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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문경 280랠리 여섯 번째 완주기
(비단길, 그리고 흡혈(吸血)길과 처녀귀신)
1. 승부의 변수
나는 인생을 승부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승부를 회피하며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욕심의 마음줄을 가급적 느슨하게 풀어놓고 살고 싶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고마워하며 최대한 만족한 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돌이켜볼수록 삶은 카오스(khaos)와 엔트로피(Entropy)로 가득 찬 세계이다. 우리는 언제나 체력과 기술 혹은 돈과 사회적 지위 등의 상수(常數)를 채우거나 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상수를 튼튼히 하는 일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러나 승부에는 항상 변수가 작용한다. 그리고 이놈의 변수에는 예측 가능한 것도 많이 있지만 예상하지 못했거나 때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서 그놈들은 마치 동짓달에 팥죽 끓듯 언제든 어디에서든 종잡을 길 없이 끓어오르고 튀어 오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변수를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가변적 융통성과 에너지도 대개 상수로부터 나오는 듯싶다. 평소에 갈고 닦고 저축해 놓았던 상수의 에너지가 변수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열심히 살면서 상수를 튼튼히 하고 채우는 일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첫 출전이었던 11회 정선 랠리에서는 참가 자체가 변수였다. 11회 때까지는 1인 참가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자전거에 입문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왕초보가 함께 참가할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인터넷 상에 요상한 구인광고를 게시하면서 나의 280랠리는 시작되었다. 그 때 맺은 조약돌과 소이 형님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12회 예산 랠리에서는 태풍 메아리와 여름철의 살인적인 밤 추위가 가장 큰 변수였다. 북계리에 도착해서부터 유구임도를 거쳐 최대 난코스였던 국사봉 싱글을 넘는 야간 구간에서의 무시무시한 칼바람과 맹추위는 용기백배하고 투지만만했던 많은 참가자들을 한순간에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고개 떨구게 만든 거대 변수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 힘든 날 밤을 함께 걸었던 송탄MTB의 정병근 님은 아직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았다.
13회 평창 랠리에서는 비와 흙이 최대 변수였다. 정선이나 예산 랠리 때에도 내내 비가 내렸지만 평창 랠리의 비와는 성격이 사뭇 달랐다. 이놈의 비는 흙길을 늪과 뻘로 만들었다. 황토흙은 늪이 되어 휠을 붙들어 잡았고 다운힐에서도 힘겹게 페달질을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모래흙은 브레이크 패드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흉측하고 사나운 하이에나가 되어 인정사정없이 덤벼들었다.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가 없었던 많은 참가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던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였다.
14회 청양 랠리에서는 무더위와의 힘겨운 싸움이 있었지만 그것이 독기와 용맹함으로 무장한 참가자들을 굴복시킬 만한 강력한 변수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15회 춘천 랠리는 이전 랠리 때보다 2% 이상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마지막 북배산에 대한 부담으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시간의 고무줄을 랠리 내내 당긴 채 달려야만 했다.
또 돌이켜보면 평창에서, 생곡저수지를 지나 첩첩산중 임도에 접어들어 구목령 정상까지의 급경사 업힐 7km를 오를 때, 너무나 졸려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혹시 엉뚱한 곳으로 빠질까 두려워 짧게 실눈을 떠 길을 한번 슬쩍 확인해보고, 다시 눈을 감고 하나 둘 셋을 세며 그렇게 오르기를 1시간 40분 동안이나 반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남병산에서 최소 30km 이상의 속도로 다운힐하던 중 새로 구입한 시마노 XTR 신형 브레이크가 에어를 제대로 빼지 않고 장착한 탓에 양쪽 모두 갑자기 어느 한순간에 작동하지 않아 노브레이크 상태가 되었고, 그래도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해 그 엄청난 속도에서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50미터 가량을 쏜살같이 달려내려가며 가까스로 온몸으로 자전거를 멈추었던 아찔했던 기억도 새롭다.
어떤 때는 팀(team)이 위안과 힘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또 어떤 때에는 팀이 발목을 잡는 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랠리 때마다, 지원의 달지만 가벼운 맛과 무지원의 쓰지만 깊은 맛의 상반된 유혹은 매년 머릿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달라고 아우성쳐댔다.
힘들어 죽겠을 때에는 ‘이 짓을 왜 하고 지랄인가?’ 싶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그 뻐근해지는 근육과 나른해지는 몸의 피로함이 안겨주는 설명 불가능의 묘한 중독성을 지닌 고놈의 요상야릇한 쾌감에 빠져들면서 다음 랠리를 꿈꾸는 기묘한 버릇도 생겨버렸다.
<굼디바이크에서 찍어주신 사진>
자, 드디어 16회 문경 280랠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변수들이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상수(常數)를 채우기 시작했다.
먼저 몸을 만들어야 했지만 올해는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도 간신히 시간을 만들어 임도 100킬로 이상을 3번 달려주었다.
그리고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고도상황판과 타임테이블을 작성해 인터넷에 올렸다.
1. [16회 문경 280랠리 고도 상황판 최종본]
http://user.chol.com/~pkw1124/My_280/16th_280_v30.jpg
2. [16회 문경 280랠리 거리 및 시간계획표 v 3.0]
http://user.chol.com/~pkw1124/My_280/16th_280_TiTa3.pdf
3. [직접 그린 구글어쓰 경로 파일]
6월 6일, 집사람과 문경 일대를 드라이브했다. 명봉사 입구에서 수지자전거마을 동호회원들을 만났다. 사전답사를 마치고 귀성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궁금한 점이 많아 차를 세우고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전답사 나오신 것 같은데, 저는 사내가요라고 합니다. 혹시 말씀 좀 물을 수 있을까 해서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닉네임을 밝힌 것인데, 의외로 그분들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런, 유명하신 분을 여기서 뵙는군요. 덕분에 상황판 잘 보고 있습니다.”
허걱, ‘유명한 분!’이라니… 뭐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가운데,
“길 상태가 어떤가 싶어서요?”
“예, 우리는 오늘까지 랠리 전 구간 사전답사를 마쳤는데요, 전체적으로는 소요 시간이 상황판과 비슷한 것 같구요, 문제는 싱글인데… 이건 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조항산 싱글의 경우에도 업힐은 그렇다 해도 다운힐도 다 끌고 내려와야 하구요, 활공장 싱글은… 흐, 급경사 구간으로 비라도 오면… 심각하게 걱정될 정도구요. 올라가는 시간이나 내려오는 시간이나 전혀 차이가 없는 길이네요. 그나마 불정산 싱글은 타고 내려올 만하구요.”
“예,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헤어져 집에 돌아와 그 분들께 주워들은 풍월을 참고하여 상황판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랠리 1주일 전부터 두통이 심해지고 감기 기운이 있어 마치 갓난아기를 재우듯 조심조심 두통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기분으로 연속 3일간 타이레놀과 화콜을 먹어주었다.
‘얘야, 제발 잠 좀 자다오! ’
<완주 직후 마누라가 찍어준 사진>
2. 전반전 : (비단길은 욕망을 부추기고…)
마누라의 애마 모닝에 모든 짐을 때려 싣고 문경으로 출발한 시간은 저녁 6시. 화서IC에서 빠져나와 랠리 코스인 서재로를 확인해 보고 첫 번째 지원장소로 정한 농암사거리에 가서 마누라와 만날 장소를 정확하게 약속하고 다시 문경시민운동장으로 가니 저녁 8시다. 내일 새벽에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미리 배번을 수령한다. 오늘의 숙소는 처제의 집, 출발지에서 차로 5분 거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1주일 전에 가져와 발코니에 보관해 놓은 자전거부터 현관으로 꺼내놓고 이상유무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1주일 전에 미리 하루 종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점검해 놓은 자전거였는데… 이거 뭔가 수상하다. 앞뒤 타이어 공기압이 턱없이 부족하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푹푹 들어간다.
‘허걱~! 혹시 손이라도 탔나?’
순간 불안감이 뇌세포를 후려친다.
‘내 곁에 없던 1주일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펑크라도 난 건가?’
갑자기 정신이 혼란스럽고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아, 원래 계획은 빌라에 도착하자마자 잘 생각이었는데…. 이거 잠은 다 잤다.
부리나케 대여섯 번을 차에 갔다왔다하며 대형 펌프와 자전거 수리 도구 일체를 가져와 어두컴컴한 현관 불빛 아래에서 타이어와 튜브와 나머지 자전거 상태까지 전부 점검하느라 정신없이 부산해진다. 순식간에 한 시간의 아까운 시간이 휘리릭 휘파람불 듯 사라져 버린다. 자전거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새롭게 점검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휴~~~ 이제 됐다.
야식을 조금 먹고 잠자리에 드니 10시가 넘었다. 이런~~!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어느덧 새벽 2시 20분이다. 알람 소리에 잠을 깨어, 곤하게 자는 사람들 깨울까 싶어 뒤꿈치 들고 조심조심 움직여 화장실로 간다. 세수만 대충 하고 마누라가 정성들여 끓여준 라면을 한 개 먹는데, 아 이런, 정성이 조금 과했나 싶다. 맛있게 끓인다고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을 넣었는데, 넣어도 너무 듬뿍 넣었다. 콩나물과 라면의 비율이 영락없이 1:1이다. 아무리 씹어도 끝없이 씹히는 콩나물 때문에 라면을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어렵다. 시간이 두 배는 걸린다. 그래도 어쩌나, 마누라의 정성과 사랑이 콩나물만큼이나 듬뿍 담긴 라면이니, 꾸역꾸역 다 먹어야지.
새벽 3시, 마누라의 배웅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새벽 찬 바람을 가르며 출발지로 떠난다.
<출발지인 문경시민운동장에서>
올해에는 4시 정각에 출발한다. 예상했던 대로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때려 밟고 달려 나간다. 밋밋한 오르막길을 시속 30km로 올라간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계획했던 것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쫓기듯 달려간다. 그래도 왼쪽, 오른쪽에서 내 몸을 스치기라도 할 듯 사정없이 추월해가는 참가자들. 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뒷사람에게 치여 넘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앞은 말할 것도 없고 옆과 뒤에 자전거 불빛이 있나 없나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달려가야 한다. 내 몸을 스치듯 추월해가는 사람이 서너 명으로 늘어날 때쯤 해서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저렇게 빨리 달릴 것 같으면 진즉에 앞에서 좀 가든가… 아니면 조금 떨어져서 추월하든가… 이거 원, 추월 매너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공평1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공평교차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앞에 간 사람 모두가 직진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뭐얏! 하룻밤 사이에 코스가 변경되었나? 문경휴게소 뒷산 주인이 어젯밤에 강력히 항의라도 한 거야? 이궁….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사항이라도 확인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들면서도,
‘코스가 변경된 것이 분명해! 뭐 어쩔거야? 코스가 바뀌었든 안 바뀌었든 따라가는 수밖에….’라고 결론짓고 앞 사람들을 계속 쫓아간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데 업힐 속도가 다들 시속 20km를 넘는 게 마치 단거리 트랙 경기를 하는 것 같다.
긴 오르막이 끝나자 급경사 다운힐이 시작된다. 나는 코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앞 사람을 쫓아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도로 다운힐 경사가 꽤 급하다. 참가자들이 워낙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옆 사람, 뒤 사람 신경쓰느라 정신이 황망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빨리 내려가는 것보다 추월당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추지 못한다. 족히 시속 50km 정도의 느낌으로 내려오는데, 저 앞에 차량 한 대가 반대편 차로를 막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저 곳에서 좌회전하는 게 분명하다. 차와 교행하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차량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일 게다.
나는 특히 내 왼편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슬쩍 뒤돌아보고 곁눈질도 유지하며 브레이크도 잡으면서 좌회전에 돌입한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건 웬 일인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어떤 여성 라이더가 “끼이이이이익!” 급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 왼쪽을 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마 너무 늦게 좌회전 구간임을 알게 되어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돌진하는 듯싶다. 나는 그 여성 라이더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몇 번을 좌회전을 포기하고 주춤주춤 차량 쪽으로 도망치다가 간신히 좌회전에 성공하고 위험한 상황을 모면한다.
“끼이이이익! 꾸당탕!”
그렇지만 결국 그 여성 라이더는 미끄러짐을 통제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만다. 그뿐이 아니다. 10m 앞에서도 누군가 넘어져서 일행들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돌보고 있는 상황이 보인다. 랠리 초반 진행에 뭔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나저나 나는 앞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달려간다. 도로에는 선명하게 붉은색 페인트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나는 앞사람과 화살표의 지휘를 받으며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대로 달려간다. 그런데 이건 또 웬 일인가? 그렇게 2km쯤 달려왔는데, 도로에 왼쪽 길에서 빠져나와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방향으로 좌회전하라는 선명한 280 노면 표시가 나오는 게 아닌가?
‘더 이상 진행해서는 안 된다!’
속에서 강력한 마음의 브레이크가 잡힌다. 다행스럽게도 저 앞에 가던 사람들도 멈추어 선다.
“어, 이건 오정산 싱글 구간인데! 길 잘못 들었어.” 하며 투덜거린다.
“불정 휴양림으로 가야 하는데, 우린 지금 오정산으로 가고 있어!”
그 일행 중 한 명이 하는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나도 그제서야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 일대 지도를 네비게이션 삼아 뒤돌아선다. 280랠리 참가 여섯 번만에 처음으로 나도 4km를 알바(Arbeit)했다. 하지만 내 앞에 달려갔을 그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바하게 될 텐데… 남 일 같지 않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중 몇 명은 랠리 진행 화살표를 따라 오정산 싱글을 넘어 체크포인트 10번을 제일 먼저 찍고, 결국 실격인지 포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뭐… 그랬단다. 흐)
다시 돌아가 불정휴양림 임도를 오르는데 날이 조금씩 밝아온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내 예상 시간보다 조금 빠르다. 도로를 신나게 달려왔으니 알바가 조금 있었다 해도 빠른 것이 당연하다. 임도 상태도 너무 좋다. 비단길이 따로 없다. 등산할 때의 과장된 용어를 빌리자면, 이건 임도라기보다는 활주로에 가깝다. 흐.
불정산 싱글 다운힐에서는 병목이 심하다. 거의 타고 내려갈 만한 수준의 길이지만 기다리다 가다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뭐 괜찮다. 다 예상했던 일이니까….
중간쯤 내려왔을 때, 앞에 가던 몇 명의 참가자가 한꺼번에 길을 비껴준다. 거의 끝까지 타고 내려가는데 비껴준 그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아래쪽은 어제 내린 비로 진흙길이다. 걸어 내려간다면 신발이 진창에 다 빠졌을 것이다.
안룡저수지를 돌아 내려가 우회전하여 작약산 임도 쪽으로 마을길을 따라 오르는데 아침의 상쾌한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펼쳐진 들과 집들이 더 예쁜 아침 빛깔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임도 입구에 다다른다. 마지막 집과 임도 초입을 사진에 담고 천천히 오르기 시작한다.
<작약산 임도 초입에서>
<작약산 임도 초입에서>
아랫수예재로 올라가는 도로를 만날 때까지 10km의 임도 길이다. 그런데 노면이 너무 좋다. 어지간한 곳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포장되지 않은 곳도 흙과 잔잔한 모래자갈들이 다져져 있어 업힐에서도 다운힐에서도 에너지 소모율이 10%는 적은 것 같다. 이건 뭐 그냥 달리면 되는 길이다. 거의 세종시 주변의 임도와 비슷한 수준의 길이 펼쳐져 있으니, 그 동안 쑤시고 다녔던 ‘인적 없는 산골짜구니의 산사태에 쓸려나간 돌탱이 자갈길들’에 비하면 활주로가 따로 없고, 그야말로 껌이다.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이거 시간 꽤나 단축시킬 수 있겠는데… 흐흐…’
<작약산 임도 출구, 아랫수예재로 오르는 도로 합류 지점에서>
<아랫수예재를 오르며 뒤돌아본 조망>
아랫수예재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쉬고 있다. 사진 한 방 박고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아래로 펼쳐지는 아침 산하(山河)의 신선함을 만끽하며 천천히 올라가는데, 800미터의 급경사 아스콘 포장도로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성저리에서 바라본 수예마을, 저 산 뒤에있는 마을이 수예마을임>
<성저리의 영강변 논둑길을 따라 가는 랠리 길에서>
수예재부터 성저리까지는 환상의 도로 다운힐이 이어진다. 5km를 내려가는데 8분도 걸리지 않는다. 완벽한 아스콘 포장도로가 부드럽게 엉덩이를 어루만지는 느낌이다. 달콤하다. 논둑길과 포장도로로 8.3km를 더 달려가니 6시 57분, 나의 첫 번째 지원장소인 농암사거리에 도착한다.
[여기까지 44.3km : 2시간 57분 소요 (알바 거리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길이 너무 좋아. 한 마디로 비단길이야. 올해는 완주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 같아. 완주율도 높을 것 같고. 게다가 이번 랠리는 숙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지라, 그 점까지 감안하면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길가나 학교 운동장 등에서 쪽잠 자고 내리 달릴 테니… 아마 30시간 이전에 도착하는 참가자들이 엄청 많을 것 같애.”
“그래도 자기는 너무 빨리 달리지 말아요.”
“당연하지. 난 무리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마누라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심 조금씩 욕심이 난다.
‘이런 비단길 랠리가 언제 또 있겠는가 말이야! 올해는 나도 잠 자지 말고 한 번 달려 볼까! 30시간 이내 완주의 절호의 기회인데….’
아무래도 마누라의 지원을 받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아침 먹는데 37분이나 걸린다. 미역국을 먹으면서도,
“어쩌면 올해 완주율은 60% 가까이 될 지도 모르겠어. 길이 너무 좋아서….”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아, 욕심내지 말아야 하는데… 길이 왜 이렇게 좋은 거냐 젠장!’
마누라와 헤어져 율수2리 마을회관을 지나 쌍룡사 길을 오른다. 도로 확포장 중인 공사 구간이지만 다져진 황톳길이 예상보다 속도내기에 좋다. 쌍룡사 위 정상까지 25분 잡았던 길이 19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황령리 아스콘 포장도로 또한 달리기에 그만이다.
<하송리 임도>
도재이 분기점을 지나 하송리 임도를 오른다. 그런데 하송리 임도 역시 비단길이다. 진 빼는 급경사가 거의 없다. 시멘트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비포장 임도의 노면 상태도 최상에 가깝다.
<하송리 임도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조망>
<하송리 임도 정상 부근에서의 기념 셀카>
하송리 임도 정상 부근 조망하기 좋은 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조금 오르니 체크포인트이다. 역시 비단길처럼 달리기 좋은 경사 심하지 않은 3.6km의 임도를 신나게 달려 내려오니 49번 도로와 만난다. 바로 청계사로 향한다. 이제 대궐터산 임도 업힐이다.
속리산 주능에서 바라보면 너무도 멋지게 펼쳐지는 암산(巖山)이 대궐터산이다. 옛날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해서 대궐터산이라고 했다는데, 조선과 달리 궁예의 태봉국이나 견훤의 후백제국은 참으로 궁벽한 곳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만큼 주변 정세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멋진 조망이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그러면 사진 한 장 찍고 가겠다고 마음먹고 올라가는데, 아무리 올라가도 조망점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산 속에 콱! 처밖힌 채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속리산 주능에서 바라본 대궐터산, 옛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임>
집에 가서 완주기를 쓸 때 옛날 백두대간 종주 시에 찍은 사진으로 대궐터산을 대신하기로 마음먹으며 신나게 달려 내려오니 어제 저녁에 차 타고 넘었던 서재로이다.
공주MTB의 겉보리 님을 만나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성현이 소식도 묻고, 도로에 올라와 대궐터산 뒷모습도 사진에 담고, 서재로 주변의 그림 같은 마을과 논밭도 사진에 담고, 다시 도로를 따라 서재로를 넘는데,
<서재로에서 바라본 대궐터산의 뒷모습>
<대궐터산 임도에서 내려와 서재로 초입에서>
차를 타고 내려올 때에는 끌바를 예상했던 곳이었는데 막상 서재로에 도착하니 체력적으로 여유가 만만한 것이 구태여 끌바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서재로 정상까지 30분 정도 예상했던 곳이었는데 중간에 내려 사진도 찍고 했음에도 불과 13분만에 올라가 버린다. 이거 참 야단이다. 길이 이렇게 쉽고 좋아서야…. 욕심을 어찌 다스려야 하나. 괜히 눈치보이게 마누라를 데려왔나 싶기도 한 것이 내 마음줄이 다시 팽팽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또 아스콘 포장도로를 달려 내려가 상주 화북면사무소에 도착하니 10시 10분이다. 뻑시게 계획했던 것보다도 1시간이나 단축된 시간이다. 이러다가는 마누라보다 먼저 2차 지원장소인 입석리 보건진료소에 도착할 것만 같다. 안 되겠다. 마음줄을 풀어야겠다.
슈퍼마켓에 들어간다. 애초 계획은 아이스크림만 한 개 먹고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캔맥주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고 이온음료도 산다. 천천히 다 먹고 손도 씻고 출발한다.
<상주 화북면사무소의 오케이 마트에서, 마구잡이로 모델 삼아서 죄송해요, 222번님. 그래도 멋지게 나왔으니 봐주세요.>
이제 전통농업문화학습관에서 다리를 건너 청화산 임도를 오른다. 4.1km의 업힐 구간이지만, 이건 뭐, 업힐이랄 것도 없어 보인다. 그냥 천천히 타고 오르면 되는 구간이다. 노면은 완벽한 비단길이라 어깨뼈 울렁거릴 일이나 온몸으로 충격을 흡수해야 할 일은 사실상 전혀 없다. 그냥 천천히 타거나 편안하게 끌고 오르다가 체크포인트 만나면 올해 처음 도입된 인증사진 한 장 박고 다시 또 신나게 룰루랄라 내려가면 그뿐이다.
<청화산 임도 정상, 체크포인트 인증샷 장면>
청화산 부근의 멋진 자연 풍관은 옛날 백두대간 종주 시에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뒤에 펼쳐진 능선이 백두대간 일부인 청화산 능선임. 옛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청화산 정상에서, 옛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32번 국도에 합류하여 힘차게 페달질하니 금방 두 번째 지원 장소인 입석리이다. 마누라가 도로 한가운데를 텐트를 짊어지고 건너고 있다. 아마도 장소를 옮기는 모양인데, 나는 얼른 달려가 자전거를 내려놓고 텐트를 받아 그늘로 옮겨준다.
[여기까지 89.7km : 7시간 7분 소요 (알바 및 식사시간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및 시간)]
<입석보건진료소 부근에서 2차 지원 중인 마누라>
별로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밥을 받아드니 잘 먹히지를 않는다. 기분과 몸은 다른가 보다. 이 정도로 밥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는 뜻일 게다. 기분만 룰루랄라이지, 실제 몸은 피로가 쌓여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몸 조심해야겠다. 괜히 욕심 부리지 말자.’
점심 먹고 텐트 걷고 하는데 40분이나 걸렸다. 마누라의 지원을 받는 시간은 아무래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다시 출발해 의상저수지 댐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저수지 너머로 조항산 능선이 펼쳐지는데 그림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나의 애마 너머 의상 저수지 너머 조항산 능선>
<조항산 임도와 능선을 배경으로 셀카>
사진을 찍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거칠고 사람 흔적도 적은 임도를 따라 조항산을 오른다. 의상저수지부터 6.6km를 오르니 싱글 진입로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병목을 피할 수 없는 좁고 험한 등산로를 따라 조항산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세자동의 강검 님이 찍은 조항산 싱글 초입 사진>
<조항산 싱글 업힐 구간에서, 굼디바이크 촬영>
비켜주는 여러 참가자들 덕분에 500미터의 싱글 업힐 구간을 계획했던 시간대로 15분만에 오른다. 이제 1km의 싱글 구간을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건 앞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오르는 시간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꼬박 30분이 지나서야 연천리 싱글 출구에 도착한다. 수지자전거마을 동호회원들이 말하기를, ‘오르는 시간과 내려오는 시간이 똑같다’고 하더니, 정말로 완벽하게 똑같다. 500m를 15분 걸려 올랐고, 1km를 30분 걸려 내려왔다. 흐.
<조항산 싱글 다운힐 중 완만해지기 시작하는 싱글 종점 부분에서. 힘들어서 이것도 찍기 싫었어요.흐^^>
폐가들이 방치되어 있는 산 중턱으로 난 아름답고 시원한 길을 따라 연천리로 내려가는데, 첩첩산중, 어디를 둘러봐도 우뚝 솟은 산들로 사방이 꽉 가로막힌,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아갈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러나 너무도 아름다운 산골 마을을 몇 개 지나 내려가니 연천리 교회가 보인다. 교회에서 물통을 가득 채우고 다시 연천임도를 오른다.
<연천리로 내려가는 길>
연천임도는 둔덕산 능선을 가로지르는 임도이다. 백두대간 종주 시에는 조항산에서 고모치 광산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둔덕산이다. 대간은 둔덕산을 옆으로 끼고 아름답고 멋진 대야산으로 이어지는데, 완주기를 쓸 때는 고모치 광산과 둔덕산도 꼭 올려야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모치 광산 뒤로 왼쪽부터 대야산, 그 뒤로 장성봉, 희양산이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둔덕산, 백두대간 종주시 찍은 사진>
5.2km의 비단길 같은 둔덕산 임도를 올라 일곱 번째 체크포인트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다시 비단길 임도를 따라 죽문교까지 6.8km를 내려간다.
<둔덕산 임도(연천임도) 정상, 일곱 번째 인증샷 체크포인트에서>
가은시내에 도착해 계획했던 대로 국산팥으로 만들었다는 팥빙수를 한 그릇 먹어치우고 15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 갈전 임도를 오른다.
뒤로는 백화산과 뇌정산 능선이 등을 떠밀고 앞으로는 아기자기한 밭들이 무슨 말이라도 속삭이는 듯한데, 비단길 임도라지만 지금까지보다는 경사가 조금은 세진 갈전 임도는 그만큼 조금 더 나의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있다. 갈전 임도를 지나 저음 임도로 가는 길은 예상했던 길보다 경사도 심하고 첩첩산중의 느낌도 강하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만큼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곳에서 몇 가구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갈전 임도에서의 조망, 뒤로 솟구친 산이 아마도 뇌정산과 백화산 능선?>
<갈전임도에서 저음임도로 가는 아름다운 산골마을>
꽤 길게 느껴지지만 비단 솜이불 길 같은 저음 임도를 지나 영강으로 내려간다.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기 어려운 영강 변 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두 그룹의 참가자들이 추월하면서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한다.
“혹시 사내가요 님 아니세요?”
“예, 그런데요.”
“아이고 이런, 반갑습니다. 덕분에 매년 상황판 잘 보고 있습니다. 무사 완주하세요.”
출발 전 문경시민운동장에서도 대여섯 분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바람에 공연히 겸연쩍고 쑥스러워 혼났는데, 이러다가는 280랠리에서 꽤나 유명해지게 생겼다. 흐.
<진남교반 : 진남정 식당에서 바라본 모습과 거의 똑같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올림>
마누라와 만나기로 약속한 진남정 식당에 계획된 시간보다 1시간 빨리 도착하니 이제 막 도착한 마누라가 어설프게 주차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버섯전골을 시켜놓고 예쁘게 굽이돌아가는 영강의 진남교반이 훤히 바라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마누라는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하듯 초보 운전자로서의 모험적인 경험담과 문경의 아름다움을 주로 이야기하고 나는 이번 랠리의 편안함과 높아질 완주율과 단축될 완주 시간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139.8km : 13시간 소요 (알바 및 식사시간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및 시간)]
<갈전 임도에서의 울면 안 돼!>
길이 너무 좋다는 것이 때로는 나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누가 쉽게 할 수 있겠는가?
길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로다.
어떤 경우에는 비단길이 오히려 험로만큼 안 좋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이번 랠리는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3. 중반전 : 흡혈(吸血)길과 처녀귀신
아름다운 영강변 진남정 식당에서 두 번이나 리필하며 배터지게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마누라가,
“빨리 완주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부드럽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속도를 좀 내서 달려왔더니 나도 진이 빠졌어. 특히 조항산 싱글을 내려오면서 지쳐버렸어. 컨디션도 작년보다 좋지 않고….”
“내가 보기에도 자기 얼굴이 작년 춘천 때보다 안 좋아 보여서 걱정이에요.”
“그러게. 이번 랠리는 초반에 너무 달리기가 좋아.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될 사람들이 많을 거야.”
“이미 점심 때에도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아 보이던데요? 오면서 차에 자전거를 싣는 사람들을 자주 봤어요.”
“뭐, 많지야 않겠지만, 포기한 사람들도 좀 있겠지. 어떤 사람들은 초반부터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도 돼. 다만 그런 수준이 안 되는 사람들이 그런 수준의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때 문제가 되는 거지.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수밖에 없잖아. 아마 초반부터 레이스에 돌입한 사람들 중 일부의 능력 안 되는 사람들이 포기했겠지 뭐. …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예, 끝까지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기는 시간 단축이 중요한 게 아니라 10년 연속 완주가 목표잖아요. 그냥 36시간 안에만 들어올 수 있게 몸 상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타요.”
“알았어. 당연하지. 아, 그런데 올해에는 자꾸 10년 연속 완주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
“10년 연속 완주하면 내가 잔치해 줄게요. 그 때는 얘들도 다 지원 나오구….”
“알았어. 랠리라도 출전해야 몸만들기에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으니, 열심히 해 보지 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완주 시간에 대한 욕심은 영강 바닥에 집어던져버리고, 마누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52분의 시간이 흘러버린다.
안 되겠다. 이젠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겠다. 해 지기 전에 마(魔)의 오정산 싱글을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나 싶어 라이트와 배터리와 물병 2개를 채워 넣고, 지금부터 1시간 40분 뒤에 동성초등학교 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마누라와 하이파이브 한 번 하고 자전거에 올라탄다.
드디어 16회 문경 280랠리의 최대 난코스인 오정산 싱글 구간이다. 사전답사하고 온 많은 동호인들이 혀를 내두르며 지옥의 코스로 명명한 곳. 심지어 어떤 답사자는 오정산 싱글 구간에서만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기도 했던 곳.
첫눈에 경력과 체력의 강력한 포스가 느껴졌던 수지자전거마을 답사자들도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조항산 싱글도 어렵고, 활공장 싱글도 매우 어렵지만, 진짜 문제는 오정산 싱글입니다. 그거, 올라가는 데에만 최소 1시간 40분 이상 잡아야 해요. 물론 정말로 힘좋은 사람은 1시간 30분에도 올라간 사람이 있긴 해요. 하지만 랠리 당일에는… 이미 지친 몸에… 그것보다 빨리 올라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2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온 나는 오히려 투지가 샘솟아 오정산 업힐을 1시간 20분 이내에 주파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싱글 입구에 들어서니 얼마 안 가 데크와 계단과 바위가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예쁜 등산로가 나타난다. 어깨에 멘 자전거가 바위와 계단에 부딪혀 꽤 성가신 가운데 약 200여 미터를 데크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니 본격적인 급경사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정산 싱글 초입, 자출사 촬영>
<오정산 싱글 초입, 데크를 지나 본격적인 업힐 시작 지점, 자출사 촬영>
나는 1시간 20분 안에 올라갈 욕심으로 앞에서 가로막고(?) 있는 참가자들에게,
“먼저 좀 올라갈 수 있을까요?”를 녹음기 틀듯 쏟아내며 뛰어오르다시피 10여명을 순식간에 추월해 버린다.
데크 길이 끝나자마자 주로 돌탱이로 이루어진 급경사 암벽길이 이어진다. 자전거를 어깨에 둘러메고 올라가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끌고 올라가기는 더욱 쉽지 않은, 계룡산 삼불봉 정상 부근이나, 설악산 소청 오르막길 같은 느낌을 주는 업힐 구간이다.
한참을 낑낑거리며 올라가는데도 여간해선 경사가 줄지 않는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저 자전거만 고약한 짐짝이 된다. 끌바 계의 달인(?)에 가까운 나도 오를수록 숨이 가빠지고, 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정수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헬멧 구멍을 통해 공기 중에서 소멸해 버리는 듯하다. 마치 오정산 처녀귀신이 나의 힘겨운 걸음걸이마다 홀짝홀짝 내 얼마 남지 않은 정기(精氣)를 흡입해대는 느낌이다.
그래도 1시간 20분 이내 주파에 대한 목표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가쁘게 목구멍으로 솟구쳐 오르는 숨을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다시 집어삼키며 조금이라도 처녀귀신에게 진을 덜 빼앗기기 위해 발악하듯 굳게 입을 다물고 코로만 숨을 내쉰다. 그리고 힘들 때에만 사용하는 푸쉬업(push-up) 자세로 처녀귀신과 대적해 본다.
푸쉬업 자세는 내가 몹시 지쳤을 때에만 사용하는 싱글 업힐 전용 자세이다. 핸들을 잡은 두 팔을 위로 쭈욱 뻗어 마치 푸쉬업하듯 자전거를 들어올린 다음, 양쪽 브레이크를 모두 잡아 내 몸을 끌어올릴 수 있는 행어(hanger)로 삼는다. 그러면 브레이크를 잡아 고정되어 있는 자전거를 두 팔로 잡고 지친 내 몸과 다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 주로 험한 지형의 싱글 업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기진맥진해 두 다리 근육만으로는 올라가기 힘들 때 이렇게 두 팔의 근육을 최대한 활용하여 체력적 손실을 막고 다리 근육의 피로도를 보강할 수 있다.
푸쉬업 자세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체력이 고갈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를수록 여기저기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하거나 아예 대자(大字)로 뻗어 누워있는 참가자들이 보인다. 다들 지쳐 보이고, 나도 무척이나 지친다. 오정산 싱글, 거의 완벽한 흡혈(吸血)길이다.
‘요즈음 뱀파이어 드라마가 유행이라더니 280랠리에서도 뱀파이어 길을 만들어 놓았네. 흐.’
이런 요상한 생각이 걸어 오르는 내내 수시로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오락가락한다. 이런 흡혈길은 280랠리에서 아직껏 걸어본 적이 없다. 11회 정선 랠리에서는 사북으로 넘어가는 싱글 구간이 힘들기는 했지만 내 걸음으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짧은 급경사 오르막길이었다. 12회 예산 랠리에서는 용굴산 - 토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싱글이 있었지만 길도 좋았고 다운힐이 훨씬 길어 진을 빼는 구간은 아니었다. 15회 춘천 랠리에서도 북배산 싱글이 지금까지 중 가장 경사도 세고 힘든 코스였다고는 하나 이렇게 주구장창 3.2km를 올라쳐야 하는 징그러운 싱글은 아니었다. 북배산이 둘째 동생 쯤으로 여겨질 만큼 오정산은 정말 징그럽게 올라가는 랠리 길이다. 게다가 ‘이제 다 올라왔나?’ 싶으면 더 올라가야 하고, ‘이제 끝인가?’ 싶으면 또 더 올라가야 하기를 대여섯 번은 족히 속고 나서야 진짜 다운 구간에 접어든다.
<오정산 싱글 중간 조망 지점에서 잠시 쉬면서>
<오정산 싱글 중간 조망 지점에서 잠시 쉬면서, 내 바로 앞에서 올라간 참가자를 모델로 삼아>
<오정산 싱글 중간 조망 지점에서, 힘든 곳이니 셀카도 빼놓을 수 없네.^^>
어쨌든 족히 수십 명은 추월하고 조망지에서 사진도 찍고 정상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해 보니 1시간 23분이 걸렸다. 목표 시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병목의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이 정도면 꽤나 준수한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위안 삼으며 싱글 다운힐에 들어선다.
당연히 급경사 다운 구간이다. 올라온 길보다 험하면 험하지 덜 험할 수 없는 곳이다. 다리에 힘 팍팍 주며 조심조심 15분을 내려오니 시멘트 임도와 만난다. 체크포인트가 있고 운영요원들(?)이 레드불을 한 캔씩 나누어주고 있다.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짜릿짜릿한 맛이 아주 죽인다. 그 동안 오정산 흡혈 처녀귀신에게 빼앗겼던 정기(精氣) 중 일부가 혈관을 타고 다시 나에게로 넘어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동성초등학교 부근에서 찍은 오정산의 모습>
클릿리스 페달에 뭉친 흙을 대충 털어내고 잠시 숨을 돌린 뒤에 출발한다. 시멘트로 포장된 급경사 다운힐이 꽤 길게 이어진다. 5.3km를 내려가니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는 동성초등학교이다.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 와요. 힘들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그만 어린아이처럼 진짜 반 엄살 반으로 죽는 시늉을 한다.
“아이고오~~~! 힘들어 죽겠어! 나 완전 기진맥진이야! 히유우~~~ 힘들다 힘들다 하더니 정말 힘드네!”
“이런 이런… 어서 이리 와 쉬어요. 아니, 여기 와서 좀 누워요.”
나는 마누라가 깔아놓은 크고 넓은 매트리스에 벌렁 나자빠진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나 여기서 오래 쉬었다가 천천히 갈래. 뭐 어차피 펜션에 12시에 도착하나 1시에 도착하나 잠자는 시간만 달라질 뿐 바뀔 건 없잖아?”
“예 그래요. 푸욱 쉬고 천천히 가요.” 하더니 담요도 가져와서 덮어주고 따뜻한 파워스트레치 쟈켓도 가져와 입혀준다. 아, 왕(王) 부럽지 않다. 만사 장땡이다.
지칠 대로 지쳐서 컵라면도 끓여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황도(黃桃)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수박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그렇게 마누라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45분간 푸욱 쉬기만 한다.
[여기까지 149.1km : 15시간 52분 소요 (알바 및 식사시간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및 시간)]
<동성초등학교 부근에서 한숨 푸욱 쉬고 일어나 컵라면을 먹는다>
마누라의 극진한 필로폰 같은, 아니 크로로포름 같은 보살핌을 받다보니 시간이 그야말로 유수(流水)다. 8시 37분,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오정산 임도로 향한다.
긴 마성 농공단지 도로변이 온통 쪽잠 자고 있는 참가자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지원조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역시 ‘랠리의 꽃은 지원조’라는 말이 실감난다. 동성초부터 3km쯤 올라가니 본격적인 오정산 임도 업힐 구간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임도 정상까지는 4km. 노면도 조금 거칠어지고 경사도 더 깊어진 임도를 꾸역꾸역 걸어 오른다. 평속 5.3km에 48분 예상했던 업힐이 오정산 싱글에서 처녀귀신에게 진을 빼앗긴 탓인지 평속 4.5km에 53분이나 걸린다.
깜깜한 밤길은 날이 밝을 때보다 뇌(腦)의 숨겨진 창고에서 더욱 많은 생각을 꺼내게 만든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과 생각들이 간헐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진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다시 뇌(腦) 창고 저 편 깊은 곳에 숨어버려 기억할 수 없게 되지만 걷는 어느 순간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짧은 추억과 생각의 단상(斷想)들은 늘 내 머리 어딘가에 암초처럼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정상부터 임도삼거리까지는 짧은 업힐과 평지, 그리고 대부분 다운힐로 이루어진 4km의 임도 길이다. 하지만 노면의 상태는 작약산 임도부터 갈전 임도까지의 비단길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야간 구간인 탓도 크겠지만 길 상태도 지금까지의 임도보다는 확실히 뭔가 ‘쓸쓸한’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길이다. 다운힐 때에 손가락에 들어가는 힘의 세기가 20%는 커진 것 같다. 임도삼거리까지 평속 20.5km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17.1km밖에 나오지 않는다.
밤 10시 19분, 오정산 임도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코스가 변경된 구간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코스가 최초 안(案)으로 회귀한 구간이다.
처음 확정 발표한 코스는 이곳에서 외어리로 계속 다운하여 문경온천을 거쳐 활공장을 넘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유지인 활공장 업힐 구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불가피하게 코스를 변경하게 되었단다.
물론 그것이 코스 변경의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부운령을 넘는 코스를 문경온천으로 바꾸었던 이유는 아마도 숙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문경온천 주변에는 아주 많은 모텔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운령을 넘는 순간, 그 누구도 쉽게 숙소를 구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노숙! 마을회관 등을 빌리지 않는다면 모든 지원조와 참가자들은 노숙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문경온천 쪽으로 코스를 수정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수정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 랠리 기간 중에 그만 문경온천 주변의 모텔을 전혀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4박 5일의 대규모 행사가 잡혀 있어서, 그들이 문경온천 주변의 모든 모텔을 싹쓸이 예약해 버렸던 것. 나도 문경온천 부근에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5.2km 떨어진 활공장 입구, 고요리 전원마을 위에 있는 활공랜드 펜션에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코스가 다시 부운령을 넘는 것으로 환원되면서 나의 랠리 길은 6km가 늘어나게 되었다. 당포초등학교에서 활공랜드펜션까지 표고차 54m에 편도 3km를 더 달리게 된 것이다.
<문경 활공랜드 펜션 205호에서의 하룻밤>
1.2km의 부운령 길을 올라가서 다시 3.5km의 부곡리 다운힐 구간에 접어든다. 꽤 급한 경사가 이어진다. 다운힐이지만 속도를 내기가 만만치 않다. 최대 속도로 신나게 내달릴 수 있는 구간이 아니다. 정상에서 배가 고파 체리와 소시지를 먹고 조심스레 내려오니 17분이나 소요된다.
부곡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선암2리로 향한다. 지도로 살펴보았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꽤나 큰 산을 하나 넘어간다. 10분 예상했던 곳인데 19분이나 걸린다. 하지만 그와 달리 선암2리 마을회관부터 우곡리삼거리까지 5.2km의 길은 37분 예상했던 곳이 2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격차가 크다.
밤 11시 37분, 드디어 석봉리 도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조항령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 정상까지는 4.7km. 1시간 거리다. 자전거에서 내려 터벅터벅 올라간다. 끌바 속도는 평소와 다름이 없지만 오정산 싱글에서 진이 빠지고 지친 몸은 훨씬 힘들게 느껴진다. 게다가 경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르다.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는 두 다리 근육이 묵직하다.
동성초등학교를 출발한 것이 8시 37분인데 오정산 임도와 조항령 임도를 넘어 당포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52분이다. 39km의 거리를 가는데 총 4시간 15분 걸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진남휴게소부터 시작된 마의 3구간 : 오정산 싱글 – 오정산 임도 – 조항령 임도를 합치면 겨우 48km 거리를 45분의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총 시간이 무려 6시간 59분이 걸렸다. 자그마치 7시간! 지금까지 걷고 달렸던 여섯 번 동안의 280랠리 전 구간 중에서 거리에 비례할 때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곳은 없다. 확실히 오정산에는 정기(精氣)를 빼먹는 처녀귀신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진정한 흡혈(吸血) 길의 탄생이다.
활공랜드 펜션까지는 3km에 이르는 오르막길이다. 고요마을을 지나갈 때에는 사나운 개새끼들이 얼마나 독하게 짖어대는지… 거의 도망치듯 1시가 넘어서야 펜션에 도착한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심야 시간인지라 마누라가 월풀 욕조에 물을 받았지만 그저 소리 안 나게 조용조용 가볍게 씻고 나온다. 그리고 마누라가 정성 들여 끓여놓은 흰쌀죽! 아, 정말 맛있다. 씹지 않아도 스르르 목구멍을 넘어가는 흰죽을 한 그릇 가득 채워 먹고 침대에 누워 꿀같이 잠이 든다.
[여기까지 191km : 19시간 1분 소요 (모든 것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및 시간)]
4. 후반전 : 약간의 보상, 그리고…
새벽 4시에 눈이 떠진다. 월풀 욕조 안에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맨소래담 마사지를 하고, 옷을 입고, 마누라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흰죽과 미역국과 고추장을 비롯한 약간의 반찬을 주섬주섬 입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자전거에 체인오일을 치고 체리와 토마토를 탑튜브 가방에 챙겨 넣고 옷을 입고 출발하니 5시 5분이다.
고요리 전원마을을 거쳐 아침 산뜻한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달려가니 당포초등학교다. 여기서부터 다시 랠리 코스로 접어든다. 당포리 정자에는 쪽잠을 자고 있는 참가자가 보이고 이름도 예쁜 여우목로 얕은 오르막길을 달려 갈평리를 지나, 5시 47분, 마전령 임도 시작 지점에 도착한다.
마전령 임도는 매우 거칠고 황량하다. 비에 패이고 호박돌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진 채 다져지지 않아 끌바하기에도 고역이다. 꾸역꾸역 오르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나 역시 거친 호박돌 노면 상태로 인해 두 배는 힘이 들지만 속도는 줄이지 않는다. 어젯밤에 푸욱 잤기 때문인지 어제보다는 한결 몸도 가쁜하고 힘이 솟는다.
호박돌 구간을 거침없이 걸어 올라가니 노면이 조금씩 좋아져 인적이 드문 보통의 임도 노면으로 바뀐다. 조금 더 속도를 내본다. 그렇게 3.7km를 끌바하여 48분을 오르니 마전령 정상이다. 마전령 다운힐 구간도 매우 거친 호박돌 구간이다. 우당탕퉁탕거리며 요리조리 곡예하듯 6분쯤 내려가니 아스콘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거기서부터는 시속 50~60km의 속도로 내리쏘는 4분 정도의 짜릿한 다운힐이 이어진다.
6시 28분, 가좌리 삼거리에 도착, 바로 포장도로를 따라 대목재로 오른다. 오를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꽤 긴 포장도로 업힐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체리와 토마토와 천하장사 소시지를 몇 개 먹고 임도로 접어든다. 그리고 7시 정각에 대목재 정상에 도착한다. 다시 4분간 짜릿하게 다운힐하니 첫 번째 지원장소인 도화동 도로 합류지점이다. 마누라가 텐트를 쳐놓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 와요. 오늘 아침은 자기 얼굴 표정이 좋네요.”
“응, 어제보다 훨씬 좋아진 거 같아. 기분도 상쾌하고, 신나게 달릴 수 있을 거 같애. 어제는 오정산 싱글에서 너무 무리했나 봐.”
“나도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나 봐요. 여기까지 오는 고갯길에서도 부앙~~ 부앙~~ 천천히 가는 차가 있어서 추월까지 해가면서 왔어요. 이젠 이 정도 길은 아주~~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어요.”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하는군. 나 때문에!”
“흐, 맞아요, 열정적인 신랑 때문에 나도 운전에 자신이 붙었어요.”
자신의 운전 실력이 믿기지 않는 듯, 아니, 너무 자랑스러운 듯, 마누라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가득하다.
33분간 맛있는 흰죽도 먹고, 흰쌀밥에 갖가지 반찬으로 배를 채우는데, 어제는 잘 먹히지 않아 힘들더니 오늘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자, 그럼 이젠 12시 넘어서 경천저수지가 있는 수평삼거리에서 만나는 거야. 자기는 펜션에 가서 푸욱 쉬다가 11시 40분까지 수평삼거리로 와.”
[여기까지 211.9km : 27시간 4분 소요 (취침, 식사, 알바 등 모든 것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및 시간)]
<도화동 도로 합류 지점에서 아침 먹고 출발하기 전에>
7시 43분 다시 출발, 힘찬 페달링으로 동로에 도착, 석항리로 가는 마을도로를 따라 오른다. 아침 햇살이 뜨겁다 못해 따갑게 느껴지는 가운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늘진 도로를 찾아 좌우로 오락가락하며 적성리 고갯마루를 올라간다. 석항리 임도 입구인 양지마에 도착한 시각은 8시 17분. 적당한 속도다. 계획한 시간보다는 2% 빠르다.
양지마에서 백두대간 저수령 쪽을 바라보니 산세가 우람차다. 거대한 산줄기가 하늘 높이 우뚝 솟구쳐 드넓은 산줄기를 품에 안고 여기저기 길고 높고 풍성하게 아름다운 지능들을 뻗치고 있다. 강원도 산세도 주눅이 들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양지마부터 저수령 임도 정상까지는 6.7km의 업힐이다. 인적이 드문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숲속 임도. 그 뜨거운 햇살이 깊은 숲에 가려 전혀 들지 않는다. 시원한 그늘 길의 연속이지만, 그만큼 깊은 임도임을 실감나게 만든다. 1시간 10분 걸릴 것으로 계획했는데 욕심내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걸어올랐더니 1시간 11분이 걸려 정상에 도착한다. 평속 5.7km. 꽤 긴 업힐이었지만 오히려 몸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저수령 도착 1km 전에서 반갑게도 송탄MTB의 정병근 님 부부를 만난다. 청양 랠리에서도 부부가 함께 랠리를 완주하시더니, 올해도 함께 완주하시겠구나. 철녀 마나님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불쑥 솟아난다.
<백두대간에서 바라본 저수령 부근의 산세, 옛 백두대간 종주시 찍은 사진>
<저수령 부근의 산세, 옛 백두대간 종주시 찍은 사진>
<저수령 임도 입구, 개구리와 아롬이 님 촬영>
<저수령 임도에서 바라본 조망, 개구리와 아롬이 님 촬영>
9시 28분, 백두대간 종주 당시 야영했던 저수령 정상을 지나 명봉사 뒷산 임도로 접어든다. 1.8km를 올라가더니 명봉사길 다운힐이 시작된다. 시멘트 포장과 잘 다져진 부드러운 황톳길이 예쁘게 곡선을 그리며 3.2km 아래로 뻗어내리고 있다. 최대의 속도를 내어 다운힐해 본다. 신나고 기분이 삼삼하다. 어제의 흡혈 길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 이어지고 있다.
명봉사 포장도로를 오르는데 한 참가자가 나를 알아보고 묻는다.
“사내가요 님이시죠? 어떻게, 지금 이렇게 가면 저도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겠어요?”
나는 GPS를 확인하고 나서 대답한다.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아무리 천천히 가셔도 3시 30분 이전에는 도착하실 겁니다.”
“우린 사내가욘님보다 끌바가 많이 느린데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지금이 9시 50분이고, 남은 거리가 60km도 안 되는데다가, 헛고개만 오르고 나면 길지 않은 도로 업힐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10km는 약간의 내리막 성 평지길이니, 사실상 10km는 공짜로 먹고 가실 테구요, 돈달산 싱글이 있다 하지만 4km의 잘 다듬어진 등산로이니, 절대 시간 안에 못 들어가실 일 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한 뒤에 100m쯤 올라가서 그 참가자를 뒤돌아보니 끌바 속도가 정말로 나의 반밖에 안 된다. ‘뭐, 그래도 시간은 충분하니까… 아무리 느려도 3시 30분 안에는 들어갈 거야.’ 하고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면서 위안을 삼아본다.
명봉사 입구부터 매봉 임도 정상까지는 예상보다 길게 느껴진다. 산줄기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데 산세가 크기 때문인지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몇 굽이를 속고 나서야 산을 넘어가는 정상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만난 한 참가자도 나에게 시간 내 완주 가능성을 묻길래 좀전과 비슷하게 대답해 준다. 그런데 그 분,
“히유, 정말 힘드네요. 지칠 대로 지쳤어요. 오정산 싱글부터 조항령 임도를 넘는 데에만 꼬박 8시간 이상이 걸렸어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길가에서 시체처럼 퍼져 20분쯤 눈 붙인 게 다에요. 뭐 그런 구간이 다 있는지…. 히유~!”
그 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쫓아오지 못하는 그 분을 뒤로 하고 매봉 임도를 신나게 달린다. 산을 넘어서 조금 더 나아가니 이 깊은 산꼭대기에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상쾌한 산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려 내려가는 기분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아, 어제의 처녀귀신이 오늘은 보상을 해주기로 작정했나 보다. 신난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 임도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행여나 놓칠세라, 임도 입구 가까이 왔을 때부터 속도를 줄인다. 한 젊은 참가자가 ‘휘잉~~!’하니 추월해 간다. 왠지 불안해진다. ‘저러다 그냥 내려가는 거 아냐?’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임도 입구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해 내려가는 것이다.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크게 소리친다.
“스톱! 거기 아녀요! 어이! 거기 아녀!”
다행히 그 젊은 총각, 내 말을 알아듣고 자전거를 돌려 올라온다.
임도에 접어들자마자 내 최고 속도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간다. 조금 전의 그 젊은 참가자는 풀샥을 장착한 자전거에 다운힐러인 듯한 포스가 느껴졌는데, 내가 언제 추월당할지를 예상해 가며 그에게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오직 한 쪽 길로만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달리는데, 그는 체크포인트까지 내려와서야 나를 추월한다.
내심 ‘이 정도면 내 다운힐 속도도 만만치 않은데, 흐.’ 하고 만족스러워 하는데, 체크포인트에서 내린 그 젊은 참가자는 정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여기는 그래도 나름 보상이 되는 다운힐 구간이네요.” 하고 동문서답으로 넘어간다.
매봉 임도 정상부터 원류리 도로 합류 지점까지의 11.9km에 이르는 랠리 전 구간 중 가장 신나는 다운힐 코스가 이렇게 지나간다.
야산을 넘어가고 약간의 도로를 지나 직리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두천 임도(경천지 임도)이다. 임도 정상까지 2.4km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쉽지 않게 느껴진다. 임도 정상까지 25분 잡았었는데 33분이 걸려 도착한다. 내려가는 길도 예상과 아주 다르다. 내리막길이라기보다는 평지에 가깝다. 928도로에 합류할 때까지 8분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16분이나 걸린다. 두천 임도를 너무 얕보고 시간 계획을 짰다.
<두천 임도를 내려와 928 도로 합류 지점에 있는 두천 임도 안내문>
도로에 합류해 스마트폰을 꺼내 마누라에게 도착 예상 시간을 알려주고 다시 신나게 달려가 약속장소인 '용지방갈로 수영장식당'에 도착하니 12시 24분이다.
배가 고파서 라면 2개를 다 해치우고, 그것도 부족해 이것저것 마구 주워먹으니 너무 배가 부르다. 일어나기도 힘들만큼 많이 먹었다.
24분 뒤인 12시 48분, 드디어 마지막 구간을 달리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탄다.
[여기까지 263.2km : 32시간 24분 소요 (취침, 식사, 알바 등 모든 것 포함한 라이딩 실제 누적거리 및 시간)]
<중식 지점에 도착할 때 마누라가 촬영>
5. 연장전 : 아름다운 문경의 산하여!
거의 마지막 고개라 해도 틀리지 않을 헛고개를 올라간다. 아주 넓은 비포장 신작로이다. 1.5km 거리에 20분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1.8km 거리이고 19분이 소요된다. 헛고개 정상부터는 다시 신나는 다운힐이다. 종곡교 도로 합류지점을 지나 달곡교까지 5.2km를 있는 힘껏 페달링을 하며 달려 내려온다. 그리고 길지 않은 1.6km의 지천리 포장도로 정상까지의 업힐, 그리고 다시 계속되는 호계리까지의 6.7km에 이르는 긴 평지성 다운힐이 이어진다.
1시 42분, 드디어 호계리 삼거리이다.
다리를 건너 영강 강변길을 빠른 속도로 달린다.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돈달산은 이미 등산하면서 길을 머릿속에 넣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50분 안에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207미터의 고도만 올라치면 되는 작은 문경 시민의 뒷동산!
1시 51분, 돈달산 싱글 입구에 도착하니 3명의 참가자가 가파른 싱글 초입을 올라가고 있다. 속도가 더디다. 나는 “먼저 좀 올라갈게요.”라고 말하고 길 옆으로 재빠르게 달려 올라간다. 저 앞에도 발걸음이 매우 힘들어 보이는 참가자가 힘겹게 급경사 지대를 올라가고 있다. 내가 올라가자 옆으로 비껴준다. 거침없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발걸음이 가볍고 호흡도 생각보다 편안하고 가뿐하다. 주 등산로 합류 지점 조금 못 미친 곳에 이르자 10여 명의 한 팀으로 보이는 참가자들이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선두조들이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하고 말하는데, 내가 보니 그 길이 옳은 길이다.
“그 길이 맞는 것 같은데요.” 내가 아는체를 하며,
“그리로 가시면 돈달산 전망대로 가는 삼거리가 나올 거에요. 자신 없으시면 나를 따라 오시구요.”
그리고 그 일행들을 모두 추월해서 맨앞에서 급경사 구간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치고 올라간다. 예상대로 역시 조금 올라가니 돈달산 주 등산로와 만난다. 긴 나무계단을 크게 숨막히지 않고 단숨에 올라가 버린다. 뒤를 돌아보니 그 팀은 저 뒤에서 제 길을 찾아 올라오고 있다.
<돈달산의 비단길 등산로>
두 곳의 전망대를 지나 급경사 지대를 끌고 내려간다. 이런 곳에서는 몸사리고 끌고 내려가자는 것이 랠리 때의 내 결심이자 소신이다. 자칫 한 번의 실수로 다치기라도 하면 10년 연속 완주가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다운힐은 다 끌고 내려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운힐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끌바 방향을 찾아 천천히 내려가다가 체력단련장 벤치에 앉아 마지막 남은 간식을 모두 먹어치운다. 지금까지 가져온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다 먹어치우고 싶어진 것이다. 남은 체리와 토마토와 물을 남김없이 먹고나서 공평1리로 내려가는 비주류 등산로로 접어든다. 마지막 체크포인트에서 가위질을 마치고 마지막 싱글 다운힐에 들어선다. 경사는 꽤 있지만 노면이 좋기 때문에 제법 속도를 내어본다.
2시 31분, 끝 부분의 급경사 지대에서 끌바하여 내려와 도로를 따라 문경시민운동장으로 달려간다. 돈달산 싱글 구간에서의 총 소요 시간은 남은 간식을 모두 먹어치운 시간 5분을 포함해서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2시 37분, 마누라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다.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완주증을 받아들고 기념 촬영>
완주 시간 34시간 37분. 나에게 완주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랠리를 즐기며 달렸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나 스스로를 세뇌해 왔다.
돌이켜보면 오정산 싱글 전까지는 룰루랄라 비단길 같은 문경의 산하를 시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자 애쓰면서도 나름 빠른 속도로 신나게 달려왔다. 알게 모르게 쌓인 근육의 데미지를 안고 오정산 싱글을 급하게 올랐고, 오정산 싱글을 내려와서는 진이 빠졌다. 그래서 50여 분간의 긴 긴 휴식을 취하게 되었고, 오정산 임도와 조항령 임도를 힘겹게 넘어야 했다. 그래도 4시간의 꿀 같은 잠과 휴식으로 원기를 되찾아 마전령을 넘고 대목재를 넘고 높은 저수령과 매봉 임도를 힘들지 않게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12km의 긴 다운힐에서 조금 보상을 받았지만, 예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복병 같은 두천 임도에서 예상보다 긴 시간을 잡아먹었다. 마지막 돈달산 싱글은 우리집 뒷동산에 올라가는 느낌으로 쉽게 넘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정성과 사랑으로 내 뒷바라지를 해준, 문경이 고향이기도 한 마누라 덕분이다.
‘선물이라도 꼭 해 줘야지!’ 하며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나는 이틀 동안 강원도 못지않은 거대한 품을 지니고 이리 굽이치고 저리 굽이치며 역동적인 산세로 백두대간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문경의 산하를 달렸다. 사전 답사하는 과정에서 아름답고 멋진 속리산 연봉들을 볼 수 있었고, 설악산 천화대 릿지처럼 아름다운 속리산의 산수유 릿지도 그려볼 수 있었다.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장성봉, 희양산, 조령산, 신선암봉, 조령관문, 마폐봉, 탄항산, 포암산, 대미산, 황장산, 저수령, 촛대봉, 묘적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걷던 과거의 추억들이 어느 순간마다 여기에서 툭! 저기에서 툭! 하며 가끔씩 은행 떨어지듯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이틀 동안 이 거대한 산줄기를 벗삼아 우뚝우뚝 새로운 산줄기로 솟구친 둔덕산, 문복대, 대궐터산의 산허리를 달리기도 했고, 영강 진남교반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오정산에 올라 흘러내리는 주흘산 줄기를 바라보기도 했다.
아, 아름다운 문경의 산하여! 280랠리가 아니었다면 내 평생에 언제 다시 이곳 산하의 이 부드럽고도 거친 속살들을 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깊은 곳을, 첩첩산중의 마을들을, 이처럼 걸어보고 달려보고 만져보고, 또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으랴!
지루한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강릉에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280랠리 운영진 및 준비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전국의 MTB 동호인들,
또 좁게는 대전시와 세종시의 자전거 동호인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나의 1일차 로그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누르세요. (문경시민운동장부터 배터리가 방전된 조항령 임도 초입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www.everytrail.co.kr/detailgps.trail?gps_id=99976643
나의 2일차 로그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누르세요. (숙소였던 문경활공랜드펜션부터 문경시민운동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www.everytrail.co.kr/detailgps.trail?gps_id=9997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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