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가? 필연인가?
나는 노사연의 노래 가사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라는 말을 믿고 살아왔다. 물리학을 공부한 내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고전 물리학 이론은 어떤 물체의 현재 상태를 알면 미래에 어떤 상태에 있을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는 “노력하면 우연도 필연으로 바뀔 수 있다”고 늘 말해 왔지만칠순을 앞둔 현 시점에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해 보면, 내 인생에서 만큼은 고전 물리학 이론처럼 운명은 이미 필연처럼 결정되어 있다는 말을 믿고 싶다. ‘年月日時 旣有定浮生 空自忙(년월일시 기유정 부생 공자망)’, ‘사주팔자가 다 정해진일인데 부질없는 인생들이 그것도 모르고 바쁘기만 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하나만 소개 하겠다. 1976년 여름 나는 빛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보병 28사단 81연대 소대장으로부임해 왔다. 동두천, 연천, 전곡, 옥계리, 어유지리가 내 활동 무대였다. 젊은 시절에는모두 그렇겠지만 나는 ‘정의를 위해 살고, 약한 자를 위해 헌신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소대에 사고가 터졌다. 철문을 지키고 있던 분대장이 다른 중대의 중대장한테 철모로 머리통을 얻어맞고 코피를 흘리며 내게 왔다. “소대장님, 억울합니다. 철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고 아무개 중대장이 저를 마구 때립니다.” 초병의 수칙으로 보면 사전 통보 없이 누구도 철문으로 들어 갈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초병을 구타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일시적으로 생긴 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피 흘리는 분대장을 앞세우고 내 총을 들고 나섰다. 총을 쏘았다. 중대장은 “소대장 놈이 겁이 없다”며 나를 두들겨 팬다.그때 다친 어금니는 지금도 임플란트로 남아있다. 그 일이 정말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목표물에 확실히 겨누지는 않았지만실제로 총을 발사 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만일 총알이 나갔더라면 나는 ‘상관 살해 미수죄’일 것이고, 만에 하나 그것이 상관을 맞추었다면 ‘상관 살해 죄’로 남한산성에 갔을 것이다. 나중에 보니 총에는 아무런 이상이없었지만 하여간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필연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군대에서 지금은이처럼 치고 박고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사건 이후 나는 ‘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한순간의 화를 참으면 백일동안 걱정이 없다’는 말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고향을 떠나 이곳 대구에서 40년째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전주에서 나를 대신하여 고향을 지키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것도 필연인 것 같다. 내 아들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말이다. 나는 요즈음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과학관련 동영상을 만들며 지내고 있다. 내 생활이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한번 씩 보기 바란다. 이제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옛일을 생각하면 나는 인생사에서 만큼은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고전 물리학을 믿고 싶다. 그러나 수업 중에는 최신 이론인 양자역학을 말하고 다닌다. 양자역학에서는 아무리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어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자와 같은 미시 세계에 적합한이론이다. 내 몸을 포함하여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수업 중에는이 이론을따를 것이다. 우주 탄생이 137억년, 지구의 역사가 45억년, 유인원의 탄생이 4백만 년 전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이처럼 거대한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 속에서 관중이자 배우로서 짧은 시간 동안 살다가 새로운 별의 재료가 되어 갈 것이다.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소들은 별에서 왔으니까!
2021. 5. 20 대구에서 친구들을 생각하며 최윤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