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의 성화론 소고(3)
칼빈 성화론의 직접적 영향
1. 죄 죽이기(Mortification)와 영 살리기(Vivification)
오웬 성화론의 핵심인 ‘죄 죽이기’(Mortification)는 그의 독창적 교리나 창작한 용어가 아니었다. 이는 칼빈에게서 나온 것이다. 칼빈은 회개에 관한 정의를 내릴 때 죄 죽이기(또는 육, 옛 사람의 죽임, mortification)과 영 살리기(vivification)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향하며 우리의 이전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판단컨대 회개의 올바른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곧 회개는 우리의 생활을 참으로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옛 사람과 육의 죽임과 성령의 살림으로써 구성된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3.3.5. |
칼빈에 의하면 인간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이 은혜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법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적인 것이다. 법적으로 그리스도의 의(義)를 전가 받았을지라도 전인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사역으로 경험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 그리스도의 의의 법정적 전가에 대하여 인간이 보이는 반응은 회개이다. 칼빈은 이 회개를 성화와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회개와 성화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죄를 죽이는 것’과 ‘영을 살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요소는 칭의에 이어서 따라오는 것으로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연결된다.
‘죄 죽이기’의 대상은 ‘육신’ 또는 ‘옛 사람’이다. 칼빈이 말하는 육신은 물리적인 육체가 아니라, 인간이 아담으로부터 유전 받은 타락한 본성에 대한 총체적 표현이다. 신자는 비록 죄의 절대적 통치에서는 벗어났지만 ‘죄의 실재’는 신자들 내면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죄의 절대적 통치시기에 습득한 타락한 본성들에 대하여 신자는 ‘죄 죽이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은 죄 죽임의 과정을 통해서 신자의 자유를 이루어 주시도록 역사하신다. 칼빈은 회개를 중생으로 보며 회개의 목적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지고 거의 도말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다면 로마서6:6(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말씀처럼 부패한 옛 본성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우리가 그의 부활에 참여한다면 그로 인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3.3.9.)
2. 성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
칼빈의 『기독교강요』제3권은 ‘죄 죽이기’(mortification) 신학에 대한 신학적 기초가 된다. 이는 존 오웬에게 계승되었고, ‘자기부인’(自己否認)의 정서는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에게까지 연결된다. 칼빈과 조나단 에드워즈 사이에 있는 존 오웬에게는 칼빈 성화론의 정서, 특히 절대적 신본주의가 더욱 강력하게 나타난다. 칼빈은 자기부정(self-denial)을 말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기를 부인하여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남의 소유권과 지배권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신자는 그 안에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사셔서 지배하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주인행세를 하지 않고 새 주인인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3.7.1.) 하나님께 대한 자기 부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헌신을 말한다. 자기 부인은 이웃에 대한 신자의 태도를 바르게 해주며 겸손함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서 순수한 사랑으로 섬기게 한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3.7.4-10.) 자기부인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자의 내면적 복종에 초점을 둔다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신자의 외면적 삶이 그리스도를 닮은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스토아학파의 숙명론과는 확실하게 다른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신자에게 고난 가운데에서도 즐거움에 거하게 한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3.8.2-11.)
(to be continued)
첫댓글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것' 두 가지를 포함한다고 본 것이 인상적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부인'이 내면적 복종에 초점이 있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외면적 삶이 그리스도를 닮은 것에 주안점을 둔다는 표현이 서로 대비 되며 아주 좋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공감 감사합니다.
칼빈과 칼빈주의가 흔히 사용하는 2중적 지식이 성화론에도 나타나고mortification과 vivification으로 전문화시켜 설명한 오웬의 설명이 현실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오웬이 존 칼빈의 신학을 계승하고 받아들인 것이 많나 보네요. 한분 공부를 통해서 두분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 같아서 더욱 감사합니다.^^
공감 감사합니다.
존 오웬을 포함한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신학에 업데이트 하거나 어느 분야를 특화시키면서 발전한 신학자들입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화로 이어진다는 것에서 구원의 서정의 흔적을 느낍니다. 제가 잘 이해한 것이 맞는가요?
네, 제가 감사할 정도로 잘 핵심을 이해하셨습니다.칭의의 결과가 성화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self-denial은 그리 스도께서 낮아지심으로 모범을 보이셨고요. 그리스도인들도 본 받고 성화의 과정에서 유지해야 할 기본자세입니다.
많이 배우고 또 배웁니다. 본문에 쓰신 것처럼 우리 삶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고 주님이시다는 것을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길 오늘도 기도합니다.
방문 및 댓글 감사합니다. 작성시간을 보니 다윗님이 피곤치 않고 건강하시기를 또한 기도드립니다.
오웬 성화론 다른 연재물 (4)와 (5)도 읽으시면 이해가 더 잘 됩니다.
https://cafe.daum.net/1107/YY6J/11
https://cafe.daum.net/1107/YY6J/12
칼빈과 조나단 에드워즈 사이에서 개혁주의 성령론을 전개한 존 오웬의 활약이 큰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이 글을 봅니다. 자꾸 보니까 이해가 더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