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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홍 철
내소사를 다녀와서 외 3편
9월의 초엽
등산객의 행 열로 내소사를 찾았다.
부안의 내변 산과 곰소 항을 끼고
어쩌면 이절은 인적이 드문 곳
가파른 산기슭에 물은 말랐고
단청하며 석등은 그대로 있네.
전나무 숲의 향기와 일렬로 늘어선
나무들의 도열이 나를 반기고 있네.
이곳은 덧없는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정다운 연인들의 산책로가 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다리
바로 이곳에서 대장금의 주인공들이
사랑을 속삭였다네.
나무들은 말 하네
물도 귀하고 인적은 없어도
세월의 모진 풍파 다 겪어가면서
내 비록 고목 일망정
꿋꿋하게 살아왔노라고.
인생들아 세월을 탓하지 말고
나무처럼 대자연의 조화 속에
균형을 갖추어 아름다움의
멋진 향연을 다시 시작해보지
않으시려나.
가을의 기도
주여,
가을에는 혼자 있게 하소서
낙엽을 밟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
나의 추악한 모습과 헛된 욕망의
묵은 찌꺼기들을 걸러내는
진정 나를 알아가는
고뇌의 시간들로
채워주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옷보다 몸보다 빈 가슴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다가가
코스모스처럼 들국화처럼
함초롬히 이슬 맺은
순수한 미소로
따뜻한 눈물로
껴안게 하소서.
가을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호스피스 병동의 죽어가는 심령들에게
내 주변에 갑작스럽게 타계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시간과 공간과 지식을 초월하여
과거는 괴로운 것 미래는 불안 한 것들을 떨쳐버려
오직 현재가 신의 선물이며 은총인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귀 향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인생들인가.
핵실험의 공포에 긴장하는 민초들과
다중 추돌사고에
목숨을 잃은 위령들 앞에
상실과 이별의 아픔은
성숙으로 가는 길
죽음은 최고의 축제
장막은 낡아 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기한이 차서 거두어 가는 것
나를 바라보자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누리며
단순하게 살자
심각한 것은 죽음 앞에
초라한 존재인 것을
이제야 알았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빈 자 리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빈 봉투, 빈 술병이 전시물로 놓여 있다.
관람객들에게 빈 자리를 채워 달라고.
만월은 반달이 되고 반달은 초생 달이 되어 스러져 가지만
또 다시 채워져 시간과 공간 속에 만월이 되어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육신의 빈 자리,
마음의 공허만 남아 있는 영혼의 빈 자리는
누가 와서 채워 주는가?
예수님의 빈 무덤,
내 영혼이 병들었을 때
상처 입은 심령들이 방황하고 고독할 때
어루만져 주고 꿰매어 줄 수 있는 그 사랑으로
초생 달처럼, 반달처럼 살아가자
만월을 그리워하듯이
부족한 나의 허물, 나의 못난 자아를
죄악 된 세상에서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 줄 수 있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빈 자리를
채워가자
그러면
나 외롭지 않으리라
빈 자리를 사랑하자
예수님의 마음으로
넉넉하게.
김 영 숙
아카시아 (1) 외4편
대롱대롱 향낭을 달고
오월의 웃음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피어
눈을 감으면
코끝에 묻어나는
아픈 울음 닮은
헐거운 눈빛도 부셔라
꽃잎이 파열하면
오후의 시린 햇살
향기 품으며 흩어지는
살빛도 희다
바람이 밟고 지나간 자리
주검의 유혹
풀 먹인 옥양목처럼 서럽다.
아카시아 (2)
내 그대에게 묻노니
어이하여 그리 독한 향기를 품느냐고
내 영혼의 보리수나무에
갈까마귀 같이 밀려오는 그리움
아픈 사랑 주렁주렁 매달고
온 산이 백기 들고 흔들면
그대 향 품고 스며들어
아름다운 영혼의
맑은 종소리로 내게 피어나소서.
화 분
지난겨울 북풍한설 일더니
마른 육체 드러나고
앓고 난 뒤 황달진 눈빛
안쓰럽게 매달려 있구나
서로 사랑 하지 않기로 했나보다
강력처방 사이비 교주는
영양주사, 비료 가루약 ,날마다
모닝커피도 한잔씩 주기로 했다
그들은 아직 아픈 몸짓으로
한 몸이 되기를 거부한다
봄이 무르익어
옷을 한 겹씩 벗는데
어이하리
내 운명을 전부 통과하는
나의 집착이 부담스러워
生 을 놓으려 하는구나
수선화 꽃 같은 수려한
기다림 일 줄이야
단 한번 눈길 속에
한세상 피고지고
묵화(墨畵)
청풍명원(淸風明月) 매화 향기 그윽한데
도도한 달빛아래
차(茶) 한잔 마주하고
죽림칠현(竹林七賢) 선비와
폭포수 용트림하는
선(仙)의 경지에
붓 하나 집어 들고
점점이 그려가는
묵(墨)의 세계 도취하여
용호상박, 일필휘지 ,화용점정
(龍號相搏, 一筆揮之 ,畵龍點睛)
바라보니 선(線)이로세 점(點)이로세
용이 꿈틀대고 학이 춤추고 광풍이 몰아쳐
정신이 혼미하여 깨어보니
아…. 애닯구나
꿈이라니 ,꿈이라니
한여름 밤의 꿈인가
한낮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이런가.
앵 두
달빛 담뿍 속눈썹 다물면
인광(人光)처럼 수줍게 별이 지고 있다
여물은 붉은 구슬알
으스러지게 껴 않아
발가벗겨 놓고
투두둑 뱉어내는
앵두 같은 입술
아이들은
댓돌 위에 종알종알
예(禮)를 내려놓았다 .
-구리문예대학 2기생
박 경 희
패 키 지 외2편
어제와 같은 일상
전단지 하나 집 앞에 서 있다.
동전 하나에
수레의 사슬을 풀어
단금우로 동행한다.
뉴질랜드에서 온 키위며
필리핀에서 온 바나나가
진열대 위에 파격세일로 누워있다.
할 말이 눈에 걸린
호주산 암소 한 마리
두고 온 집 생각에 눈만 끔뻑인다.
하얀 목련으로 떠 있던 햇살이
확성기 소리에 흩어지고
아낙들의 수런거림이 식품코너에 몰릴 때
된장이 고추장 쌈장과 패키지로 묶여
제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는 가족의 얼굴이
된장이 되어 묶인다.
계좌이체
현금 부스 안
카드를 넣고 지문을 입력한다.
인생의 잔고를
하늘 계좌로 이체할 즈음
알 수 없는 숫자가
내 삶의 내역으로 찍힌다.
잔고 부족
개인 회생 신청을 한다.
명상의 뒷문
어둠 속에서
술은 까맣게 웃었다.
하얗게 세우려는 욕망이
허기진 초승달에 부딪혀
술잔 속에 넘어지고
나를 지키던 보루들
삼천궁녀처럼
잔속으로 낙하할 때
나폴레옹은 내 혀끝까지 정복한 채
깃대를 꽂는다.
버티어 낼 재간이 없다.
나는 있지만
빛바랜 이야기조차
취한 채 비틀거리기에…
시침과 분침이 한 몸 되어
거친 숨소리를 뿜어낸다.
밤은 고요를 겁탈 당하고
비워진 술병엔
젖은 언어들이 방울방울 맺힌다.
박 승 호
부풀림의 고개를 넘어보니 외 2편
당신, 떡국 몇을 비웠소
서른에서는 서넛을 올려서 비웠소 했다.
사실처럼, 눈 하나 깜짝 않고서,
당신, 떡국 몇이나 비웠소
불혹에서는 두셋 올려서 비웠노라 했다.
눈 힐끔 눈치 보면서,
당신 떡국을 얼마나 비웠소
지천명에서는 하늘 뜻 따르라 하지 않았소 했다.
살포시 눈웃음 깜박거리면서,
해가 바뀌어도 떡국을 안 비웠다고 한다.
음력으로 산술 한다고,
설 첫날 이르러서 아직도 안 비웠다고 한다.
생일이 아직 안 와서 ‘만’으로 산술 하니까,
떡국 하나 비웠다는 대답이 갈수록 멈칫 멈칫 해진다.
숯
태고의 그 명성 자자손손 이어온 그대,
이글거리는 몸뚱이 사력을 다한 듯 그 풍채, 힘, 당당함은 어디가고,
비늘가루 떨구며 수(壽) 다했노라 눈짓한다.
할 일 다 하고 형 먼저 가 있을 테니 쉬이 뒤따라 날 찾아오되,
해야 할 일 다 못하면 찾지마라 말 남기고 떠나간다.
몸 내어던져 떠나간 그 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꼬마 새들의 눈동자가 순해 보인다.
오래 살 꿈을 품고 향스런 체취 껴안고서,
상상의 목욕을 한다.
길이 막혀 허둥대고, 무거운 바위 붙잡고 놓치면 깔리는,
욕심과 번뇌의 우산 속에서 혼자 비를 피하겠다고 우기는
갇혀 있는 새,
아우의 성성(聖性)함이 어지럽고 엉클어진 우산 속 형상,
형체를 그림자까지 귀양 보내는 강한 체취로 다스려 줄 그대,
할 일 다 하고 형과 만날 것을 주문해 본다.
조 상
당신과 나 경계선 하나,
북촌에는 어둠
남촌에는 햇살
어둠은 오로지 해를 밀어 올려
햇살의 온몸을 따뜻하게 감쌌다.
점점이 흩어져 고독한 당신, 다리 아플까 봐
한 울타리에 덩실한 집을 지었다.
사랑채 모여서 못다 한 이야기 마음껏 나누라고…
이제껏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들 눈 녹듯 사라진다.
씨눈 뿌리 되어 가지마다 둥글둥글, 주렁주렁,
외가지 노랫가락 한 뼘 안의 장구소리 추임새도 그만이다.
흐뭇함 넘쳐서 기쁨의 눈물 보인다.
햇살, 울타리 마주잡고 우애 담은 큰 그릇 가슴에 여미며
이어온 ‘넋’ 잃지 않겠다.
끝머리에 비가 왔다.
길조가 둥지 째 와 살포시 미소 짓는다.
이 선 자
그리움 (1) 외3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머물러 있어도
노을빛에 황혼이 물들고
그리운 사람이 보고파지면
빈 우편함을 열고
외로운 속만 바라보다가
빈손을 주머니 속에 넣고
거리를 나선다.
지난 가을에 입었던 코트 속에서
만져지는 작은 머리핀하나
기억을 들추어내어 가슴을 적신다.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젊은 연인들에게서
지난 내 모습을 찾아보려고
기웃 거리기도하고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다
슬며시 머리에 꽂아도 만져도 보고
행여 당신이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가당치 않는 설레 임에 두리번거리다
허탈한 마음으로 머리핀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선다.
가을 노래
깊은 밤 문지방을 넘어 시렁위에 앉은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열어 두어도
봉당 앞 감나무 잎을 떨 구는
가을바람 소리에
귀를 열어 두어도
밤나무 밑에서 자고 있던 복순이가
나뭇잎 구르는 소리에
얌전한 사립문을 향해 짖어대는 소리에
귀를 열어 두어도
처녀 허리 같은 초승달이
뒤뜰 대추나무 가지를 살짝 밟고 올라서는 소리에
귀를 열어 두어도
가운데 이름 자 가 같아서
부부 연을 맺어 야 한다고
전생의 인연이라던
양촌리 연식이 오빠와 연촌리 연희 언니의
가을 사랑 소리에
귀를 열어 두어도
가을 소리에 밤 깊은 줄 모른다.
이 별
지난겨울
우리 둘 만의 약속은
겨울 잿빛 하늘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눈 위에 새겨둔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속에 돌덩이처럼 굳은 사연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약속들이
하얗게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춤출 때
한번 도 헤아려 보지 못했던 이별을
하얗게 내리는 흰 눈처럼 부서지는
약속을 잡으려는 간절함을
등을 돌리고 돌아서면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느껴지는
가슴 설레임과
잔잔한 침묵을 통해 전해지는
행복한 감동
그 소중했던 기억들을
하나 둘씩 잊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검게 타오르는 잿빛 하늘에
우리가 나누웠던 수많은 대화를
말없이 실어 보내 봅니다.
당신이 남기고간
휑한 이 자리에 서서
끄나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속에
서로 할퀴기만 했던 지난날
뱃속 깊은 분노의 덩어리는
풀어버려라 풀어버리라고
뭉클한 멍에를 밀쳐낸다.
죽은 사람도 한잔
산 사람도 한잔
술잔 가득 마음을 실어
보내는 내 손길은
동지섣달 빈 들판을 어루만지는
달빛처럼 끌어안는다.
산 사람만이 붙잡는 미련
흐린 기억이라도
날 기억하는 모든 것
인제는 오늘까지만 하자고
줄지어 엮어놓은 기억의 끄나풀 풀어
서러운 손을 놓아 버린다.
이 은 순
아름다운 영혼을 위하여 외1편
황톳빛 강가 길섶을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싶어 하는 이
오늘도 걸어갑니다.
멀리 산 아래
밤꽃은 피어 화려한 웃음으로 다가오는데
아린 가슴을 안고 쓸쓸히
걸어갑니다.
한줄기 진실의 향기 지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싶어 하는 이
모든 욕망을 버리겠노라 되뇌이며
오늘도 그렇게 걸어갑니다.
사 랑
그대여
멀리 가지 마십시오
가까이 오십시오.
아무리 발버둥쳐 보아도
우리는 외로운 인간인 것을…
이 현 진
열락(悅樂) 외3편
- 수종사에서 -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가파른 길
다 오르지 못하고
참선 중인 나무
먼 길 찾아 온
나비
양지바른 법당
파초에 앉아 있다
번뇌의 열기
훨훨 부채질하며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어느새 하늘 곁에 와
구름처럼 떠있다
운길산이 정좌하여
침묵 속에 잠기고
강가에 너울거리는
연잎 사이로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시다
양수리(兩水里)에서
배는
갈 수 있을까
느티의 한숨
환호성이
울려 퍼질 날은…
주변의 안개 속에서
갈 길을 찾는
한 반 도
동구릉에서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태양의 계절을 만끽하고 있는
천진스런 아이들
어른들의 세상은 이전투구의
모습뿐이던가
새 왕조를 세우느라 흘린 피로
임진왜란을 겪었음일까
천륜을 뒤집은 죽음의 사슬
뒤엉킨 그늘에서
소풍 온 아이들의 소리
들렸다 끊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고요한 능에는
개울 물소리만 맑게 흘러간다
흔 적
- 천상병시인이 머물던 카페에서 -
인사동 골목
하늘이 환하다
귀천(歸天),
주름진 나무탁자 대 여섯
앉아 있는 검은 색 긴 의자
선풍기 하나 가운데 서 있다
송사리들 달을 맴돌고
눈 감은 앙상한 새 한 마리
학창시절, 다정했던 시절도 있다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던
시인
사뿐히 그의 시를 딛고
맑은 물가를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
어디를 가고 있을까
창가의 고기들과 소풍을 즐기니
그가 들어오며
반갑게 손을 잡는다
분홍자전거
길 가에 나와 있는
바구니 달린 분홍자전거
지날 적마다
차창으로 내다본다
큰 자전거 옆에서
혼자 칭얼거리며
햇볕을 받고 있을 때나
비를 맞고 있을 때나
눈에 밟혀 자꾸 쳐다본다
바다 건너 멀리
살고 있는
분홍색을 좋아하던
우리 손녀가 타던 자전거
최 인 희
숫매미 외2편
매미가 나무 등걸에 앉아 울고 있다
사랑이 허락된 날이 열닷새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럽도록 운다.
일곱 해(年) 동안 정전된 토굴 속에서 살았다
수액(樹液)을 뿌리에서 동냥하던 일이며,
유기된 미아의 불안함이며,
서릿발에 떨던 밤이며,
우의도 없는 질퍽한 몸부림을 떠올려본다
노을의 농도만큼이나 짙어지는 울음
어둠이 내려도 속울음을 운다. 날이 샐 때 까지
마지막 사랑의 콘서트가 열리고
광란의 밤을 위한 몸부림으로 목은 쉬었다
사랑에 굶주린 사내는 울고 있다.
코스모스의 사래짓
여린 긴 목
살랑살랑
고갯짓
쓰러질듯
꺾어질듯
긍정일까
부정일까
나약한 몸짓이 애처롭기만 한데
깊은 속내를 어이 알려나.
눈빛
기다림의 눈빛에서
부정 속에 긍정을 보았고
애수에 젖은 눈빛에서
사랑을 보았네
떨리는 손끝에서
수줍음을 보았고
촉촉한 손에서
사랑을 느꼈네
-구리문예 지도위원
한 철 수
빼뻘농장 외3편
곡우가 지나면 푸른색
운동복 이들이 물꼬를 트니
물뻘이요
하지가 지나면 붉은색
운동복 이들이 잡초를 뽑으니
땀뻘이요
한가위가 지나면 얼룩옷
운동복 이들이 벼를 베니
복뻘일세
*빼뻘: 의정부 송산교도소 앞의 뜰로 우수재소자들이 경작을 하는 농지.
꽈리꽃
주홍빛 주머니에
붉은 구슬 한 알
꽈르르
생각을 깨는 소리
꽈르르
아이들 웃음소리
꽈르르 꽈르르 꽈르르
복소리가
숨어있다.
코카서스는 죽었다
얼음나라 코카서스에
악어가 있으니
코카서스 어른들은 죽었다
나머지, 코카서스 아이들만
반바지로
뻣뻣이 서서 웃고 있다
Das Experiment
-두 가지 인간성에 던지는 넋두리-
(신(神)이 태초에 인간을 빚어낸 것은 신에게 순종하고 자연에 순종하는 선한 존재로 만들었건만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 버렸다.)
아, 가인과 아벨이여.
맹자와 순자여.
몸은 하나인데 두 개로 생각하고
두 개로 행동하는 심신(心身)이여.
몸은 샴쌍둥이 마음은 도플갱어
두 사람이 서로 붙어 생각은 다르되 홀로 움직이는 뭉쳐진 육체
한 사람이 갈라져서 두 사람으로 사는 분열된 영혼
(2005년 한국은 현실은 없고 과거만 있다 미래는 현실과 같다)
각설하고
선과 악이 줄다리기를 한다
강과 약이 징검다리에서 만났다
육체를 구성하는 4만개의 유전자 소름끼치는 게놈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난 배아형줄기세포
인간이 인간의 편리를 위해 정신은 모르모트가 되고 마루타가 되었다
선한이를 악한자로 약한이를 강한자로
서로 역할을 바꾸기 위한 14일간의 실험
하지만
이틀만에 경계는 무너지고
닷새만에 선악은 완전히 뒤바뀌고 강약이 바뀌었다
아흐레는 무한의 공간으로 사라진 닷새간의 스탠포드실험이여
(2006년은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지 마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했다.)
*독일의 영화 "Das Experiment"를 기초로 글을 작성했다.