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
정두환의 음본세-1
“부산은 문화 노다지” - 부산 공연장은 정체성(正體性)과 당위성(當爲性)을 찾자.
정두환 (문화유목민)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산을 일컬어 ‘문화 불모지’라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현재 부산은 산과 바다를 아우르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한 피난처였던 만큼 수용성이 강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의 변방이라는 서울의 따가운 시선을 조금 비틀어보면 외부 세계와 만나는 첫 출발지로 다양한 문화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닌 도시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외부 문화의 빠른 접목으로 부산 고유의 정체성이 많이 희석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바다를 통한 외부와의 접촉이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보니 보다 적극적인 생활력과 활력 넘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다소 투박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 깊은 부산 사람들은 외부로 부터의 문화를 잘 받아 부산의 모습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의(不義)에 저항하는 저항력도 강하다. 그만큼 부산은 속 깊은 정을 나누는 도시다. 하지만, 문화만큼은 스스로를 비하하듯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라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이유가 명확해지면 해결책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먼저 부산의 문화예술이 펼쳐지는 공연장을 살펴보겠다. 이는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적게는 수 백억원에서 많게는 수 천억원의 시민들 세금으로 조성된 공연장이 그 정체성과 당위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는 꼭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1973년 10월 10일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에 개관한 부산시민회관은 부산 최초의 1,600여석의 대규모 공연시설로 당시 시민회관 주변에는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 터미널, 자유시장, 평화시장 그리고 한양아파트 정도의 큰 건물 이외에는 대부분 공터였다. 먼지 날리는 광장 같은 곳에 공연이 있는 저녁이면 부산 문화의 자존심 같은 밝은 조명이 궁전처럼 불을 밝혔다. 각각 따로 연습하던 부산시립예술단이 한곳에 모여 부산직할시 시립예술단이라는 명패를 처음으로 붙이며 부산 공연예술의 자존심을 세웠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동안 잘 갖추어진 공연장 하나 없이 학교 강당을 비롯하여 영화관에서도 공연을 하여야 했던 공연예술이 이곳 부산시민회관에서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 공연장 개념보다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이였기에 순수 클래식 공연에서부터 일반 대중공연 및 각종 행사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로 인하여 부산시민회관은 외부보다는 내부 시설의 노후화가 빨리 생겼다. 이후 1983년에 착공하여 1988년 대극장 준공을 시작으로 1993년 전관 개관으로 부산문화회관으로 공연예술의 흐름이 바뀌었다. 부산시립예술단도 시민회관을 떠나 부산문화회관으로 옮겼으며 이곳은 부산 최초로 종합문화 예술공간으로 음악, 무용, 오페라, 연극 등 실질적인 공연예술 중심 극장이 된 것이다. 전문 공연장이 생기고 나면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현실은 여전히 문화의 불모지라 많이 회자된다.
이후 2008년 기공식을 시작으로 2011년 9월 개관한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있는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으로 복합문화공간이 탄생하였다. 부산을 명확하게 ‘영화의 도시’로 선언한 셈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이 영화제를 위한 전용공간을 만들었는가! 부산이 이루어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만큼 부산이 영화를 사랑하고 함께한다. 이름하여 영화의전당 애칭이 ‘두레라움’으로 이는 함께 모인다는 ‘두레’와 즐거움을 뜻하는 ‘라움’이 만나 함께 즐거움을 즐기는 곳이라는 뜻의 ‘두레라움’이 생긴 것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2012년 6월 해운대구 우동에 개관한 벡스코 오디토리움은 4,002석을 자랑하는 부산에서 가장 큰 복합문화 공연시설이다.
어디 그뿐인가. 기초자치단체의 문화시설들이 부산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의 금정문화회관은 2000년 5월 개관한 곳으로 문화예술공연과 전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문공연장으로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다.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남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낙동강에 2002년 10월 개관한 을숙도문화회관은 자연과 함께 즐기는 종합문화예술공간으로 서낙동강권역의 공연문화예술을 책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의 북구문화빙상센터는 2005년 7월 문화체육시설로 개관하였다. 이는 공연문화와 체육이 한 곳에 자리한 부산 최초의 복합문화체육 공간이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의 영도문화예술회관은 2009년 10월 개관하였으며, 부산광역시 남구 용소로에 개관한 부산예술회관은 2011년 3월에 개관하였다. 크고 작은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들이 공연예술을 비롯하여 다양한 예술강좌와 전시를 활발하게 개최하여 풀뿌리 공연예술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북항에 들어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시민공원에 건립될 국제아트센터 등 우리네 삶 주변을 조금 살펴보면 누릴 수 있는 공공 공연장을 비롯하여 사설 문화예술공간들이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부산이 문화 불모지인가? 각 공연장의 공간만으로는 결코 문화 불모지가 아닌 문화 노다지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이야기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각 공연장이 만들어질 때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놓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먼저, 부산시민회관부터 살펴보자. 시사업소에서 시설관리공단 위탁 경영을 거쳐 지금은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곳은 체계화된 부산 공연예술 문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부산공연예술 전문 연구원 또는 정책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어 부산의 공연예술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문화를 실험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자리매김 하여야 한다. 부산 공연예술의 심장 같은 곳으로 연구자료를 비롯한 부산의 모든 공연예술 공유의 장으로 그 역할을 다하여야 하며, 이곳에만 가면 부산의 공연예술 현황이 바로 파악되어 안내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 부산에는 공연예술 현황이 한 눈에 파악되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
부산문화회관은 시립예술단이 자리하는 곳이니 만큼 질 높고 저렴한 공연예술이 끊임없이 펼쳐져야 한다. 다른 공연장과는 다르게 대관 중심 극장이 아니라 제작 중심 극장으로 거듭나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이나 다양한 시설들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순수예술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니 만큼 순수예술을 위한 다양한 예술은 마음껏 펼쳐지지만, 자연음향이 아닌 전자 음향들은 그 사용이 최소화 되어야 할 것이다. 전자 음향들이 사용되면서 반사판과 흡음판 등 순수 자연음향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손상을 입는다면 이것은 시민 모두의 손실이다. 특히, 전문예술 공간은 자연음향을 요구하는 순수예술공간으로 거듭나야 하며 제작공연장으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져야 부산 공연예술의 보다 큰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한 곳이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년 열두달 중 한 달만 사용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목적에 당위성을 줄 수 있는 것은 영화를 중심으로 한 시설 활용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영화를 비롯하여 고전영화 및 다양한 명화 속에 사용되었던 영화음악을 새로운 각도에서 연주하는 기획을 비롯하여 영화를 중심축에 놓고 펼쳐지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져야 그 역할에 충실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각 공연장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공연장의 당위성(當爲性)을 회복할 때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不毛地)”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시설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상황의 공연예술이 올려진다면 전문성과 다양성 및 예술가 개개인의 철학을 존중하는 예술세계는 획일성으로 비슷비슷해지면서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예술은 감정의 전이(轉移)”로 규정한다. 이는 작가가 경험한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화된 시설과 다양한 예술가가 존재하여야 하고, 이곳에서 다채로운 예술이 펼쳐져야 한다. 이러한 예술을 전문 공연 현장에서 만날 때 공간은 정체성(正體性)과 당위성(當爲性)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정두환
_ 문화유목민
_ 문화유목집단동행 예술감독
_CBS교향악단 상임지휘 및 예술감독
_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