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 |
을축 |
병인 |
정묘 |
무진 |
기사 |
경오 |
신미 |
임신 |
계유 |
갑술 |
을해 |
병자 |
정축 |
무인 |
기묘 |
경진 |
신사 |
임오 |
계미 |
갑신 |
을유 |
병술 |
정해 |
무자 |
기축 |
경인 |
신묘 |
임진 |
계사 |
갑오 |
을미 |
병신 |
정유 |
무술 |
기해 |
경자 |
신축 |
임인 |
계묘 |
갑진 |
을사 |
병오 |
정미 |
무신 |
기유 |
경술 |
신해 |
임자 |
계축 |
갑인 |
을묘 |
병진 |
정사 |
무오 |
기미 |
경신 |
신유 |
임술 |
계해 |
따라서 지구상에 나타나는 모든 시간은 이 기호로 나타낼 수 있으며 연, 월, 일, 시에 모두 해당된다. 따라서 사주의 각 주(柱)에 두 자씩 배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주는 모두 여덟 자로 표현된다. 그래서 ‘사주’(四柱)가 곧 ‘팔자’(八字)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주팔자란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렇게 표시한 시간은 단순히 숫자로 표기한 것과는 다르다. 숫자로 표기한 시간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어느 한 위치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60갑자로 표현된 시간은 그 시각에 지구와 달과 해, 그리고 태양계 내의 행성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 하는 것까지 드러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60갑자는 우주 관계의 엑스레이 촬영사진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숫자로 표현된 시간의 단면을 보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4. 홍명희의 사주팔자
그러면 이 공식에 따라서 홍명희의 사주팔자를 작성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으니, 사주 하나 작성하는 데서도 우리가 배운 학문과 연구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주는 출생 시간까지 알아야 한다. 홍명희의 사주를 보려면 그가 태어난 시각을 알아야 한다.그런데 홍명희 관련 책자 어디에도 출생시간을 표시한 곳이 없었다.1) 그래서 생각한 끝에 벽초 연구로 잘 알려진 상명대의 강영주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지만 역시 출생시간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또 불거졌다. 강영주 교수의 책에는 홍명희의 생일에 관해 1888년생인데 양력으로는 7월 3일이고, 음력으로는 5월 23일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만세력으로 확인한 양력 7월 3일은 음력으로 5월 24일이었다. 따라서 시간은 그만두고 생일조차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딱한 일이 벌어졌다.
1888년 7월 3일은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있는 홍명희의 묘지석에 적혀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다. 그런데 강영주 교수가 확인한 5월 23일은 홍씨 족보에 나오는 홍명희의 생일이고, 그 족보는 홍명희가 남한에 있을 당시에 출간된 것이므로 홍명희가 알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7월 3일자 역시 홍명희의 자손들이 정한 것이므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강교수가 제보해준 대로 관련자들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3년 6월 15일 충북 청원군 옥산면 사정리 13번지를 찾아나섰다. 거기에 홍명희의 먼 친척인 신행균이라는 분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행균은 평산 신씨로, 이 분의 증조부 여동생이 홍명희의 증조모였다. 이 분한테 홍명희 일가의 생년월일을 적은 장부가 있는데, 1985년 그곳을 강교수가 답사할 때 보았다고 한 것이다.
옥산군 사정리는 행정지명이고, 원래 동네 이름은 강정리이다. 강정리는 충남과 충북의 경계지점에 있는 동네로 큰 냇물을 끼고 있는데, 그곳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면서 아늑한 동네를 세 동강으로 잘라버렸다. 신행균은 이미 6,7년 전에 작고했고, 부인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데, 관련 유품은 모두 신행균의 아들인 신유선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부평에 사는 신유선과 전화통화를 해서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사정 얘기를 했더니 몇 시간 뒤에 결과를 알려왔다. 시간을 적은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확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친필 병풍을 신유선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부분에 대한 답사를 해야 할 것이지만, 아마도 강교수의 몫이 될 것이다.
그 후에 혹시나 하여 대전의 조규은(독립운동가 조완구의 딸-벽초의 고모인 홍정식의 딸. 1912년생) 선생과 통화를 했지만, 역시 출생 일시는 알 수 없었다. 조규은 선생은 고령에도 음색도 좋고 분명했는데, 벽초가 AB형이었다고 기억할 만큼 기억력이 좋은 분이다.
이제 벽초 홍명희의 출생 일시에 관한 비밀은 북한에 없다면 영원히 없는 것이다. 이로서 서양 학문을 익힌 우리는 아주 중요한 자료 하나를 잃을 상황에 이른 셈이다. 사주를 미신으로 몰아붙인 학문이 무엇을 남겼는가를 깊이 생각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홍명희의 사주팔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 글은 여기서 마쳐야 한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홍명희의 사주팔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주팔자가 작가론 연구에 아주 중요한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따라서 홍명희를 매개로 사주쟁이들이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될 무리수를 나는 두고자 한다. 그것은 이미 삶을 끝마친 홍명희의 인생 궤적을 놓고서 역으로 사주를 정한 다음에, 그 사주로 홍명희의 인생을 조명하는 것이다. 사주계에서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사주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음력 5월 23일은 갑술(甲戌)일이고 24일은 을해(乙亥)일이다. 홍명희의 성격과 맞는 것은 24일이다. 그러므로 일주는 乙亥로 세우기로 한다. 그리고 뒤에서 다루겠지만, 시간은 사시(巳時)로 보는 것이 홍명희의 일생과 가장 잘 맞는다. 이것은 강교수가 언뜻 보았다는 조부 홍승목의 일시와 같은데, 어쩌면 홍승목과 홍명희의 시간을,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강교수가 혼동했을 가능성도 점쳐본다. 이렇게 해서 홍명희의 사주를 세워보면 다음과 같다.
1888년 7월 3일생
사주 |
연주 |
월주 |
일주 |
시주 |
팔자 |
戊子 |
戊午 |
乙亥 |
辛巳 |
5. 사주를 보는 틀, 음양오행
사주를 세운 것은 엑스레이 필름을 형광막에 건 것과 같다. 그러나 엑스레이 필름을 펼쳤다고 해서 병이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주를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읽어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읽는 자의 패러다임이 드러남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사주를 읽는 데 필요한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음양오행설이다.
음양설이나 오행설은 모두 춘추전국시대에 성립한 이론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음양오행에 대한 발상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우주와 인사에 적극 적용되어 세상을 이해하는 체계로 성립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춘추전국 시대 이후 이 사상이 동양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사고로 정착했다는 점이다. 국가의 운영이나 행정체계, 나아가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데까지 음양오행은 두루 적용된다. 이것은 음양오행론이 현실과 우주를 이해하는 과학으로 기능했다는 뜻이다. 수학이 모든 과학을 떠받치는 기본이론인 것처럼 음양오행론은 동양사회을 떠받치는 기초상식이자 과학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음양론은 세상의 이치를 음과 양이라는 두 대립요소로 보는 관점이다. 음달이 있으면 양달이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는 것이다. 이 음양론이 가장 복잡하고 오묘하게 정리된 것이 주역(周易)이다. 음양론은 2진법에 기초한 사고이고 이진법 체계를 정교하게 나타낸 것이 역이다. 그러나 이 숫자의 체계가 인사에 적용되었다는 것이 수학의 단순한 숫자 체계와는 다른 점이다. 천간과 지지를 음양론에 따라서 구별하면 다음과 같다.
|
천간 |
지지 |
양 |
甲 丙 戊 庚 壬 |
子 寅 辰 午 申 戌 |
음 |
乙 丁 己 辛 癸 |
丑 卯 巳 未 酉 亥 |
여기서 특기할 사실은 원칙과 쓰임의 차이이다. 위의 표는 원칙에 따른 분류이다. 그러나 실제 쓰임에서는 음양이 바뀌는 것이 지지에 있다. 즉 亥와 子, 그리고 巳와 午는 실제 쓰임에서 그 음양이 뒤바뀌어 나타난다. 이것은 사주를 다루는 명리학이 관념철학이 아니라 직접 실용에 쓰이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상에서는 체와 용이 바뀌어 쓰이는 것이다.
오행설은 음양론의 기초 위에서 다시 우주와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를 다섯으로 추상한 것이다. 음양론이 10진법과 결합할 때 5로 나뉘는데, 이 5는 사람의 숫자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양손은 10이지만 한 손은 5인 것이고, 그것은 마주보는 짝을 이루어서 음양을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10을 음양으로 추리고 거기에 각각의 개별성을 부여하면 오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요인의 모습을 사물로 추상화시켰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그것이다. 추상화란, 사물의 본래 속성으로부터 인간이 특정요인을 뽑아내는 과정을 말한다. 그렇게 뽑아낸 것은 다시 사물을 이해하는 틀로 작용한다. 현상과 관념이 부단히 교섭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오행은 각기 그 본래의 속성을 갖고 있으면서 그 본래 속성이 지닌 어떤 가능성까지도 함축하는 상징성을 띤다. 예를 들여 木은 그냥 나무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지닌 속성, 예컨대, 위로 뻗어가며, 생명력이 있고, 부드럽다는 속성이 있다. 목은 그와 같은 속성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이 오행의 관계는 서로 돕기도 하고 서로 얽기도 한다. 그것을 상생과 상극이라고 한다.
상생: 목→화→토→금→수→목→
상극: 목→토→수→화→금→목→
이렇게 해서 오행의 뼈대를 세운 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 다섯 가지 요인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관계를 관찰하여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을 바탕으로 할일을 정한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오행으로 번역될 수 있고, 오행으로 번역만 하면 그들의 상호관계에 따라 운동법칙을 예측할 수 있다.
사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사주를 세웠으면 그 엑스레이 필름을 보고서 해석하기 위하여 그 해석의 틀인 음양오행으로 다시 옮겨적는 일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천간과 지지를 오행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목 |
화 |
토 |
금 |
수 |
천간 |
甲 乙 |
丙 丁 |
戊 己 |
庚 辛 |
壬 癸 |
지지 |
寅 卯 |
巳 午 |
辰戌丑未 |
申 酉 |
亥 子 |
이에 맞추어 홍명희의 팔자를 오행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土 |
土 |
木 |
金 |
水 |
火 |
水 |
火 |
결국 사주팔자를 본다는 것은 이 여덟 가지 오행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일이 된다. 이와 같이 음양오행의 법칙이 인간의 타고난 운명을 이해하는 데 적용된 분야를 명리학(命理學)이라고 한다.
6. 십성
음양오행설은 동양사회의 전분야에 걸쳐서 오랜 세월 동안 침투한 학문 방법이다. 각기 적용되는 분야마다 독특한 해석을 낳았다. 사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행이 적용된 다른 분야와는 다른 사주명리학만의 독특한 해석법이 있다. 그것을 사람의 성격에 적용시킬 때는 십성(十星)이라고 하고, 가족관계를 나타낼 때는 육친(六親)이라고 하는데, 그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특수한 용어로 표현된다. 이 역시 음양오행의 배당에 따른 결과이다.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비견: 오행과 음양이 서로 같은 것.
겁재: 오행이 같고 음양이 다른 것.
식신: 오행과 음양이 서로 같은 것.
상관: 오행이 같고 음양이 다른 것.
편재: 오행과 음양이 서로 같은 것.
정재: 오행이 같고 음양이 다른 것.
편관: 오행과 음양이 서로 같은 것.
정관: 오행이 같고 음양이 다른 것.
편인: 오행과 음양이 서로 같은 것.
정인: 오행이 같고 음양이 다른 것.
이것을 천간과 지지의 상호관계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 수 있다.
일주천간 |
甲 |
乙 |
丙 |
丁 |
戊 |
己 |
庚 |
辛 |
壬 |
癸 |
寅 |
卯 |
巳 |
午 |
辰戌 |
丑未 |
申 |
酉 |
亥 |
子 | |
甲 |
비견 |
겁재 |
식신 |
상관 |
편지 |
정재 |
편관 |
정관 |
편인 |
정인 |
乙 |
겁재 |
비견 |
상관 |
식신 |
정재 |
편재 |
정관 |
편관 |
정인 |
편인 |
丙 |
편인 |
정인 |
비견 |
겁재 |
식신 |
상관 |
편재 |
정재 |
편관 |
정관 |
丁 |
정인 |
편인 |
겁재 |
비견 |
상관 |
식신 |
정재 |
편재 |
정관 |
편관 |
戊 |
편관 |
정관 |
편인 |
정인 |
비견 |
겁재 |
식신 |
상관 |
편재 |
정재 |
己 |
정관 |
편관 |
정인 |
편인 |
겁재 |
비견 |
상관 |
식신 |
정재 |
편재 |
庚 |
편재 |
정재 |
편관 |
정관 |
편인 |
정인 |
비견 |
겁재 |
식신 |
상관 |
辛 |
정재 |
편재 |
정관 |
편관 |
정인 |
편인 |
겁재 |
비견 |
상관 |
식신 |
壬 |
식신 |
상관 |
편재 |
정재 |
편관 |
정관 |
편인 |
정인 |
비견 |
겁재 |
癸 |
상관 |
식신 |
정재 |
편재 |
정관 |
편관 |
정인 |
편인 |
겁재 |
비견 |
이에 따라 홍명희의 사주를 십성으로 바꿔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의 상호관계와 동태를 면밀히 관찰하면 홍명희의 가족관계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성격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정재 |
정재 |
|
편관 |
편인 |
식신 |
정인 |
상관 |
7. 지장간(支藏干)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수십 억년 동안 돌았고, 지금도 돌고 있다. 그리고 달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계절은 태양의 둘레를 도는 지구의 운동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이것을 등분한 것은 달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땅의 변화를 나타내는 지지에도 태양의 속성이 강하게 스며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사주의 이면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과 비슷하다. 그와 같이 지지 속에 숨어있는 천간의 특성을 지장간이라고 한다. 다음과 같다.
|
子 |
丑 |
寅 |
卯 |
辰 |
巳 |
午 |
未 |
申 |
酉 |
戌 |
亥 |
지장간 |
壬癸
|
癸辛己 |
戊丙甲 |
甲乙
|
乙癸戊 |
戊庚丙 |
丙丁
|
丁乙己 |
戊壬庚 |
庚辛
|
辛丁戊 |
戊甲壬 |
홍명희의 사주에서는 이 지장간의 변화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그만두고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친다.
8. 대운(大運)
사주팔자는 지구상의 특정한 시간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매 시간마다 사주가 발생한다. 이것은 나의 출생과 함께 나의 사주가 결정되었지만, 그 사주는 어떤 또 다른 시간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즉 내가 타고난 사주의 요인이 내 몸 속에 존재하지만, 나는 또 현재 이 시각을 사는 존재인 것이다. 현재 이 시각은 또 사주로 나타낼 수 있고, 현재의 시각은 나의 존재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내 사주 위에 현재라는 또 다른 사주가 겹쳐있는 것이 사람의 운명인 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사주 상태가 나의 본래 사주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내가 일생에 걸쳐서 살아가야 할 운명의 곡선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세월로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러나 나의 사주가 같지 않기 때문에 같은 시간이 밀려와도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이 역시 사주를 통해서 예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닥쳐오는 시간을 운(運)이라고 한다. 매년 되풀이하면서 오기 때문에 이를 세운(歲運)이라고 하고 년운(年運)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매년 신수 풀이로 새해에 점을 보는 것이 우리 풍속으로 전해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세운은 일년 단위로 끊어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전체의 일생을 조명하기에는 다소 불편하다. 60년의 변화를 보려면 60개의 연주와 맞추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일생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보는 대운(大運)이다. 물론 20년 주기 30년 주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또 덩어리가 너무 커서 변화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보통 10년 대운을 본다.2)
대운은 사람의 일생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감정하는 것이다. 기준은 생일이 속한 달과 그 달이 시작된 시각으로부터 생일까지 비교한 길이가 된다. 보통 한 달은 30일 가량 되므로 30을 10으로 볼 때 생일은 얼마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을 계산하여 운이 변하는 기준나이로 잡는다. 이 기준 나이에서부터 10년 단위로 끊어서 월주의 순서대로 작성한다.
그런데 작성 기준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남자의 경우 천간이 양에 해당하는 해이면 운이 가는 순서는 순행이고 음에 해당하는 해이면 거슬러 올라간다. 홍명희의 경우는 무자(戊子)년 무오(戊午) 월 생이므로 무오로부터 순행하여 차례대로 내려간다. 다음과 같다.
1 |
11 |
21 |
31 |
41 |
51 |
61 |
71 |
81 |
己未 |
庚申 |
辛酉 |
壬戌 |
癸亥 |
甲子 |
乙丑 |
丙寅 |
丁卯 |
이것이 뜻하는 바는 1살부터 10살에는 기미의 운이 작용하고 11살부터 20살까지는 경신의 운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서 전개된다.
이 밖에도 사주를 판단하는 것으로 충, 합, 해, 형, 망, 살 같은 것들이 있으나 이것은 그때그때 필요한 상황에 따라서 설명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팔자 |
戊子 |
戊午 |
乙亥 |
辛巳 |
오행 |
土 |
土 |
木 |
金 |
水 |
火 |
水 |
火 | ||||||
지장간 |
壬癸 |
丙丁 |
戊甲壬 |
戊庚丙 |
십성 |
정재 |
정재 |
|
편관 |
편인 |
식신 |
정인 |
상관 | ||||||
대운 |
1 |
11 |
21 |
31 |
41 |
51 |
61 |
71 |
81 |
己未 |
庚申 |
辛酉 |
壬戌 |
癸亥 |
甲子 |
乙丑 |
丙寅 |
丁卯 |
9. 홍명희 사주의 실제 분석
1)격국과 용신
격국이란 사주의 전체 모양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풍기는 전체의 인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단점이 있고 장점이 있듯이 사주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한쪽은 남고 어느 한쪽은 부족하다. 그래서 한 편으로 기우뚱한 것이 보통이다. 사주에 오행이 두루 퍼져있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서 안정된 것은 ‘중화된 사주’라고 해서 품격이 높은 것으로 친다. 당연히 부귀영화와 건강재부를 적당히 갖추게 된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그 균형을 잡아줄 한 오행 요소가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그 사주에 꼭 필요한 오행 요소를 용신(用神)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주를 읽을 때는 먼저 사주 전체의 격국을 판단한 다음에 그 사주에 꼭 필요한 요인인 용신을 가려내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그 다음에 전체의 대운과 대조하여 그 사람의 일생을 추리하는 것이다.
사주의 주인은 일간(日干)이다. 이 일간을 나로 보고 다른 것들이 나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사주의 일간은 을(乙)이다. 을은 오행 상 목(木)에 해당한다. 목은 오행 중 유일하게 생명을 갖춘 것이다. 생명체는 자란다. 특히 나무는 하늘로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이 자라는 특성은 생명이 멈출 때까지 지속된다. 목에 해당하는 천간인 갑(甲)과 을(乙) 일에 태어난 사람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일을 벌이는 특징을 지닌다. 한 마디로 일을 마구 벌여놓고 보는 성격을 지닌다. 갑은 양이기 때문에 뒷수습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왕성하게 일을 벌인다. 뒷수습에는 별로 관심도 두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그러나 같은 목이라도 음에 해당하는 을은 과수원의 나무처럼 실속 있는 형이다. 그래서 챙길 것 다 챙겨가면서 일을 벌이는 실속파에 해당한다. 그리고 음의 속성상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일을 벌이고 수습하는 성격을 띤다. 홍명희의 생일을 23일(甲戌)이라고 보지 않고 24일(乙亥)로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홍명희는 일을 벌이되 침착하게 그 전후사정을 고려하여 치밀하게 준비하는 성격인 것이다. 23일과 24일은 하루 차이지만, 그 하루 차이가 이렇게 다른 성격을 만든다.
다음으로 볼 것은 자신의 밑에 있는 일지(日支)이다. 대체로 지지는 토양이라고 보면 된다. 일간이 어떤 토양에 뿌리를 박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주의 모습은 달라진다. 일지는 해(亥)로 오행상 수에 해당한다. 수는 목에게 힘을 보태주는 쪽이다. 오행의 상생관계에서 수생목(水生木)인 것이다. 따라서 을목은 자신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해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목으로서는 생명줄과도 같다. 특히 이 사주는 자신의 기운이 약한 편이다. 즉 자신을 생해주는 요소나 자신과 같은 요소가 전체 8자 중에서 2개뿐이다. 자신까지 포함시켜도 3이니 3:5의 비율로 나의 힘이 약한 상황이다.
따라서 용신 역시 이와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요소인 수나 목으로 정해야 하는데, 신약인 이 사주에서는 인수가 가장 필요한 요인이므로 일지인 해수(亥水)를 용신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사주는 수목 운에서 길운이 되고 이것을 극하는 금토 운에서 나쁜 운에 들게 된다.
사주에서 자신이 깔고 앉은 일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간이 태어난 달이 언제이냐 하는 것이다. 일년 중 어느 때 태어나는 것이 가장 좋으냐 하는 것이 사주의 전체 격국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일간이 나무인 을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나무가 가장 좋은 때는 당연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당연히 달을 나타내는 월지에 달려있다. 이 사주의 월지는 오화(午火)로 해가 이글거리는 한 여름이다. 을목은 우람한 나무가 아니라 연약한 나무이다. 작고 연한 나무가 뜨거운 해가 이글거리는 여름에 태어났으니 가장 필요한 것은 시원한 한 줄기 물이 된다. 그런데 이 을목은 바로 물인 해(亥)를 깔고 앉았으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격이다. 물을 충분히 공급받는 한 여름의 과일나무가 연상된다.
이 사주는 여름에 태어나서 신약하되 억부와 조후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인수를 용신으로 삼은 사주이다. 일간이 뿌리내린 토양이 식신이므로 평생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할 사주이다.
2) 십성
십성은 오행 관계가 사람의 성격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일간을 기준으로 할 때 사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월지이다. 월지의 관계에 따라 그 사주의 큰 성격이 결정된다. 이 사주에서는 을목 일간에 오화가 월지이므로 십성 중 식신에 해당한다. 식신은 나로부터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목생화(木生火) 관계이다. 이런 관계가 내포하는 기본성격은 한 가지 분야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려운 학문도 깊이 파고들어서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다재다능하며 깊이 파고들어서 일가를 이룬다. 그리고 남이 깊이 연구해놓은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소화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순수하기 때문에 난잡하거나 지저분하지 않고 청고한 맛이 난다. 때로는 고독한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따라서 청고한 예술 세계를 이루는 데는 이 식신이 없으면 안 된다. 게다가 일간은 을인데 을은 음이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지식을 흡수하되 어설프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소화한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지식을 흡수한다. 홍명희가 지닌 비상한 기억력과 문예 방면의 재능은 바로 이 토양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성격으로 볼 때 홍명희는 문예 방면에서 일가를 이루고도 남을 그런 자질을 갖추었다.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식신인데, 일간이 뿌리내리고 있는 토양이 바로 그 식신인 것이다. 임꺽정에 나타난 광범위한 지식은 바로 이 성분의 작용이 분명하다.
이 식신과 짝을 이루는 것이 상관이다. 이 둘은 나로부터 기운을 빼내가는 것인데, 식신은 나와 음양이 다른 것이고 상관은 나와 음양이 같은 것이다. 따라서 상관이 더 편벽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식신은 순수하게 깊이 파고드는 것이므로 순수하고 고독하며 청고한 맛이 있는데 반해 상관은 재주꾼이다. 그러나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재주를 바탕으로 무리 짓기를 좋아하며 나서서 이끌기를 잘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이용하기 위하여 기존의 사회제도(官)를 이용한다. 따라서 이기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아주 천박해 보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홍명희가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이 성격 탓이다. 그러나 이 성격은 시지에 있어서 월지인 식신의 주변에 포진해있으므로 경박하거나 사리사욕에 머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 사귀는 재주를 좀 더 크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일지에는 정인이 있다. 정인은 나를 길러주는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다. 남에게 베풀 줄도 알고 남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안다. 말하자면 어머니 같은 성품이다. 사람 가운데 어쩐지 따뜻하고 포근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이 정인의 품성을 지닌 사람이다. 홍명희의 사주에는 정인이 일간과 한 몸으로 어울려 있어서 남들이 대하기에 까다롭지 않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게 된다. 게다가 일간이 음인 을목이기 때문에 더더욱 포근하게 느끼게 된다. 홍명희가 지닌 포용력은 일지인 정인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지장간의 소식이다. 지장간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성격 형성에 은근히 작용하여 겉보기에는 종잡을 수 없지만 그 심층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성질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노릇을 한다. 자신을 나타내는 을해(乙亥)는 지지가 나를 생조해주는 정인을 깔고 앉은 모습이므로 매우 뛰어난 직관력을 갖추게 된다. 여기서 해(亥)의 지장간은 무(戊) 갑(甲) 임(壬)인데, 이들은 십성으로 볼 때 각각 정재, 겁재, 정인이 된다. 정재는 물질에 집착을 하는 성분이다. 따라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어서 자칫하면 구두쇠가 되거나 인색하다는 욕을 먹게 된다. 거기다가 겁재는 자신과 닮은 꼴이므로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몰아간다. 따라서 이런 일주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남을 착취하는 속성으로 굳어지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이 좋은 환경에 놓이면 사소한 것까지 알뜰히 챙겨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혜안을 갖추게 된다.
년간과 월간에 정재가 있다. 정재는 재물을 부리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재물에 관심을 두는 정도를 말한다. 눈치가 빠르고 계산이 정확해서 절대로 손해보는 일이 없는 성분이다. 투자를 해도 안전한 투자를 한다. 그래서 이것이 너무 강하면 구두쇠나 수전노같은 인상을 주게 된다. 그런데 홍명희의 사주에는 이 정재가 둘이나 있다. 그것은 현실판단에 아주 민감해서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한 치 오차도 없이 아귀를 맞추는 능력을 나타낸다. 홍명희가 부친의 자결 소식을 듣고 귀국했을 때 그의 집은 몰락해가고 있었는데, 그런 집안을 이어 받아서 꾸려간 능력은 바로 이 정재의 소관사항이다. 재물을 짜임새 있게 쓰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사물이 지닌 기능을 가장 확실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재능이다. 그리고 정재가 년간과 월간에 있어서 그의 당대보다는 조상 대에 대단한 재산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편관은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홍명희는 평생 동안 꽤 높은 직위까지 올랐다. 그것은 관살 덕분이다. 그러나 연월일 세 곳에는 관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살은 시주에 나온다는 결론이다. 특히 북한에서 부주석을 지냈다는 것은 그의 인생 느즈막에 관운이 온다는 것을 뜻한다. 인생의 막바지 상황을 나타내는 것은 시주(時柱)이다. 편관은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니만큼 그것은 자신에 대한 절제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편관이 없다면 이 사주에서는 받기만 하고 마구 써대는 격국이 되기 때문에 노름꾼이나 백수건달의 사주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자신을 통제하는 관살 때문에 균형잡힌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편관은 공익을 위해 자신에게 냉정하고 남의 일에도 앞장을 서는 면도 있어서 의리를 중요시 여기는 남자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상을 근거로 전체를 조망해보면 홍명희의 사주는 예술가 사주의 전형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예술가에 머물지 못한 것은 그의 운세가 서북방 금수운으로 흘러서 결단을 요구하면서도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평온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정치인보다는 문학예술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3) 건강
사주에는 건강 상태도 나타난다. 보는 방법은 역시 다른 것과 같다. 먼저 건강을 볼 때도 지지의 동향을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지는 어느 상황에서나 토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주의 지지에서는 충이 일어난다. 지지끼리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지지끼리 충돌하면 사주의 주인공이 서있는 바탕이 흔들리는 것이므로 지지의 충이 있는 사주의 주인공은 평생 병약하게 된다. 바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홍명희 역시 건강체가 아니었고, 병으로 인하여 요양까지 가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이런 병은 특히 대운과 세운에서 충을 일으킬 때 두드러진다. 1935년 을해년에는 신장염으로 정양을 하고 있다는 잡지 보도가 있다. 이 을해는 홍명희의 일진과 같은 운이어서 언뜻 보면 신약한 사주에는 도움이 될 듯한데, 이 해에 오히려 병이 악화된 것은 해(亥)가 시지의 사(巳)와 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장염 역시 용신인 해수(亥水)가 충을 받아서 생긴 현상이다.
사주에서 건강을 볼 때는 용신의 상태를 중요시한다. 이 사주의 용신은 해수(亥水)이다. 그런데 이 수는 양쪽에 모두 불을 끼고 있다. 월주와 일지에 오화(午火)와 사화(巳火)가 있고 용신인 수가 그 사이에 끼어있는 형국이어서 곧 증발할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장육부 중에서 수에 해당하는 장기가 병을 앓게 된다. 참고로 오장육부를 오행관계로 배당하면 다음과 같다.
목 |
화 |
토 |
금 |
수 |
간 |
심 |
비 |
폐 |
신 |
담 |
소장 |
위 |
대장 |
방광 |
해(亥)는 오행상 수(水)이다. 수에 해당하는 장기는 신장이다. 따라서 이 사주에서는 용신인 해수가 기신인 화의 공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쉽게 말해 용신이 병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인 신장에 병이 올 수밖에 없다.
이런 양상은 그의 관상에서도 확인된다. 사진을 보면 첫눈에 띄는 것이 대머리인데, 대머리는 화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반대로 수기가 너무 강하면 머리칼이 허옇게 센다. 대머리는 센 화기가 위로 몰린 사람이고 머리칼이 센 사람은 신장인 수 기운이 강한 사람이다. 이것은 모두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안 돼서 생기는 현상이다. 심장은 위에 있고 신장은 밑에 있다. 심장은 뜨겁고 신장은 차갑다. 따라서 심장의 뜨거운 기운과 신장의 차가운 기운이 서로 교류를 해야만 신체는 건강한 것이다. 이 수승화강이 잘 이루어지면 이마는 서늘하고 아랫배는 따뜻하다. 심장과 신장이 제 기능을 하면서 뜨거운 기운은 밑으로 내려오고 서늘한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교류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신장이나 심장 중 어느 하나에 이상이 오면 이것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뜨거운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기운은 더욱 차가워져 몸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허옇게 세고 대머리가 벗어지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이 잘 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간이 을목(乙木)인데 목에 해당하는 일주를 지닌 사람은 신경이 날카로운 편이다. 신경계 역시 오행상 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주는 용신인 수가 화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수에 해당하는 장기인 신장이 부실해졌고, 신장이 부실하면 그의 아들에 해당하는 목의 기운 역시 병이 들어 간담의 기능이 떨어지면 그로 인하여 신경증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못마땅한 세상사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멀리 하는 경향이 생긴다. 35년 마포로 이사한 것은 이와 같은 경향이 강화되는 을해년이기 때문이다.
강영주 교수의 글을 읽다 보니 이와 같은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해방 후의 한 좌담에서 벌어진 이야기인데, 그 중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화가 있다.
이원조: 만해 선생께서 벽초 선생을 흉보시던 얘기를 선생님께 공개하겠습니다. 만해 선생께서 “조선일보”에 연재소설을 쓰시던 땐데 하루는 소설 관계로 만해 선생을 찾아갔더니 그 선생 말씀이 벽초가 “임꺽정”을 쓰다가 중단했다가 하는 것은 정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하시더군요.(일동 소)
벽초: 그 점은 만해가 옳게 보았어. 사실로 정력이 부족한 탓이었으니까. 정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을 부인할 배짱은 없는 걸.(벽초 홍명희 연구, 362쪽에서 재인용)
정력이 부족하다고 만해가 한 말을 벽초가 받아서 그렇다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력이란 어떤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힘과 생식능력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다. 두 힘은 양상은 다르지만 결국 같다. 그런데 정력을 주관하는 것은 신장이다. 신장은 오행 상 수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주에 수가 많은 사람은 호색한이거나 정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홍명희는 용신인 수가 충을 당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정력이 약한 것이고, 이것은 어떤 일을 추진하는 힘과도 연관이 있다. 만해는 중이다 보니 음양오행에 아주 밝을 것이고, 절친한 벽초의 평소 행실과 관상, 나아가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아서 ‘정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는 벽초가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벽초 역시 오행 정도는 능수능란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음양오행설은 조선시대 선비의 기본 소양과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벽초의 건강이 신장에서 문제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려도 된다는 뜻이다.
4) 육친
육친은 가족관계를 나타낼 때 쓰이는 용어이다. 가족관계가 사주에도 나타난다. 물론 이 관계를 나타낼 때는 나인 일간을 기준으로 한다. 이것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도 나의 사주에 어떤 요소가 좋게 작용하고 나쁘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희용기구한이라는 관계이다.
용신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했다. 즉 일간이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는 가장 절실한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주에서는 신약한 을목이 무더운 계절에 났으므로 나를 생조해주는 수가 용신이 된다. 수는 목인 나에게는 어머니에 해당한다. 그런데 같은 어머니라도 정인은 친모를 편인은 계모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사주에는 편인과 정인이 다 들어있다. 따라서 어머니가 둘인 사주이다. 실제로 홍명희는 3살 때 친모를 잃고 계모 슬하에서 자란다. 그렇다면 친모와 계모를 대하는 홍명희의 심정은 어떤 상태일까? 그것도 역시 사주에 나타난다.
사주에서 어머니의 자리는 월지이다. 그런데 친모를 나타내는 정인이 아내의 자리인 일지에 가있다. 홍명희는 아내로부터 어머니의 느낌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계모를 나타내는 편인은 할머니의 자리인 년지에 가있다. 할머니한테서 어머니 같은 느낌을 받고 있으며 계모한테서는 할머니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홍명희는 계모를 마치 할머니 떠받들 듯이 아주 정중하게 존중하고 섬겼다는 뜻이 된다.
다음은 희신을 볼 차례이다. 희신(喜神)은 용신의 활동을 도와주는 요소를 말한다. 역시 일간인 나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신약한 을목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나와 비슷한 비견과 겁재이다. 이 사주에서는 목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주는 형제와 우애가 좋은 특징을 진다. 실제로 이복형제 성희하고는 절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사주에 보탬이 되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 반면 오행 관계 상 사주에게 해가 되는 요소도 있기마련이다. 사주에 가장 해로운 요인은 사주의 균형을 잡아주는 용신의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이 요소를 기신(忌神)이라고 한다. 용신이 수이므로 수를 방해하는 것은 상극관계에서 토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신은 토이다. 이 사주에서 토에 해당하는 것은 정재이다. 정재는 부인을 뜻한다. 이 사주의 부인은 이 사주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존재이다. 아버지와 시아버지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남편 하는 일이 늘 어리석어 보이고 그래서 잔소리를 하게 된다. 쉽게 말해 바가지를 긁게 된다. 그러나 일간인 내가 을목에다가 음이기 때문에 이러한 잔소리를 맞받아치지 않고 조용히 삭히는 성격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전혀 그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봉건사회의 유습이 강하게 살아있던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더더욱 억압된다. 겉보기에는 평화스러웠을지 몰라도 홍명희는 아내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신만은 못하지만 사주에 해를 끼치는 요소가 또 있다. 이것은 직접 해를 끼치기보다는 기신이 날뛰는 것을 도와주는 방법으로 용신의 활동을 방해한다. 대개는 희신을 극하는 요인이다. 희신은 목이므로 목을 극하는 금이 그 요소이다. 을목에게 금은 편관이나 정관에 해당하는데 남자의 사주에서 편관이나 정관은 각각 아들과 딸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들이나 딸 역시 아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는 부담이 된 존재이다. 그리고 아들을 뜻하는 편관이 아들 궁인 시간에 있어서 아버지인 사주의 주인에게는 말 그대로 철부지 아들 노릇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들 기문은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형제같은 부자라고 했다는데, 아마도 아버지인 홍명희가 보기에는 늘 철부지로 보여서 잔소리를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갈등이 생길 때 늘 을목인 아버지가 한 발 물러서서 부자가 등을 돌리는 것 같은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타 나머지 자식들도 아버지에게는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것은 아버지에 해당하는 편재가 이 사주에는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은 부친 홍범식이 자결한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한데, 사주에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전에도 헤어져 살았거나 아버지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여건에 놓였다는 것을 뜻한다.
5) 대운과 충
이 사주에서 눈여겨볼 것은 지지의 상황이다. 지지는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지지의 여건에 따라서 나의 조건은 크게 영향받는다. 그런데 이 사주에서는 지지끼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충은 지지를 둥글게 배열했을 때 서로 마주보는 곳에 위치한 지지끼리 충돌한다는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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亥 |
子 |
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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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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寅 |
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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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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卯 |
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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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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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 |
午 |
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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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보면 짝을 이루어 서로 마주보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충(沖)이라고 한다. 그 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子午沖
寅申沖
丑未沖
卯酉沖
巳亥沖
辰戌沖
사주에서 이것이 충돌하면 그 사람의 일생은 소란스럽거나 떠돌게 된다. 그런데 홍명희의 사주에도 지충이 있다. 그것도 둘이나 된다. 이것은 그의 일생이 평생을 떠돌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대운과 세운, 월운에서 서로 충을 일으키는 때에 타관으로 떠도는 일이 발생한다.
사주 |
연주 |
월주 |
일주 |
시주 |
팔자 |
戊子 |
戊午 |
乙亥 |
辛巳 |
사주에서 연주와 월주는 인생의 전반부 상황을, 일주와 시주는 인생의 후반부 상황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런데 연지와 월지는 자오충을 일으키고 일주와 시주는 사해충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떠돌면서 생활한다는 암시이다. 그런데 같은 충이라도 성격상 내용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자오충은 격렬한 충이어서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부딪히는 사생결단의 충이다. 자는 물이고 오는 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해충은 어린아이들의 싸움과 같아서 규모는 작지만 서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충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보면 홍명희가 떠도는 상황이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떠도는 여건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인생의 전반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의 절망과 관련이 있는 떠돎인 반면 인생의 후반부는 할 일이 분명히 있어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떠도는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홍명희 연보에서 떠도는 부분만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1888(戊子 1세) (고종25) 7. 3. 출생.
▼1901(辛丑 14세) 상경.
▼1902(壬寅 15세) 서울의 중교의숙 입학.
▼1905(乙巳 18세) 귀향. 일본어 배움.
▼1906(丙午 19세) 일본 유학. 동양상업학교 예과 편입. →자오충
▼1907(丁未 20세) 동경 대성중 3년 편입.
▼1910(庚戌 23세) 귀국. 부친 홍범식 자결. 차남 기무 출생.
▼1912(壬子 25세) 만주로 출국. 이듬해 상해로 옮김. →자오충
▼1914(甲寅 27세) 11월(乙亥) 상하이를 떠나 남양으로 옮김. →자오충
▼1915(乙卯 28세) 싱가포르 정착.
▼1917(丁巳 30세) 12월(壬子) 남양 생활 청산, 싱가포르를 떠남. →사해충
▼1918(戊午 31세) 상하이와 베이징 체류하다 귀국. →자오충
▼1919(己未 32세) 독립만세운동. 인산리에서 제월리로 이주.
5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선고. 6월 형 확정.
▼1920(庚申 33세) 4월 만기 출감. 내장산 일대 여행.
▼1921(辛酉 34세) 쌍둥이 딸 수경과 무경 출생. 서울로 솔가 이주.
▼1929(己巳 42세) 신간회 사건으로 검거. 유치장으로 송치. →사해충
▼1935(乙亥 48세) 신병으로 금강산 등지에서 요양. →사해충
▼1939(己卯 52세)임꺽정 연재 중단. 시국 악화로 양주군으로 이주.
▼1948(戊子 61세) 4~6월(丙辰-丁巳-戊午) 평양 모임 참가. 8월 가족 월북. →자오충
▼1949(己丑 62세) 2월-4월(丙寅-丁卯-戊辰-己巳) 소련 방문. →사해충
▼1953(癸巳 66세) 11月(癸亥) 중국 방문. →사해충
▼1955(乙未 68세) 4월-(庚辰-辛巳-壬午) 동독 방문. →자오충
▼1959(己亥 72세) 4-6(戊辰-己巳-庚午)월 소련과 동구 여행. →사해충, 자오충
▼1968(戊申 81세) 3월(乙卯) 5일(甲戌) 노환으로 별세.
이상을 보면 홍명희의 이동은 거의 사주의 충과 맞물려있다. 특히 년운이 충을 일으키는데, 년운의 지지와 사주의 지지가 충돌이 일어날 때 떠도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년운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월운에서 일어난다.
다만 년운에서 충이 없는데 이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월운에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14세 때의 상경과 서울로 솔가한 34세에는 년지에는 충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마도 월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1939년의 양주 이주도 역시 충이 일어나지 않는데 몇 월에 이사했는지 약력에는 나오지 않는다. 5-6월(己巳-庚午)이나 11-12월(乙亥-丙子)로 추정된다. 또 62세 때 소련을 방문한 것은 2~4월로 되어있는데, 충은 4월에 있다. 따라서 약간 오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정확한 날짜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이상을 보면 지지에서 일으키는 충과 홍명희의 이동상황은 아주 정확히 맞물려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홍명희가 태어난 시간을 사시(巳時)로 잡은 것이다. 시지를 사시로 잡지 않으면 해(亥)에 해당하는 해와 달에 홍명희가 이동한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해시를 출생시로 잡으면 시간(時干)에는 신(辛)이 들게 되어 연월일에 없는 관살도 나타나서 홍명희가 인생 후반부에 북조선에서 관직에 깊게 관여하게 된 사연까지도 설명해준다. 편관은 관직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이 시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후반부에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10. 문예 창작의 비밀
사주에서 예술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은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이다. 이 둘은 오행 관계로 볼 때 모두 나로부터 빠져나가는 것들이다. 예술 활동이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를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바깥을 향해 발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홍명희는 일간이 을목이므로 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이되 나와 음양이 같으면 식신이고, 음양이 서로 다르면 상관이다.
이 중에서도 식신은 예술가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특징이다. 식신은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서 그 본질을 이해하고 섭취하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사색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학문에 대해 완성하고자 하는 집착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깊이 사색하는 특징이 있는 만큼 남들과 어울려 지내기보다는 혼자서 궁리하는 편이 강하다. 그래서 남들과 교제하는 데는 서툴 때가 많다. 그래서 자칫하면 사회성이 결여되는 인격을 형성하기도 한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편이며 자신의 순수한 면에 집착하여 남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식신에서는 청고한 맛이 난다. 예술 혼이 바로 그렇다. 따라서 사주에 이 식신이 박혀있는 사람은 예술 계통에서 대부분 능력을 발휘한다.
반면에 나로부터 같이 빠져나가는 성분이면서도 상관은 약간 그 맛이 다르다. 상관은 눈치가 빠르고 상황파악을 아주 잘 한다. 대신에 깊이 파고드는 편은 덜하다. 그래서 남들이 연구해놓은 것을 재빨리 소화하여 그것을 남들과 교제하는 데 활용한다. 그래서 사교계에서 크게 성공한다. 이른바 보스 기질은 여기서 나온다. 남의 감정을 재빨리 간파하고 그것을 다룰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대신에 그러한 교제가 사회의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성취욕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기본 바탕에는 이기주의가 깔려있다. 그래서 이미 성취해놓은 사회의 수단을 이용하려 든다. 법이나 사회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속성을 나쁜 것으로 여겼다. 이름도 상관(관직을 다치게 한다.)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다양한 재주를 가진 이러한 사람에게 아주 유리한 세태라서 꼭 나쁘게 볼 일 만도 아니다.
그런데 홍명희의 경우는 이 식신이 월지에 앉아있다. 월지는 일간인 내가 뿌리내린 토양이다. 그 토양의 질이 그 사주의 기본 성격을 결정한다. 이로 보면 홍명희는 타고난 예술가의 사주이다. 여기에다가 상관까지 일지에 깔려있어서 예술혼을 타고났으되 사람들과 잘 사귀고 남의 심리를 빨리 파악하는 능력까지 아울러 갖추었다. 지나친 예술 행위로 건방지다는 평을 받지 않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요인이 이것이다.
그런데 글도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상력에 기초한 순수한 문예창작물과 이성의 논리와 판단에 의한 글이 그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글이 쓰여지는 바탕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문예창작물은 식신과 상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비평문이나 논설 같은 글은 식신과 상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석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기 때문에 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논리화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신과 같은 성분이나 자신을 도와주는 성분과 관련이 있다. 자신과 같은 성분은 비견과 겁재이고, 자신을 돕는 성분은 인수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홍명희가 계해(癸亥) 대운에 임꺽정을 집필했다는 사실이다. 계해 대운은 41세에 시작해서 50세에 끝난다. 이 기간에 임꺽정이 쓰여졌다.
▼1909(己酉 22세) 대한흥학보에 논설문(3월호), 한시(4월호), 애도문(6월호) 발표.
▼1922(壬戌 35세) 애도문(신규식 죽음, 동명 10월1일자) 발표.
▼1924(甲子 37세) 5월 동아일보 편집국장. 동아일보에 칼럼 연재.(학창산화)
▼1926(丙寅 39세) 막내딸 계경 출생. 문예운동에 기고. 학창산화 간행. 백팔번되에 발문
▼1928(戊辰 41세) 11월(癸亥) 임꺽정 연재.
▼1929(己巳 42세) 신간회 사건으로 검거. 유치장으로 송치. 연재 중단. 삼천리에 자서전 연재(6, 9월호)
▼1932(甲戌 45세) 가출옥 12월에 임꺽정 연재 재개. ~34년 9월
▼1936(丙子 49세) 칼럼 연재(양아잡록:2.13~16, 온고쇄록:4.18~21)
▼1937(丁丑 50세) 12월. 임꺽정 연재 재개.
▼1938(戊寅 51세) 조광에 논문 기고.
▼1939(己卯 52세)임꺽정 연재 중단.
▼1948(戊子 61세) 임꺽정 6권 간행.
계해는 천간과 지지 모두 오행상 수(水)에 해당한다. 수는 일간인 을목(木)에게는 인수이다. 인수는 나에게 기운을 생조해주는 요인이다. 이것으로 보면 나로부터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식상에서 소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비겁이나 나를 생조해주는 인수 운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이것은 소설이라는 갈래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볼 수 있다. 시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어떤 자극에 충동을 받아서 쏟아내는 양식인데 반해 소설은 그 바탕이 짜임새에 있으므로 이 짜임새는 감상보다는 이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신약한 을목을 생조해주는 운이 올 때 대작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사실 사주로 예술가들의 성향을 정리한 사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은 위험한 것이다. 예술가들에 대한 사주연구가 좀더 진행된 뒤에 내려야 할 결론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임꺽정”에는 주팔이에서 병해대사로 바뀌는 인물이 나온다. 거기에 이천년이 나오고 정렴이 나오며 정희량이 나온다. 이들은 제도권 밖의 인물이다. 이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바로 사주와 관상학이다. 이들은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을 등장시킨 작가는 이러한 세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세계를 모르면 도저히 구사할 수 없는 사건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륜이가 덕수 처의 사주를 보고 써놓은 구절 이 그런 것이다. 이것은 홍명희가 사주 쪽으로도 깊은 조예를 갖추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주는 조선시대 과거의 한 과목이었으며 사대부들의 상식이었다. 이 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옛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윤선도는 풍수학의 대가였다. 그가 짓고 산 집이 그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풍수학을 미신으로 몰아붙인 문학연구가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겠는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12.맺음말
지구는 사심 없이 태양을 돌고 있다. 우주의 모든 별들 역시 옛날부터 그렇게 해온 대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인간의 사심이 끼어들 수도 없다. 욕심도 없고 꾸밈도 없는 것이 우주의 모습이다.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인간은 아무런 사심이 없이 움직이는 그 한 별 위에 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욕심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우주는 사심 없이 공평무사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우주의 모습을 관찰하여 인사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것은 음양오행이라는 해석법을 낳게 되었다.
핼리 혜성의 일주기는 76년이다. 많은 혜성들이 태양계를 떠돌다가 사라진다. 이 혜성이 지구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금세기 최대의 우주 쇼’라는 것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들에게 혜성이 지구의 중력권으로 빨려들면서 불타버리는 모습은 밤하늘의 폭죽놀이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일관(日官)들에게 혜성의 존재는 서양인들이 보는 ‘우주 쇼’와는 전혀 다르다. 혜성이 나타나면 그들은 재빨리 70년 저편의 혜성에 관한 선배들의 기록을 뒤지며 도읍의 뒷산이나 앞산으로 달려가 나무와 풀들의 상태를 살피고 땅을 파보았다. 산천의 식생 변화와 땅 속에 어떤 벌레들이 사는가 하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하여 추론한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음양오행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은 태양계의 별들이 만들어낸 관계이다. 그 관계를 흔드는 것은 없다. 우주는 공평무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76년만에 한 차례씩 이러한 공평무사함을 뒤흔드는 존재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혜성이 바로 그것이다. 혜성의 출현은 지구와 달과 태양의 관계가 어떤 힘에 의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연히 그 변화는 지구 위에 편승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 변화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인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일관들의 임무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의 역사 서적에 혜성에 관한 기록이 지루할 정도로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우주 쇼’라는 발상의 문제점은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양사회를 떠받친 한쪽 기둥을 상실하면서 스스로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그저 놀잇감으로 보고 마는 범한 중대한 오류인 것이다.
명리학이라는 이름을 얻은 사주는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인사에 적용된 법칙이다. 그 법칙이 얼마나 정확하고 유용한가 하는 것은 이 글의 본 주제가 아니다. 이 글의 목표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어떤 세계를 환기시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매개체로 홍명희가 선택되었을 뿐이고, 이로써 작가론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이 글의 사명은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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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후에 다른 문인들의 출생시간은 어떤가 하고 알아보았는데, 실로 놀라웠다. 출생시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직 김윤식만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연보에 이광수의 출생시간을 인시라고 적어 두었다.
2)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사주명리학에서 나온 말일 듯 싶다. 비위가 약하다는 말이 한방원리에서 나온 말이듯이 위의 말은 명리학에서 나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10년이 흐른다고 해서 강산의 모양이 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강산은 사람이 사는 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주 학에서 일주가 뿌리내린 토양인 지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지지는 대운에서 10년 단위로 변한다. 10년에 한 번씩 일간이 뿌리내린 토양(江山)이 변하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말은 ‘仁者樂山 知者樂水’라는 구절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물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 말이다. 물은 스스로 형태를 바꾸어 어디에나 안기기 때문에 적응력을 말한 것이다. 이런 적응력이 바로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앞구절이다.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오행의 원리로 이 구절을 보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仁은 오행상 木에 해당한다. 나무는 산에 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니 仁木이 산을 좋아하는 건 물을 것도 없는 것이다. 지혜는 오행상 水이다. ‘仁者樂山 知者樂水’는 오행가들의 철학에서 나온 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충북작가 2004년 겨울 통권 제18호
첫댓글 늘 그러시듯 명쾌한 글 잘 읽었습니다.
9 -2)십성 12~13행 식신 상관 설명과
10. 문예창작의 비밀 3행 식신 상관 설명 다시 봐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