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朱熹)는 태극을 리(理)라고 간주하였으며,
무극(無極)→태극(太極)→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 순으로 하강하는 원리를 이일분수(理一分殊)의 구체적 전개라고 간주하였습니다.
즉 태극은 두 측면을 지니는데,
하나는 불변의 보편 법칙을 개별적 전개 상에서 항상적으로 간직한다는 의미에서 통체태극(統體太極)
또한 그것이 개별자로 전개되어 갖가지 사물로 분화되는 양상으로서 각구태극(各具太極)의 측면이 있다고 본 것
『朱子語類』, 理氣上, 太極天地上, 이때 리는 이 두 측면을 관통하는 형이상학적 작용력, 내지 천도(天道)로 되며,
기는 각구일태극 상에서 양의와 오행(五行)을 이루는 형이하학적 작용력 일반으로서, 리의 분수 작용에 대해 타성적인 규정성으로 간주됩니다.(『通書解』, 誠上, 第五節.)
따라서, 주희는 리와 기의 선차성 문제에서의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아마도 기가 리에 의지해서 운행하는 듯하다. 기가 모이면 리 역시 거기에 간직된다. 생각건대, 기는 응결되고 조작될 수 있지만,
리는 도리어 아무런 정감이나 사려도 없고 조작하지 않는다. 단지 기가 모여 있는 곳이면 리가 그 속에 있을 뿐이다. [...] 요컨대 리가 먼저 있다. "오늘은 리가 있고 내일은 기가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야 없지만, 반드시 앞과 뒤는 있다. 가령 만일 산이나 강 그리고 대지가 모두 무너지더라도 리는 그 속에 있을 것이다." (『朱子語類』, 卷一, 理氣上, 太極天地上, 第十三至十四節.)
이와 반대로 장재는 『정몽』에서 기의 선차성을 승인합니다:
"태화(太和)는 이른바 도(道)이다. 그 가운데에 뜨고 가라앉음, 올라가고 내려옴,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감응하는 성(性)이 함유되어 있어서, 이것이 인온(絪縕)하여 서로 작용하고, 이기고 지고, 굽히고 피고 하는 운동을 생성하는 시작이 된다. [...]
쉬운 상태에서 앎을 일으키는 것은 건(乾)이요, 천도
간단한 상태에서 법칙을 본받는 것은 곤(坤)이다.
흩어져서 여러 가지로 다르게 분화하여 현상화될 수 있는 것이 기(氣)이고,
맑게 통하여 현상화될 수 없는 것이 신(神)이다. [...]
태허(太虛)의 형태가 없는 상태가 기의 본래의 상태이며, 그것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변화의 일시적 형태일 따름이다." (『正蒙』, 太和篇.)
"기의 성질은 흩어져서 형태가 없는 상태로 들어가도, 본질적 상태를 유지하며,
모여서 현상화되어지는 경우에도 본래의 항상성을 잃지 않는다.
태허에는 기가 없을 수 없고, 기는 모여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고,
만물은 흩어져 태허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앞의 문헌.)
주희에게 있어 기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며,
그 변화하는 것 속에서 불변의 보편자 그 자체로 되는 것이 리라면,
장재에게 있어 기는 변화,
그리고 이른바 ‘본질적 상태(體)’를 동시에 아우르는 개념
기는 자기운동하며 만물화생을 이룹니다:
"기는 아득히 넓어 태허의 상태이면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날아오르기도 하면서, 머물러 쉰 적이 없으니, 『역(易)』에서 이르는 바와 같은 인온이라는 상태이고, 또 장생[장자(莊子); 인용자]의 이른바 ‘생물이 호흡으로써 서로 불어대는 것’이나, ‘야마(野馬)’라는 것이리라! 이것은 허와 실, 동과 정의 틀이고, 음과 양, 강(剛)과 유(柔)의 시초이다.
떠서 올라가는 것은 양의 맑음이고, 가라앉아 내려오는 것은 음의 흐림이다.
그것이 감응하고 만나며, 모이고 흩어지면서 바람이나 비가 되고, 눈이나 서리가 되는데,
온갖 종류가 흘러 형성되는 것이든지, 산과 내천과 녹거나 응결되는 것이든지, 곡식 찌꺼기가 타고 남은 불이나 잿더미든지 모두가 일정한 이치가 아닌 것이 없다." (앞의 문헌.)
주희의 체계, 그리고 이 체계를 이은 정주리학의 정통학파에게 있어
양의, 즉 음과 양은 기로서,
그것의 동정(動靜)의 틀을 이루는 것은 리
양의와 더불어, 그것의 발현 형태인 강유의 근저를 이루는 항상적인 법칙을 리
반면 장재는 그 틀을 기라고 간주합니다. 이는 그가 태허를 기의 본체라고 간주하였다는 것과 통합니다.
또한, 장재에게 있어 기는 항상 이단(二端), 즉 이기(二氣)로서, 자기의 대립물을 전제하면서 운동해 나가는 실체로 간주됩니다:
"둘이 서지 않으면, 하나도 볼 수가 없고, 하나를 볼 수 없으면, 둘의 작용이 그치게 된다.
두 가지 상태라는 것은 허와 실이요, 동과 정이요, 모임과 흩어짐이요, 맑음과 흐림이지만, 그 궁극은 하나일 따름이다.
감응한 후에 통함이 있으니, 둘이 있지 않으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강유로써 근본을 세우니, 건과 곤이 무너지면 역을 볼 근거가 없다. [...]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하나의 사물도 서로 닮은 것이 없다. 이러한 것으로 만물이 비록 많으나, 그 실상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사물에는 음과 양이 없는 경우가 없다. 이러한 것으로 천지의 변화는 이단(二端)뿐임을 안다." (앞의 문헌.)
또한 삼량편(參兩篇)에서는 기의 자기운동관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음양의 기는 순환하여 차례로 오며, 모이고 흩어져 서로 뒤섞이며, 오르고 내리며, 서로 구하면서 왕성하게 섞이는데, 대개 서로 아우르고 이겨 하나로 만들고자 하여도 그럴 수 없다. 그것은 굽고 펴는 것이 장소가 없고 운행이 그치지 않는데, 그것이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正蒙』, 參兩篇.)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 즉 대립(항)의 자기관계적 전 양상은 만물화생에 전제되는 운동의 근간을 이루고, 이것은 모두 기라는 기본 규정을 지닙니다. 장재에게 있어 운동이란 기의 한 속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의 내재적이고 근본적인 존재 양식이 곧 기로 됩니다. 장재의 이러한 변증법은 극히 소박한 수준에 그쳐 있기는 하지만, 운동을 기, 즉 물질의 표리하는, 내재적 존재 양식이라 간주한다는 점에서 기계적 유물론의 운동관보다는 어떠한 측면에서 진일보 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리(理) 개념에 대응되는 신(神)은 기(氣)의 자기운동, 개별적 전개의 총체, 즉 사물 총체를 이념적 차원에서 반영하는 원리이며, 이 중에서 선차성은 기에게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신을 이해하려는 마음―의(義)와 명(命)을 추구하는―이 장재의 리 개념에 해당됩니다.
장재의 기일원론 철학은 조선에서 서경덕(徐敬德)이 계승하였습니다. 조선과 청나라 후기, 봉건제 생산관계가 점차적으로 허물어지고 있을 무렵, 장재의 기일원론 철학도 동일한 수준에서 재조명된 바 있는데, 특히 조선에서는 임성주(任聖周)나 최한기(崔漢綺)가 장재 철학의 대표격 연구자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