입니다. (7∼8자가량 탈락) 여러분들에게 ‘자유시’를 그리 장려 안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나는 철저히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또 따라서 나 자신도 이 ‘아동자유시’ 운동에 앞잡이가 되여 나그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대개 동요만을 지으려는 경향이 만습니다. 언제고 남의 모방만 할여고 생각 말고 독창적으로 아직 조선에 드믄 ‘아동자유시’를 짓기에 노력해 보십시요.
노래를 짓는다는 것은 장래 어른이 되여 꼭 시인(詩人)이 되겠다는 뜻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지으면 자연히 자기 자신의 현재의 생활 혹은 미래의 생활도 아름다워저 가는 것입니다.
이곳에 ‘아동자유시’를 몇 편 소개하겠읍니다. 가령 「한울」이란 제목으로 ‘자유시’를 하나 적어본다면
1178쪽: 색인 내용 수정
金哲洙(김철수) 219, 220, 221, 222, 223, 224, 225, 226, 227, 229, 230, 231, 233, 234, 236, 237, 239, 240, 242, 277, 625, 651, 652, 654
金泰晳(김태석) 258, 740, 745
金泰午(김태오) 517, 804, 837, 861, 894, 906, 929, 1011, 1057, 1070
金泰哲 → 金泰晳(김태석)
金河明(김하명) 217, 244, 265
김현록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