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리 랑
어느 지인(知人)이 아리랑의 노랫말에 대해 물어왔다.
우리가 본래 심성 착한 민족인데 떠나는 임에 대해
심한 저주를 퍼붓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민요 '아리랑')
설운 임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고려가요 ‘가시리’)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꼿’)
이 세 편 이별가에서는 모두 임에 대한 원망이나 저주라기보다
역설적이고 반어적 어법의 은근한 사랑의 표현이다.
뒤따라가 붙잡고 애원하는 적극적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아픔을 혼자서 새김질하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모습이 우리네 전통적 사랑이었다.
발병이 나면 멀리 가지 못하고 내게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임에 대한 기다림과 하소연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한민족의 대표적 민요이면서
대외적으로 우리 한국을 상징하는 노래 - 아리랑.
그 가락이 단순하고도 쉽기에 누구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노랫말 또한 한민족 고유 정서인 정(情)과 한(恨)이
넘쳐흐르기에 우리들 가슴에 촉촉이 적셔든다.
아리랑의 이런저런 다양한 연주곡들을 골라 듣노라면
가슴 속 저 밑바닥으로부터 애잔한 응어리가
소용돌이로 밀고 올라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면 ‘아리랑’의 유래와 어원이 어떻게 될까.
정선아리랑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고 심심산골로 들어온「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이
망국한을 노래하면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아리랑의 연원을 600여 년으로 거슬러 오를 수 있다.
3대 아리랑인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모두에서 ‘아리아리’ ‘ 쓰리쓰리’ ‘아리랑’ 등의
표현이 나타나는 바, 아리랑의 유래는 상당히
오래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리랑’ 그 어원을 살펴보면
박혁거세 김알지 등 난생설화의 ‘알(卵)’이라든가
한자어 ‘아리롱(啞耳哢)’ 등, 다양한 설이 있는데
모두 근거가 희박한 견강부회의 주장들이다.
국어학적인 관점에서 유추보면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후렴인
‘얄리얄리얄랑성 얄라리 얄라 ’ 이나,
아리랑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에서 보듯
‘ㄹ: (유음 流音)’ 과 ‘ㅇ: 비음鼻音)’이 어우러지면
물이 흘러가듯 매끄럽고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굴러가는소리와 콧소리의 울림이 음악성을 더해주는 것이다.
모두가 후렴이란 점에서 어떤 의미있는 언어가 아니고,
단지 노래의 효과를 위한 여흥구에 불과한 소리다.
‘쓰리랑’ 역시 ‘아리랑’의 댓구로 흥얼대는 여음이다.
민요는 지식계층에서 시작된 노래가 아니고
기층민인 민초들의 일상에서 생활 감정을 자유롭게
부른 노래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군중의식이 깃들어 있다.
그러기에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성정과 애환이
내포된 노래다.
1900년대 초 멕시코의 사탕수수밭으로 떠난 애니깽들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 속에 불렀던 망향가이고
1937년 엄동설한에 소련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망국민의 고통과 슬픔 속에 불렀던 겨레혼이 담긴 노래다.
1926년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에서
주제가로 불리면서 더욱 멀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암흑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만주 벌판을 헤매던
독립군들이 고통 속에 절규하며 불렀던 영혼의 노래,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면면히 명맥을 이어온
겨레의 노래, 아리랑 -
세계 각처 한민족 모두의 입에서 입으로
영원무궁 불릴지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