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아 안녕.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너의 편지를 읽고 드는 생각들이 있어서 답장을 쓰기 시작했어.
‘읽어야 할 의무’라는 말이 와닿았는데, 오늘 <아무튼 출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남형도 기자님이라는 분이 나오시더라고. ‘남기자의 체헐리즘’이라는 것을 연재하시는데, 본인이 직접 체험해보고 느낀 점에 대해서 글을 쓰시는 분이더라구. 예능에서 1m 목줄에 매여 사는 시골개 체험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진짜 나였다면 어땠을까 감정이입이 많이 되고, 산책하자고 하니까 기뻐하던 멍순이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짠하고 눈물이 나더라. 이거 외에도 장애인 휠체어 체험부터 브래지어, 치마 입고 다니는 체험까지 다양한 체험을 하셨더라. 네가 쓴 것처럼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고 함께 아파하는 건 참 어려운 일’ 인데 이 분의 글을 읽으면 직접 체험한 것처럼 느껴져서 좋은 것 같아.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뭔가 읽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 있던 상황에서도 꾸준히 기사를 누르고 글을 읽고 생각했지.’ 라고 쓴 부분도 와닿았는데 다들 핸드폰을 붙들고 살잖아. 퇴근하고 지쳐있는 와중에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나를 보게돼. 그리고 예전에 우리는 늘 텍스트를 읽으면서 정보를 습득했는데, 지금은 다들 텍스트 보다는 영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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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녕! 책을 다 읽고 다시 나타났다 ㅎㅎ
지난주 주말에 책은 다 읽었는데 편지를 바로 못 썼어 ㅠㅠ 다 읽고 나서 좀 생각이 많기도 하고 사실 생각이 정리가 안 되었었는데, 너가 쓴 만남 후기글을 읽고 뭔가 마음이 좋았어! 사소한 만남과 대화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걸 의미있게 기록해준 것이 좋았고, 또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게 멋져 보였어!
나는 널 처음 만났던 중학교 때부터 늘 뭔가를 쓰고 기록하는 너의 모습이 보기 좋았어! 너가 쓴 글에서 ‘기록 생활자’라는 말은 처음 본건데도 내가 느끼기에 너는 이미 ‘기록 생활자’가 되어 있는 것 같아. 계속 뭔가를 쓰고 싶고 또 이렇게 만남 후기를 기록으로 남겨주고, 앞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너가 대단해! 나는 사실 뭔가 하나에 이렇게 오래 욕심을 가지고 하고 싶다는 생각은 못해봐서 그런지, 우리 학창시절부터 지금 서른이 넘도록까지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 것 같아! 그리고 최근에 우리가 각자 생업으로 지치고 피곤하지만 어떤 걸 하고 싶은지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몸은 지쳐도 마음만은 포기하지말고 쭉 가지고 있으면 조금씩 작은 성과를 이루고 앞으로 더 나날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나 사실 지금 좀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인정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람은 왜 인정받고 싶어하나>라는 책이 책상에 보인다..ㅎㅎ 너한테도 공유했던 것처럼 ‘지금의 세상’이라는 서점에 온 손님들이 벽에 고민을 하나씩 포스트잇으로 붙이고 가면 서점주인장이 매주 하나 선정해서 고민에 대한 책을 추천해주는데 이번주에 올라온 게 내 고민이더라구! 신기했어 ㅋㅋ 퇴근길에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는데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 올라오길래 봤더니 내 고민이었어! 내 고민이 뭐였냐면, ‘싫은 소리를 듣기 너무 힘들어요. 칭찬만 듣고 잘하고 싶어요’ 라고 적었었어. 너도 글에 대한 욕심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그래서 이 책을 다음 책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아! (생각보다 책이 얇아서 상반기 생업에 지쳐버려서 휴식이 필요한 우리에게 적당할 것도 같아 ㅎㅎ 이 책이 우리 방학 전 마지막 책이야! 방학 후에 리프레시 해서 두꺼운 책도 읽어보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책이었던 <멀고도 가까운>에 대해 얘기해볼까해. 오늘은 토요일인데 아까는 헬스PT 받고 비가 너무 쏟아져서 주말에 비가 왜 이렇게 오나 했는데, 지금은 샤워하고 밥먹고 책상 안에 밖에 내리는 빗소리 들으니까 괜히 센치하니 좋네 ㅎㅎ 이런 센치한 감정 살려서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를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지만 글 문장 하나하나가 좋다는 느낌은 들었어. 뭔가 다시 읽고 음미하게 되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고! 다만 지난 주에 이 책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도대체 뭘까. 목차가 살구로 시작해서 거울 그리고 얼음, 비행, 숨을 거쳐 감다, 매듭, 풀다 그리고 다시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로 돌아오는데 나는 늘 책을 볼때 목차를 보는데 처음에 이걸 보고 목차를 이렇게 한 데는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뭔가가 있겠지 목적이 있겠지 했었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p.13) 라는 문장으로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해. ‘살구’를 화두로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거울’에서는 백설공주 얘기처럼 자신을 질투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남성의 관심으로 결정되는 가치의 유무에 대한 이야기,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형화 되어버린 시선에 의해 갇힌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더 광활함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저자의 이야기가 있었어. 여기서 저자의 좌우명이 된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p.58)도 난 좋았고, 또 ‘나는 내 안에 있던 어머니의 목소리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p.57)라는 문장도 와닿었어. 유년시절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영향력을 나에게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 그래서인지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의 결정에서 많은 부분 부모님의 영향 아니 부모님에 대한 내 생각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 막상 부모님은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뭔가를 선택할 때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까를 생각했었 던 것 같아. 이걸 깨달은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른이 되었을 때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야겠다 생각했어. 무슨 결정을 하든 내가 결정한 건 힘들어도 내가 힘들고 즐거워도 내가 즐거운 일이니, 내가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을 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에 물어보게 되었어. 요새도 늘 뭔가 결정할 때 나 스스로에게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게 뭔지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 같아.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렇게 하고 나서부터 훨씬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
다음으로 ‘얼음’에서부터 나는 조금씩 혼란스러워졌어. 사실 ‘살구’와 ‘거울’까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나보다 생각했었거든. 근데 ‘얼음’에서 갑자기 북극이 나오고 <프랑케슈타인> 이야기를 하고 메리 셸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러더니 ‘비행’에서는 우다오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도서관, 책, 이야기… 를 하더니 남자친구와 위기, 아이슬란드에서 온 전화, 끝내 ‘나의 문장으로 만든 문을 통해 걸어갈 예정’(p.116)이라고 하니 뭔가 이렇게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건가 싶고 흐름이 연결되긴 하네 싶고 그랬어.
‘숨’으로 넘어가서 다시 살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저자가 쓴 편지에서 “마치 내 인생과 비슷한 것 같아. 이 살구 더미 말이야. 너무 많아서 다른 상황이었다면 엄격하게 추려서 솎아 줘야 했겠지만, 지금은 진액이 방바닥에 흘러나오고 냄새까지 나면서 조금 역겨워지고 있거든. 마치 덩어리 전체가 나의 유기체가 된 것 같아. 악취가 나는 덩어리가 살구 점령군처럼 계속 늘어나면서, 마치 자신만의 규율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아. 이제 썩은 녀석들을 골라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라고 해. 당시에 저자의 마음 상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살구로 표현하는구나 싶었지만, 나는 사실 속으로 예술하는 사람이라 예민한 편인가 나도 예민하긴 하지만 그놈의 살구.. 그냥 차라리 버리고 보지 말지 싶기도 했어.
살구를 보관하고 절임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더니, 병원에 가서 유방엑스선 사진을 찍고
암일 수도 있는 세포를 발견했다는 얘기로 이어지더라.
‘감다’에서는 체 게바라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마주치게 되었던 나환자촌 이야기, 오히려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 자아의 경계를 확장 시키는 감정이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매듭’에서는 본인이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의사와의 관계, 지인들과의 관계와 호의, 서로 빚을 지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유지되는 공동체 이야기, 절여둔 살구를 나누는 이야기, “수시로 타인에게 관심을 둠으로써 어떤 관점을 얻을 수 있으며, 당신이 겪은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보며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발견하고 힘을 얻을 수도 있다.”(p.190)에서 관계와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
‘풀다’에서 저자는 아이슬란드로 가는데 이전에 나왔던 북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로 돌아온다. 점점더 악화된 어머니의 상태와 저자 자신의 마음 변화와 살구에 대한 생각 변화를 이야기해.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혼란스러웠던 나를 돌아보며 지금 드는 생각은 이 책에서 저자는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자기가 중점적으로 보는 것에 감정이입하고 그 포인트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 후기가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데, 옮긴이는 2013년 가을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서점에서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됐고 이렇게 번역까지 하게 되었는데 번역자가 읽고 싶었던 말은 “이야기가 ‘화해’의 방법일 수 있다는… 감정이입이란 같은 경험을 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어휘를 알아 가는 것은, 내 안에 있던 어떤 어휘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타인의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내 이야기의 일부를 비워 내는 것. 그렇게 타인의 어휘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커진 경계 안에 나를 발견하는 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pp.378-379)
번역자 후기를 읽고 좀더 명확해지는 부분은 저자가 다양하게 했던 이야기들. 한 가지 명확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나에게는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지만, 각자의 이야기들에 숨은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 저자에게 ‘살구’가 어떤 의미였는지, 메리 셸리에게 ‘냉기’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살구를 보게 되면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가게 되면 이 책에서 받은 그들의 이야기가 그 의미가 떠오를 것 같아.
다인아, 너와 이렇게 <사색하는 여자둘>이라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너가 아니었다면 읽어보지 않았을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서 좋은 것 같아. 이 책은 읽는 내내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아 나에겐 어려웠지만, 다 읽고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오히려 정리가 되는 것 같네. 이렇게 읽고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나에게 줘서 다시 한 번 고맙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왔던 ‘이야기’라는 단어를 볼 때 마다 나는 널 생각했어. ‘기록 생활자’가 되고 싶다는 네가 대단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늘 멋진 것 같아! 글을 쓰는 너의 기쁨 평생 잃지 말고 소중히 간직해서 나에게 수신해줘. 나는 너의 글을 읽는게 기쁘고 즐거우니까!
쓰다보니 어느새 4페이지네. 글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이만 마무리하려는 지금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어. 주말 내내 오려나봐. 집에서 듣는 빗소리가 듣기가 좋다. 남은 5월 잘 보내고 우리 6월에 파란 하늘에 푸른 잔디밭 그려진 힐링 사진이 있는 소설 <우리의 사람들>로 다시 만나자. 그럼 이만!
2021.05.15
비 오는 주말 저녁 보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